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서부 대개발의 중심, 우루무치(烏魯木齊)

꼬박 24시간을 달린 기차가 우루무치역에 도착한 시간은 오후 3시가 다 돼서다. 역 광장에는 다민족상이 우뚝 서 있었다. 실크로드 천산북로의 오아시스 도시 우루무치는 위구르어로 '아름다운 목장'이라는 뜻이다.

천산산맥 기슭 해발 900m에 위치하여 연평균 기온 7도, 가장 추운 1월은 영하 10℃이나 가장 더운 7월은 14℃ 밖에 되지 않는다. 선선한 날씨는 고원지대에 있다는 것을 단번에 짐작하게 했다. 이곳 사람들의 조상들은 아름다운 목장의 목초지에서 양과 말 등을 길렀겠지만, 지금은 원유의 개발, 발전소의 건립, 공장의 건설 등으로 많은 사람들이 초원과 사막을 떠나서 일하고 있다. 도시화의 결과이다.

▲ 카슈가르를 출발해 꼬박 24시간을 달린 기차는 우루무치역에 도착했다.
ⓒ 조수영

▲ 우루무치역 앞에 있는 다민족상
ⓒ 조수영
우루무치는 신강위구르 자치구의 수도다. 그러나 도심에는 위구르인들의 비율이 그다지 높아 보이지 않는다. 중국 정부의 한족 이주정책 탓이다. 또한 이들이 경찰력과 군사력으로 통제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도심은 고층 빌딩이 즐비하고 쭉쭉 뻗는 도로와 고층의 아파트들이 실크로드의 여느 오아시스 도시와 확연히 다른 분위기다. 고대 실크로드의 자취를 전혀 느낄 수 없었다.

숙소에 짐을 풀고 홍산공원으로 향했다. 시내 한복판에 우뚝 서 있는 높이 90m인 홍산은 작은 놀이동산도 있는 시민들의 휴식처였다. 붉은 언덕은 천산에서 날아온 홍학이 내려앉아 붉게 물들었다는 전설이 있다. 산 정상에는 임칙서의 동상과 9층의 진룡탑(鎭龍塔)이 있다.

전설에 의하면 원래 이 산에는 한 마리의 용이 살았다. 어느 날 그 용이 우루무치에 대홍수를 일게 하였다. 화가 난 여신 서왕모가 용의 머리 위에 이 탑을 세워 진압했다고 한다.

진룡탑 주위는 소원을 비는 사람들로 북적인다. 주변을 보니 자물쇠가 수도 없이 걸려있다. 일반적인 모양부터 하트모양까지 크기와 종류가 다양한 자물쇠가 채워져 있었다. 연인들이 사랑을 이루기 위해 이곳에 와서 자물쇠를 잠그곤 그 열쇠는 언덕 아래로 던져 버리는 풍습 때문이란다.

▲ 연인들의 자물쇠
ⓒ 조수영
누란의 미녀가 잠들어 있는 우루무치 박물관

도심에서는 전혀 실크로드의 자취를 느낄 수 없지만, 시내 중심에 있는 우루무치 박물관은 실크로드 연구에 핵심적인 유물들이 전시되어 있는 중요한 곳이다. 현대식으로 잘 지어진 건물에는 두 층에 전시실이 있다.

▲ 우루무치에 있는 신강성박물관
ⓒ 조수영
1층은 근처에서 발굴된 유물과 이 근방에서 나는 광물을 전시하고 있고, 그 반대쪽은 각 소수 부족에 대한 설명과 그들의 복장, 악기, 생활상을 재현하고 있었다. 동서교역을 이끌면서 독특한 문화를 꽃피운 실크로드의 주요 도시국가들이 지금에 와선 중화인민공화국의 역사단장에 동원된 들러리 신세라는 생각이 든다.

▲ 박물관 내부
ⓒ 조수영
2층에는 이 박물관을 대표할 수 있는 미라가 전시되어 있다. 총 8개의 미라가 있는데 첫 번째 전시된 것이 '누란 미인의 미라'다. 미라의 모습을 기초로 당시 모습을 마네킹으로 재현해 놓았는데 그 미모가 상당하다.

한족과는 아주 다른, 지금의 위구르족의 모습과도 좀 다른 완전한 서양 미인의 모습이다. 바짝 말라붙은 아스타나 고분의 것에 비해 실제 사람과 매우 비슷하다.

아기 미라의 눈감은 모습은 마치 금방이라도 울음을 터뜨릴 것 같다. 양갈래로 머리를 땋은 여인은 거의 퇴색되지 않은 당시의 옷을 입고 있다. 시간이 지나 수축이 있었다고 가정한다면 족히 180cm는 넘었을 수염 기른 남자는 얼굴에 채색을 해서 보다 사실적이다. 벌떡 일어설 것만 같다. 순간 이 전시실에 나 혼자 남았음을 느끼고는 섬뜩하여 소름이 끼쳤다.

자연에 의해 저절로 만들어진 이 미라들은 영생을 얻고자 한 이집트 왕들의 그것과는 다른 것이다. 건조한 기후가 부패를 방지하고 이곳 토양의 약간의 염분기가 방부제 역할을 하여 그 색깔과 모양을 지금까지 유지시켜 준 것이다.

살아있는 것 같은 표정으로 수천 년의 세월을 썩지 않고 제 모양대로 남아있는 미라에게서 슬픔과 비애가 느껴진다. 소멸할 수 없음에 대한 안쓰러움이다. 그러나 그들의 불멸은 우리가 사라질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 아닌가.

▲ 시간이 지나 수축이 있었다고 가정한다면 족히 180cm는 넘었을 수염 기른 남자는 얼굴에 채색을 해서 보다 사실적이다.
ⓒ 조수영

▲ 아기 미라의 눈감은 모습은 마치 금방이라도 울음을 터뜨릴 것 같다.
ⓒ 조수영

▲ 양갈래로 머리를 땋은 여인은 거의 퇴색되지 않은 당시의 옷을 입고 있다.
ⓒ 조수영
로프노르 호수와 함께 사라진 왕국 누란(樓蘭)

이노우에 야스시의 소설 <누란>은 역사적 사실과 상상력을 잘 버무려 만들어낸 소설이다.

로프노르 호숫가에는 누란이라는 작은 오아시스 나라가 있었다. 누란 사람들은 소금호수인 로프노르에서 소금과 물고기를 얻어 사막을 지나는 사람들에게 팔며 평화롭게 살았다. 그러나 언제부턴가 이들은 흉노와 한나라 사이에서 눈치껏 살아가야 하는 처지가 되었다. 왕의 아들 중 하나는 흉노에, 다른 하나는 한나라에 인질로 보내야 하는 상황이었다.

누란 왕이 죽게 되자, 흉노에 인질로 갔던 왕자인 안귀가 왕위에 올랐다. 안귀는 왕위에 오른 뒤 한나라를 멀리하고 흉노와 가까운 정책을 폈다. 그러자 화가 난 한나라는 안귀를 살해하고, 한나라에 인질로 가있던 안귀의 동생 위도기를 왕위에 앉힌다.

그러나 왕이 된 위도기는 한나라의 협박으로 어쩔 수 없이 나라를 로프노르에서 멀리 떨어진 선선이라는 곳으로 옮겨야 했다. 누란 사람들은 자신들의 생명과도 같은 호수 로프노르를 떠나 원하지 않는 이주를 해야 했다.

이주 며칠 전, 안귀의 부인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조상 대대로 뿌리내리고 살아오던 로프노르 호수가의 정든 땅을 버리고 떠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누란 사람들은 부인의 시신을 로프노르 호수가 바라보이는 언덕에 묻어준 뒤 누란의 땅을 떠났다.

세월이 오래 흘러 그동안 누란에 원래 살았던 사람은 나이 들어 세상을 떠났고, 새로 태어난 아이들은 누란에 대한 기억도 없이 살아갔다. 그리고 누란이라는 나라는 모래 속에 묻힌 채 지상에서 사라져갔다.

누란이 없어지자, 누란 땅 옆에 있던 로프노르 호수도 점점 물이 마르더니, 아예 자취도 없이 사라져버렸다. 이제 누란과 로프노르는 영영 사람들의 기억에서 사라져버린 것이다.

되살아난 로프노르 호수

그로부터 천오백년이 넘는 세월이 흘렀다. 스웨덴의 탐험가 스웬 헤딘은 누란의 유적을 찾아 나선다. 오랜 세월을 헤매도 찾을 수 없는 누란의 유적을 그리며 사막에 앉아있던 헤딘의 눈에 반짝이는 물줄기가 하나 들어왔다. 그 물줄기는 다시 살아난 로프노르 호수였다. 천오백년마다 물줄기를 바꾸는 이동하는 로프노르 호수가 마침내 다시 옛 누란의 땅으로 살아오고 있었던 것이다.

헤딘은 돌아온 로프노르 호숫가에서 한 구의 미라를 발굴했다. 그는 그 미라가 로프노르 호수의 누란을 떠날 수 없었던 여인의 무덤이라 생각했다.

덧붙이는 글 | 박물관 2층은 미라의 보존을 위해 사진촬영을 엄격하게 제한하고 있었습니다. 부족하지만 메모장의 스케치로 그 느낌을 전하고자 합니다.


태그: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