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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여정부 실패에 대한 의론이 분분하다. 몇 달 전만 하더라도 이른바 진보개혁진영에서 나온 실패론이 논란의 중심 되었다. 그런데 이제는 참여정부평가포럼이란 친노조직이 이를 반박하면서 성공론을 말함으로써 논쟁을 이어가려 한다. 그러나 시차를 두고 서로 다른 주장을 하니 논쟁이 있을 리 만무하다. 더구나 진보개혁진영은 실익이 없다고 판단했는지 논쟁보다는 시민사회를 중심으로 하는 제3세력형성에 치중하고 있다.

그러나 이 와중에도 정작 열린우리당의 실패에 대한 의견은 찾아볼 수가 없다. 한마디로 열린우리당의 실패에 대해 누구도 토를 달지 않는 분위기다. 그러니 왜 실패했느냐는 원인진단과 진지한 대책마련이 미진할 수밖에 없다. 아, 물론 대책이 있기는 하다. 열린우리당을 해체하고 반한나라당 세력이 합쳐야 한다는 대통합론이다.

그런데 이 대통합론에는 감동이 없다. 헤어져 살던 이산가족들의 만남엔 회한과 울분과 희열과 감동이 있지만 통합하려는 세력들 사이엔 원망과 비난, 그리고 손익계산만 득시글거리고 있다. 그러니 감동이 없다. 감동이 없는 통합에서 얻을 것이 무에 있는지 잘 모르는 사람은 비단 나 혼자만은 아니리라.

열린우리당의 역사적 의의는 정책정당, 전국정당, 개혁정당을 지향하는 데 있다. 계파정치를 끝내고 지역주의를 극복하며, 정당운영의 민주성을 회복해 제대로 된 정당정치를 구현하며, 개혁적인 정책을 중심으로 하는 정당을 만들겠다고 했다.

문제는 개혁정당, 전국정당, 정책정당으로의 지향을 기준으로 볼 때 실패는 분명한데 실패의 원인이 분명치 않다는 것이다. 어떻게 했어야 열린우리당의 지향성을 완성할 수 있었는데 왜 그렇게 하지 못했는지에 대한 정확한 분석과 진단이 부족하다. 그 이유는 매우 간단하다.

시스템중심의 사고보다 선거승리라는 전략적 사고를 우선하기 때문이다. 범여권이 흩어져 있으므로 세력이 분산되었고, 그래서 열린우리당의 지향성을 이룩할 수 없었다는 뒤집힌 분석과 대책이 나온다. 지난 총선에서 과반이 넘는 의석을 주었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더구나 올 대선을 앞두고 있는 마당이어서 열린우리당의 실패분석과 진지한 대책은 이미 사라져 버렸다. 여론조사에서 나오는 국민생각을 보아도 열린우리당을 해체하여 이른바 대통합을 해봐야 별 감동이 없다는 것으로 나옴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그러면 열린우리당이 지향하려던 전국정당, 정책정당, 개혁정당의 면모는 어떻게 만들 수 있을까. 이러한 지향성은 이해를 돕기 위해 나열했지만 사실, 키워드는 단 하나다. 바로 정책정당이다. 정책정당을 지향하면 지역주의를 극복한 전국정당이 가능하고 개혁정당도 가능하다.

그런데 불행하게도 이 '정책정당'은 열린우리당만의 힘으로는 달성이 불가능한 목표다. 독자적인 노력에 의해 정책정당을 만들 수 없다는 말이다.

그 이유는 간단하다. 모든 정당이 정책으로 승부할 수 있는 객관적 조건, 즉 유권자 의식이 성숙되어야 한다. 정책을 내세우는 정당과 후보에 대한 유권자들의 선호도가 지금보다 더 높아져야 한다. 그러면 자연스럽게 정치판이 정책정당구도로 변하게 된다.

문제를 더 살펴보자. 열린우리당과 한나라당 등이 정책이 없는 것은 아니다. 역대 어느 국회에 비해 17대 국회는 정책을 열심히 개발하고 이를 위해 각종 토론회를 매일 열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책은 여전히 유권자선택에서 매우 작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을 뿐이다. 정치와 선거구도에서 유권자들의 투표행태가 정책보다는 지역과 인물에 쏠려있기 때문이다.

한가지 놀라운 사실은 지역주의를 극복하려는 일단의 인터넷 개혁세력(?)이 '소통'을 빌미로 한 인물론에 집중하고 있다는 점이다. '인물과 지역'이란 전근대성의 한계로 인해 정책정당의 실패를 목도하면서도 지역주의란 전근대성을 극복하기 위해 또 다른 전근대성인 '인물론'을 주장하는 아이러니가 벌어지고 있다. 그것도 이전에 진성당원제를 주장해왔던 인터넷 세력들에 의해서 말이다.

그러면 유권자의식을 향상시키려면 어떻게 하는 것이 필요한가. 선거와 정치에 대한 유권자의 질 낮은 수준이 문제이므로 모든 유권자를 상대로 시민교육을 의무화시키면 가능할까. 즉 유권자들을 계몽함으로써 우리정치가 정책구도를 중심으로 발전할 수 있을까. 가능하다면 좋은 일이다.

하지만 이는 바다 속 물고기를 잡기 위해 바닷물을 다 빼내려는 것과 같이 어리석은 방법이다. 물고기가 연못에 있다면 그 연못의 물을 빼면 간단하지만 바다물고기를 잡기 위해 바닷물을 빼내는 방식은 가능하지도 않고 효율성면에서도 '하지하'의 책략이다.

사람의 의식을 높이는 방식은 일대일의 가내수공업적 방식이 아니라 기계제 대량생산의 방식, 즉 시스템으로 해결할 수밖에 없다. 제도가 사람의 의식을 반영한 결과물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사람의 의식을 전진시키기 위한 수단이기도 하다. 그런 면에서 정책정당을 추동할 수 있는 제도, 사람의 의식을 자연스럽게 변화시킬 수 있는 제도를 고민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런 점에서 우리는 이제부터라도 선거제도를 진지하게 접근해야 한다. 특히 정책정당으로서의 정당정치가 활발한 유럽의 사례는 그저 남의 나라 사례라고 덮어둘 일이 아니다. 그중에서도 생활정치의 전통 속에서 정책지향성이 강하다는 노르웨이와 핀란드 등 북유럽의 모델은 제도가 어떻게 사람의 의식을 선진화시키는가에 대한 모범사례로 봐줄만하다.

유럽 대부분의 나라는 정당투표제도를 선택하고 있다. 정당투표제도는 선거 때마다 유권자가 지역구 후보가 아니라 좋아하는 정당을 선택하는 투표를 한다. 특히 일반화된 정당명부식 비례대표제는 정당이 만든 비례대표후보를 유권자가 찍어 투표함으로써 정당의 의석수를 확정해주는 제도다.

이 정당투표제도가 어떻게 정책정당을 유도하는가. 지역구 후보를 대비시켜 보면 이 원리는 매우 간단하게 이해할 수 있다.

지역구 후보가 당선되기 위해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활동이 무엇인지 떠올려보자. 바로 지역주민접촉수를 최대치로 늘리는 일이다. 지역구의 온갖 행사에 끌려 다닌다. 한사람이라도 더 손잡고 더 웃어줌으로써 친화력을 높인다. 대중 목욕탕도 가고 새벽조기축구회도 나간다. 후보의 정책내용보다 후보가 자신에게 어떤 도움을 줄 수 있는지. 자신에게 어떤 인간됨됨이가 되어 있는 지 등이 지역구중심의 선거제도에서 중요한 투표요소가 되기 때문이다.

그러니 정치인들이 정책을 공부하고 개발할 틈이 없다. 보좌관들이 써준 질의서를 읽기에 급급하니 문제의 심각성을 알지 못하고, 그래서 정책으로 능수능란한 관료들의 능력 앞에 대부분 맥을 못 춘다. 능력에서 떨어지니 걸핏하면 호통과 강압으로 관료 길들이기나 하려 드는 게 정치인들이다. 정책은 있으면 좋고 없어도 그만인 것이 지역구 정치인들의 일반모델이다.

그러나 지역구가 아닌 비례대표 정치인들을 보면 사정은 확 달라진다. 지금도 인원이 얼마 안 되지만 비례대표정치인들은 정책활동을 매우 활발하게 한다. 사실 정책활동 밖에 자신을 드러낼 일이 없기 때문이다.

여기에 국회의원과 같은 직업정치인들을 지역구가 아니라 100% 정당투표를 통해 뽑는다고 가정해보자. 정당은 어떤 순위로 자당 후보자들을 선별해 리스트의 앞 순위에 올려놓을까. 혹은 유권자가 직접 뽑는 비례대표를 정당투표의 대상으로 선별할까.

두말할 필요도 없이 정책능력이 검증된 이들을 중심으로 정당후보(비례대표)를 내놓을 수밖에 없다. 왜냐면 초상집 많이 가고 유권자 손 많이 잡고 돌아다닌 사람이 전국적, 혹은 권역별 지명도를 가질 수 없기 때문이다.

즉 정당명부식 비례대표제가 지역주의적 인물구도를 극복하는 최선의 제도방안이다. 이렇게 정책중심의 정당투표제도가 자리 잡게 되면 선거비용도 유럽과 같이 획기적으로 줄일 수 있다. 지역구에 나온 개인후보가 쓸 돈을 쓰지 않아도 되고, 단지 정당의 정강정책을 중심으로 투표를 하면 되기 때문이다. 이 점은 유럽의 선거역사가 증명해주고 있으니 새삼 논쟁이 분분할 이유도 없다.

지역주의를 극복한 전국정당과 정책정당은 구호로 되는 것이 아니다. 또한 한 세력만의 노력으로 되는 것도 아니다. 정책을 중심으로 선의의 경쟁을 할 수 있는 구도를 방치한 채, 지역선거구를 중심으로 하는 투표가 되풀이 되는 한 정치인들은 정책보다 ‘인물’을 위한 상징조작과 이미지 창출에만 노력을 기울일 수밖에 없다. 그리고 유권자들도 ‘지역이냐, 인물이냐’라는 전근대성의 늪에서 헤어날 수 없다.

따라서 지금은 정책정당으로 가기 위한 선거제도, 즉 정당투표제, 혹은 정당명부식 비례대표제를 획득하는데 모든 개혁세력의 힘을 모아야 할 때다. 열린우리당의 실패원인도 정책정당을 지향하려는 스스로의 노력미진이 아니라 그 노력을 허사로 돌리는 지역구 중심의 선거구도가 실패의 원인이었다는 점을 되새김질해야 한다. 그래야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라는 명제를 비로소 완성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정당(명부식 비례대표)투표제도는 지역주의와 전근대적인 계파정치, 혹은 보스정치를 극복하는 최선의 열쇠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데일리서프라이즈에도 송고한 글입니다


태그:#정책정당, #지역주의, #정당투표, #정당명부식비례대표, #미례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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