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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무현 대통령.
ⓒ 오마이뉴스 이종호

김보영 시민기자는 <오마이뉴스>에 노무현의 '정치인 노무현의 좌절'에 대한 비판을 게재했다. 나는 김 기자의 그 비판을 비판하고자 한다.

김 기자가 이를 학술적 논쟁으로 받아주기 바란다. 주장에 대한 비판과 인격에 대한 비난은 구별할 것이라 믿는다. 이것은 김 기자의 비판이 노 대통령 인격에 대한 비난이 아닌 것과 마찬가지이다.

김 기자는 "진정한 정계개편을 이미 산산이 부수어버린 당사자가 다름 아닌 자기 자신이라는 점을 왜 아직도 깨닫지 못하고 있는 것일까"라고 탄식한다. 기사의 부제가 말해주듯이 기사의 핵심은 '정치인 노무현의 좌절'은 곧 자기 자신 때문이라는 것이다.

자, 그러면 김 기자는 무슨 근거로 이러한 결론을 얻었는가? 그 근거는 받아들일 만한가?

국민중심당 출현, 민주당 회생... 다 노무현 탓?

노무현 대통령이 꿈꾸었던 정계개편이란 지역구도를 해체하고 가치와 노선에 따른 정책 경쟁이 벌어지는 정당 체제를 이룩하는 것이다.

김 기자의 주장은 노 대통령 때문에 지역구도가 부활했고, 노 대통령 때문에 가치와 노선에 따른 정당 재편이 실패했다는 말이다. 만일 노 대통령이 가만히 있었다면, 지역구조가 부활할 확률은 줄어들었을 것이고, 노선에 따른 정책 경쟁이 벌어질 확률이 컸을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그렇다면 기자는 노 대통령 때문에 국민중심당이 출현했고 노무현 때문에 민주당이 회생했다고 말하고 싶은가? 기자는 노무현 때문에 정책 경쟁이 상실했다고 말하고 싶은가?

사실 나는 처음에 김보영 기자가 전혀 엉뚱한 사고를 하고 있지나 않나 의심이 들기 시작했다. 기사를 조금 더 읽어보니 기자의 보다 그럴 듯한 추론이 등장했다. '진보'와 '보수'를 분간하는 한국적 표준을 노 대통령이 흩트려 놓았다는 것이 그의 근거였다.

노 대통령은 자신의 진보적 경향성으로 국민적 지지를 얻어 대통령이 되었지만 대통령이 되고 난 뒤 보수적 경향성을 취해 국민을 배신했다고. 아니 민주주의 자체를 배신했다고. 이것이 김보영 기자의 비판이다.

▲ 김보영 기자의 '실패한 노 대통령, 당신이 틀렸다' 기사.
김보영 기자의 비판 논리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① 노무현은 통치기간 중에 '보수적' 경향성을 지녔다.
② 이것은 그를 지지한 국민에 대한 배신이자 민주주의 자체에 대한 배신이다.
③ 동시에 노무현은 '진보'와 '보수'를 분간하는 한국적 표준을 흩트려 놓았다.
④ 노무현은 지역주의를 대체할 정책과 대안이라는 실질적 선택 기준을 무너뜨렸다.
⑤ 결국 정책정당의 소멸과 지역주의 부활은 노무현 때문이다.


그런데 김보영 기자의 이러한 비판은 '정치인 노무현의 좌절'에 대한 비판이 아니다. 김 기자는 노무현 대통령의 글과는 무관하게, 다만 노무현 때문에 정책정당의 가능성이 사라졌고 지역주의가 부활했다는 완전히 새로운 제3의 주장을 하고 있을 뿐이다.

그래도 '보따리 정치인'들은 잘못 있다

우리가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는 부분에서 시작해 보자. 정책정당의 기치를 내건 열린우리당이 해체 위기에 놓여 있고, 충청도에 국민중심당, 전라도에 민주당, 또는 '충청+전라도'에 통합신당이 지역할거하는 조짐이 보이고 있다.

우리는 이 현상을 정책정당의 가능성이 소멸하고 지역주의가 부활했다고 보는 것이다. 여기에 대해서는 노무현 대통령도 김보영 기자도 동의할 것이다. (김 기자는 아닌가?)

노 대통령은 이 현상의 원인을 보따리 정치인들, 떳다방 정치인들에게 돌리고 있다. 그런데 김 기자는 이 현상의 원인이 '보따리 정치인들' '떴다방 정치인'들에게 있지 않다고 반박하지는 않는다. 다만 이 현상의 원인을 노 대통령에게서 찾고 있을 뿐이다.

그런데 지금 현상의 원인에 대해서 김보영 기자의 주장이 설사 옳다 하더라도, 노 대통령의 원래 주장이 논박되는 것은 아니다. 한 현상의 원인이 둘 이상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노 대통령, 당신이 틀렸다'는 김 기자의 글은 특정 글(노무현의 특정 글)에 대한 논박으로는 적절하지 못하다. 노무현 대통령은 A라는 논리로 정동영 전 의장과 김근태 의원을 비판했고, 김보영 기자는 B라는 논리로 노무현 대통령을 비판했을 뿐이다.

A와 B는 별 논리적 관련성도 없다. 그런데도 B가 A에 대한 반박인 체하는 것이다. 이런 방식이 요즘 지성인들이 벌이는 비판 놀이다. 특히 이런 비판 놀이가 노 대통령에게 집중되어 있다. 한극 지성의 한계이자 한국 지성의 스캔들이다.

▲ 최근 민주당의 회생은 지역주의의 부활 신호로 읽힌다. 지난 4월, 무안·신안 국회의원 재선거에 출마한 김홍업 후보의 당선을 위해 지원유세에 총출동한 민주당 지도부.
ⓒ 오마이뉴스 강성관
정책정당이 위기에 처하고 지역주의가 부활하는 현상이 '보따리 정치인' '떴다방 정치인'들에게 있다는 노 대통령의 인식은 현상적으로 볼 때 여전히 매우 그럴 듯해 보인다.

또한 열린우리당 탈당파들의 탈당 명분은 노무현의 '보수적' 경향성이 전혀 아니었다. 열린우리당의 위기와 민주당의 부활, 국민중심당의 출현은 노무현의 보수화와 아무런 상관이 없다. 오히려 탈당파들이 열린우리당을 해체하려는 첫째 동인은 집권가능성을 높이려는 정치공학이었다.

김보영 기자는 '보따리 정치인', '떴다방 정치인'들 때문에 정책정당이 위기에 처하고 지역주의가 부활하고 있다는 노 대통령의 인식에 대해서만은 찬성해야 할 것이다.

복지예산·한미FTA, 진보의 증거 아니다

그러면 이제 노무현 때문에 정책정당이 위기에 처하고, 지역주의가 부활했다는 김보영 기자의 제3의 주장에 대해 이야기하기로 하자. 나는 통치기간 중에 노 대통령이 '보수적' 경향성을 띠었다는 주장에 찬성하지 않는다. 김 기자의 근거는 두 가지다.

첫째, 복지예산을 그다지 많이 증액하지 못했다.
둘째, 한미FTA를 추진했다.

이 두 사실이 어떻게 노무현의 보수화에 대한 근거가 될 수 있는지 도무지 납득되지 않는다. 물론 이런 사실은 노무현의 진보적 경향성의 증거가 될 수 없다.

김 기자는 이런 두 사실들이 진보적 경향성의 증거가 될 수 없으니, 보수적 경향성의 증거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인가? 키가 건강의 증거가 될 수 없으니 허약의 증거가 된다는 말인가? 설마 이런 말은 아니겠지.

분명히 FTA는 보수나 진보의 지표가 되지 않는다. 다만 한국에서는 '반미' 정도가 진보의 지표가 되기도 한다. '반미'가 진보의 지표라는 것 자체가 역사적 우연성에 불과하다. 진보진영의 '한미FTA 반대'가 다름 아니라 '반미'였다면 이것은 실망스러운 일이다.

여하튼 한미FTA 자체를 보수의 지표로 보는 것은 잘못되었다. 또한 '반개방'과 '보호무역'이 진보의 지표라고 말하지 않기를 희망한다.

▲ 지난 3월 한미FTA 범국본은 '망국적 농업 포기발언 노무현 규탄 기자회견'을 열었다.
ⓒ 오마이뉴스 권우성
참여정부 시기 동안 복지예산이 '그다지' 많이 증가하지 않았다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또 다른 사실이 있다. 참여정부의 복지예산 증가 속도가 역대 정부 중 최대라는 사실이다.

복지예산 증가 속도가 빠르다고 해서 이것이 진보적 경향성이 될 수 없다고 말한다면, 그것을 받아들일 수 있다. 그러나 적어도 참여정부가 유럽 복지선진국의 복지수준에 한참 미치지 못했다는 그 엄연한 현재 사실만으로 노무현이 진보적 경향성을 잃었다고 말하는 것은 잘못되었다.

한국 지성의 비판 놀이

그리하여 통치기간 중에 노무현 대통령이 보수적 경향성을 띠었다는 김보영 기자의 주장은 그다지 설득력이 없다.

나아가 노 대통령이 '진보'와 '보수'를 분간하는 한국적 표준을 흩트려 놓았다는 그의 주장도 무슨 근거를 지닌 주장이 못 된다. 그리하여 노무현이 지역주의를 대체할 정책과 대안이라는 실질적 선택 기준을 무너뜨렸다는 주장도 설득력을 완전히 잃게 된다.

결국 "정책정당의 소멸과 지역주의 부활이 노무현 때문"이라는 주장은 한국 지성의 스캔들을 보여주는 또 하나의 비판 놀이에 불과하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필자의 블로그 http://newframe.org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노무현, #실패한 대통령, #지역주의, #정책정당, #열린우리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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