메뉴 건너뛰기

close

국정홍보처가 22일 국무회의 의결을 거쳐 발표한 ‘취재지원시스템 선진화방안’에 대해 언론들은 신종 언론탄압이며 국민의 알권리를 침해하는 제도라는 비판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취재지원 선진화방안은 정부 수립 이후 60여년간 지속돼온 취재관행과 문화를 개혁하자는 것이고 언론 스스로가 당사자이기 때문에 어느 정도의 반발은 이미 예견된 바다. 하지만 이 제도는 언론을 적으로 대하자는 것이 아니라 정부와 언론 간의 관계를 개방 경제와 글로벌 시대에 맞게 선진화하자는 취지에서 나왔다. 올해 초까지 독일 홍보관으로 근무했던 필자의 경험과 독일 언론문화를 토대로 왜 한국사회의 취재문화 개선이 필요한지를 살펴보고자 한다.

취재지원시스템 선진화방안은 이미 발표 전에 주요내용이 언론에 많이 노출됐다. 언론이 당사자이기 때문인지 발표 전부터 내용을 조금이라도 파악하려는 기자들의 취재로 국정홍보처 관계자들이 시달렸다고 들었다. 워낙 중대한 사안이라 발표 전에 홍보처 다른 직원들은 짐작은 했겠지만 상세 내용은 잘 모를 정도였다. 지난 1~2월 독일 홍보관으로 이번 제도를 위한 사례조사를 담당했던 필자 자신도 그 내용을 잘 모를 정도였다.

그러나 필자는 선진국 독일의 사례를 조사하면서, 우리가 가야할 취재지원 선진화방안에 독일 모델이 좋은 본보기가 될 것이라고 확신했다. 실제 발표한 개선방안도 선진국 독일의 모델과 유사한 점이 많다.

취재지원시스템 선진화방안은 언론이 먼저 제기했어야

필자는 이 제도의 도입으로 현장기자와 언론사 내부에서 느낄 파장은 거의 ‘쇼크’에 가까울 것이라고 예상했다. 단순한 취재지원 제도의 변화가 아니라, 지난 수십년간 굳어져온 정부와 언론 관계, 나아가 기자와 언론계 내부의 ‘타성’과 ‘문화’를 변화시키는 혁신적인 사건이기 때문이다.

사실 이번 정책으로 제일 힘든 사람은 홍보처 직원들과 각 부처 홍보관실일 것이다. 일부 홍보처 직원들도 솔직히 왜 긁어 부스럼을 만드느냐, 앞으로 누구 좋으라고 이런 정책 만드느냐는 원망 아닌 원망을 하기도 하지만, 정책의 취지와 성공적으로 안착했을 때 그 성과에 대해서는 모두 긍정적인 입장이다. 왜 우리한테 이런 고난의 업보를 지우냐고 하소연하면서도 “지금 우리 손에 대한민국의 미래가 달려있다”는 동감이 교차하고 있는 것이다.

이번 정책은 정부와 언론이 “그동안 스스로 자초한 미성숙의 상태에서 깨어나는”, 그야말로 칸트가 말한 ‘계몽’의 정의가 그대로 맞아떨어지는 방안이다.

다만 이번 개혁이 언론사 내부와 언론인들이 아니라 정부로부터 나왔다는 현실이 몹시 아쉽다. 6·10민주항쟁 20년이 됐는데도 아직 우리 사회에서 아래로부터의 개혁과 민주화는 요원한 것 같다. 특히 언론과 같은 사회 이데올로기 상층부와 기득권층은 더 하다.

언론이 이번 조치에 대해 마치 정부가 언론에 싸움을 걸고자 하는 의도가 있는 것처럼 보도하는 것을 보면서 정말로 안타까운 마음을 가눌 길 없다. 필자는 과거 세계언론사를 공부하면서, 어떤 정부도 언론의 자유를 침해하고 언론과 부당한 싸움을 하면 반드시 필패한다는 결론을 내린 바 있다. 이는 홍보업무의 ABC이다. 이번 정책을 입안한 현 정부의 홍보수뇌부도 같은 생각을 가지고 있다.

필자는 지난 15년간 정부 홍보업무에 종사하면서 한 번도 언론을 적으로 대하고 적대적으로 대한 적이 없다. 또 국내에서나 해외에서 홍보와 관련된 문제들이나 개인적인 문제들이 있을 때 주변 언론인들로부터 많은 자문과 도움을 받았기 때문에 이번 일로 혹시 언론과 불편한 관계가 초래되지나 않을까 염려스럽다.

개인적으로 필자는 기자들과 흔히 말하는 불건전한 관계를 맺은 바가 없다. 어떤 면에서는 때로는 경쟁하고 때로는 협조하는 약간 이상하게 들릴 정도의 관계를 맺어왔다. 특히 해외 근무시절에는 한국특파원 혹은 현지 독일 언론인들과 함께 ‘커뮤니케이션의 관리자’로서 정보를 먼저 입수하는 것이 업무의 관건이었다.

특히 홍보관으로서는 이 정보를 관리하고 어떻게 처리하느냐가 중요했다. 그래서 때로는 동종업계에 종사하는 언론인들에게 자문도 구하고, 입수한 정보를 필요시 전파하기도 하고 또 그들로부터 필요한 정보를 얻기도 했다. 그러면서 홍보관인 필자나 상대 언론인들은 각자 자기 본분은 잊지 않고 처신했기에 아직까지 인간적인 교분을 쌓고 있다고 자부하고 싶다. 사실 기자와 홍보관은 좋은 의미에서 ‘공생공사’하는 공동운명체다. 그런데도 이번 정책의 취지에 대해 누구보다 잘 아는 언론이 사실관계를 왜곡한 보도를 반복할 때 섭섭한 마음이 드는 것은 필자뿐만은 아닐 것이다.

취재지원시스템 선진화방안 발표 너무 늦었다

필자는 이번 취재지원 선진화방안 발표가 오히려 때늦은 감이 있다고 생각한다. 2006년 현재, 세계 최고의 인터넷 강국이자 선진적인 전자정부를 이룩한 국민소득 2만달러 시대의 대한민국에서, 시민사회와 미래를 선도해야 하는 언론과 정부 사이의 관행이 정작 정부 수립 60년 전 당시 국민소득 100달러 수준에 맞춰져 있다는 것이 놀랍기 때문이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언론도 문제지만 역대 정부와 공직자들이 언론과는 ‘좋은 게 좋다’며 비정상적 관계를 유지해온 책임이 더 크다고 본다. 심지어 2003년 참여정부 들어서도 이런 관행은 크게 고쳐지지 않았다.

2003년 투명한 정보공개와 공평한 취재기회 제공을 위해 출입기자제 폐지와 개방형 브리핑제를 도입·운영했으나, 시간이 흐르면서 브리핑실이 송고실로 이름만 바꿔 과거의 기자실로 변질되고 폐쇄적인 기자단이 유지됐다. 개방형 브리핑제도 공무원들이 아직 과거 관행에 젖어서인지 아니면 기관장(장관)들의 언론관이 문제인지, 당초 취지를 살리지 못했다는 지적이 있다. 따라서 이번에 발표한 취재지원 방안의 핵심은 4년 전에 발표한 제도 개혁의 ‘기본정신’으로 돌아가, 뉴미디어 시대에 걸맞은 ‘전자브리핑’을 활성화하자는 것이다.

4년 전 필자는 당시 개방형 브리핑제 준비를 위해 독일 사례를 조사한 바 있으며, 그 후 계속 독일 언론의 취재관행을 우리와 비교한 바 있다. 이 글에서는 독일 언론의 취재관행과 독일 유력언론사의 보도방식을 조망하고 이번 시스템 변화 이후 정부기관과 언론이 어떻게 변화하고 노력해야 할 것인지를 제안해보고자 한다.

독일에는 대통령궁과 총리실에도 기자실이 없다

독일에는 모든 관공서에 공보관실과 공보담당 공무원이 배치돼 있으나 기자실은 없다. 작은 시골 경찰서 단위에서 사고가 났을 때도 언론담당관이 지정돼 있으며, 일사불란한 정보제공과 홍보를 위해 모든 발표와 취재는 그를 창구로 한다. 공보관은 또 사건 현장에서 사건내용을 브리핑하지 경찰서 기자실에서는 하지 않는다. 경찰서 기자실도 아예 존재하지 않는다.

일선 구청이나 시청에도 회의실이 있는데, 브리핑이 있으면 이 회의실에서 하고 브리핑이 끝나면 기자들은 바로 송고하기 위해 관공서를 떠난다. 참고로 관공서 출입이 우리보다 까다롭다. 언론이든 민원인이든 공무원을 직접 만나기 위해서는 사전 약속이 반드시 필요하고, 사무실을 방문하더라도 본인의 집무실이거나 공동의 접견 공간에서 만난다. 반대로 공무원이 언론사를 방문할 때도 마찬가지 절차를 밟는다. 그러나 간단한 전화문의는 언제나 개방돼 있으며, 요즘은 이메일을 통한 문의를 선호하는 편이다.

독일 정부의 브리핑이 어떻게 이뤄지는지 보자. 중앙정부 차원에서는 현재 수도 베를린 연방 홍보처 건물과 나란히 언론인 단체인 ‘연방기자회견센터’가 있으며, 50명에서 300명까지 수용하는 ‘기자회견장’이 여러 개 있다. 매주 3번 열리는 ‘연방기자회견’에는 전 부처 공보관들이 참석하며, 거의 모든 중요사안이 발표되고 심층적인 질문과 취재가 이루어진다.

개별 부처 차원에서는, 심지어 대통령궁이나 총리실에도 기자실은커녕 출입기자도 없다. 독일 정부기관에는 대부분 브리핑실을 따로 두지 않고, 건물 로비 라운지에서 장관들이 즉석 브리핑을 하거나 회의실에서 브리핑을 하고 브리핑이 끝나면 기자들은 사라진다.

독일 사례를 조사할 때 필자는 독일 측 공보관에게 “브리핑이 끝나면 기자들은 어디서 송고하느냐, 계속 남아 있지 않느냐”고 물었더니, 이 공보관은 약간 의아해 하면서 “취재를 마쳤으면 바로 떠나는 것이 당연한 것 아닌가. 중요한 이야기를 들었는데, 바로 회사로 가서 기사를 작성해야지 왜 관공서에 남아 있느냐”고 반문한 기억이 난다.

가끔 중요한 회의가 끝나면 기자들은 취재원(장관)이 건물 밖으로 나오기를 기다렸다가 현관에서 즉석 인터뷰를 하는 것이 관례이다. 그런 즉석인터뷰가 더 생동감있고 자연스럽다. 그런데도 독일의 취재환경이 우리 보다 훨씬 낫다는 것이 독일을 방문한 우리나라 기자들의 의견이다.

노 대통령이 독일 총리실 로비에서 기자회견한 이유

2005년 4월 노무현 대통령이 독일을 방문했을 때도, 양국 정상의 공동기자회견은 총리실 1층 로비에서 이뤄졌다. 이는 한국 대통령이든 미국 대통령이든 마찬가지다. 회담장인 총리실에 브리핑실이 없기 때문이다. 독일 기자들은 이런 격식 없는 포맷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바로 그런 분위기에서 회견자가 오히려 더 솔직하게 말하고, 준비되지 않은 즉석 발언이 더 큰 뉴스거리를 제공한다고 생각한다. 자연스러운 분위기에서 오히려 취재원들이 더 자유롭고 솔직하게 이야기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 오히려 기자들은 이런 현장 즉석 인터뷰를 더 선호한다고 한다.

기자들이 ‘연방기자회견’이나 개별 부처 공보관만 통하면 모든 것이 원스톱 서비스되는 것이 독일 언론취재의 특징이다. 누구든지 기자로 등록만 하면 모든 정부기관에 자유롭게 자료를 요구하고 받아볼 수 있다. 중앙지든 지방지든 외신기자든 차별하는 법이 없다. 언론사에 적을 두지 않고 자유롭게 관심분야에 대해 기사를 작성해 기고하는 소위 ‘프리랜서(자유기고가)’도 독일기자협회 등 언론단체에 연회비(20만원 수준)를 내고 등록만하면 언론사에 소속된 기자와 동일한 대우를 받는 게 독일의 특징이다.

필자가 독일에서 근무하면서 만난 사람들의 명함을 보면 상당수가 자유기고가들이다. 학자나 교수들도 자유기고가로서 활동하며, 석·박사 출신 시간강사들도 신문에 가장 많이 기고하는 그룹이다. 그들이 실제 심층기사를 쓴다. 언론사에서 요청한 취재 목적이 확인되면 자유기고가들도 일반 기자들과 마찬가지로 몇 십 만원 하는 베를린필 공연도 공짜(기자석)로 보고 기차나 항공 요금도 할인 혜택을 받는다. 우리처럼 음성적으로 어디 부탁할 필요도 없고, 취재와 무관하면 그런 부탁이 또 통하지도 않는 것이 독일이다.

그러면 그많은 독일 기자들은 어디에서 무엇을 하나

언론사에 소속된 펜기자(리포터)들은 ‘연방기자회견장’이나 즉석 ‘브리핑’ 외 현장에는 잘 나타나지 않는다. 실제 취재현장에 나오는 기자는 대부분 카메라 기자나 프리랜서들이다. 우리나라에서 기자라고 하는 ‘취재기자’는 독일에선 대부분 데스크(차장·부장) 기자들이다. 이들은 단순한 사항에 대해서는 통신기사를 점검해 이를 정리하고, 프리랜서 기자들이나 전문가들로 하여금 특정 사안에 대해 심층적인 보도를 하도록 편집기획을 하고 이들이 작성한 기사를 수정한다.

물론 데스크 기자들도 관심분야 취재원들과는 일정한 약속을 통해 만난다. 참고로 홍보관으로 근무하면서 중요한 사안에 대해 홍보관이 독일 기자들에게 정보를 주었을 때, 혹은 홍보관이 (홍보목적을 위해) 정보를 제공했을 때, 그 정보가 가치 있다고 생각하면 그날 밥값은 기자가 내고 또 그런 경우는 보통 기사화됐다. 홍보관이 언론사 취재비로 접대를 받은 것이다. 사실 나는 독일 측으로부터 접대를 받은 적이 가끔 있다. 대부분 누이 좋고 매부 좋은 식이다. 이런 경우는 한국에도 있는 일인지 모르겠다. 놀라운 것은 고참기자도 아닌 신참 평기자가 사설을 쓰기도 하고 장문의 논평도 쓴다는 것이다. 참고로 독일 신문에는 논설위원이라는 직책이 없다.

독일 신문기사의 심층성은 어디서 나오나

독일 신문기사를 보면서 더 놀라는 것은 기사의 길이와 내용이 매우 심층적이고 전문적이라는 점이다. 기명 기사는 보통 A4 1장 분량이 최소 단위이다. 우리 기자들이 대학을 졸업하고 경찰 사회부 기자로 사건현장을 뛰어다닐 때, 독일 기자들은 보통 지방신문에서 2~3년 실무 경험을 쌓은 후 큰 신문사에 응모하거나 능력을 인정받아 스카우트되기도 한다.

유력매체 기자일수록 해당 분야의 전문가다. 경제부 기자는 경제학 박사고, 국제부 기자는 해당 지역학을 전공하고 현지 연수를 마친 후 채용되는 것이 관례다. 채용되면 그 분야만 계속 맡는다. 월급이야 오르겠지만, 평생 기자로 근무하는 경우가 많고, 몇 년 근무하면 보통 해당분야 전문서적을 발간하는 경우도 많다. 보통 주요 일간지 편집국장이나 문예부장 정도 되는 직위에 있는 사람은 지식인 랭킹 50위 안에 들 정도로 저명한 사람이고, 이들은 언론인이기 전에 이미 영향력 있는 지식인으로 통하는 것이 독일이다. 그만큼 독일 언론인은 전문지식인이이고 언론사도 기자에게 전문 지식을 요구한다.

참고로 독일 4대 전국지 중 프랑크푸르터알게마이네차이퉁(FAZ)과 디 벨트(Die Welt)는 서울 특파원을 파견하고 있는데, FAZ 특파원은 동북아정세와 국내정치/사회 관련 기사만, 디 벨트 특파원은 한국경제와 IT분야 기사만 쓴다. 이들은 부부이기 때문에 서로 정보공유도 가능하고 필요한 부분에 대해 분업과 협업으로 다른 분야 기사도 가능할 터인데, 본사에서 요구하지 않는다고 한다. 능력이 없어서는 아닐 것이다. 그들은 같이 살면서 가정일은 가정일, 기사는 기사라는 원칙으로 ‘각방에서’ 근무할 정도로 철저한 저널리스트 정신을 가진 사람들이다.

본사 데스크에서는 본인들의 전문분야가 아닌 다른 분야에 대해서는 통신기사를 참고하거나 자유기고가 또는 해당 문제 전문가인 동경이나 북경 특파원, 또는 본사 전문기자가 해당 기사를 쓰도록 지시한다고 한다. 우리로서는 약간 이해하기 힘든 부분이지만, 그래야 전문적인 책임 있는 기사가 나온다는 것이다.

솔직히 우리 신문이나 독일 신문이나 전체 기사분량은 마찬가지지만, 독일 신문의 기사는 장문의 심층기사가 주류이고 전문 지식인과 기고가들의 기고문이 많다. 우리는 대학교수 타이틀을 달고 신문에 고작 A4지 1~2장 분량의 글을 쓰는데, 독일에서는 교수 정도면 연재물이 아닌 단일 주제에 대한 기고문의 경우 거의 신문의 반면 또는 2/3면 크기로 실린다. 신문기자가 지식인이듯, 신문에 대한 지식인들의 기고활동은 독일이 가장 활발할 것이다.

독일 역사에서 가장 중요한 논쟁들은 항상 신문을 통해 이뤄졌다. 전후 독일사에서 가장 유명한 과거사 청산과 관련된 <역사가 논쟁>(1986~87년)은 보수 일간지 FAZ와 진보 주간지 디 차이트(Die Zeit)를 중심으로 독일의 쟁쟁한 인물들이 1년 반에 걸쳐 논쟁을 벌였다.

신문들은 매주 주말판에 지식인들의 논쟁적인 글을 실어 사회 쟁점으로 발전시키는 것이 편집전략이자 판매전략이다. 중요한 논쟁이 벌어지면 방송들도 신문에서 이뤄지는 논쟁을 먼 산 불구경하는 식이 아니라 좌담회를 열거나 심층 보도물을 방영하며 좇아간다.

신문 지면이 이처럼 전문성을 요구하기 때문에 기자들도 이에 부응할 수밖에 없다. 가령 슈피겔(Spiegel)지 베를린 지국장은 나이가 필자와 같은 40대 초반이지만, 유명한 경제학자다. 최근 <부와 권력이 어떻게 재편되는가>라는 베스트셀러로 그의 책이 나왔을 때, 그 책의 핵심내용(보호주의 강화와 미-유럽의 아틀란틱 자유무역지대 설치)에 대한 찬반논란이 슈피겔보다 다른 경쟁 언론과 방송에서 크게 다뤄지는 것을 보았다. 경쟁언론사 보도를 키우는 보도가 그리 흔치 않은 우리 상황에선 희한한 일이다. 필자는 그 이유를 기자들의 전문성 차이라고 생각한다.

한국 기자는 40대 용퇴…독일 기자는 60대에도 평기자

독일 신문사 기자들은 관련 분야 토론회나 방송토론에 참석할 정도로 지식인이자 전문가로 평가받는다. FAZ나 디 벨트, 슈피겔 등 유력매체의 기사는 학자들이 집필하는 전문적인 학술논문에서도 인용할 정도로 신뢰도가 높다.

우리 기자들이 보도자료를 단순히 요약한 짧은 기사를 쓰거나, 특종 경쟁으로 피곤한 몸을 이끌고 저녁 늦게 술자리에서 취재한 정보를 본판에 넣으려고 밤늦게 사무실에 들어가 기사를 재작성하느라 귀중한 에너지를 소모할 때, 독일 기자들은 데스크에 앉아 자료를 검토하거나 전화나 직접적인 만남을 통해 취재하거나 전문성을 높이는 등 생산적인 집필을 한다.

한국 기자들이 40대에 후배를 위해 ‘용퇴’할 때, 독일 기자들은 전문성을 바탕으로 65세 정년까지 평기자로 계속 근무한다. 또 정년 퇴직 후에도 저명 언론인들은 회사로 나와 기명기사나 칼럼을 쓴다. 다른 젊은 기자들이 그들의 경험과 식견을 따라잡지 못하기 때문이다. 한국에 잘 알려진 테오 좀머(디차이트 대기자)나 슈미트호이어(역시 디차이트), 그로베-하겔(프랑크푸르터룬트샤우·FR) 등 원로 언론인들은 정년 퇴직하고 일흔이 넘어도 일주일에 2~3번 사무실에 나오며 기명칼럼을 쓴다. 머리를 쓰는 두뇌 노동을 하면 오래 산다고 테오 좀머가 말하는 것을 들은 적이 있다. 참고로 독일 학자들이나 기자들은 오래 산다. 독일의 영향력 있는 지식인 500인 랭킹에 드는 지식인들의 평균연령이 65세이다.(2007년 6월 치체로지 조사)

필자는 독일에서 4년 동안 근무하면서 매일 6개 일간지를 읽고 3개의 주간지를 구독했다. 기억에 남는 것은 일간지 1면 기사의 제목이나 기사내용이 같기는커녕 비슷한 경우도 드물었다는 점이다. 독일 신문들은 정부나 정당이 발표하는 보도자료를 그대로 요약해서 기사를 쓰거나, 특정 정치인 1명의 발언을 중심으로 기사를 쓰는 경우가 드물다. 단순한 보도자료를 인용해서 쓴 기사는 보통 무기명 처리하거나 통신기사를 인용했다고 표시한다. 10명의 기자가 똑같은 보도자료를 보고 기사를 써도 10가지 기사가 나온다. 이는 언론사마다의 논조가 다르고, 기자들마다 전문가로서 그 자료를 해석하는 시각이 다르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보도자료를 제공한 정부 담당자가 하나의 사실에 대해 10가지 다른 기사가 나와 원하는 보도가 아니라고 이를 ‘오보’라고 하는 경우도 없다. 왜냐하면 기자들이 보도자료는 ‘기본’으로 참고하고 평소 자기 전문분야의 지식과 그 동안의 취재내용을 동원해 사안을 심층적으로 분석 해설하고, 그와는 다른 입장의 전문가 의견을 달기 때문이다. 기자도 해당 공무원만큼 전문가이기 때문에 악의를 지니지 않은 이상 사실과 다른 오보를 낼 리 없다. 똑같은 사안에 대해 다른 시각으로 흥미 있는 분석을 하기 때문에 독일에서는 하나의 신문만으로는 사태를 객관적으로 파악하기 힘들다.

그렇기에 독일 정부기관의 공보관들은 매일 언론에 보도된 전문 언론인의 지적을 항상 모니터링하고 좋은 제안을 정책에 반영한다. 독일 부처 공보관실의 임무 중 상당 부분이 언론보도 모니터링이다. 독일 공보처는 1개 국 단위 부서에서 130여명이 신문 방송 잡지 및 공청회 등 언론보도와 사회여론을 모니터링해 매일 그 결과를 총리와 주요 정치인들 및 정부부처와 공유하는 시스템을 운영하고 있다. 그만큼 언론의 보도내용이 정확하고 가치 있기 때문이다. 독일 공보처는 이 시스템을 창설 이후 60년 동안 계속 운영하고 있다.

독일에서 언론의 특종은 어떻게 발생하나

특종에 대한 독일 언론들의 태도를 보면, 서로 상대 경쟁언론을 존중한다는 느낌이 든다. 어떤 언론이 ‘특종’을 하면, 이 언론이 지방지든 군소지든, 아니면 우리 스포츠 연예지같이 다소 저속하지만 정치문제에 관한 특종을 가장 많이 내는 빌트(Bild)와 같은 황색지든, 그 다음날 다른 언론은 그 언론에 일단 ‘경의’를 표하고 인용 보도한다. 독일 언론은 상대 언론의 보도에 대해 잘 한 보도는 인정하고, 자신과 다른 목소리를 가진 보도에 대해서는 우리보다 훨씬 공격적이고 논쟁을 건다. 물론 상대 언론에 대한 예의는 충분히 갖춘다. 우리나라에서는 경쟁 언론이 특종을 하거나 자신의 성향과 맞지 않는 보도를 하면, 아무리 뉴스 가치가 있어도 침묵하는 경우가 많은데, 독일은 그렇지 않다.

우리나라에선 특정 부처 관련기사에서 1개 언론사가 특종을 하면, 그 순간부터 나머지 기자들이 홍보담당자를 원망하는 사례가 많다. 독일에서는 출입기자단이 없기 때문에 이런 경우는 발생하지 않는다. 특종은 그 기자가 부지런하고 능력이 있어서 얻은 것이다. 그러나 특종 순간 이후부터는 언론들의 취재경쟁이 시작된다. 유력 정치인의 실언, 장관의 사소한 발언이 빌미가 되거나 개인적인 정보원을 통해 특종을 한다. 그러나 대부분의 특종에는 탐사 전문기자들의 집요한 노력이 있다. 이들은 특정 분야를 수년 동안 취재했기 때문에 해당 기관에서 발표한 통계수치나 분석에 나타난 오류까지도 통찰하는 식견이 있다.

상대하는 기자들이 전문가이기 때문에, 독일 공보담당 공무원들은 원하는 홍보성 보도를 만들어내기가 참으로 힘들다. 더욱이 기자실이나 출입기자와 같은 제도가 없기 때문에 기자와의 개인적 인연이 통하는 경우도 거의 없다. 독일 공부관들로부터 기자실이 없어서 편한 면도 있지만, 오히려 홍보성 기사들을 마음대로 만들지 못해 힘든 점도 있다고 토로하는 것을 들었다. 사실 우리나 독일이나 부처 공보관들은 자기 부처 정책홍보 기사가 많이 보도되는 것이 일인데, 출입기자제가 없는 상황에서 정책홍보 기사를 대량으로 생산하기는 더 힘든 일이다.

슈피겔의 체계적인 정보관리와 정확한 보도

독일에서 가장 많은 특종을 한 언론사가 매주 일요일 발행되는 주간지 슈피겔이다. 사실 필자는 일요일 아침 집으로 배달되는 슈피겔을 읽었기에 그 다음날 사무실로 배달되는 판을 읽는 다른 공관원들보다 월요일 출근하면 회의에서 할 이야기가 많았고, 커뮤니케이션 관리자로서의 역할을 담당하기가 수월했다. 슈피겔만 열심히 읽으면 독일 사람들 누구를 만나도 이야기 토픽이 부족하지 않다.

올해 1월 창간 60주년을 맞은 이 슈피겔에 한번 걸려든 정치인치고 무사한 사람이 없다. 정치인과 언론의 관계를 이야기할 때 흔히 언론학 교과서에 실리는 사건이 슈피겔 사건이다. 47년 창간 직후부터 슈피겔은 당시 기민당 정부와 사이가 안 좋았다. 평소 슈피겔의 정론보도를 탐탁하게 여기지 않았던 콘라트 아데나우어 총리와 프란츠 요제프 슈트라우스 국방장관이 1962년 독일 국가기밀 누설을 이유로 슈피겔지를 탄압한 것이 바로 세계 언론사에 길이 남는 ‘슈피겔 사건’이고, 이 사건 때문에 정권이 사민당으로 넘어갔다. 2005년 9월 게르하르트 슈뢰더 총리도 결국 슈피겔과 대립각을 세웠다가 물러났다.

왜 한번 슈피겔에 걸려들면 정치인들은 퇴진하는가? 함부르크에 있는 슈피겔사를 방문하면 곧 이 의문이 풀린다. 유가 판매부수가 매주 110만부이고 광고단가가 독일에서 가장 높은 이 슈피겔의 전체직원(계열사 포함)은 1300명 정도인데, 슈피겔에만 300여명이 근무한다. 특이한 것은 이중 데스크와 취재기자가 100명 정도이고 자료조사 및 정리원이 100명, 행정보조 요원이 100명 정도란 점이다. 그만큼 기사를 쓸 때 자료를 확인하고 지원하는 직원이 많다는 것이다.

13층 건물인 슈피겔 사옥의 절반이 ‘슈피겔 아키브’로 유명한 자료보관소다. 심지어 지하에 과거 직원용 수영장으로 쓰던 공간도 넘쳐나는 자료 때문에 현재는 자료실로 쓰고 있다고 한다. 최근 데이터베이스화 작업이 진행 중이다. 슈피겔 아키브에 보관된 최신 자료의 양은 독일 국립문서보관소보다 많다고 한다. 단순히 자료만 보관된 것이 아니라 체계적으로 정리·분류돼 있기 때문에, 정부 기관이 과거에 발표한 자료나 간혹 장관들의 발언이 막상 해당 정부기관에는 없더라도 슈피겔 아키브에는 보관돼 있을 정도다.

슈피겔 취재기자는 기사를 쓸 때 이 자료실 자료를 이용한다. 가령 특정 정치인의 발언이 문제가 되었을 때, 이 정치인과 관련된 과거 시시콜콜한 자료들도 분석하고 확인하는 과정을 거친다. 그 때문에 말을 바꾸었다가 살아남는 정치인이 없을 수밖에 없다. 정부 기관도 함부로 자신에게 유리하게 자료나 통계를 발표했다가는 슈피겔에 한방 먹는다. 독일에서는 슈피겔이 있기 때문에 정치인의 거짓말과 정부기관의 부실한 자료가 안 통한다는 말이 있을 정도이다.

매주 독일과 전 세계 172개국에서 배달되는 이 주간지의 보도가 얼마나 신뢰도가 높은지는 독일 내 언론들이 이 주간지를 인용 보도한 횟수가 2006년 2265회로 독일 다른 유력일간지의 3~4배나 된다는 점에서 확인할 수 있다.(미디어 비평기관 Medientenor 자료 참조)

이는 슈피겔의 정확성과 공정성 때문에 가능한 결과다. 현장 기자가 자료 등을 이용해 기사를 쓰면, 데스크가 다시 그 기사를 확인한다. 지난 1월 독일 텔레비전에서 본 슈피겔 기록영화가 기억난다. 몇 년 전 모스크바에서 일어난 정치인 테러사건 기사를 다룬 과거형 기사 초안에서 “추운 저녁 비가 내릴 때...”라는 구절이 나오는데, 데스크 교열담당 기자가 사건 당일 진짜 날씨가 그랬는지 과거 자료를 확인해 틀린 내용임을 확인하고 정정하는 것을 보았다.

단순한 팩트도 이 정도인데, 정치적 파장을 낳는 중요한 사항은 확인에 확인을 거친다. 2005년 이 슈피겔에 한국의 한 무역업체가 프랑스에서 알루미늄 부품을 수입, 이란에 판매했다는 작은 기사가 나와 서울로 보고했더니 이틀 후 서울 검찰에서 이 업체를 수사한 사건이 있었다. 그 부품은 한국 업체는 알지 못한 상태에서 이란 핵개발에 이용될 수 있는 것으로, 유럽에서 이란으로 직수출이 금지된 품목이었다. 우리가 모르는 우리 일도 슈피겔은 안 것이다.

그렇다면 독일 현장 기자들이 우리나라보다 더 편하게 취재하는 것이 가능한 이유는 무엇일까.

독일은 비록 우리보다 인터넷 통신망 속도는 다소 뒤쳐져 있지만, 각 부처 홈페이지를 통해 언론에 정보를 제공한다. 개별 부처 홈페이지에 등재된 정보의 수준은 우리와 비슷하지만, 차이가 있다면 독일의 경우 정부 부처 홈페이지에 등재된 자료와 정보들이 주제별로 방대하게 집적돼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장관의 오전 특별 브리핑 발언 원문이 오후에 전문 등재되는 등 훨씬 체계적으로 관리되고 있다. 그리고 일반에 공개가 안 된 자료도 언론인이 해당 부처에 정책고객(PCRM)으로 등록되면 수시로 자료를 받아볼 수 있게 하고 있다.

즉 독일에는 출입기자는 없지만, 전문기자들이 정책고객으로 등록돼 있어, 과거에는 팩스와 우편으로, 현재는 e-메일로 정보를 받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지금까지 언론인과 출입기자에 대한 관리가 사람 위주로 되어 있었던 반면, 독일에서는 시스템과 자료로 서비스되고 있는 셈이다. 물론 거기도 사람 사는 곳이기 때문에 유력 정치인 장관들은 그들만의 ‘이너서클’이 있다. 필자는 베를린의 한 식당에서 슈뢰더 총리 시절 부총리인 피셔 장관이 이너서클 기자들과 토론하는 모습을 많이 보았다.

전반적으로 독일에서는 기자들에게 A-폭탄(Alcohol-Bomb인 폭탄주, 혹은 광고로 보도에 영향을 미치려는 광고폭탄 Advertisement-Bomb을 의미)을 제공하는 것은 상상하기도 힘들다. 홍보에 필요한 것은 e-폭탄(전자메일 서비스)이고 e-정부에서는 인터넷이다. 정확한 정보를 적기에 공평하게 인터넷으로 서비스하는 것이 독일 공보처의 핵심 홍보활동이다.

이렇게 전자화된 독일 정책홍보의 심장부가 바로 독일 공보처의 홍보상황실(Chef vom Dienst)이다. 이 곳에는 각 부처는 물론 언론인들과 수시로 통화하는 핫라인이 구축돼 있다. 과거에는 전화로만 정보를 제공했는데, 2002년부터는 우리나라 국정브리핑과 비슷한 연방정부 정책홍보 포털사이트(www.bundesregierung.de)를 설치 관리하고 있다.

이 부서는 정부대변인 공보처장 직속으로 설치돼 언론인 출신을 중심으로 과장/사무관급/주사급 전문 직원 35명이 연중무휴 24시간 교대로 근무한다. 이들은 홍보처 각 부서에서 올라온 정보는 물론, 전체 부처에서 발표하는 정보를 토대로 주요 언론 보도 중 중요한 정책적 사안과 총리의 정치적 판단과 관련된 사항을 담당한다.

이들은 사실상 얼굴 없는 정부대변인들로서 정부대변인인 공보처장을 대신한다. 언론사 기자나 편집진들이 시시각각 중요 정책이나 사건에 대한 정부의 비공식적/공식적 입장, 정치적 배경을 이들에게 24시간 확인할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하고 있다. 실제로 독일 신문의 정치면이나 경제면 주요기사 중에 정치적 해석과 관련된 민감한 사안에 대해서는 이들의 실명 대신 ‘Chef vom Dienst’(홍보상황 당직관)나 ‘정부 대변인‘ 또는 ‘정부 관계자’라고 인용한다. 이들은 긴급상황, 가령 9·11테러나 이라크 공습이 일어났을 때는 상사인 홍보처장보다 총리에게 직통으로 전화했다고 한다.

언론의 입장에서도 어떤 정책의 정치적 배경과 민감한 사안에 대한 정부 입장을 확인하기 위해 밤늦게 유력인사를 집 앞에서 기다리거나 술자리에 어울릴 필요가 없으니, 기자도 얼마나 인간적으로 가정생활을 즐길 수 있겠는가. 우리의 경우 잘나가는 기자일수록 가정사를 포기해야 한다고 들었다. 그렇지 않고서는 취재경쟁에서 버틸 수 없는 것이 우리의 오랜 취재관행이었다. 참여정부 들어 정부부처 가판구독이 중단되기 전 각 부처 홍보담당 직원들의 생활도 일선 정치부 기자의 생활이나 마찬가지였다. 광화문 동아일보 앞에서 가판신문을 사서 길바닥에 펼쳐놓고 읽으면서 사무실과 통화하는 모습이 불과 몇 년전이다. 며칠 전 그곳을 지날 때 보니 아예 가판대가 없어졌다.

선진 취재문화의 핵심은 인적 네트워크가 아니라 홍보시스템

문제는 이런 취재관행이 이루어진 배경이다. 독일 정부는 정보의 수집과 생산 전파 과정을 우리처럼 개인적 인맥이 아니라 홍보시스템에 입각해서 구축하고 이를 공평하게 원하는 모든 사람에게 공개한 결과이다.

이러한 정보 수집 및 공개 전파의 핵심 신경망이 바로 공보처에서 운영하는 언론인 전용 정보제공 사이트인데, 언론인들은 홍보처가 운영하는 http://cvd.bundesregierung.de로 접속해 미리 부여받은 아이디와 패스워드를 입력하면, 홍보상황실에서 시시각각 언론인들의 문의에 대해 답변한 내용을 확인하고, 중요 정책에 대해 일반에게 공개가 안 된 배경설명을 들을 수 있다. 또 총리 등 주요 정치인들의 일정도 확인할 수 있으며, 국빈방문이나 정부 주요행사에 대한 취재, 브리핑 계획 및 참석 신청 등 모든 취재와 관련된 사항을 온라인으로 처리한다.

정부가 이번에 취재지원 선진화방안을 마련하면서 특히 염두에 둔 것은 출입기자제를 대신한, 프랑스나 독일처럼 인터넷 문화에 기반한 전자브리핑 제도의 도입이다. 필자는 기자실 통폐합이라는 언론의 용어가 잘못됐다고 본다. 첨단기능과 시설을 갖춘 합동브리핑실을 설치하는 것은 기존의 취재문화와 비교할 때 그리 큰 획기적 혁신도 아니고, 더욱이 언론인의 취재폭을 제한하거나 더 힘들게 하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언론의 입장에서는 더 많은 정보를 얻을 수 있다. 왜냐하면 오늘날 한 정부부처의 정책은 상당 부분 다른 부처의 정책과 연계돼 있으므로 한 자리에서 여러 부처의 정책을 브리핑 받으면 종합적인 안목으로 기사를 쓸 수 있고, 경우에 따라서는 부처 간 상충되는 측면을 파악할 수도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기자실 통폐합이 아닌 새로운 합동브리핑센터가 필요한 이유다.

문제는 이런 변화를 정착시키기 위해서는 정부의 정보공개 및 전파의 신속성/공평성을 기하는 전자브리핑제의 도입이 필요하다는 점이다. 이 점에서 독일의 사례는 모범적이다. 하지만 국정홍보처는 지난 몇 년 동안 외국 공보기구의 홍보시스템을 심층 연구해오고 있기 때문에 이 같은 정보공개 유통 시스템을 도입·운영하는 데는 별 어려움이 없을 것으로 예상된다.

정부와 언론이 함께 풀어야 할 과제

사실 취재지원 선진화방안은 현장 홍보공무원이나 부처 취재기자들 모두에게 힘든 시스템이다. 기존 관행대로 적당히 기자들과 인맥을 유지하고 특정언론에 기사거리를 주거나 간혹 기관 명의로 광고를 제공하는 과거의 타성대로 자기 부처의 정책을 홍보하는 것이 편할 수 있다. 기자 역시 정책의 문제점이나 기관의 아픈 곳을 찔러 적당히 흥정하면서 ‘좋은 게 좋다’라는 식으로 일하는 것이 편할 수 있다. 편하게 살고 싶은 사람에게는 옛날 방식이 더 좋을 수 있다. 과거 같으면 임기 말에 국정홍보처나 대통령이 이런 일을 했을 리도 만무하다.

솔직히 이번 발표에 대해 많은 공무원들은 변화에 대한 적응은 힘들겠다고 하면서도 과거 가판구독금지 조치만큼이나 반기고 있다. 과거 잘못된 관행이 근절될 기회가 왔기 때문이다. 참여정부 들어선 적어도 잘못된 기사로 인해 청와대나 장관으로부터 억울하게 질책당하는 일이 없어졌기 때문이기도 하다. 이는 기자들도 인정하고 있다.

정부는 과거 잘못된 관행을 고치고, 정부와 언론 사이에 발전적인 긴장과 협조를 구축하기 위해 이번 방안을 마련했다. 인터넷 시대에 걸맞게 취재브리핑 시스템을 획기적으로 혁신하고 있다. 정부도 이 시스템을 정책 본래의 취지를 살려 운영해야겠지만, 언론도 과거의 잣대로 정부와 관계하려는 타성에서 벗어나야 할 것이고 더욱이 이를 신종 언론탄압으로 오해하지 않았으면 한다.

그러나 이 제도는 결국 정부 혼자만의 노력으로는 정착되지 않는다. 언론들도 변화된 시대상에 맞춰야 할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정부 공보담당자나 언론인 모두 타성에 젖은 일부 나태함과 안일함, 그리고 기득권을 과감히 포기해야 한다. 단순한 제도의 변화가 아니라 일하는 방식과 문화를 바꾸는 것이 이번 개혁안의 성패를 가를 것이다. 이번 제도가 정상적으로 운영되기까지 당분간의 혼선과 잡음이 불가피하다.

그러나 취재지원 선진화방안은 우리 언론의 선진화와 전문성 제고를 위해 오히려 때늦은 감이 있는 만큼, 언론도 무조건 반대만 할 것이 아니라 정책의 취지를 이해하고 적응하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생각된다. 예측하지 못한 문제가 있으면 시행하면서 고쳐나가면 될 것이다. 그러나 제도 시행 전인 지금 시점에서 이 제도는 단점보다는 장점이 더 많다. 언론사도 많은 수의 기자들을 비생산적인 노동으로 모는 구태를 혁신하고, 기자들의 전문성과 언론보도의 수준을 높이는 계기로 삼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덧붙이는 글 | 윤종석 기자는 국정홍보처 정책광고팀장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이 기사는 국정브리핑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독일언론, #언론의전문성, #기자실폐지, #홍보정책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