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명의 시민기자가 개의 기사를 작성하였습니다. 시민기자 전환하기
지각변동을 일으키는 국제정세

국제정세는 숨 가쁘게 변하고 있었다. 세계의 정복자 원나라는 북방으로 밀려 마지막 가쁜 숨을 몰아쉬고 있고 대륙을 호령하던 주원장이 죽었다. 황세손 윤문(允炆)이 황제로 등극했지만 권력의 심장부 금릉이 요동치고 있었다. 나이 어린 혜제(惠帝)의 삼촌 연왕(燕王)이 북경에서 두 눈을 부릅뜨고 있기 때문이다.

중원을 장악하고 명나라를 개국한 주원장은 맏아들 주표(朱標)를 의문태자(懿文太子)로 봉하고 황태자로 책봉했다. 황태자가 병사하자 장자 계승 법통에 따라 손자 윤문(允炆)을 황세손으로 책봉했다. 23명의 아들들은 변방을 분봉(分封)하여 왕으로 내보냈다. 변란을 방지하고 황세손을 보호하기 위해서다.

"황태손 주윤문에게 황위를 물려준다. 여러 아들들은 상례를 치르기 위해 금릉으로 달려올 필요 없이 각자의 영지를 지키라."

주원장은 죽으면서 유서를 남겼다. 나이 어린 황세손을 바라보는 황제의 노심초사가 묻어있다. 주원장은 죽는 날까지 장손 윤문을 위태롭게 보았다. 장례라는 구실로 삼촌들이 금릉에 몰려들면 무슨 변란이 있을지 두려웠다.

약관 16세의 어린 나이에 황제에 오른 혜제는 부랴부랴 할아버지 홍무제의 장례를 7일 만에 치렀다. 변방에 있는 삼촌들이 장례에 참석하는 것을 미연에 방지하기 위한 고육책이었다. 황제의 국장으로서는 있을 수 없는 속전속결이다. 이에 분노한 것이 북경에 똬리를 틀고 앉아 있는 연왕이었다. 연왕은 훗날 조카의 황위를 찬탈하고 황제가 된다.

격변하는 국제정세 속에서 금릉이 요동치면 대륙이 흔들리고 대륙이 지각변동을 일으키면 한반도는 지진이 난다. 이러한 판세에 하륜이 진위진향사(陳慰進香使)가 되어 명나라를 방문하기로 낙점이 되었다. 황제 등극을 하례하고 조선을 압박하는 시한폭탄 같은 '요동정벌론'을 확실히 매듭짓기 위해서다.

용산강에 배 띄워라

방원이 우부승지 이숙번을 불렀다.

"이번에 하대감이 명나라를 다녀오게 되었다. 환송연을 베풀어주고 싶은데 어디가 좋은가?"
"서강이 좋을 듯 싶습니다."

"서강이야 경승이 절경이지만 세곡선이 드나드는 곳이 아닌가? 백성들은 열심히 일하고 있는데 그런 곳에 배 띄워 놓고 술 마시고 있으면 백성들이 우리를 어떻게 보겠는가?"
"그도 그렇습니다. 마포강은 어떻습니까?"

"거기야 새우젓 배가 드나들고 장사치들이 떠들어대니 조용히 담소를 즐길 수 있겠는가?"
"아예 그러시면 임진강으로 나가시죠?"

"그곳은 아마 전하께서 환송연을 베풀어 주실 걸세."
"도무지 생각이 안나는데요."

"장수는 천문지리에 통달해야 하거늘 지리에 그리 아둔해서 어찌할꼬?"
"소인은 장수가 아니라 임금을 보필하고 있는 우부승지 이옵니다."

이숙번은 뒷머리를 긁적였다. 정도전을 척결하던 기사일 거사 때 큰 칼 쥐고 선봉에 섰던 일은 잊어버렸나 보다. 이제 대궐에서 임금 지근거리에 있으니 점잖은 선비로 보아달라는 얘기다.

"누가 누구를 보필하고 있다고?"

노기와 함께 날카로운 방원의 눈빛이 번쩍였다.

"아, 예. 임금을 보호하고 공을 보필하고 있습니다요."

방원의 언짢은 심기를 눈치 챈 숙번이 꼬리를 내렸다. 보호가 감시의 동의어인지 알 수 없다.

"하하하, 자네는 무장이 제격이야, 무골이 딱이라구…. 용산강으로 할 것이니 준비하도록 하시게."

대륙이 요동치고 있다, 실태를 파악하라

▲ 인왕산 범바위
ⓒ 이정근
용산강은 인왕산 범 바위 아래 샘터에서 발원하여 금화산 물줄기를 아우르고 청파역을 지나 한강 본류와 합류하는 지점을 말한다. 용산강의 상류 만초천에 있는 서교(西橋)는 한양과 경기도를 구분 짓는 경계선이었으며 하류에는 병선(兵船)을 건조하는 사수감(司水監)이 있었다. 숭례문 밖 삼남으로 가는 최대의 파발역참을 끼고 있는 용산강 일대는 조선 최초의 위성도시였다.

우정승 김사형이 정사를 맡았지만 하륜의 임무가 막중했다. 황제등극하례와 '요동정벌론' 폐기처분도 중요했지만 요동치는 명나라의 정세를 파악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했다. 원나라는 이미 패망의 길로 들어섰지만 욱일승천 치솟아 오르는 명나라의 장래를 예측하지 못하고서는 한 발작도 앞으로 나아갈 수 없는 조선이었다.

명나라 사신 길에 북경의 연왕을 만난 일이 있는 방원은 야망에 불타는 연왕의 눈빛을 기억하고 있었다. 연왕이 어떻게 움직이느냐에 따라 한반도의 운명이 달라진다고 전망한 방원은 정세 파악의 적임자로 하륜을 천거한 것이었다.

결과론이지만 방원과 연왕이 누가 먼저 위(位)에 올라가느냐 하는 권력레이스가 펼쳐진 것이다. 결과는 방원이 형을 제치고 1400년 왕위에 올랐고 연왕은 이보다 2년 후 1402년 조카를 죽이고 황제의 자리에 올랐으니 방원이 빠른 셈이다.

명나라 사신으로 떠나는 하륜을 위한 송별연이 용산강에서 성대하게 베풀어졌다. 차일을 늘어뜨린 배위에 진수성찬이 마련됐다. 환송연이라 하지만 혁명성공 축하연도 겸한 연회였다. 이지란과 조영무를 비롯하여 이숙번, 신극례, 민무구, 민무질 등 무골출신들이 많이 참석했다. 혁명동지들의 단합대회와도 같은 자리였다. 방원이 하륜을 독대하는 자리를 마련했다.

태그: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주기

진실과 정의를 추구하는 오마이뉴스를 후원해주세요!

후원문의 : 010-3270-3828 / 02-733-5505 (내선 0)

오마이뉴스 후원하기

사실(事實)과 사실(史實)의 행간에서 진실(眞實)을 캐는 광원. 그동안 <이방원전> <수양대군> <신들의 정원 조선왕릉> <소현세자> <조선 건국지> <뜻밖의 조선역사> <간신의 민낯>을 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