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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9일 방영된 드라마 <연개소문>을 눈여겨 본 시청자들은 다소 의아한 생각이 들었을 것이다. 당나라 장수의 이름이 대사에서는 '계필하력'이라고 하면서도 자막에는 '글필하력'으로 나왔기 때문이다.

편집 과정에서 자막만 수정된 것을 보면 아마도 최근에 이름에 대한 문제 제기가 있었던 듯하다. 이런 예는 생각보다 많은 편이다. 호기심이 많은 사람이라면 '契丹'이란 한자어를 '계단'이라고 읽지 않고 '거란'이라고 읽는 것에 대해서도 의문을 품었을 것이다.

중국의 역사서에는 지명이나 인명 등이 당시의 소릿값(音價)과 다른 경우에는 주(註)를 달아 자세히 설명하고 있다. 이를 통해서 우리는 契苾何力은 '계필하력'이 아니라 '글필하력', 契丹은 '계단'이 아니라 '거란'이란 사실을 알게 되었다.

이런 내용은 역사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어렵지 않게 알 수 있는 사실이다. 그러나 고구려가 국호를 '고려'로 바꾸었으며, 고구려의 본래 소리값이 '고구리'였다는 사실은 전문가가 아니라면 처음 듣는 이야기일 것이다.

고구려는 나라 이름을 '고려'로 바꾸었다

▲ 중원고구려비. 장수왕의 남진을 기념하기 위해 세운 것으로 생각되며, 이 비에는 '고려 태왕'이란 명문이 있어 고구려의 국호가 고려로 바뀌었음을 보여주는 자료의 하나가 되고 있다.
ⓒ 백유선
고구려의 기원에 관한 학술대회가 오는 5월 3~4일 부산의 경성대학교에서 열린다. 고구려연구회가 주최하고 동북아연구재단이 후원하는 이번 행사에서는 고구려 민족의 기원과 고구려의 기원에 관한 여러 편의 연구논문이 발표될 예정이다.

이번 학술대회에서 눈길을 끄는 것은 고구려의 본래 이름이 '고구리'였다고 하는 서길수 교수의 주장이다. 서길수 교수는 중국 동북지역의 고구려 산성을 찾아내 연구하고, 고구려연구회를 조직하였으며, 중국의 역사침탈에 가장 적극적으로 맞선 학자이기도 하다.

또한 그는 학자로서는 드물게 TV 오락 프로그램을 통해 중국의 역사침탈의 심각성을 알리는 등, 고구려사 인식의 대중화에도 힘써 왔다. 최근에는 드라마 '주몽'을 분석하는 논문을 발표하여 사실과 '픽션' 사이에서 고민하는 대중들의 역사인식에 도움을 주기도 하였다.

서 교수는 먼저 고구려가 '고려'로 국호를 바꾼 사실에 주목하였다. 이미 학계에서는 여러 차례 논의 되었으나 대중에게는 다소 생소한 내용이다. 고구려연구회 홈페이지를 통해 미리 배포한 학술대회 논문을 통해 서 교수의 주장을 살펴보자.

"아직도 고구려는 추모(주몽)가 삼국시대(BC37~AD668) 세운 나라이고, 고려는 왕건이 세운 왕조(918~1392)라고 아는 사람이 많으며, 어떤 사람은 "고려는 고구려에서 '구'자를 빼고 부른 이름이다"고 하는 이들도 있기 때문에 이 점을 분명하게 하려고 한다. 다시 말해 고구려 때 이미 고려라는 국호를 썼고, 나중에 왕건의 고려(918~1392)는 그 이름을 그대로 이어받았다는 것이다."

서 교수는 언제부터 고구려가 고려라고 국호를 바꾸었는지 그 시기가 문제라며 한국과 중국의 학자들의 견해를 정리하고 중국 사료의 분석을 통해 자신의 견해를 밝히고 있다.

서 교수는 장수왕 11년(423)이후 고려로 국호를 바꾸었다면서 이는 고구려의 평양 천도와 관련이 있다고 하였다. 즉, 나라 이름을 바꾼 것과 수도를 옮긴 것이 같은 시기에 결정하여 시행한 '프로젝트'라고 하는 주장을 제기하였다.

고구려가 이름을 고려로 바꾼 것은 '중원고구려비'나 '연가7년명 금동여래입상' 등의 고구려 유물에도 보이는 내용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과서에서 배우지 않은 아직은 생소한 내용이어서, 이를 다시 공개적으로 강조하는 것은 역사인식의 대중화라는 측면에서 볼 때 그 의미가 크다고 할 수 있다.

고구려는 본래 '고구리'였다.

우리말로 한자를 읽을 때 한 가지로 읽는 것도 있지만 다르게 읽는 것도 있고, 읽는 법이 다르면 전혀 다른 뜻이 되기도 한다. 龜鑑(귀감·구감x), 遊說(유세·유설x), 惡寒(오한·악한x) 등이 그러하며, 역사에서는 契丹(거란·계단x), 樂浪(낙랑·악랑x), 玄菟(현도·현토x) 등이 대표적인 예이다.

서 교수는 高句麗, 高麗 역시 '잘못 읽기 쉬운 한자'라는 점에 착안하여 그 소릿값을 찾아내려는 작업을 통해 고구려사에 대한 정확한 인식의 필요성을 강조하고 나섰다.

서 교수에 의하면 <신당서>나 <자치통감>의 주석에 高句麗, 高麗 같은 음도 모두 '잘못 읽기 쉬운 한자'로 주석이 달려 있다고 한다. 주석에는 高句麗는 '고구려'가 아니라 '고구리', 高麗는 '고려'가 아니라, '고리'라고 하였다고 한다.

심지어는, 한ㆍ중ㆍ일의 자전과 옥편에도 대부분 '高句麗=고구리', '高麗=고리'라는 것을 명확하게 기록하고 있으며, 청나라의 <강희자전>에도 高麗를 '고리'로 읽어야 한다고 분명하게 기록하고 있다고 한다.

정조 때(1776~1800) 우리나라에서 간행된 <전운옥편>에는 '麗'자는 '려'와 '리' 두 가지로 읽는다고 하는 것을 분명히 하고, '리'로 읽는 예를 들면서 高麗는 '고리'로 읽어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다고 한다. 김정호의 <대동지지>에서도 高句麗는 '고구리'로 읽어야 한다는 것을 분명하게 강조하여 주를 달고 있다고 한다.

더구나 해방 후 나온 한글학회의 <우리말 큰사전>에는 '고구리'라는 단어가 실려 있으며, <한자대전>, <홍자옥편>, <한한대자전>, <대한한사전> 같은 많은 자전이나 옥편에도 모두 麗자는 '려'와 '리' 두 가지로 읽는다는 것을 밝히고 있고, '나라이름'으로 쓸 때는 '리'로 읽어야 한다는 것을 명기하고 있다. 그리고 그 예로서 高句麗, 高麗를 들고 '고구리' '고리'로 읽어야 한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다고 한다.

이처럼 중국과 한국의 사서와 음운서들을 통해 고구려가 본래 '고구리'이었음을 밝혀낸 서 교수의 주장이 학계에서 어떻게 받아들여질 지 주목된다. 서 교수는 다음과 같은 내용으로 그의 주장을 마무리했다.

"우리가 高句麗란 나라이름을 한글로 '고구려'로 읽기 시작한 것은 100년도 안 된다. 그 동안 고대사를 연구한 선학들이 이 점을 소홀히 하여 소중한 고대 국가의 이름을 잘 못 읽고 있었다. 중국에서도 高句麗는 현대 중국어식으로 읽지 않고 고대 사서의 기록대로 읽고 있는데, 자기 나라 역사에 나오는 중요한 나라이름을 잘못 읽고 있다는 것은 매우 부끄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이제라도 가능한 한 빠른 시기 안에 바로잡기를 바란다. 그러기 위해서는 학계의 깊이 있는 토론을 거쳐 교과서를 고치는 것이 가장 먼저 해결해야 할 문제라고 본다."

2007년 고구려연구회 춘계학술대회

* 주 제: 고구려의 起源과 族源에 관한 제문제
* 일 시: 2007년 5월 3(목)~5월 4일(금)
* 장 소: 부산 경성대학교 누리관 이미지홀
* 주 최 : 고구려연구회·경성대인문과학연구소
* 후 원 : 동북아역사재단
* 발표논문 :
      - 고구려 국호와 음가에 대한 제문제 : 서길수 (서경대)
      - 고구려의 연원으로서 숙신과 고조선 : 한규철 (경성대)
      - 고구려의 족원과 예맥 : 송호정 (교원대)
      - 고구려의 부여 기원에 관한 인식의 변천 : 이도학 (한국전통문화학교)
      - 중국 학계 고구려의 상인, 염황 후예설에 대한 비판적 고찰 : 기수연 (석주선박박물관)
      - 고구려의 기원에 관한 고고학적 고찰 : 지병목 (경주문화재연구소)
      - 고구려 건축의 기원에 관한 고찰 : 이병건 (동원대)

* 자세한 내용은 고구려연구회 홈페이지( http://www.koguryo.org ) 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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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 콘서트>, <청소년을 위한 한국사>(공저), <우리 불교 문화유산 읽기>, <한번만 읽으면 확 잡히는 국사>(상,하)의 저자로 중학교 국사 교사입니다.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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