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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메가 스크롤>
ⓒ 김영사
1947년 5월, 한 베두인 소년이 아지랑이가 뜨겁게 아른거리는 사해 주변의 언덕을 서성이고 있었다. 염소를 돌보는 이 소년은 사라진 한 마리의 염소를 찾아서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쿰란이라고 부르는 그 지역은 예루살렘의 동쪽, 사해의 서쪽에 위치해 있다. 언덕에서 주위를 살피던 이 소년은 절벽에 위치한 동굴 입구를 보았다. 소년은 자신의 염소가 그 안으로 들어갔을 거라고 생각하고 동굴 안으로 작은 돌 하나를 던졌다.

동굴에서는 염소의 울음소리 대신에, 항아리 같은 것이 깨지는 소리가 와장창 하고 울려 퍼졌다. 소년은 깜짝 놀라서 두 손으로 절벽을 짚으며 힘겹게 동굴 안으로 들어갔다. 최대 폭 20m, 길이 65m 정도 되는 동굴이었다.

소년은 깨닫지 못했겠지만 이 동굴에 마지막으로 사람이 들어온 것은 거의 2천 년 전이었다. 동굴 한쪽에는 점토로 만든 단지 여러 개가 놓여 있었다. 그 단지 안에는 손상되지 않은 오래된 가죽 두루마리가 수없이 많이 들어 있었다. '20세기 성서고고학 최대의 발견'이라 부르는 사해문서가 발견되는 순간이었다.

예루살렘 구시가지에 있는 성 마르코 수도원의 대주교는 이 사해문서들을 보고 나서 아메리카 동방연구소의 트레버 박사에게 조언을 구했다. 트레버 박사는 히브리어와 아람어로 쓰여진 이 사해문서들을 조사한 후에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오, 하느님! 어떤 은총으로 내가 이것을 보게 되었을까! 이것은 틀림없는 구약성서 원본입니다!"

본격적인 쿰란 동굴 탐사가 시작되었다. 쿰란 지역에서 1956년까지 총 11개의 동굴이 발견되었다. 그리고 그 동굴에서 수만 개의 두루마리 문서들이 무더기로 쏟아져 나왔다. 이 두루마리들이 만들어진 연대는 대략 기원전 400년에서 기원후 50년경으로 추정된다. 무려 2천 년 동안 동굴에 숨겨져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도 두루마리들의 상태가 양호했던 것은, 습기가 없이 건조한 이 지역의 기후가 부패를 막아주었기 때문이다.

이 사해문서들의 대부분은 예루살렘에 있는 이스라엘 박물관, 록펠러 박물관에 나뉘어서 소장되어 있다. 사해문서를 만든 사람들은 유대교의 분파인 에세네파 사람들이다. 하지만 이 사해문서가 정확히 언제 만들어졌는지, 어떤 내용을 담고 있는지는 아직까지 미스터리다.

사해문서를 둘러싼 교황청의 음모

오스트레일리아의 작가 에이드리언 다게는 <오메가 스크롤>을 통해서 대담한 가정을 세우고 있다. 작품에 등장하는 '오메가 스크롤'은 바로 사해에서 발견된 문서의 한 종류이다. 이 오메가 스크롤에는 가톨릭을 뒤흔들 비밀 그리고 인류의 미래에 대한 끔찍한 경고가 담겨 있다.

당연히 로마 교황청은 이 오메가 스크롤을 모두 회수하기 위해 노력한다. 회유하고 협박하고 돈으로 사람들을 매수한다. 그래도 안 되면 '이탈리아식 해결법'을 통해서 사람들을 제거해 나간다.

하지만 교황청의 노력은 처음부터 난항이다. 오메가 스크롤 말고도, 교황청을 골치 아프게 하는 문젯거리들이 많기 때문이다. 아동을 성추행하는 신부가 있는가 하면, 바티칸 은행은 검은 돈을 거래해서 수익을 불려간다는 의심을 받고 있다. 과거에 바티칸은 폭탄, 탄알, 장갑차뿐만 아니라 피임약을 만드는 회사까지 소유하고 있었다. '화불단행'이라는 말처럼, 바티칸에는 여러 가지 악재가 한꺼번에 몰려오고 있다.

<오메가 스크롤>에는 교황청 추기경들이 주요 인물로 등장한다. 한쪽은 보수적이고 다른 한쪽은 개방적이다. 당연히 이들은 서로 대립한다. 보수적인 추기경들은 어떻게 해서든 오메가 스크롤의 공개를 막으려고 한다. 심지어 방사성탄소연대측정법을 통해서 사해문서의 연대측정을 하는 것조차 반대한다. 보수적인 추기경은 '사해문서는 모두 예수가 태어나기 전에 만들어졌다'고 주장하며 그 이상의 언급을 회피한다. 사해문서와 예수가 어떤 연관이 있기에 이렇게 부인하는 것일까?

이런 추기경들의 갈등과 함께, <오메가 스크롤>에서는 현대 이스라엘의 모습을 묘사하고 있다. 이스라엘에 살고 있는 유대인과 아랍인의 오래된 증오를 보여준다. 자살폭탄테러를 벌이는 이슬람인, 그에 맞서 보복공격으로 민간인들을 습격하는 이스라엘의 군인들, 계속해서 반복되는 폭력의 악순환. 이 지역에 평화가 정착할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사해문서는 예수와 관련이 있을까?

이스라엘의 수도 예루살렘은 단순히 한 나라의 수도가 아니다. 그곳은 세계 3대 일신교인 유대교, 그리스도교, 이슬람교의 성지다. 예루살렘은 기원전 천년에 다윗 왕이 유대의 수도로 선포한 곳이다. 그리고 예수가 십자가형을 당한 곳이자, 무하마드가 바위의 돔에서 승천한 장소이기도 하다. 과장해서 표현하자면 세계 3대 일신교는 모두 같은 지역에서 탄생한 것이나 마찬가지다.

이 유대지역은 어떤 특수한 면이 있기에 이곳에서 3대 일신교가 만들어졌을까. 유대 민족은 아주 오랜 세월 동안 타민족의 지배를 받아왔다. 굳이 출애굽까지 거슬러가지 않더라도, 바빌론 유수 이후의 역사만 보더라도 그렇다. 유대민족은 이집트, 그리스 왕조의 지배를 받다가 결국 로마의 지배로 들어간다.

이렇게 오랜 세월동안 타민족의 지배를 받았기 때문에 이들에게는 메시아를 기다리는 사상이 생겨났을 것이다. 사해문서의 주인공인 에세네파 사람들도 마찬가지였다. 에세네파 사람들은 최후의 날이 오면, 어둠을 물리치고 하느님의 나라를 세울 수 있다고 믿고 있었다. 그리고 황야에서 금욕생활을 하면서 그날을 기다리고 있었다.

에세네파에게 나타난 것은 하느님의 나라가 아니라, 로마군이었다. 유대전쟁이 시작된 것이다. 베스파시아누스가 이끄는 로마군사들은 쿰란을 지키고 있던 에세네파 사람들을 몰살하고 이 지역을 점령했다. 결국 에세네파 사람들은 로마군이 몰려오기 전에 자신들의 기록을 보관하기 위해서 쿰란의 동굴을 선택했을 것이다.

바리새파, 사두개파와는 달리 에세네파는 성경에 거의 등장하지 않는다. 이들은 사해문서가 발견됨으로써 다시 주목받게 된 분파나 마찬가지다. 에이드리언 다게는 <오메가 스크롤>을 통해서 사해문서의 내용에 대한 대담한 가설을 내세우고 있다. 하지만 지금까지 밝혀진 사해문서의 내용은 많은 논란거리를 제공하고 있다. 이 논란은 에세네파의 구성원, 이들의 정체와도 연관되어 있다. 한편으로는 예수가 에세네파의 영향을 받았을 것이라는 설도 있다. 예수는 에세네파와 어떤 연관이 있었을까?

덧붙이는 글 | <오메가 스크롤> 1, 2. 에이드리언 다게 지음 / 이영아 옮김. 김영사 펴냄.

댄 브라운의 <다 빈치 코드>를 전후로 해서, 로마 가톨릭을 둘러싼 역사 미스터리 소설이 끊이지 않고 출간되고 있습니다. 관련 작품들을 소재별로 분류해서 한 편씩 소개하고자 합니다.


오메가 스크롤 1 - 사해문서의 비밀

에이드리언 다게 지음, 이영아 옮김, 김영사(2006)


태그:#오메가 스크롤, #사해문서, #에이드리언 다게, #교황청, #가톨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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