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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트램 안 휠체어와 연결발판.
ⓒ 이현민
독일에서 운전면허를 따는 경우 가장 강조되는 것 중의 하나가 '자전거'와 '사람'에 대한 우선권이다. 그래서 노면전차인 트램과 버스, 자동차와 대형트럭이 뒤섞인 도심 한복판에서도 자전거가 자유롭게 활보할 수 있다.

여행 경비에서 교통비가 차지하는 부담도 크고, 보고 싶은 것을 찾아다니느라 자전거를 많이 이용하였다. 마침 유례없는 따뜻한 겨울이라…. 길을 몰라 헤매고 다녀도, 뒤에서 경적을 울리거나 위협을 느낀 경우가 없었다. 그만큼 유럽 전체는 자전거의 천국이다. 프라이부르크만 해도 인구가 20만 명을 넘어 25만 대 이상의 자전거를 보유하고 있다고 한다.

하루는 트램을 탔는데 출발을 하는가 싶더니, 운전기사가 부랴부랴 내린다. 무슨 일인가 싶었더니 휠체어를 탄 장애인이 승강장에 있으니, 일반승객들이 모두 승차한 다음에 직접 내려서 트램에서 승강장까지 연결 발판을 내리고 휠체어를 올려주고 나서 출발한다.

자전거와 사람이 자동차보다 우선인 곳

@BRI@마음속에 따뜻한 바람이 불면서, 박경석 장애인이동권연대 대표가 생각난다. 언젠가 서울 지하철에서 승강장과의 넓은 간격에 휠체어 바퀴가 빠져 어쩔 줄 몰라 하던 모습과 함께 장애인들의 이동권을 주장하며 벌였던 지하철 시위가 떠올랐다.

곰곰이 생각해보니 이곳 유럽에서 앞을 못 보거나 휠체어를 타고 다니는 장애인들을 일상적으로 만났다. 유럽이라고 장애인들이 훨씬 더 많아서 눈에 띄는 것일까? 그렇지 않다.

한국에서 장애인들이 거리에 다닌다는 것은, 더더군다나 대중교통을 이용한다는 것은 목숨을 담보로 하는 모험일 것이다. 도와주기는커녕 냉담한 시선을 보내는 사람들도 문제이지만 도로, 대중교통 등 사회의 시스템으로부터 철저히 배제되고 외면당하고 있기 때문이다. 거리에서 노란색으로 된, 맹인을 위한 블록을 따라가다 보면 가로수가 중간 중간을 끊고 있고, 불법 주차된 차들이 가로막고 있다.

서울에도 저상버스가 운행되고 있다고 한다. 버스기사가 직접 휠체어를 올려주는 모습을 기대하기도 힘들겠지만, 그럴 경우 불과 1∼2분을 두고 투덜대지는 않을까? 그러다 보니 장애인들이 가족이나 친구들이 동행하는 경우를 빼곤 거리에 다니기를 포기하고, 집에만 틀어박혀 지내기 일쑤이다. 그러면서도 아이들에게는 어려운 이웃을 도와야 한다고 가르치고 있다. 대중교통 하나에서도 사회적 약자를 배려하는 것이야말로 참교육이 아닐까… 싶다.

지구 저쪽의 서울과는, 떨어진 거리만큼이나 삶의 질에서의 차이가 '하늘만큼 땅만큼'이다.

귀가 유난히 밝은 나로서는 짜증 나는 것 중 하나가 자동차 경적소리이다. 특히 집 앞이나 작은 골목에서 빵빵거리고 있을 때면 경기가 날 정도이다. 한국에서는 운전자들이 경적을 울리는 게 거의 습관적이다. 앞에 사람 비키라고 빵! 차 빼라고 빵! 아는 사람이나 차를 만나도 빵! 기분 나쁘다고 빵! 환호를 지르면서 빵! 학교 앞이나 종교시설, 공공의 행사가 있어도 거리낌 없이 빵! 빵! 게다가 경적음도 너무 크고 가지가지이다. 이곳에는 위험한 상황이 아닌 경우를 제외하곤 경적소리를 들은 적이 거의 없다.

한 술 더 떠서 모든 주택가는 '시속 30km Zone'으로 제한되어 있고, 시내에는 지정된 차 이외의 승용차의 진입을 금지하고 있다. 다. 주민들이 안심하고 다닐 수 있고, 소음공해나 배기가스로부터 자유로워졌다. 당연히 자동차 사고도 훨씬 줄어들었고, 보행자와 자전거의 천국이 되었다.

프라이부르크가 자랑하는 대중교통 시스템은?

▲ 모든 주택가는 '시속 30km Zone'으로 제한되어 있다. 부럽지 않은가.
ⓒ 이현민
프라이부르크가 자랑하는 대중교통 시스템이 있다. '레기오 카르테(Regio-Karte)'와 '파크 앤 라이드(Park & Ride)'이다.

'레기오 카르테'는 국철, 노면버스(트램), 버스 등 대중교통을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는 카드이다. 한 달에 어른 43유로, 학생 32.5유로이다. 이 카드 하나로 프라이부르크를 중심으로 2200k㎡의 지역의 대중교통을 마음껏 환승 하며 이용할 수 있고, 각종 할인 혜택을 받을 수 있다.

나 같은 여행객을 위해 24시간 자유이용권이 있는데 4.8유로이다. 구간 내 1회 승차권이 2유로인데 비하면 싸고 편리하다. 특이한 것은 5인 자유이용권이 7.5유로인데, 이는 승용차 정원인 5명이 대중교통을 이용하도록 하기 위한, 승용차 억제를 이한 요금체계로 시행되고 있다는 것이다.

'파트 앤 라이드'는 시외에서 출퇴근을 하거나 들어오는 사람을 위해 시내 근교에 넓은 무료 주차장을 설치하고 차를 두고 대중교통을 이용하게끔 하는 제도이다. 중앙역에는 자전거 전용 주차장인 모빌레(Mobile)가 있다. 1층은 자동차주차장, 2층은 자전거 1천여 대를 주차하는 공간, 3층은 환경단체인 분트(BUND), 독일교통클럽(VCD)와 자전거여행 안내소, 수리점 등이 있다. 또 누구나 자유롭게 자전거를 싸게 빌릴 수 있다. 이 건물의 옥상에는 태양광 발전시설과 빗물을 이용한 비오톱(생태 옥상)이 있다.

▲ 모빌레 전경(2, 3층)과 내부 모습. 총 1000대의 자전거를 보관할 수 있다.
ⓒ 이현민
이러한 프라이부르크의 생태도시 만들기는 독일사민당(SPD) 출신의 롤프 뵈메(Rolf Boehme) 전 시장과 녹색당 출신의 디터 잘로몬(Dieter Salomon, 2002년부터 현재) 현 시장 등 지자체의 역할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재생가능 에너지 정책과 교통정책을 흔들림 없이 추진하였고, 태양에너지 시스템을 중심으로 프라이부르크의 희망을 시민들과 함께 설계하고 차근차근 진행하였다. 그 중 대표적인 것이 지역 내의 대학, 연구소, 기업과 긴밀히 연관되어 진행한 환경산업을 통한 새로운 고용의 창출이었다.

시의회에서 만장일치로 결정하였던 '원자력에너지 이용 중단'은 독일연방정부보다 14년이나 빨랐고, 독일 최초로 환경 부시장을 두는 등 환경 최우선 정책을 실시하였다. 행정이 지역주민과 함께하는 열린 행정으로 갈 수 있는 데에는 70여 개에 이르는 환경단체와 녹색당의 역할이 컸다.

그 중 하나인 외코스타치온(Oekostation; Eco-Station)을 방문하였다. 시내에 있는 호수공원(Seepark) 안에 있었다. 호수공원에서 가장 눈에 띄는 것은 '부레 다리'였다. 호수에 다리를 설치하면서 바닥에 기둥을 박아서 짓지 않고 커다란 공기주머니를 연결해, 그 위에 다리를 만들었다.

▲ 부레를 이용한 호수공원 다리의 모습.
ⓒ 이현민
첫 번째 방문을 하던 날은 비가 오는 데도 호수를 따라 산책, 달리기를 하거나 아이들과 함께 놀러 온 사람들이 있었다.

▲ 호수공원과 외코스타치온 전경.
ⓒ 이현민
외코스타치온에는 활동가들이 폐지를 이용해 재생지를 만들고, 크리스마스카드를 만들고 있었다. 6각형의 통나무로 지은 50평 남짓한 건물은 그 자체로도 생태건축의 모델이었다. 일체의 자재를 지역에 있는 나무와 흙으로 지었다고 한다. 건물 외벽과 지붕은 남쪽은 유리와 태양전지, 북쪽은 흙으로 덮여 풀이 자라는, 자체로 비오톱이었다. 내부도 방부제 처리를 하지 않은 천연 목재와 친환경 자재로 지었다. 환경 센터로서 지역주민과 학생들을 대상으로 환경과 관련된 교육과 문화활동 등을 하는 곳이다.

▲ 천연 목재와 자재를 이용한 외코스타치온의 내부와 폐지를 이용한 크리스마스카드.
ⓒ 이현민
건물 바로 옆에는 유기농업으로 채소 등을 기르고, 음식물 쓰레기 등으로 퇴비를 만드는 일종의 현장학습장인 비오가르텐(Biogarten; Bio-Garden)이 있다.

▲ 생명 순환을 배우는 현장학습장 비오가르텐(Biogarten; Bio-Garden).
ⓒ 이현민
주위의 건물들도 온통 태양전지판으로 덮여 있었다. 바로 옆의 실내 수영장과 건너편의 학교 지붕까지….

독일인들이 가장 살고 싶어하는 곳 '프라이부르크'

▲ 비오가르텐 옆의 실내 수영장과 건너편의 학교 지붕의 태양광 발전설비.
ⓒ 이현민
프라이부르크는 독일인들이 가장 살고 싶어하는 곳이라고 한다. 환경도시로 알려지기도 했지만, 흑림(Schwarzwald)의 관문도시이기 때문이다.

독일인들이 2차 세계대전이 끝난 뒤 전쟁배상금으로 요구한 것을 거절할 정도로 아끼는 숲이 바로 흑림이다. 그런데 이 숲도 사실은 자연림이 아닌 인공조림 숲이다. 19세기까지 황량했던 숲을 오랜 기간에 걸쳐서 가문비나무 등으로 조림을 하였다. 이런 수종이 단순한 인공림이었기에 산성비의 피해가 훨씬 더 컸다. 지금은 전나무와 소나무를 많이 심는다고 한다.

▲ 흑림, 티티제(Titisee) 가는 길.
ⓒ 이현민
프라이부르크는 물 가꾸기에도 주력하고 있다. 도심을 가로지르는 드라이잠(Dreisam)이라는 하천 살리기 운동을 전개하였다. 하천 일대의 옛모습을 근거로 인근의 숲과 생태축으로 연결하였다. 내가 묶었던 유스호스텔(Jugendherberge) 앞에도 흐르고 있었는데, 한쪽에 소수력발전 시설을 만들어 가동하고 있었다.

시내에는 베히레(Behire)라 불리는 작은 수로가 거미줄처럼 나 있다. 폭 50㎝ 정도로 도심 전체에 걸쳐 총 15㎞ 된다고 한다. 옛날에 만든 인공의 수로로서 산에서 내려오는 물이 도심을 통과하여 드라이잠으로 들도록 한 것이다. 예전에는 쓰레기를 버리거나 불 끄는데 쓰곤 했었다는데, 이제는 도심의 열섬 현상을 줄이고, 관광 상품으로도 한 몫을 하고 있다. 여행객이 베히레에 빠지면 여기 처녀와 결혼을 하게 된다는 전설이 있다고 한다.

▲ 드라이잠과 안내판, 소수력발전기, 베히레의 모습. 일체의 자연이 연결되어 있다.
ⓒ 이현민
이곳에서 묶으면서 복지, 삶의 지수를 생각하게 된다.

비오란트(Bioland)와 같은 유기농산물 제품이 가게마다 진열되어 있어, 빵과 고기, 채소, 과일을 손쉽게 사먹을 수 있었다. 가격도 그렇게 많이 차이 나지는 않았다. 제품마다 차이는 있었지만, 일반 제품보다 10∼20% 정도 높았다. 유기농업을 하는 농민들이 많을 뿐만 아니라 실제 소득도 보장이 되고 있다고 한다. 농민뿐만이 아니라 유기농업을 바탕으로 하는 제조업도 인기가 높았다.

대표적인 예가 유기농으로 생산한 우유를 원료로 우유 및 유가공 제품을 생산하는 브라이스가우(Breisgau) 유업과 유기농 원료곡으로 맥주를 생산하는 람스브로이(Lammsbraeu) 맥주회사이다. 두 회사 모두 기업전략을 유기농으로 바꾼 뒤, 급성장을 하였으며 지역시장을 석권하고 있다고 한다.

프라이부르크를 돌아다니면서 한 잔 하곤 했던 람스브로이 맥주와 유기농 와인 한 잔이 못 견디게 그립다.

▲ 유기농 매장과 진열되어 있는 유기농 맥주. 그 맛이 지금도 그립다.
ⓒ 이현민

덧붙이는 글 | * 생태지평연구소(ecoin.or.kr) 운영위원이자, 부안 시민발전소 소장인 이현민은 농사일이 끝난 지난 11월부터 영국 런던 - 독일 베를린 - 체코 프라하 - 독일 프라이부르크 - 라이프찌히 등 유럽 각지를 돌며, 교통 - 에너지 - 놀이 - 공원 - 여가 등 우리의 모든 일상을 통해 유럽은 어떤 생태적 변화를 추구하며, 큰 흐름을 맞이하고 있는지 농부의 시선으로 찾아가보는 여행을 하였습니다.


태그:#독일, #프라이부르크, #생태도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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