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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희정씨를 주축으로 한 남북 정상회담 비선 프로젝트의 존재를 폭로한 권오홍씨의 비망록을 실은 주간동아 커버스토리 기사.
ⓒ 오마이뉴스
노무현 대통령의 최측근인 안희정씨가 지난해 10월 20일 중국 베이징(北京)에서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매제인 장성택 노동당 제1부부장의 핵심 측근인사를 만나 6자회담 복귀 및 남북 정상회담 등을 논의한 사실이 밝혀졌다.

안씨는 27일 <오마이뉴스>와의 전화 인터뷰에서 "지난해 10월 20일 베이징에서 북한 이호남 참사를 만난 적이 있다"며 "남북 정상회담에 대한 의제를 예상하고 리호남 참사와 접촉을 가졌으나 그런 제안이 나오지 않았다"고 밝혔다.

그는 "북측의 태도가 기대만큼 전향적이지 않아 평양에서의 2차 만남은 거절했다"고 덧붙였다. 정상회담에 대한 기대를 갖고 북한 당국자와 비밀접촉을 가졌지만 구체적인 제안이 없어 더 이상의 추진은 없었다는 것이다.

안희정씨, 북한 당국자 접촉 시인

그러나 노 대통령의 최측근이자 '동업자'로 통하는 안씨가 지난해 10월 9일 북한 핵실험 직후 이호철 청와대 국정상황실장의 요청으로 자신이 북한 당국자와 접촉하게 되었다고 밝혀, 사실상 노 대통령의 묵인 아래 대북접촉이 이뤄졌음을 시사했다.

이에 앞서 <오마이뉴스>는 지난해 11월 9일(<노무현-김정일 핵심 측근, 베이징 등에서 두 차례 접촉>)과 지난 6일(<안희정-장성택 작년 10월 '비밀접촉', '이해찬 방북'은 회담 추진 마무리용>), 두 차례에 걸쳐 청와대가 막후 채널을 가동해 정상회담을 추진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그러자 안씨는 반박문을 내고 "남북관계와 관련해서 어떤 역할도 하지 않았다"면서 "내가 움직일 입장도 아니고, 움직여서 풀릴 문제도 아니라고 생각한다"고 북측인사와의 접촉 사실을 전면 부인한 바 있다.

그러나 안씨는 26일 발간된 <주간동아>에 자신의 대북접촉을 주선한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KOTRA) 출신의 권오홍(47)씨의 비망록이 실리자 뒤늦게 언론에 대북접촉 사실을 시인했다.

그는 "북한 미사일 실험 이후 대북 쌀 지원이 중단되고 남북 대화채널이 무너진 상황에서 지난해 9월 북측으로부터 만나자는 제안이 들어왔다"며 북측이 권오홍씨를 거쳐 북한 전문기자 N씨와 K씨를 통해 자신에게 연락해왔다고 밝혔다.

권오홍 "안씨, 리호남 만나 정상회담 추진 의향 전해"

▲ '남북정상회담 막후거래 180일 비망록'이 실린 주간동아 표지.
ⓒ 오마이뉴스
안씨는 "당시 상황이 심상치 않아 만났지만 북측의 태도가 위기 상황을 풀 만큼 전향적이지 않았고 대화 파트너로 받아들이기 어려워 30분 만에 대화가 끝났다"며 "이후 북측에서 평양으로 와달라는 제안이 있었지만 내가 나설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해 거절했다"고 해명했다.

그는 또 '당시 베이징 만남에서 남북정상회담에 관한 대화가 있었느냐'는 질문에는 "설령 그런 얘기를 나눴다 해도 북측 파트너가 그런 얘기를 할 만한 권한을 가진 상대가 아니었고 핵실험으로 조성된 한반도 위기를 풀 만한 포괄적 논의에 적절치 않은 만남이었다"고 답했다.

그러나 권오홍씨가 지난해 9월부터 최근까지 서울과 평양, 베이징을 오가며 기록한 비망록을 게재한 <주간동아> 커버스토리 기사에 따르면, 안씨는 지난해 10월 리호남 참사를 베이징에서 만나 "특사 교환과 남북정상회담을 추진할 의향이 있다. 그리고 공식라인을 살려서 하고 싶다"고 밝혔다.

비망록에 적힌 구체적인 '워딩'과 안씨의 평소 발언 등을 고려할 때 안씨가 이같은 발언은 한 것은 사실인 것으로 보인다. 안씨의 대북접촉을 주선해 안씨에 앞서 리호남 참사와 사전에 접촉했던 한 인사도 <오마이뉴스>와의 전화통화에서 비밀회동의 의제가 '새로운 남북간 상생협력 틀 안에서의 6자회담 복귀와 정상회담 추진'이었다고 밝혀 정상회담이 목적이었음을 분명히 했다.

권씨는 또 비망록에서 지난해 12월 방북한 열린우리당 이화영 의원이 노 대통령의 뜻이라며 북측에 ▲12월 말이나 (2007년) 1월 초에 특사를 받고 이후 한 달 이내에 정상회담을 하자 ▲장소는 개성도 좋고 금강산도 좋다 ▲무엇을 토의하고 결정해도 할 수 있는 준비가 돼 있다는 뜻을 전했다고 주장했다.

권씨에 따르면 남북 접촉은 지난해 9월 북한이 먼저 제의했다. 이는 안씨의 해명과도 일치한다. 리호남 참사는 '노 대통령의 진짜 의중을 들을 수 있어야 한다'는 전제조건 아래 남북관계 현안을 의제화해 토의해 보자고 했으며, 노 대통령의 의중을 알고 있는 안씨를 상대로 지목했다는 것이다.

권씨 비망록에 따르면 리 참사는 이 과정에서 권씨에게 안씨의 평양 방문을 전격 제안했고, 안씨는 이해찬 전 총리가 특사로 평양에 들어가는 방안이 어떻겠느냐며 역제안을 했다는 것이다. 특히 북한은 안씨의 평양 방문 거부로 담보금조로 50만달러를 요구했으나 1만마리 돼지사육장을 지어주는 것으로 타협을 봤다는 것이다.

"북핵 타결 실마리 풀리자 토사구팽 당했다"

그리고 3월 7일 이 전 총리 등 방북단이 평양을 찾았다. 그런데 그 과정에서 이화영 의원은 '권오홍 라인'을 배제한 채 새로운 채널을 통해 방북을 추진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와 관련 안씨는 이해찬 총리 방북은 이화영 의원이 계속 진행한 부분으로 자신과는 관련이 없다고 해명했다.

그러나 권씨는 1월17일 베를린에서의 북-미 양자회동을 통해 북핵문제 해결을 위한 실마리가 풀리고 6자회담 '2·13합의'로 남북관계에 복원의 기미가 보이면서 자신은 토사구팽(兎死狗烹) 당했다고 주장한다. 권씨가 전격적으로 비망록을 공개하게 된 배경 중의 하나도 그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권씨는 1989년 KOTRA 특수사업부에서 몽골, 미얀마, 베트남, 캄보디아 등 공산권 미수교국을 상대로 '북방교역'을 하면서 북한과의 경제협력사업에 투신한 대북 경제통. 공개적으로 활동하지는 않지만 만만치 않은 대북 정보력으로 민감한 정보를 정관계에 종종 제공해 온 것으로 알려졌다. 또 권씨는 17년 동안 북방교역에 몸담으면서 북측에 단기적인 지원보다는 '물고기 잡는 법'을 가르쳐준 실질적인 조력자는 평을 듣는다.

권씨 또한 비망록에서 "남북한이 지금껏 협상을 해오며 서로의 필요에 의해 정치적으로 현안과 물자를 주고받는 '화장질'을 벗겨내는 게 내가 추구한 목표였다"며 "그래서 상생이 가능한 경협 프로젝트를 기본으로 특사 교환과 남북 정상회담도 포함해 대화의 폭을 넓혀나가고자 했는데 노무현 정부의 선택은 결국 3월 이산가족 문제와 쌀·비료를 맞교환하는 '화장질'로 일단락됐다. 2000년 이후 계속된 행태를 답습한 것"이라고 비판했다.

권씨는 이 전 총리의 방북도 마찬가지였다고 질타했다. 그는 "이 전 총리의 방북 과정에서 정치적인 '화장질'로밖에 볼 수 없는 행태가 드러났다"며 "이상하게 변형된 대화시스템이 자리 잡게 됐는데, 이는 결코 올바른 방법이 아니었고 내 신념과도 절대적으로 배치됐다"고 털어놨다.

이 때문에 아마추어 정권의 남북 정상회담에 대한 정치적인 접근과 보안의식 결여가 '상생이 가능한 경협 프로젝트'를 기본으로 특사 교환과 남북 정상회담도 포함해 대화의 폭을 넓혀나가려는 권씨의 구상과 충돌함으로써 빚어진 결과라는 지적도 제기된다.

2차 폭로 예고... 후폭풍은

권씨는 끝으로 "이같은 상황에 대한 내 의견을 밝히기 위해 비망록을 공개하게 됐다"며 "일자별, 사건별로 중요한 사항만 간추려 나열했기 때문에 그때 그때 상황에 담긴 진정한 의미들이 제대로 전달되지 않을까 우려되지만 조만간 비망록 전체 내용이 공개되면 혹시 있을지도 모를 오해를 씻어줄 것"이라고 밝혔다.

청와대와 국정원 등이 관련된 또 다른 민감한 폭로를 예고하는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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