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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TA와 신자유주의, 미국 중심의 세계질서 말고 다른 대안은 없을까? 진보 싱크탱크인 새로운사회를여는연구원(새사연)에서는 21세기적 방식으로 신자유주의를 극복한 하나의 대안으로 베네수엘라 혁명을 심층 분석해 4개월에 걸쳐 연재했습니다. 그 결과물은 얼마 전 책으로 묶여 나오기도 했습니다. 이번 글을 끝으로 연재를 맺지만 이후 베네수엘라 혁명 소식은 새사연 이스트플랫폼을 통해 계속 보실 수 있습니다. 지금까지 독자들의 관심과 성원에 감사드립니다. <편집자주>
▲ 민중의 힘으로 새로운 길을 건설하겠다는 차베스와 미국의 힘을 빌어 경제에 충격요법을 씀으로써 선진국으로 가겠다는 노무현 대통령. 출발은 비슷했으나 정반대의 입각점에 서 있다.
ⓒ 오마이뉴스 이종호/AP-연합

차베스 대통령은 베네수엘라 헌법에 따라 2007년 1월 10일 의회에서 선서를 하고 그의 두 번째 정식 임기를 시작했다.

임기만을 기준으로 편의상 나누면 1999년 첫 취임에서 지난해 12월 3일 대선 승리까지를 차베스의 집권 1기로 볼 수 있다.

지금까지 베네수엘라 혁명의 이행 과정은 워낙 역동적이고 이전의 상식을 뛰어넘는 것이어서, 이 시점에 차베스 집권 2기를 전망하는 것은 쉽지 않다. 그러나 굳이 성급함을 감수하고 전망하자면 향후 6년간은 '개혁이 폭풍처럼 몰아칠 시기'라고 정의해도 좋을 것이다.

혁명은 미풍처럼, 개혁은 폭풍처럼

지난 8년간의 시기는 민중들의 삶의 조건이 개선되고 협동조합과 공동경영을 일구어 새로운 경제생활을 개척하며 수차례에 걸친 국민투표를 통해 정치 참여와 민주주의에 대한 자신감을 키운 기간이었다.

생활과 일터에서 혁명은 국민 개개인들 사이에 미풍처럼 스며들었고 민중은 확고한 혁명의 동력으로 성장했다. 이제 집권 2기는 이에 기초해, 새로운 사회의 본격적인 모습을 만들어나가는 파상적인 개혁이 각 방면에서 이루어질 것으로 예측된다. 그리고 이를 통해 '21세기 사회주의'의 모습이 윤곽을 뚜렷하게 드러낼 것이다.

차베스는 1월 8일 새 행정부 출범식에서 지난 시기인 1999~2006년 기간을 '이행의 단계(phase of transition)'로 규정하고 이 단계는 종료되었다고 선언했다.

그는 "우리는 지금 새로운 시대로 진입하고 있으며 그것은 국가적 시몬 볼리바르 프로젝트(National Simon Bolivar Project)'"라고 말했다. 덧붙여 그는 이 프로젝트가 "볼리바리안 사회주의로 나가는 것이며, 여기에는 훨씬 더 높은 수준의 노력과 참여, 투명성과 효율성, 혁명적인 질이 요구된다"고 설명했다.

그의 연설에서 집권 1기를 거치며 혁명이 움직일 수 없는 반석 위에 올라섰으며 개혁의 주체로 성장한 민중의 정치적, 경제적 진출이 급물살을 탈 것이라는 자신감을 읽을 수 있다. 그 근거는 무엇보다도 민중 생활의 개선에서 찾을 수 있다.

최저 임금 7배 오르고, 하위층 소득 2배 올라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최저임금의 꾸준한 상승이다. 차베스 집권 이전인 1997년 7만5000볼리바르였던 최저임금은 지난해 9월 기준 51만2325볼리바르(US$ 239)로 무려 일곱 배 가까이 올랐다. 저소득층과 빈민층의 가난 해결을 위한 정부의 정책 의지가 강하게 관철된 것이다.

저소득 노동자들의 임금 상승과 실업자들의 일자리 창출 정책에 힘입어 베네수엘라의 경제적 하위계층의 소득은 2004년부터 2006년까지의 최근 3년간 사이에만 두 배 이상 증가했다. 리서치 전문회사인 닐슨 보고서에 따르면 베네수엘라 국민 중 소득 수준이 가장 낮은 58%에서 2006년 한해 동안에만 26%, 최근 3개년간 130%의 급격한 소득 상승이 있었다고 분석한다.

이는 우리의 실정과 정반대 양상이다. 베네수엘라가 하위층 소득의 상승으로 차베스 집권 이전 팽배했던 극심한 양극화와 절대빈곤층 문제를 급격히 개선하는 동안 한국은 참여정부 들어서 오히려 소득 양극화가 심화되는 중이다.

상위 20%의 소득을 하위 20%의 소득으로 나누는 5분위 소득 배율은 노무현 정부 출범 첫해인 2003년 7.23배에서 2006년 7.64배로 해마다 높아만 간다. 지난 10년간 한국의 빈곤층은 11.2%에서 20.1%로 두 배로 늘었다. 같은 기간 베네수엘라는 49%에 달하던 빈곤층을 34% 수준까지 축소시키는데 성공했다.

경제적 지위가 향상되고 주민자치위원회, 공동경영, 협동조합 등 생활 거주 지역과 일터를 중심으로 참여와 자치의 경험을 체득한 베네수엘라 민중의 힘이 21세기 사회주의를 만드는 원동력이다.

유럽을 사로잡은 베네수엘라

▲ 베네수엘라 정부가 서민층의 무상 재활 치료를 위해 만든 요양시설(왼쪽 위). 기후와 풍광이 가장 좋은 지역을 골라 시설을 건립한다(오른쪽 위). 깨끗한 콘도를 연상시키는 요양시설 내부(아래). 서민들은 최첨단 시설에서 무료로 치료를 받는다.
ⓒ oilwars.blogspot.com
영국 일간 <가디언>지는 1월 15일자 기사에서 "베네수엘라가 사회주의를 연구하거나 호기심을 갖는 사람들 사이에서 성지로 떠오르면서 관광객을 끌어모으고 있다"고 보도했다.

유럽인들이 차베스에 매료되기 시작한 것은 지난해 5월 차베스의 유럽 방문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진보적 지식인, 정치인들은 물론이고 사회적 문제에 냉소적이던 대학생과 청년들 사이에 '차베스 열풍'이 일어났다. 반면 같은 기간 EU-라틴아메리카 정상회의에 참석한 유럽 정상들은 거의 '찬밥'이었다.

3월에는 미국 ABC방송이 베네수엘라 현지 취재와 명앵커 바바라 월터스의 차베스 인터뷰를 토대로 한 프로그램을 방영했다. 방송에서 월터스는 "인간적으로 그는 정말 따뜻하고 친근한 사람이에요"라는 소감과 함께 차베스가 열성적이고 지적인 지도자이며 국민들과 매우 가까이 존재한다는 취재담을 밝힌다.

바바라 월터스의 취재를 통해, 베네수엘라로부터 40% 할인된 난방유를 제공받고 있는 뉴욕과 보스턴 빈민가의 목소리와 베네수엘라 주민자치위원회의 활기찬 모습, 에너지 자원을 활용해 빈곤을 추방하는 의욕적인 사업들을 소개한 것은 차베스와 미국의 적대적 관계를 고려한다면 매우 이례적인 일이 아닐 수 없다.

호의적인 평가는 물론이고 경계하는 시각 또는 단순한 관심까지 포함한다면 이미 차베스가 제안하는 '21세기 사회주의'는 베네수엘라나 남미의 차원을 넘어서고 있다. 가난하고 낙후된 나라에서 일어난 조그만 '해프닝'이 아닌 것이다.

'21세기 사회주의'를 통제받지 않는 폭주 기관차, 신자유주의 세계화의 대안으로 해석하든, 소련과 동구 국가들의 붕괴로 현실에서 사라진 듯 보였던 사회주의 이상의 재발현으로 해석하든 이에 대한 관심은 이미 세계사적인 것이 되고 있다.

통합 정당과 자치 권력의 확대

새로운 실험은 언제나 많은 우여곡절과 시행착오를 내포한다. 베네수엘라가 비록 차베스 집권 1기 동안 착실한 기초를 다졌다 해서 이후 과정이 마냥 순조로울 리는 없다. 이런 점을 의식하고 있는 차베스의 최근 행보 가운데 두 가지 문제에 대한 강조가 특히 눈에 띈다.

첫째는 '자치권력의 확대'이다. 차베스는 자치권력의 확대가 혁명의 다음 단계에서 요구되는 가장 강력한 동력이라고 주장했다. 차베스에 따르면 이것은 최근 건설되고 있는 주민자치위원회에 더 많은 권력을 주는 것이고, 점차적으로 기성 권력구조를 약화시키는 것이며, 그리하여 '공동체 국가(Communal State)'를 건설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 8회 연재기사를 통해 소개했듯이 주민자치위원회는 베네수엘라에서 최근 가장 활발하게 폭을 넓혀가고 있는 주민 참여적 자치 조직이며, 역사적으로는 자율적 민중 권력에 대한 최대 규모의 실험이다. 소규모 자치 지역별로 1만개 이상 건설된 주민자치위원회가 보다 큰 광역 단위, 지방 정부 단위 나아가 국가 단위로까지 상향 건설되는 과정이 필요하다. 주민 자치권력은 차베스의 21세기 사회주의의 핵심 개념이다.

이에 대해서는 누구도 시도해보지 않은 전인미답의 길인만큼 여러 방식이 모색되고 있다. 주민자치위원회들의 '연합(federations)'이 창설되어 이것이 기존 국가 조직을 점차 대체해 나가는 방식도 검토되고, 또한 주민자치위원회가 유일한 정치권력으로 존재하는 '사회주의 시(socialist cities)'가 제안되기도 했다.

어느 방식이든 그 과정에서는 또 한 번 기존에 만들어져 있는 관료적 구조들과 정면 승부를 피할 수 없다. 차베스는 2006년 12월 대통령에 당선된 직후 당선연설에서 "관료적인 반혁명과 부패에 대한 전투"를 선언한 바 있다.

다음으로 주목되는 것은 혁명을 보다 높은 단계로 안정적으로 끌어올리기 위한 '통합 정당' 건설의 필요성이다. 차베스는 자신이 98년 선거를 위해 직접 조직한 집권 여당인 '제5공화국 운동(MVR)'을 해산할 것임을 선언했다. 그는 "MVR의 임무는 종결되었다. 그것은 역사 속으로 들어갈 것이다"라며 21세기 사회주의를 지향하는 국민 전체의 의사를 반영하여 아래로부터 전국적 범위에서 만들어지는 정당의 상을 제시했다.

차베스에 따르면 새롭게 건설되는 통합 정당은 기존의 사회주의 정당이나 차베스 지지 정당을 단순히 통합하는 것이 아니라 이들 국민의 요구에 따라 논의된다는 것이다. "아래로부터 정당을 건설하라. 선거용으로 건설되는 정당이 아니라 사상투쟁을 전개할 수 있고, 사회주의 프로젝트를 위해 투쟁할 수 있고, 전망을 두고 학습하고 토론할 수 있는 정당을 건설하라. 베네수엘라 역사상 가장 민주적인 정당을 건설하라." 이것이 차베스의 통합정당 건설 구상이다.

주민 자치권력이 전국가적 범위에 이르기까지 권력과 민주주의의 주체로 설 수 있는가 하는 점과 이를 통상적 정치 행위로 전개하고 흡수할 수 있는 통합적 정당 구조를 기성 정당의 틀과 무관하게 완전히 새로이 짤 수 있는가 하는 점은 향후 베네수엘라의 21세기 사회주의 실험의 성패를 좌우할 가장 주요한 시금석이라고 할 수 있다.

'역사의 종언'은 오류였다

▲ 지난 3월 24일 새사연이 대학로 마로니에 공원에서 개최한 '베네수엘라 문화제'에서 라틴음악을 들려주고 있는 남미 민속 밴드와 베네수엘라 혁명 자료 사진을 관심있게 보고 있는 시민들.
ⓒ 새로운사회를여는연구원
1988년 미국 랜드연구소에서 소련 정치 담당 연구원으로 일하고 있던 37세의 프랜시스 후쿠야마는 미소 냉전시대가 서방의 일방적 승리로 귀결되어 가는 상황을 두고 '역사의 종언'이란 논문을 발표해 일약 유명세를 탔다. 역사는 일정한 방향성을 가지고 진보해 왔으나 현대 자유주의적 국가체제에 이르러 그 절정에 달했으며 더 이상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 질서 이외의 선택은 있을 수 없다는 내용이었다.

영미식 자유민주주의 체제와 자본주의 시장경제만이 유일한 길이라는 편협한 생각은 90년대 이후 보수와 진보 양자 모두에게 막강한 위력을 발휘했다. 네오콘을 필두로 한 신자유주의자들은 역사적 경험과 문화, 삶의 결이 전혀 다른 아시아 아프리카 중동과 중남미 국가와 민족에 자신들과 똑같은 체제를 강요하는 '확신범'이 되었다.

조지 부시의 '광범위한 선제공격 독트린', 60만에서 70만명의 민중을 죽음으로 몰아넣은 이라크 침공은 이런 독단적이고 오만한 인식과 우월감을 바탕에 깔고 있다. 진보는 진보대로 이 가공할 만한 배금주의의 물결 앞에 고개를 숙이고 자유롭고 평등한 세상에 대한 인류의 오랜 꿈에 대한 무력감을 토로했다.

그러나 대담하게도 '수만년' 인류 역사의 종결을 선언했던 후쿠야마는 불과 '10년' 후 자신의 주장이 기본적으로 오류였다고 반성한다.

신자유주의가 도입됨으로써 수많은 민중이 경제적 파탄에 이르고 정정이 불안해진 여러 나라의 사례들과 미국 유일 패권주의에 대한 끊이지 않는 도전, 민족주의의 대두와 충돌, 시장 지상주의 경제가 심화시킨 양극화와 치유되지 않는 사회적 갈등은 그의 섣부른 신앙고백을 철회하지 않을 수 없게 만들었다.

미국의 길, 그러나 다른 방향도 있다

국민, 나아가 세계인 전체의 자유와 평화 인권과 경제적 행복을 창출하는 방식이 오직 한 가지(서구식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 체제)밖에 없다는 생각이 얼마나 오만하고 짧은 것인지 인식하는 그 순간부터 인류의 도전은 다시 시작된다. 다양한 방식이 모색되고 실험될 것이다. 그 가운데는 다시 옛 모델을 꺼내드는 부류도 있을 것이고 전혀 존재하지 않았던 상상력 충만한 새로운 경로를 밟는 개척자도 존재할 것이다.

베네수엘라의 21세기 사회주의가 주목받는 것은 이러한 이유 때문이다. 옛날 방식으로 돌아가자는 것도 아니며 신자유주의 질서와 타협하거나 그 선두에 서고자 하는 방식이 아니기에, 그리고 그러한 길이 충분히 가능함을 논리가 아닌 현실에서 입증하고 있기에 주목받는 것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새로운 사회를 여는 연구원'은 베네수엘라를 연구 분석했고 <오마이뉴스>에 장기 연재했다.

바야흐로 노무현 정부가 언론과 재벌, 한나라당의 전폭적 지지 아래 한미FTA를 체결시키며 의기양양 세계화 무대의 조연을 꿈꾸고 있는 시점이다. 그러나 미국의 우산 아래 들어가는 것이, 또는 미국이 밟아온 길이 우리의 지향점이 될 수는 없다. 길 자체가 틀린 것이다. 이미 국제적으로도 그리고 그들 나라 내부에서도 한계를 드러냈으며 21세기에는 인류가 반드시 극복하고 역사의 박물관으로 보내버려야 할 모델일 뿐이다.

베네수엘라는 물론 경제 구조나 규모, 국민적 수준과 경험에서 한국과 여러모로 다르다. 그러나 구조적인 사회 문제를 해결하고 개선하고자 하는 베네수엘라 국민들의 창의성과 도전 정신은 한미FTA를 거부하고 대한민국에 맞는 새로운 길을 모색하려 하는 사람들에게 여전히 많은 시사점과 깊은 영감을 제공할 것임을 확신하며 연재를 마친다.

덧붙이는 글 | *김병권 기자는 새로운사회를여는연구원 연구센터장입니다. 

** 이후 베네수엘라 혁명 전개과정의 새로운 소식들은 새로운 사회를 여는 연구원이 운영하는 이스트플랫폼(epl.or.kr) 사이트를 통해 지속적으로 제공할 계획임을 알려드립니다.


태그:#베네수엘라, #빈민층, #차베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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