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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한반도 대운하 연구회'가 정성스레 작성한 동영상을 소개합니다. 기마민족의 역동성을 살려 우리나라의 경제를 한 단계 도약시키겠다는 내용의 환상적인 작품입니다. 21일 열린 '4만 불 시대 여는 성장동력 한반도 대운하' 학술심포지엄 현장에서 이 동영상이 상영되는 동안 청중들은 숨을 죽였고, 막이 내리자 박수갈채가 쏟아져 나왔습니다.

이명박 전 서울시장이 그토록 강조했던 '제 2의 국운융성'의 예고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였을까요. 이명박씨는 이날 20여분 동안 축사를 할 예정이었습니다. 하지만 대운하 연구회의 한 관계자는 "중앙선관위가 행사에 참석하는 것에 경고 조치를 내리는 바람에 이 전 시장의 축사는 무산됐다"고 말했습니다.

이명박씨는 불참했으나...

250여명이 빼곡히 들어찬 이날 심포지엄 현장에는 이씨가 불참하는 대신 아주 특별한 외국인들이 참석했습니다. '운하의 나라' 네덜란드의 한스 하인즈브루크 주한대사와 수자원 관리부 인사, 운하컨설팅 회사인 DHV사 관계자들. 특히 이날 행사는 네덜란드 대사관이 후원했고, 초청된 일부 인사들의 여비도 대신 지불했다고 합니다. 심포지엄 주최 측의 부담을 네덜란드 대사관이 덜어준 셈입니다.

'학술심포지엄인가 기업설명회인가?'

이렇게 말하면 공연히 꼬투리 잡는다고 말할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네덜란드에서 운하 관련 업체 관계자들을 모셔놓고 1시간여 동안 발제하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문득 든 생각입니다. 이들은 발제 도중 경인운하 등 그간 우리나라에서 수주한 사업 실적을 늘어놓기도 했습니다. 운하에 대한 이들의 풍부한 경험을 경청한다는 자세는 좋지만, 사실상 자비를 들여 '경부운하 로비' 차원에서 온 사람들에 대한 지나친 배려가 아닐까하는 생각이 든 것입니다.

게다가 경부운하 공약은 제대로 검증되지 않았습니다. 또 이 전 시장은 아직 대권 후보로 등록하기 전입니다. 벌써부터 이런 상황이라면 앞으로는 어떨지 솔직히 우려됩니다. 학술심포지엄이라는 명목으로 컨설팅 회사를 끌어들여 토목 공사 경험을 경청하고, 선박제조 회사를 끌어들여 운하에 띄울 배의 유형을 설명케 하지는 않을까요. 지금 학계 인사들이 해야 할 일이 이런 것일까요.

이날 선관위에 발이 묶여 참석하지 못한 이씨는 다음날 '정치적 목적'은 달성했습니다. 22일 종로사무소에서 네덜란드 한스 하인즈브루크 주한대사와 수자원관리부, 컨설팅 업체 DHV사 관계자들과 만난 것입니다. 이씨는 "네덜란드 정부와 기업이 협력해 사업 태스크포스팀을 구성하자고 제안했다, 운하 강국인 만큼 기술적 측면에서 협조를 받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고 <조선일보>가 전했습니다.

대선공약 경부운하를 전파하고 있는 '한반도 대운하연구회'는 학술토론회를 연다는 명목으로 사실상 네덜란드 업체의 '기업설명회'를 개최해줬고, 이씨는 공약검증도 되지 않은 사안에 대해 네덜란드 정부와 우리 기업의 태스크포스팀 구성을 제안했다니 기가 찰 노릇입니다. 게다가 이씨의 주장처럼 경부운하는 국운을 결정지을 대역사인데, 정부가 해야 할 일을 대신해주겠다고 나선 꼴입니다. 이씨가 이미 대통령에 당선된 것 같은 착각이 들 정도입니다.

▲ 21일 열린 '4만 불 시대 여는 성장동력 한반도 대운하' 학술심포지엄.
ⓒ 오마이뉴스 김병기

국민투표? 국토종합계획 재검토... 산 넘어 산

한국토지공법학회는 한반도대운하연구회가 심포지엄을 열었던 프레스센터 20층 국제회의실에서 이틀 뒤인 23일 '경부운하 구상에 관한 법률적 검토'란 주제로 학술대회를 열었습니다.

이날 발제자로 나선 신봉기 경북대 교수는 경부운하는 국민투표로 결정할 사안이라고 주장했습니다. 신 교수는 "북한운하를 포함하는 한반도대운하를 지향하는 대역사의 일부로서 추진하는 경부운하 건설 사업은 '국방, 통일 기타 국가 안위에 관한 중요정책'에 해당된다는 점에서 국민투표 사항에 해당한다"고 말했습니다.

또 "경부운하 건설 사업을 추진하기 위해서는 가칭 '경부운하건설특별법'과 그 시행법령 제정이 필요한데 이는 곧 국토종합계획과 충돌이 불가피하다"면서 "경부운하 사업은 1960년 이래 체계적으로 진행된 국토계획을 허무는 사업"이라고 지적했습니다.

이밖에도 신 교수는 천문학적인 토지보상액과 장기적인 보상절차, 댐 건설로 인한 수몰이주민 보상과 이주 갈등, 불충분한 환경 재해영향평가, 물 문제를 둘러싼 지방자치단체 간의 갈등 등 경부운하의 경제성 문제와도 직결되는 각종 법적 문제가 산적해있다고 말했습니다. 신 교수의 국민투표 주장 역시 신중하게 검토돼야 할 사안이지만, 이씨가 대통령에 당선된다 해도 경부운하를 건설하기 위한 첫 삽을 뜨려면 넘어야 할 산이 많다는 것입니다.

이날 토론회에 참석해 경부운하 찬성론자들의 경제성 분석을 조목조목 반박한 홍종호 한양대 교수는 이씨가 네덜란드 대사 등을 만난 것을 다음과 같이 비판했습니다.

"너무 앞서간다. 경부운하의 경제적 타당성을 둘러싼 많은 논란이 일고 있는 상황에서 네덜란드 정부와 DHV사의 자본을 끌어들이려는 생각을 하고 있는 것 같다. 하지만 외국 자본도 이해타산을 정확히 따져 투자를 결정할 것이다. 외국 자본이 설령 들어온다고 해도, 정부는 엄청난 건설 사업에 대한 비용 부담을 국민 혈세로 밀어넣을 게 불 보듯 하고, 이렇게 되면 세금이 외국으로 넘어가는 것이다. 이씨는 대체 어느 나라 대통령이 되려고 하는 것인가."

참고로 한반도 대운하연구회가 주최한 심포지엄에 나왔던 경부운하 찬성 일색의 토론자들은 이날 토지공법학회 토론회에는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습니다. 석종현 토지공법학회 회장은 "23일 학술대회에서 경부운하의 경제성에 대해 찬성 입장을 밝힐 발제자와 토론자가 하루 전에 연락해 불참 의사를 밝혔다"고 전했습니다.

상징조작 앞장서는 학계

만약 경부운하 찬성 학자들이 이 자리에 참석했다면 위에 소개된 동영상, 정치적 상징과 화려한 이미지만 난무한 발언을 했을 것입니다. 우리의 지형 조건과 물동량 분석 등 과학적인 분석이 뒷받침되지 않은 이씨의 장밋빛 공약을 말입니다. 이 동영상을 본 당신의 소감은 어떻습니까. 혹시 현혹되지는 않으셨나요.

지금 시기 학자들이 해야 할 일은 이런 상징조작이 아닙니다. 학술심포지엄이란 명목을 내걸고 운하 컨설팅 업체를 데려와 로비의 장을 만들어주는 것이 아닙니다. 국운을 결정지을지도 모를 '대역사 공약'을 철저하게 검증하는 일이 지금 학계가 해야 할 일이 아닐까요.

▲ 23일 열린 '경부운하 구상에 관한 법률적 검토' 학술대회.
ⓒ 오마이뉴스 김병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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