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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월 10일, 경찰의 한미FTA 반대 집회 원천봉쇄로 집회장소를 확보하지 못한 집회참가자들이 지하철 역에 모여있다.
ⓒ 오마이뉴스 권우성

이른바 '진보논쟁'이 한창이다. 한 시대가 가고 새로운 시대가 준비되는 길목에서 진보진영의 활동방향을 모색하는 논쟁이 시작된 것은 참으로 반가운 일이고, 이 토론은 더욱 활성화될 필요가 있다. 그리고 당위성을 강조하는 수준을 넘어서서 현실의 실천과 구체적으로 매개되는 논의로 발전한다면, 더욱 풍부한 토론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학자들 간에 나름대로 진지하게 전개되던 진보논쟁에 노무현 대통령이 끼어들면서 자칫 논쟁이 희화화될 위험이 생겨버렸다. 집권하고 있는 정치권력이 불쑥 논쟁에 개입하고 나섰으니 차원을 달리하는 또 다른 논쟁이 불가피하게 돼, 결국 논쟁이 2원화하는 상황이 된 셈이다.

@BRI@필자처럼 현장에서 진보운동을 하는 활동가들은 최근 진행되는 일련의 진보논쟁에 대해 한편으로는 흥미 있게 그 추이를 지켜보고 있지만, 또 다른 한편으로는 "이건 아닌데" 하는 느낌도 지울 수 없다. 초점에서 빗나가는 것 같은 그 느낌을 다소 거칠게라도 요약한다면, '진보타령 하기 전에, 자유민주주의라도 제대로 지켜라'이다.

많은 사람들이 1987년 6월항쟁 이후 대통령직선제가 회복됐고, 이후 김영삼·김대중·노무현 정권을 거치면서 우리 사회에 절차적 민주주의나 형식적 민주주의, 이른바 좁은 의미의 자유민주주의는 어느 정도 완성됐다고 말하고 있다. 이번의 진보논쟁도 대략 그런 전제 위에서 진행되는 것 같은데, 실제로도 과연 그런가?

최근 우리 사회에서 현실적으로 진행되는 모습을 '자유민주주의의 위기' 상황으로 정리하는 것이 정상적인 판단이 아닐까?

[1-1] 집회 원천봉쇄·인권유린 계속되는 게 완성 단계 자유민주주의인가

2월 11~14일 미국 워싱턴DC에서 개최된 한미FTA 7차 협상에 반대하기 위해 2월 12일 서울 종묘공원에서 집회를 하고 광화문까지 평화행진을 하기 위해 집회신고를 했지만, 경찰은 집회금지를 통고했다. 작년 11월 이후 계속 경찰의 집회금지 통고가 남발돼 왔기 때문에, 합법적이고 평화적인 집회를 개최하기 위해 이번에는 3보1배 행진을 하겠다고 집회신고를 했다. 혹시나 했지만 역시나, 경찰은 집회금지를 통보했다.

집회주최 측인 '한미FTA저지 범국민운동본부'는 기자회견을 열고 평화집회의 상징인 3보1배 행진조차 금지하는 것은 '경찰 파쇼적 작태'라며 적극 항의했다. 예정일인 2월 12일에는 전투경찰의 철통같은 원천봉쇄를 뚫고 헌법으로 보장된 기본권을 직접 실현하는 투쟁에 나섰지만, 제도언론에서는 거의 '묵살보도'로 일관했다. 제대로 보도되지 않았기 때문에 이런 사정을 아는 국민은 그리 많지 않다.

지난 시기 군사독재정권에서나 보던 집회 원천봉쇄 상황이 반복되고 있어도, 여전히 참여정부에서 절차적 민주주의나 형식적 민주주의, 그리고 자유민주주의가 "완성" 단계에 들어섰고 권위주의적 통치는 종식됐다고 치부되고 있다.

즉 작년 11~12월에 전국 각지에서 경찰은 집회참석을 저지하기 위해 농민회 간부들을 전경버스나 사무실에 감금하고, 전투경찰이 회사 정문에서 노조원들이 탄 버스를 에워싸서 억류하는가 하면, 농민회 간부들을 미행·감시하거나 가족들을 찾아가 대회참석을 막도록 협박하기도 했다. 심지어 경찰은 집회 당일 농민회 회원들의 읍면 내에서 이동 자체를 통제하고, 당일 새벽 주요 고속도로 톨게이트를 중심으로 전국 1252곳에 전·의경 383개 부대와 (전투)경찰관 1만3555명을 배치해 전국 11개 지역 83곳에서 집회참가를 위해 상경하려던 농민 2945명과 차량 261대를 차단하기도 했다.

군사독재 시절의 원천봉쇄 모습과 별로 다르지 않은 '무법천지'가 21세기 참여정부에서 버젓이 재현됐다. 이런 게 "완성 단계"의 자유민주주의란 말인가?

헌법 21조에는 "집회와 결사에 대한 허가는 인정되지 아니한다"고 명시돼 있고, 헌법 37조에는 "기본권을 법률로 제한할 경우에도 지유와 권리의 본질적인 내용을 침해할 수 없다"고 명시돼 있다. 기본권 관련 조항에서 자유민주주의 헌법체계라 할 수 있는 한국에서, 자유롭고 평화적인 집회 자유 보장은 경찰이 마음에 들면 허락하고 마음에 들지 않으면 금지하는 식으로 자의적으로 법을 적용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니다.

경찰이 당연히 준수해야할 헌법의 지상명령인데도 경찰당국이 위에 적시한 것처럼 과거 군사독재 시절에나 있을 법한 집회시위 원천 봉쇄 방침을 강행하고 있는 것은, 자유민주주의 파괴와 헌법 유린일뿐 다른 어느 것도 아니다.

또 작년 12월 5일 국가인권위원회에서 집회금지 통고 철회를 권고했지만, 경찰청장은 내놓고 이를 묵살했을 뿐만 아니라 이후에도 3달째 집회 원천봉쇄를 반복하고 있다. 이런 상황인데도 형식적·절차적 민주주의가 완성된 것으로 볼 수 있는 건가?

옛말에 도둑이 들려면 개도 짖지 않는다고 했는데, 지금이 딱 그런 꼴이 아닌가 한다. 조·중·동 등 제도권 보수언론은 이 의제를 고의적으로 묵살하는 수준을 넘어, 도리어 정부와 경찰당국이 헌법상 기본권인 집회시위의 자유를 실질적으로 훼손하는 방향으로 대처하도록 적극 선동하는 데까지 나서고 있는 실정이다.

이런 놀라운 상황이 눈앞에서 전개되고 있고 위헌적이고 위법적인 집회 원천봉쇄에 저항해서 민중이 기본권을 직접 실현하기 위해 치열하게 분투하고 있어도, 현장 상황에 너무나 둔감해진 탓인지 우리 사회의 자유민주주의자들은 강 건너 불 보듯 하고 있다. 이 땅의 수많은 자유민주주의자들은 모두 어디 가 있는가? 수많은 헌법수호자들과 인권수호자들은 또 어디 가서 뭘 하고 있느라고 이런 헌법파괴와 인권유린 상황을 방치하고 있는가?

이런 상황에서 3월 10일 한미FTA 반대집회에서 무자비한 경찰폭력 사태가 발생했다. 집회참가 시민들뿐 아니라 취재 중임을 분명히 식별할 수 있던 취재기자들까지 무자비하게 폭행하는 충격적인 사건이 발생했다. 폭행당한 기자들의 소속 언론사들은 모두 경찰폭력을 크게 다뤘다. 기자들이 얻어맞는 우발적인 사건 덕분에 드디어 언론에서 경찰의 폭력진압 문제를 보도하기 시작했다.

사실 이날 경찰폭력 문제만이 아니라 경찰의 원천봉쇄 조치가 그에 못지않게 심각한 상황이었다. 제주도에서는 이날 오전 공항 탑승구를 1시간 이상 폐쇄해 집회 참가자들뿐 아니라 일반 시민까지 비행기에 탑승하지 못하는 사태가 발생했다. 강원도 화천의 경우 경유지에서 경찰들이 시외버스에 올라타서 상경하던 농민회 간부들을 강제로 연행했고, 충북 괴산에서는 농민회 간부들의 상경을 막으려고 농민회 간부 집 앞을 경찰이 봉쇄해 차량출입을 일체 금지하는 만행을 저질렀다.

또 전북, 전남 영광과 무안, 울산, 대구 등 전국 각지에서 경찰은 버스를 포위해 상경을 저지했다. 그리고 서울에서는 기습집회를 막는다는 구실로 광화문역, 경복궁역 등에서 무정차 통과하고, 독립문역에서는 아예 출입구를 봉쇄하는 무법천지를 연출했다. 가히 경찰파쇼 상황이라고 불러도 지나치지 않을 정도가 됐다. 1970~80년대 군사독재 시절에나 있던 원천봉쇄와 인권유린을 묵과하고서 어떻게 민주화한 세상이 가능할 수 있을까?

▲ 3월 10일, 한미FTA 반대 집회에서 경찰 3~4명이 달려들어 연행자의 팔을 뒤로 꺾은 뒤 수갑을 채우고 있다.
ⓒ 오마이뉴스 권우성

[1-2] 과잉진압으로 노동자·농민 죽이는 '참여정부' 경찰

2005년 11월 15일 쌀 개방을 반대하는 농민시위에 참석했던 60대 후반의 농민과 40대의 농민이 집회 장소에서 전투경찰에게 맞아 죽는 참담한 사태가 발생했다. 당시 경찰청장은 "집 앞에서 쓰러져 죽었다"는 등으로 사인 은폐, 조작을 시도했다. 그러나 결국 국가인권위원회 조사 결과 경찰의 과잉진압에 의한 사망으로 확인됐고, 그 결과 경찰청장이 퇴진하고 대통령이 사과하면서 재발방지를 약속했다.

그러나 그 후 7개월도 채 지나지 않아 또 다른 살인진압 사례가 발생했다. 작년 7월 16일 포항건설노조에 속했던 고 하중근 조합원은 집회에 참가했다가 경찰에 의해 머리를 다치고는 뇌사상태에 빠져 사경을 헤매다가 8월 1일 사망했다. 민간차원 진상조사단의 조사와 국립과학수사연구소의 부검도 진행됐으나 경찰은 책임 회피로 일관했다.

결국 4개월이나 지난 11월 28일에 국가인권위원회의 조사결과 발표로 경찰의 살인폭력진압이 명백히 확인됐다. 국가인권위원회는 하중근 조합원이 경찰의 집회, 시위 강제해산 과정에서 사망한 사실이 인정된다고 했고, 포스코 본사 건물 점거를 이유로 포항건설노조에 '집회 일괄 불허 및 금지'를 통보한 것은 헌법이 보장하는 집회시위 자유의 본질을 침해했으며 헌법을 위반한 부당한 결정이라고 했다.

뿐만 아니라 경찰의 과잉진압 부분에 대해, 진압대원들이 방패를 수평으로 해서 가격하거나 공격용으로 사용한 사례나 소화기를 연막탄처럼 사용한 사례 등을 제시하고 경찰장비사용의 부당성을 인정했으며 해산 과정에서 법 절차를 위반한 사실도 인정했다.

시위진압과정에서 재작년에 농민 2명이 사망한 후 연이어 작년에 또 노동자 1명이 사망한 것을 보면, 이는 우연한 실수에 의한 사망이 아니라 경찰의 현행 시위진압 방식에 살인폭력을 유발하는 구조적 문제점이 있다는 사실이 드러난 것으로 봐야 한다.

지금은 집회 장소에서 맞아 죽은 사람은 있는데 책임지는 사람은 아무도 없는 상황이다. 심지어 살인진압 책임자인 경북경찰청장은 도리어 대구경찰청장으로 영전했다. 또 이처럼 살인진압 사례가 거듭 발생하고 있어도 재발방지책은 강구되지 않고 있다. 군사독재 시절 못지않은 경찰파쇼 상황 아닌가?

정부당국과 경찰이 스스로 살인폭력진압 책임자를 처벌하고 살인진압 시스템을 혁파할 근본적 제도개선책을 실천하지 않는다면 앞으로 제 2, 제 3의 하중근․전용철 같은 억울한 희생자가 계속 나올 가능성이 있다.

검찰과 법원의 태도도 심각한 문제다. 최근 밝혀진 검찰의 자체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포항건설노조 파업 당시 검찰은 건설일용직 노동자에 대한 노동부의 실업급여 지급을 제지하는 등 과거 '관계기관 대책회의'를 연상케 하는 공안 총지휘부 노릇을 했다. 또 검찰에서 노조원들의 결집을 막기 위해 시위 중 사망한 고 하중근 조합원의 부검 장소를 포항에서 대구로 옮기는 '시신 이송' 계획도 세운 것으로 드러났다.

검찰은 사회적 갈등 사안에서 사실상 어느 한쪽 편, 특히 사회적 강자의 편을 들면서 사회적 약자․소수자를 탄압하는 데 앞장섰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몇 년 전 폭로된 조폐공사 파업유도공작에서 그러한 실상이 드러난 바 있는데, 이번에 이 보고서를 통해 한 번 더 실상이 드러난 셈이다. 검찰이 공정한 중재자 기능을 포기하고 한쪽 편에 서는, 군사독재 시절부터 고착화된 이 구조를 바꾸지 못하면 사회정의를 현실에서 구현하는 것은 연목구어(緣木求魚)나 다름없다.

포항건설노조 사건과 관련해 법원도 놀라운 괴력을 발휘했다. 70명 구속영장 청구에 70명 전원 구속영장을 발부하는 진기록을 세웠다. 5공 시절인 1986년 '건대 항쟁' 당시 800여명에 달하는 무더기 구속영장 청구에 정찰제 방식으로 무더기 영장을 발부했던 법원은 이번에 치욕스러운 기록을 재현했다.

▲ 지난해 8월 19일, 경북 포항에서 열린 민주노총 전국노동자대회에 참가한 포항건설노조원들이 고 하중근씨의 영정사진을 들고 형산대교를 건너 포스코 본사로 향하고 있다.
ⓒ 오마이뉴스 남소연

[1-3] 국보법, 칼집에 넣어 박물관에 보낸다더니...

대통령은 국가보안법을 칼집에 넣어 박물관에 보내버리겠다고 했지만, 올해 1월 18일 전교조 소속 교사 2명이 자택을 압수수색당하고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강제 연행돼 곧 구속됐다.

경찰 보안분실이 발표한 혐의의 핵심은 전교조 서울지부 전임 통일위원장과 전전임 통일위원장이던 두 교사가 전교조 서울지부 홈페이지 게시판에 '선군정치 승리' 포스터를 게재해 반국가단체를 찬양·고무했고 이적표현물을 소지했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 포스터와 거의 같은 내용의 사진이 <조선일보>(Nkchosun.com)나 <시사조선>에 실려 있지만, 이에 대해서는 찬양·고무로 문제 삼지 않는다. <조선일보>에 실린 사진을 보면 "선군시대 영웅대회"라는 제목 아래 총을 든 군인들의 모습이 실려 있는 아래에 "모두 다 선군시대를 빛내는 영웅이 되자!"는 큼지막한 구호가 적혀 있다.

이번에 문제가 된 전교조 서울지부 홈페이지의 포스터에는 이러한 <조선일보> 홈페이지의 사진과 거의 비슷한 이미지, 즉 총을 든 군인들의 모습이 실려 있는 아래에 "선군정치의 위대한 승리 만세"라는 비슷한 형태의 큼지막한 구호가 적혀 있다. 정상적인 판단력이 있는 사람이 본다면, 이 두 종류의 포스터는 거의 같은 내용을 나타내는 포스터임을 쉽게 확인할 수 있다.

ⓒ 조선닷컴 화면 갈무리
사실 <조선일보> 외에도 <동아일보>나 통일부, 교육인적자원부 등의 홈페이지에도 비슷한 내용의 사진이나 포스터가 수록돼 있다. 누가 말했던가, 내가 하면 로맨스고 남이 하면 스캔들이라고. <조선일보>나 통일부 홈페이지에 싣는 것은 괜찮고, 전교조 홈페이지에 싣는 것은 찬양·고무로 처벌하는 것은 전형적인 이중 잣대 적용이자 구시대적 작태다.

또 이분들(김 교사와 최 교사)이 현직교사로서 도주 우려가 없고 또 이미 홈페이지를 통해 이른바 '증거'가 모두 확보됐기에 증거인멸의 우려도 없으므로 구속 요건에 해당되지 않는데도 구속한 점, 수사기관이 허위의 피의사실을 언론에 누설해 마녀사냥식 여론공세를 퍼부은 점이나 불법 도청이나 정보검색을 자행했다는 비난이 이는 모습 등 이런 종류의 사건에 으레 따라붙는 구시대적 문제점들이 여전히 반복되고 있다.

1970~80년대에 자주 듣던 곡조를 '이미 민주화가 충분히 진행됐다'며 이제는 진보논쟁에 열 올리는 21세기 디지털 시대에도 들어야 된다는 게 지긋지긋하고 기가 막힐 지경이지만, 슬프게도 아직까지는 이게 실제 상황이다.

어떻게 해서 참여정부에서 이런 블랙코미디 같은 상황이 벌어졌을까? 국정감사를 통해 확인된 것처럼 전국에 보안수사대가 42개, 밀실안가가 25개, 보안국 전체 인원이 2478명이나 된다는 사실에 그 비밀의 일단이 있다. 그중엔 지난 5년 동안 이른바 '검거' 실적이 전혀 없는 곳도 4개소에 이르고 있고, 2005년 1월부터 8월까지 전국의 경찰 보안수사대가 '검거'한 인원이 겨우 11명에 불과하다고 한다. 이런 상황에서 뭔가 '밥값'을 해야 한다는 강박관념과 왜곡된 사명감이 상승작용을 일으켜 억지 사건을 만든 것으로 해석되기도 한다.

군사독재 시대 이래 존재해온 보안수사대 같은 기구를 그냥 두고서는 제 2, 제 3의 김 교사와 최 교사가 속출할 수밖에 없다.

[2-1] 깃털만 건드린 '론스타게이트'... 약자에게만 추상 같은 검찰

희대의 권력형 사기극인 '론스타게이트'가, 몸통은 아무런 처벌도 받지 않은 채 깃털 몇 개만 건드린 채 마무리되고 있다. 멀쩡한 외환은행을 부실은행으로 둔갑시켜 초국적 투기자본인 론스타에게 헐값에 팔아넘긴 사례 자체가 너무나 충격적이고 결코 발생해서는 안 될 사건이었다.

제대로 계산한다면 국제결제은행(BIS) 자기자본비율 전망치가 적정 기준인 8%를 훨씬 넘어 9.14%에 달하는 외환은행의 BIS 비율을 6.16%로 조작하는 등의 숫자왜곡으로 외환은행을 거의 반값 이하의 헐값인 1조3천억원에 팔아치웠다. 그 결과 론스타는 국민은행에 그 지분을 매각할 경우 무려 4조1787억원이나 되는 차익을 남기게 됐다. 여기에 2006년도 영업 결과 발생한 배당액 1조3천억원까지 포함한다면, 론스타는 1조3천억을 투자해서 불과 3~4년 만에 투자액의 4배가 넘는 무려 5조5천억원 가까운 이득을 챙기게 됐다.

이런 천문학적인 이득은 정상적인 투자소득이 아니라 한국의 정치권력, 고위 경제관료와 초국적 투기자본, 국제적인 브로커 등이 짜고 벌인 범죄의 결과물임이 여러 조사 결과 확인되고 있다.

그러나 범죄 상황은 확인됐지만, 사법처리는 불가사의한 양상으로 진행되고 있다. 론스타 측의 로비로 외환은행 편법(불법) 매각에 개입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는 김진표 당시 경제부총리와 김광림 당시 재경부 차관, 론스타에 은행법상 예외승인 조항이 적용되도록 주도한 김석동 당시 금감위 감독정책1국장(현 재경부 제1차관), 당시 김석동 국장에게 외환은행 매각 관련 보고를 받았던 권오규 당시 청와대 경제수석(현 경제부총리), 론스타 측 법률자문을 맡았던 김앤장의 고문으로서 권력형 사기사건의 총체적 배후조종자로 꼽히는 이헌재 전 경제부총리 등에게 검찰은 모두 무혐의 처분을 내렸다. 그 대신 검찰은 변양호 당시 재경부 금융정책국장과 이강원 당시 외환은행장이 주범이라고 결론 내렸다.

변 전 국장이 '단돈' 4000만원 정도를 받고 외환은행 헐값매각을 주도했다는 식의 결론은 상식적으로 이해하기 힘든 내용이다. 매각금액만도 1조3천여억원에 달하고 재매각 차익이 5조5천억원에 달하는 '큰 물건'을 헐값 매각하는 대가로 4000만원만 받았다는 결론 자체가 참으로 어설프다. 검찰 수사가 이토록 시원찮은데, 그나마도 영장청구를 받은 법원이 검찰과 구속영장 청구-기각 신경전을 펼친 끝에 변 전 국장에게도 영장기각 결정을 내림으로써, 고위 경제관료 중 검찰의 마지막 책임추궁 대상자마저 면책의 길목으로 접어들고 있다.

도대체 이러고도 사회 정의를 입에 담을 수 있는가? 소추권을 가진 유일한 수사책임기관으로서 그토록 막강한 권한을 지니고 있는 검찰이, 그래서 노동자, 농민이나 사회적 약자에 대해서는 그토록 '유능하게' 추상같은 채찍을 휘두르면서 권력형 범죄나 국가적 범죄에 대해서는 이 정도 수준의 능력밖에 보여주지 못하느냐는 비아냥을 들어도 할 말이 없게 됐다.

전형적인 권력형 사기사건인 론스타게이트에 관련된 고위 경제관료들이 론스타게이트 주역이라는 사실이 폭로된 후에도 계속 승승장구하고 있는 것도 역사와 정의에 대한 배신이다. 변 전 국장 외에 또 다른 실무책임자로 꼽히는 김석동 국장은 금감위 부위원장으로 승진했다가 이번에는 또다시 재경부 제1차관으로 영전했다. 그리고 또 다른 실세 배후로 꼽히는 권오규 당시 청와대 경제수석은 경제부총리로 기용됐다.

도대체 이러고도 '민주정부'를 입에 올릴 수 있는가?

결론적으로 론스타 매각은 엄청난 범죄로 밝혀졌지만 죄를 지은 권력자 또는 고위 경제관료가 정확히 누구인지는 밝혀지지 않았고, 따라서 처벌받는 사람도 극히 일부분에 그치고 있다. 이른바 몸통은 모두 빠져나가거나 관직에서 승승장구하고 있다.

과연 영원히 그럴까? 그러나 틀림없이 차기정권 또는 차차기 정권에서 특검 수사의 대상이 될 것이라고 벼르는 사람들이 있어서 그냥 넘어가기 어려울 것이다.

▲ 전국사무금융노조연맹 소속 조합원들이 지난해 4월 21일 오후 여의도 금융감독위원회 앞에서 집회를 열어 론스타게이트 진상규명을 촉구하는 모습.
ⓒ 오마이뉴스 남소연

[2-2] X파일 주범은 유유자적, 기자는 유죄... 이러고도 정의 말할 수 있나

삼성 X파일을 특종 보도한 이상호 MBC 기자가 2006년 11월에 선고된 2심판결에서 통신비밀보호법 위반으로 유죄판결을 받았다. 민주주의의 파탄을 예고하는 충격적인 사건이다. 군사독재 시대를 투쟁으로 끝장내니, 이제 재벌독재 시대가 완성단계로 접어들고 있음을 상징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삼성 X파일은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의 처남이자 <중앙일보> 회장인 홍석현과 삼성그룹 부회장인 이학수 사이에서 논의된, 대통령 선거정국의 기류변화에 따른 여야 후보 진영에 대한 삼성 측의 정치자금 지원문제와 정치인과 전현직 검찰 고위 관계자에 대한 이른바 추석 떡값 등의 지원문제다. 이를 통해 삼성그룹이 대통령 선거 정국에 영향력을 행사하고 그 과정에서 공권력 행사의 최일선에 있는 검찰조직에 대한 영향력 강화를 도모(1심 판결문 내용임)하고 있는 상황을 여실히 나타내고 있다.

이러한 X파일이 언론을 통해 공개됐다면, 당연히 그 녹음테이프에 실린 내용대로 "이건희 일가가 자신들의 사적인 자본의 이익을 도모할 욕심에 돈으로 (대선 후보들에게 정치자금 명목으로 뇌물을 제공하고 또 검사들에게 추석 떡값 명목으로 뇌물을 제공하는 등의 방법으로 권력과 검찰을 좌지우지하려 공작하여) 국가 헌정질서를 문란케 하"였는지(이상호 기자 1심 최후진술) 여부를 엄중히 조사한 후 그 결과에 따라 처벌하는 것은 물론 조사결과를 주권자인 국민에게 소상하게 공개하고, 향후 이런 국민주권 훼손 사례가 재발되지 않도록 제도적 장치를 강구하는 데 모든 노력을 집중해야 하는 것이 순리다.

그러나 실제로는 문제의 본질인 "삼성재벌이 수백억원대의 뇌물을 정치권과 검찰 등에 살포해 대통령 선거에 영향을 끼치려 한 모의"(이상호 기자의 상고이유서)의 진상은 수사되지 않고, 반면에 이 사실을 폭로한 이상호 기자는 기소돼 2심에서 유죄판결을 받고 전임 국정원장 등이 구속처벌되는 것으로 종결되고 있다.

재벌-권력-검찰-족벌언론이 연결된 추악한 먹이사슬의 실체는 묻히고, 대신 본질을 호도하는 수준의 조사와 처벌로만 그치고 있다. 특히 선출되지 않은 권력인 재벌총수 이건희 회장은 몇 달 동안 미국에 피신하고 난 뒤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귀국해서 여유 있게 한국 제1위의 재벌총수로 군림하고 있다. 거꾸로 돼도 한참 거꾸로 된 것이 아닌가? 이러고도 정의와 민주주의를 말할 수 있는가?

X파일이 폭로돼 온 국민이 충격에 빠졌을 때, 보수 신여당과 보수 구여당은 각각 특별법과 특검법 타령만 하면서 표면적으로만 서로 다투다가 결국 입법시간만 지체시킨 후, 일정시간이 지난 뒤에는 슬쩍 다른 이슈로 넘어가는 노회한 수법을 여지없이 구사했고 이는 일정한 성공을 거뒀다.

그리고 '삼성 X파일 게이트'의 또 다른 피의자격인 검찰이 스스로 내부범죄에 대한 수사주체가 된 것은, 필연적으로 수사 결과 처리에서 진상을 은폐하는 것으로 귀결될 것을 예비한 것이나 다름없었고, 실제로도 그렇게 됐다. 이러고도 국민주권과 민주주의를 입에 올릴 수 있는가?

더욱 충격적인 것은, 삼성 X파일을 특종 보도한 MBC 이상호 기자가 최근 수도권팀 의정부지국으로 '좌천 발령'됐다는 사실이다. 온 나라를 뒤흔드는 엄청난 특종을 한 기자를 포상하지는 못할지언정 좌천시키다니, 이게 말이 되는 소리인가? 언론의 자유를 스스로 목 조르는 공영방송 MBC의 우매함이 너무나 통탄스럽다.

▲ 검찰이 삼성 X파일 사건과 관련해 이건희 회장과 홍석현 전 주미대사, 이학수 구조본부장에 대해 불기소 결정을 내린 데 대해 민주노동당과 전국언론노동조합에서 공동으로 2005년 12월 14일 서초동 서울중앙지검 앞에서 항의집회를 연 모습.
ⓒ 오마이뉴스 남소연

[3-1] 정부 비판하면 광고 끊는다?

작년 11월경 <프레시안>에 국정홍보처를 거쳐 발주되던 정부광고가 갑자기 끊어졌다고 한다. 지난 몇 년 동안 빠짐없이 계속 주어지던 정부광고가 왜 중단됐을까? 이유를 알아보니 <프레시안>이 한미FTA의 문제점을 적극적으로 보도한 것을 비롯해 정부정책에 비판적인 보도기조를 계속 유지한 것 때문에 미운털이 박혀서 그런 것 같다는 분석이 나왔다.

유신독재시대인 1975년초 <동아일보> 광고탄압 때 생각이 번쩍 머리에 스치고 지나갔지만, 정부광고만 끊어졌을 뿐이고 그때 같은 무차별적인 광고탄압은 아직 없다고 한다. 그나마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참여정부에서도 이런 일이 일어난다니 참으로 기가 막힐 일이다.

[3-2] FTA 비판한 PD는 왜 전출됐을까

KBS스페셜에서 FTA의 문제점을 잘 알려준 역작을 거푸 방영했다. NAFTA를 겪은 멕시코 사례를 보도하면서 한국 최초로 자유무역협정(FTA)의 문제점을 본격적으로 다뤘던 KBS스페셜 프로그램인 'FTA 12년 멕시코의 명과 암'(2006년 6월 4일 방영)은 시청자들에게 엄청난 충격을 줬다. 그리고 10월 29일 미국의 공장식 축산 실태와 그로 인한 미국산 쇠고기의 광우병 위험성을 본격적으로 다룬 다큐멘터리 '얼굴 없는 공포, 광우병 - 미 쇠고기 보고서'를 본 사람은 미국산 쇠고기와 광우병위험의 실태를 생생하게 알 수 있었다.

그런데 이 프로그램들을 제작한 이강택 PD가 2번째 프로그램을 방송한 후 2~3일 만인 작년 11월초 갑자기 다른 파트로 전출됐다. 내막을 알아보니, 이 PD를 보호하기 위해 전출시킨 것이라는 '해설'이 유포되고 있었다. '보호'라니? 누군가 위해를 가하려 하고 있거나 모종의 압력이 행사되고 있다는 것이 아닌가? 양심에 입각해서 프로그램을 제작한 것에 대한 비열한 보복이 가해지고 있는 것이 아닌가?

[3-3] FTA 비판 광고도 용납 않는 '참여'정부, 부끄럽지 않은가

금년 초에는 더욱 기가 막히는 사건이 발생했다. 작년에 한미FTA 비판 여론이 고조되자 정부에서는 '한미FTA체결지원위원회'를 구성해 대국민홍보에 나서게 했다. 수십억원의 혈세를 퍼부어서 FTA찬성 광고를 해대는 것을 보다 못한 농민들이 나락가마를 모아 TV광고비를 만들고 이에 호응한 영화인들이 필름을 제공해서 광고를 제작했는데, 이마저도 방송심의를 핑계로 광고를 못하게 했다.

경남 함안에서 농사 짓는 할머니께서 서울로 간 자녀들에게 보내는 영상편지 형식의 광고인 '고향에서 온 편지'의 대사는 지극히 간단하고 평범하다.

"우리 같은 농민이 FTA가 뭔지 알겄나, 평생 농사짓고 이제야 좀 살겠나 싶었더니 어찌된 일인고, 눈물이 다 나올라 카네... 미국쌀이 들어온다는데 어찌됐건 막아야하지 않겄나."

이 대사에 대한 방송광고 심의 결과는 상식을 뛰어넘는 수준이다. 이 대사가 "소비자 오인 표현(부분적으로 사실이지만 전체적으로 소비자가 오인할 우려가 있는 표현 - 관련멘트 일체)"에 해당하고, 또 "국가기관에 의한 분쟁 조정이 진행 중인 사건에 대한 일방적 주장이나 설명을 다루는 표현(관련멘트 일체)"이어서 대사를 고쳐야 방송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어떻게 해서 저 대사가 "소비자 오인 표현"이 될 수 있는지, 또 "국가기관에 의한 분쟁 조정이 진행 중인 사건에 대한 일방적 주장이나 설명"이 될 수 있는지 불가사의할 따름이다.

더욱이 한미FTA를 찬성하고 홍보하는 한미FTA체결지원위원회와 정부 각 부처의 광고가 심의도 받지 않은 채 무더기로 쏟아지고 있는 것에 비하면, 한미FTA에 반대 또는 비판하는 이 정도 광고도 못하게 하다니, '참여'정부라는 이름이 부끄러운 지경 아닌가? 이 정도 광고도 용납하지 못하는 주제에 표현의 자유나 언론의 자유 운운하는 말을 입에 올리기조차 부끄럽지 않은가?

덧붙이는 글 | 박석운 기자는 한국진보연대(준) 상임운영위원장입니다. 이 기사는 <프레시안>에도 게재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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