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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산길을 가다 보면 아카시아 향기 꽃의 향내가 코를 찌른다. 그 냄새를 좀 더 진하게 맡으려고 코를 킁킁 거리면 찔레꽃 향기도 섞여 들어온다. 마치 산이 한 병의 그윽한 향수병 같다.

찔레꽃이 피면 어린 시절에 대한 갖가지 상념도 따라서 피어난다. 어릴 적 고향에서 살면서 가장 가까이 접했던 꽃 가운데 하나가 찔레꽃이기 때문이다. 울타리에 하얗게 핀 찔레꽃이 보기 좋았지만 그보다 배고플 때나 심심할 때 꺾어서 벗겨먹는 찔레순이 좋았다.

#1 이연실이 부르는 <찔레꽃>

ⓒ 안병기
고등학교 시절 이연실이라는 가수를 알았다. 이연실은 나와는 다른 반에 있던 친구의 누나였다. 밥 딜런(Bob dylan)의 노래를 개사해서 부른 <소낙비>와 더불어 가장 유행했던 노래가 바로 <찔레꽃>이란 노래였다.

엄마 일 가는 길엔 하얀 찔레꽃/찔레꽃 하얀 잎은 맛도 좋지/배고픈 날 가만히 따 먹었다오/엄마엄마 부르며 따 먹었다오//밤 깊어 까만데 엄마 혼자서/하얀 팔목 바쁘게 내게 오시네/ 밤마다 꾸는 꿈은 하얀 엄마 꿈/산등성이 너머로 흔들리는 꿈

가만히 노래를 따라 부르다 보면 어느새 두고 온 고향집 울타리에 핀 찔레꽃이 내 망막에 와 피었다. 이 노래의 가사는 이원수의 <찔레꽃>이란 동시를 개사한 것이다.

찔레꽃이 하얗게 피었다오/누나 일 가는 광산 길에 피었다오/ 찔레꽃 이파리는 맛도 있지/남모르게 가만히 먹어 봤다오/광산에서 돌 깨는 누나 맞으러/저무는 산길에 나왔다가/ 하얀 찔레꽃 따 먹었다오/우리 누나 기다리며 따 먹었다오

누나가 일을 마치고 돌아오기를 기다리는 아이의 정서가 가감 없이 표현된 이 시 속엔 일제 치하에서 비참한 광산 노동자로 전락하고만 식민지 여성의 슬픈 현실이 녹아 있다. 이연실이 부르는 노래 속에서도 슬픈 정조만큼은 그대로다. 그러나 노랫말은 아이가 처한 사회적 현실은 배제된 채 어느 새 두루뭉술하게 엄마를 기다리는 아이 개인의 슬픔으로 바뀌어 있다.

내가 보기에 이원수의 동시나 이연실의 노래에 나오는 아이는 좀 별난 아이다. 아이는 희한하게도 찔레잎이나 꽃 이파리를 따먹고 있다. 나의 경우를 비춰놓고 보면 찔레순을 놔두고 왜 굳이 찔레꽃 이파리를 따먹는지 쉽게 이해가 되지 않는다. 아이가 정말 배가 고팠다면 질감과 양감을 동시에 느낄 수 있는 찔레순을 벗겨먹었어야 마땅하다.

거기에 이연실의 가사는 결정적인 실수를 저지르고 있다. 찔레꽃이 하얗긴 하지만 이파리는 어디까지나 녹색이다. '찔레꽃 하얀 잎은 맛도 좋지'라니? 시와 노랫말이 이렇게 사실과 동떨어진 이유는 무엇 때문일까. 난 지나치게 사실주의를 옹호하는 사람은 아니다. 그러나 기본적인 사실조차 확인하지 않은 채 엉터리로 시나 노랫말을 쓴다는 건 삼가야 할 일이다.

음유시인 백창우가 작곡하고 김가영이 부른 <찔레꽃>도 들을 만하다. 노랫말은 이원수가 쓴 원시에 충실하게 돼 있다. 그런가 하면 '찔레꽃 붉게 피는 남쪽나라 내 고향' 이렇게 시작하는 케케묵은 대중가요도 있다. 은방울 자매가 불렀던 <찔레꽃>이란 노래의 첫 소절이다. 이 노래 가사 역시 썩 정확한 것은 아니다. 내가 아는 한 분홍색 찔레꽃은 있어도 붉게 피는 찔레꽃이란 없다.

#2 이 시대 최고의 가객 장사익이 부르는 <찔레꽃>

ⓒ 안병기
1995년 4월 17일 아침, 나는 서울 노량진에서 해장술을 마시고 있었다. 뮤지컬 <명성황후> 제작사로 유명한 <에이콤>에서 음악 감독을 맡고 있던 친구의 집이었다. 10여 년만의 재회를 핑계로 밤새 술을 마셨던 것이다. 만정 김소희가 세상을 떴다는 뉴스가 스치듯 귓가에 흘러들었다. 다시는 그의 서정적이면서도 단아한 소리를 들을 수 없다는 심리적 박탈감이 한 순간 취객의 마음을 쓰라리게 했다. 뉴스를 듣고 있던 친구가 가만히 물어왔다.

_ 너, <이광수와 노름마치>라고 들어봤냐.
_ 아니. 노름마치가 무슨 뜻인데?
_ 노름마치는 놀다의 놀음(노름)과 마치다의 마침이 합쳐서 만들어진 말이야. 최고의 잽이를 뜻하는 남사당패의 은어지. <이광수와 노름마치>에 쇄납 부는 사람이 있어. 장사익이라고. 노래 기가 막히지. 이 양반 종로 연강홀에서 처음 공연 했을 때 우리 엄청나게 감동 먹었지. 내가 명색이 성악 전공한 사람이지만 그 양반 노래하는 것 들으니 내 노래 따윈 아무것도 아니더라구.


이렇게 친구의 입을 통해서 장사익이라는 우리 시대 가장 걸출한 가객을 알게 되었다. 장사익을 실제로 본 것은 한참 뒤였다. 7년 전 올림픽공원 체조경기장에서 열렸던 나의 초등학교 반 친구 피아니스트 임동창의 결혼식 때가 처음이었다. 그는 임동창 결혼식의 축가로 <찔레꽃>을 불렀다. 장사익은 임동창이 판을 내자고 난리를 치는 바람에 마흔 일곱살 나이에 늦깎이로 가수가 된 사람이다.

하얀 꽃 찔레꽃/ 순박한 꽃 찔레꽃 별처럼 서러운 찔레꽃/ 찔레꽃 향기는 / 너무 슬퍼 요/ 그래서 울었지/ 목놓아 울었지 /찔레꽃 향기는 너무 슬퍼요/그래서 울었지/밤새워 울었지/아! 노래하며 울었지/아/춤추며 울었지/아/당신은 찔레꽃

장사익은 혼신의 힘을 다해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그러나 그의 노래를 귀담아 듣는 사람은 많지 않아 보였다. 그때쯤엔 이미 이광수 패의 사물놀이 연주가 시작되었고 어느 연극 단체였는지 기억나진 않지만 한쪽에선 퍼포먼스마저 펼쳐지고 있던 판이어서 사방이 어수선했던 것이다. 아무도 듣지 않는 노래를 혼자서 열창한다는 것은 비극인가, 희극인가. 아마도 비극이면서 희극일 것이다.

장사익 1집에 실린 <찔레꽃>이란 노래의 가사는 애상적인 내용으로 가득 차 있다. 슬픔을 입도선매하며 듣는 이의 눈물샘을 점층적으로 자극한다. 노랫말은 별다른 내용 없이 '당신은 찔레꽃'이란 한 마디에 집중돼 있다. 단순하다 못해 치졸하기까지 하다. 그런 노랫말을 딛고 들을만한 노래로 만드는 것은 장사익의 뛰어난 가창력에 힘입은 것이다.

찔레꽃은 노래를 듣고 있는 당신이다. 그 누구도 아닌 바로 '당신'이야말로 순박한 찔레꽃이라고 자꾸 최면을 걸어쌓니 거기에 안 넘어가고 배기겠는가. 장사익의 공연 가운데 내 기억에 특히 남는 건 3년 전엔가 평창동 가나 아트 노천극장에서 열렸던 공연이다. 하늘에 구름은 둥실 흘러가고 달빛은 교교하게 부서져 내리는 노천극장에서 그가 부르는 노래는 구름을 타고 천상으로 흘러갔다.

장사익 1집에서 가장 장사익 다운 노래는 아무래도 타이틀 곡인 <하늘 가는 길>일 것이다. <찔레꽃>도 좋지만 노랫말이 너무 슬프다. 애이불비(哀而不悲)라는 동양 음악 사상이 가진 기본에서 비켜 서 있다. 노래 <하늘 가는 길>은 달관한 심정으로 죽음을 노래한다. 전통적인 가락을 그대로 살려내서 부른 이 노래야말로 앞으로 우리나라 대중가요가 지향해야 할 전범이 아닌가 싶다.

#3 김희정이 연주하는 <찔레꽃 주제에 의한 25현 개량 가야금 변주곡>

ⓒ 안병기
<찔레꽃>을 소재로 한 노래 가운데 기악곡은 없을까. 김회경이 작곡한 가락을 당시 국립국악관현악단 단원이었던 김희정이 25현 개량 가야금으로 연주한 <찔레꽃 주제에 의한 25현 개량 가야금 변주곡>이 그 물음에 답해준다.

이 음반은 1999년에 비매품으로 출반이 되었는데 대중에게 널리 알려지지 않았다가 국악FM방송을 타면서 큰 인기를 끌었다. 어디서 음반을 구할 수 있느냐는 문의가 쇄도하기도 했다. 국악 관련 음반 중엔 부지런하게 발품을 팔지 않으면 구할 수 없는 음반들이 더러 있다.

이상으로 찔레꽃을 소재로 한 노래 한 몇 곡을 마음 가는 대로 살펴보았다. 그런데 왜 찔레꽃을 소재로 한 노래들은 하나같이 슬플까. 찔레꽃의 하얀 색이 슬픔을 자아내기 때문일까. 아니면 찔레꽃이 옛날 보릿고개 시절 '구황식물'의 일종이었기 때문일까.

여느 해와 다름없이 올해도 찔레꽃 흐드러지게 피는 5월이 왔다. 그러나 이제 아이들은 찔레꽃 이파리나 꽃이나 순 등 그 어느 부분도 따먹지 않는다. 길에 나와서 엄마나 누나를 기다리지도 않는다. 과자를 먹으면서 TV를 보다가 엄마가 들어오면 고개 돌려 "다녀오셨어요?" 하고 인사를 건넨 다음 다시 화면으로 눈을 돌릴 뿐이다. 사람 사이의 정이란 애틋함에서 배어 나온다. 배고픔이 인간을 더욱 인간답게 만든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산다는 것은 풍경에 나를 섞는 일이다. 절벽을 안간힘으로 기어오르는 욕망의 풍경과 추락하는 슬픔의 풍경에 나를 혼합하는 일이다. 그리고 노래는 그 두 개의 풍경 사이를 통과하는 산들바람 같은 것이다.

사람 사는 정서가 변하면 그 정서를 표현하는 방식도 달라져야 한다. 오늘의 정서에 맞는 아름답고 순박한 찔레꽃을 소재로 한 노래를 기다린다. 단 몇 소절로써 주춤했던 삶을 다시 격동시키는 노래, 지쳐 쓰러진 삶을 일으켜 세우는 노래, 흘러간 과거의 노래가 아닌 현재의 노래를.

태그:#찔레꽃, #장사익, #이연실, #이원수, #애이불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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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 곳을 지향하는 눈(眼)과 한사코 사물을 분석하려는 머리, 나는 이 2개의 바퀴를 타고 60년 넘게 세상을 여행하고 있다. 나는 실용주의자들을 미워하지만 그렇게 되고 싶은 게 내 미래의 꿈이기도 하다. 부패 직전의 모순덩어리 존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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