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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월 하순이면 복사꽃이 만발한다. 사월의 꽃들 가운데 복사꽃은 단연 선명하게 눈에 띈다. 진달래나 개나리와 같은 키가 낮은 관목이 아니라 높이 선 교목인데다, 목련이나 벚꽃 같이 하얀색이 아니라 붉은 색이어서 사람의 마음을 강렬하게 자극한다.

▲ <벽도도>(碧桃圖). 꽃잎이 여러 겹으로 피는 복사꽃을 그렸다.
ⓒ 남송 무명씨 그림.

사람에 따라서는 그러한 강렬함에 반감도 가졌음을 여러 기록을 통해 알 수 있다. 중국에서 복숭아는 고대에는 귀중한 과일이었고, 한대 이후에는 귀신을 쫒거나 장수를 기원하는 의미로 쓰였다. 그러다가 송대 이후에는 창녀로 비견되었다. 오랜 역사를 거치면서 사람과 애환을 함께 하며 문화적 의미를 더하여온 복숭아에 대해, 먼저 장수와 벽사의 상징의 뜻을 알아보자.

한자로 ‘도’(桃)라고 하면 세 가지 의미가 있다. 복숭아나무(桃樹), 복사꽃(桃花), 복숭아(桃實)이다. 그러므로 문맥에서 어느 것을 가리키는지 구분하여야 할 것이다.

사람들이 복사꽃을 심는 이유는 당연히 실용적인 목적에서 출발하였다. <한시외전>(漢詩外傳)에서 “봄의 복숭아나무와 오얏나무는 여름에는 그늘을 만들고 가을에는 열매를 맺는다”고 했듯이 말이다.

▲ <복숭아와 비둘기>(桃鳩圖)
ⓒ 북송 휘종(徽宗) 그림. 26세 때 그림.

그러나 복사꽃에 대한 인상은 기원전 6세기 이전부터 있었다. 중국 문학에서 복사꽃과 관련된 인상은 먼저 최초의 시가집 <시경>에서 볼 수 있다.

<시경>의 여섯 번째 시 '도요'(桃夭)에 “무성히 자란 복사나무, 활짝 꽃이 피었네. 이 아가씨 시집가면, 시댁에 잘 하리라”(桃之夭夭, 灼灼其華. 之子于歸, 宜其室家)라 하여 시집가는 아가씨를 복사꽃에 비유하고 있다.

<시경>에는 또 '모과'라는 아름다운 시가 있다. “큰 복숭아를 받았으니, 나는 경요(瓊瑤)로 보답하리. 보답으로 부족하지만, 영원이 잘 지내고 싶어.”(投我以木桃, 報之以瓊瑤. 匪報也, 永以爲好也) 이는 남녀 사이에 선물을 주고받으며 애정을 표시하는 장면이다.

하나는 꽃을 노래했고 하나는 복숭아를 노래했다. 두 번째 시에서 알 수 있듯 복숭아는 고대에 비교적 귀한 과일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안자춘추>(晏子春秋)에 ‘복숭아 두 개에 죽은 세 용사’(二桃殺三士)라는 유명한 이야기가 있는데, 그 발단은 제나라 재상 안영(晏嬰)이 복숭아를 상으로 내린데서 시작한다. 또 <한비자>(韓非子)에는 공구(孔丘)가 노 애공(魯哀公)에게서 복숭아와 차조(黍)를 받는 장면이 나온다.

<서경잡기>(西京雜記)에 보면 한 무제(漢武帝)가 상림원(上林苑)을 만들었을 때 군신들이 과일을 진상하는데 거기에는 상핵도(湘核桃) 등 10개의 복숭아 이름이 나온다.

▲ <복사꽃>(桃花圖). 화면 아래에 모란을 그려 넣어 봄의 의미를 강조했다.
ⓒ 청대 추일계(鄒一桂) 그림.

귀한 사물에는 으레 그 기원 이야기가 따라붙기 마련이다. 복숭아의 기원에 대해 <산해경>에 재미있는 신화가 전한다. 과보(夸父)라는 신이 어느 날 자신의 능력은 생각하지 못하고 태양을 쫒아가기로 하였다.

해를 따라 달리고 달려 해가 지는 우연(禺淵)까지 다다랐다. 그러나 갈증이 심하여 황하와 위수(渭水)를 마셨다. 그래도 기갈이 가시지 않자 다시 북쪽의 대택(大澤)을 마시려 하였는데 그곳에 이르기 전에 목말라 죽었고, 그가 던진 지팡이가 변해서 등림(鄧林)이 되었다.

이 등림을 보통 복숭아나무숲으로 본다. <산해경>에는 “과보산(夸父之山)의 북쪽에 숲이 있는데 도림(桃林)이며, 둘레가 삼백리나 된다”고 하는 대목이 또 나오는데, 청대 학자 필원(畢沅)은 이 도림을 곧 등림으로 보았고, 그 위치는 지금의 하남성 영보현(靈寶县) 동남 삼십리라 하였다. 이곳은 낙양과 서안의 중간이니 예부터 복숭아나무가 많았던 모양이다.

과보는 왜 태양을 쫒아가려 했을까. 그리고 태양을 앞서가면 또 어쩔 셈인가. 이러한 건 알 수 없지만, 후세 사람들은 그의 초인적인 노력을 칭송하며, 목마른 사람들을 위해 즙이 많은 복숭아를 남겨놓은 데 대해 고마워하였다. 도연명의 시 '산해경을 읽고'에도 과보의 높은 뜻과 공을 기리고 있다.

▲ <남계의 봄 새벽>(南溪春曉圖). 황새가 앉아 있는 모습이 한가롭다.
ⓒ 청대 마원어(馬元馭) 그림.

복숭아와 관련된 가장 주요한 의미는 ‘장수’와 ‘벽사’이다. 이들은 모두 복숭아는 신선 세계의 과일이란 데서 출발한다. <춘추운두추>(春秋運斗樞)에는 “옥형성(玉衡星)이 흩어져서 복숭아가 되었다”고 적고 있다. 다시 말해 복숭아는 북두칠성에서 자루 부분의 다섯 번째 별 옥형(玉衡)이 변해서 된 것이다. 이는 일곱 번째 별 요광(瑤光)이 변해서 코끼리가 되었다는 말과 같이 귀중한 사물에 신화적 근원을 붙인 경우라 하겠다.

또 후진(後晉)의 왕가(王嘉)가 편집한 <습유기>(拾遺記)에는 “방당산(螃螗山)은 부상(扶桑)에서 오만리 떨어져 있어 햇빛이 미치지 못하고 땅이 춥다. 복숭아나무가 둘레 천 길이나 되는데 꽃이 청흑색(靑黑色)이고 만년에 한 번 열린다”고 했다.

<산해경>에서도 동해에 있는 탁삭산(度朔山)에는 둘레가 삼천리가 되는 큰 복숭아나무가 있다고 했다. 왜 하필 복숭아나무인지 모르겠지만, 나는 이런 글을 읽으면 그처럼 큰 나무에서 꽃이 피면 어떨까 상상해보곤 한다. 나무가 신령스러우니 열매가 신령스럽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 <젓대를 부는 신선>(吹簫女仙圖). 여자 신선이 소나무 그늘 아래 앉아 피리를 불고 있다. 옆에 있는 바구니에 복숭아가 담겨있다.
ⓒ 명대 장로(張路) 그림.

중국의 연화(年畵)나 전지(剪紙) 등을 보면 복숭아가 등장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는 대부분 장수를 기원하는 뜻이다. 이러한 관념은 소설 '한무고사'(漢武故事)에서 기원했다. 이 소설은 한 무제의 평생을 근간으로 괴이한 일을 적고 있는데, 그중 가장 뛰어난 부분은 곤륜산 서쪽에 사는 서왕모(西王母)가 한 무제(漢武帝)를 찾아오는 장면이다.

이 대목에선 특히 동방삭(東方朔)이 중개 역할을 한다. 동방삭은 사람이 아니라 목성(木星)의 화신으로 세상을 구경하러 내려온 것으로 되어있다. 그러면서도 한 무제의 신하이니 인간계와 천상계를 연결하는 사신으로 제격이다. 유명한 복숭아 훔쳐먹기 대목은 다음과 같이 그려진다.

▲ <복숭아를 훔치는 동방삭>(東方朔偸桃圖) 서안 비림에서 1973년 발견.
ⓒ 남송 무명씨 그림.

동군(東郡)에서 단인(短人)을 보내왔는데 키가 칠판 촌(약 20센치)이었지만 의관을 모두 갖추었다. 한 무제가 산의 정령으로 여기고 항상 책상 위에 걸어다니게 하였다.

동방삭을 불러 이에 대해 물었다. 동방삭이 오더니 단인을 보고 말했다. “거령(巨靈)아! 너 뭐하러 갑자기 왔나? 서왕모는 잘 계시냐?” 단인은 대꾸하지 않고 대신 동방삭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한 무제에게 말했다. “서왕모께서 복숭아를 심었는데 삼천년에 한 번 열리지요.(三千年一作子) 이 사람이 불량해서 이미 세 번이나 훔쳤소이다. 그래서 서왕모의 신임을 잃어 인간 세상에 유배왔소이다.”

“삼천년에 한 번 열린다”는 말은 먹으면 삼천년을 산다는 뜻이다. 중국의 민간에서는 이와 관련된 전설이 전해오는데 무제의 생일에 서왕모가 복숭아를 7개 주었는데 동방삭이 옥반에 들고 가다가 2개를 훔쳐 먹었다는 것이다. 그것도 세 번이나 그랬다. 이야기대로라면 동방삭은 도합 6개를 먹은 셈이다. 그렇다면 3천년 곱하기 6개니 1만8천년을 살 수 있을 것이다.

우리나라에 “삼천갑자 동방삭”이란 말이 있는데 60갑자를 3천번이나 사니 18만년을 산다는 뜻이다. 어찌되었던 무제와 동방삭은 지금부터 2천1백년 전의 사람이니 이야기대로라면 지금도 어디선가 살아있을 것이다.

▲ <복숭아를 훔치는 동방삭>.
ⓒ 명대 오위(吳偉) 그림.

사실 삼천년을 산다는 것은 꼭 삼천년이 아니라 신선이 되어 영원히 산다는 뜻이다. 도교와 관련된 이야기에도 종종 복숭아를 먹고 신선이 된다. <신선전>에도 “고구공(高丘公)이 복숭아를 먹고 신선이 되었다”고 적고 있다. 원대 이후 민간에선 ‘팔선’(八仙) 이야기가 유행했는데, 그중 하선고(何仙姑)도 어렸을 때 산에 찻잎을 따러갔다가 도인을 만나 그가 주는 복숭아를 먹고 신선이 되었다.

그런데 무제와 동방삭이 모두 천도복숭아를 먹었는데 왜 사람들은 언제나 무제의 장수에 대해선 말하지 않고 동방삭만 말하는 것일까. 그리고 왜 동방삭이 훔친 장면을 그린 '동방삭투도도'(東方朔偸桃圖)만을 역대로 즐겨 그려왔던 것일까.

김홍도도 같은 제재의 그림을 남겨놓았다. 목숨이란 그처럼 훔쳐내고 싶도록 절박한 것이며, 설사 그리하여도 탓할 수 없다는 것인가. 이 대목에 이르면 항아(嫦娥)가 예(羿)의 불사약을 훔쳐 달에 간 사연도 수긍할 만하다. 불사약이 있다면 그 누가 훔치지 않을 수 있겠는가.

▲ <선계에서 복숭아를 훔치는 동방삭>(閬苑偸桃圖)
ⓒ 조선시대 김홍도 그림.

이들 그림의 효용은 말할 것도 없이 손위 사람이나 고관의 생일에 올리는 선물용 증정품이다. 그림에 아이나 노인이 복숭아를 바치는 것은 모두 장수를 축원하는 의미이다. 그러나 재미있는 것은 복숭아나무는 수령이 길지 않다는 사실이다. 일반적으로 10년이 지나면 쉽게 말라죽는다. 이렇게 단명하는 나무를 골라 선계에서는 3천년 이상 산다고 하니 얼른 이해하기 어렵다.

복숭아나무와 관련된 또 하나의 의미는 ‘벽사’이다. 그 기원은 보통 <춘추좌전> 소공(昭公) 4년조를 인용한다. 겨울의 얼음을 보관할 때 빙실 입구에 복숭아나무 활과 가시나무 화살을 걸어놓아 사악함을 내쫒았다. 고대인들은 추위가 더위로 변할 때 온갖 병과 전염병이 창궐하는 것을 보고, 이때 액이 많다고 생각하였다. 마찬가지로 얼음이 풀릴 때를 염려하여 액막이를 해야 했던 것이다. 이는 우리나라에서 전통적으로 복숭아나무나 엄나무를 대문에 걸어두는 것과 같은 맥락이다.

▲ <신도와 울루>
ⓒ 청대 복건 장주 지역의 문신(門神).

중국에서는 오늘날에도 새해가 되면 문에 장군 형상의 ‘문신’(門神)을 붙이는데 이의 기원도 복숭아나무와 관련된다. <산해경>, 채옹(蔡邕)의 <독단>(獨斷), 응소(應劭)의 <풍속통의>(風俗通義) 등의 내용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탁삭산(度朔山) 에는 귀신이 드나드는 문이 있는데, 신도(神荼)와 울루(鬱壘)라는 형제 신이 이들을 다스린다. 그들은 매일 인간 세상을 다니며 사람을 해치려는 귀신은 갈대 밧줄로 묶어 잡아와 호랑이에게 먹인다고 한다.

이런 까닭에 현의 관리들은 음력 12월 제야에 복숭아나무로 사람 모양을 만들고 갈대풀을 늘어뜨리고 문에 호랑이를 그렸다. 복숭아나무로 판을 만들어 여기에 신도와 울루 혹은 호랑이를 그리고 문에 걸어두었는데 곧 ‘도부’(桃符)이다. 나중에는 도부에 길상의 뜻을 지닌 말을 쓰는 습속이 생겼다. 이로부터 그림은 이후 문신(門神)과 연화(年畵)로 발전했고, 복숭아나무판은 대문 양쪽에 글귀를 써서 붙이는 춘련(春聯)으로 발전하였다.

▲ 베갯머리에 수놓인 복숭아 자수. 박쥐의 한자어인 편복(蝙蝠)에서 발음이 같은 복(福)을 따왔고, 복숭아에서 장수(長壽)의 뜻을 취했기에, 이 그림은 수복(壽福)을 의미한다.
ⓒ <베개의 풍정>

<회남자> '전언훈'(詮言訓)에는 악한 예(羿)가 복숭아나무 지팡이에 맞아 죽었다고 기록하였는데, 이에 대해 고유(高誘)는 귀신은 복숭아나무를 겁낸다고 주석하였다. 종름(宗懍)의 <형초세시기>에는 “복숭아나무는 다섯 종류의 나무 가운데 가장 영험하여 사기(邪氣)를 진압하고 온갖 귀신을 다스린다. …선목(仙木)이다”(桃者五行之精, 壓伏邪氣, 制百鬼. …压邪气, 此仙木也)고 하였다.

▲ 복숭아형 십이지신상. 장수를 기원하는 의미가 들어있다.
ⓒ 산동성 고밀 지역 전지(剪紙).

복숭아나무를 두려워하는 귀신 이야기 가운데 동진의 대조(戴祚)가 지은 <견이전>(甄異傳)은 좀더 구체적이다. 하후문규(夏侯文規)라는 사람은 죽은 후 형체를 드러내고 집에 돌아왔는데, 마당 앞의 복숭아나무를 보고 말하였다. “이 나무는 내가 예전에 심었는데 열매가 참 좋구나.” 그 말을 들은 부인이 물었다. “사람들은 죽은 자는 복숭아나무를 무서워한다는데 당신은 어찌하여 무서워 않는가요?” 이에 하후문규는 “동남쪽으로 뻗은 가지 가운데 두 자 여덟 치 길이로 태양을 향해 뻗은 가지만을 무서워한다오. 어떤 귀신은 그것도 안 무서워하오”라 대답하였다.

복숭아나무에서 왜 태양을 향해 뻗은 두 자 여덟 치 되는 가지만 두려워하는지 알 수 없지만, 당시 사람들이 복숭아나무에 부여한 관념은 뚜렷하다. 조선시대에 “동도지(東桃枝)를 잡고 독경하면 환자의 병이 낫는다”는 풍속이 있는데, ‘동도지’는 하후문규가 말한 동남쪽으로 뻗은 가지(桃東南枝)로 보인다.

▲ <큰 복숭아>(大桃圖). 열매가 세 개 있음을 구천년을 산다는 뜻이다.
ⓒ 치바이스(齊白石) 그림.

후에 도교가 민간 신앙으로 자리 잡으면서 이러한 복숭아나무 숭배 관념은 더욱 다양하게 증식된 것으로 보인다. 우리나라에서도 귀신은 복숭아나무를 두려워한다는 관념에서 발전하여, 복숭아를 제사상에 올리지 않는다. 복숭아가 차려져 있으면 조상의 혼령들이 강림하지 않을 것이란 생각 때문이다. 실제로 그런지 알 수 없지만 이러한 생각은 상당히 널리 퍼져 있다.

덧붙이는 글 | 서성 기자는 열린사이버대학교(www.ocu.ac.kr) 중국어전공 교수로 재직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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