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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법무부와 인권실천시민연대가 13일 오후 경기도 의정부교도소 내 정보화 교육실에서 '국내 최초'로 '수용자(수감자)를 위한 인문학 강좌'를 진행했다. 26명의 일어 교육과정 수강생들이 조광제 철학아카데미 대표의 <철학의 이해> 첫 수업을 듣고 있다. 4월 말께부턴 이명원 문학평론가의 <문학으로 세상읽기> 듣게 된다.
ⓒ 오마이뉴스 안윤학

@BRI@"철학이라고 하면 보통 정신적인 측면을 생각한다. "몸철학은 인간의 정신적인 측면에만 주목하다 놓쳐버리는 '몸'에 대한 것들을 발견하자는 철학이다." (조광제 철학아카데미 대표)

"그렇다면 몸철학은 현 상황을 인식하기 위한 철학인가? 현실인식이 중요하다는 말씀인가?" (한 수용자)


한기가 느껴지는 의정부교도소 정보화 교육실. 그러나 강의에 참여하고자 하는 열기는 뜨거웠다.

책상 위에는 대학 강의실에서나 볼 수 있는 '2007학년도 1학기 <철학의 이해> 강의 계획서'가 놓여있다. '밥 한 그릇의 행복, 물 한 그릇의 기쁨(이철수의 나뭇잎 편지)'이란 제목의 책도 함께 놓였다. 이 가운데 강사와 수용자(수감자)들 간의 철학 문답이 오갔다.

"인문학 통해 인간 존엄성 깨닫자"... 수용자 반응은?

국내 최초로 교도소에서 인문학 강좌가 열렸다. 법무부와 인권실천시민연대(인권연대)가 13일 오후 경기도 의정부 교도소에서 외국어 교육생을 대상으로 '수용자를 위한 인문학 과정'을 개설한 것.

주최측은 이번 강좌의 목표에 대해 "인문학은 바람직한 인간관계 및 사회 구성의 비전을 설정하는 지표"라면서 "인간의 존엄성을 깨닫게 하고 자존심을 회복해 사회 복귀 의지를 높이며 성공적인 재사회화를 지원한다"고 밝혔다.

이날 강의는 '행동과 습관에 관하여'라는 주제다. "철학은 자기에게 주어진 현실·처지를 받아들이고 그 속에서 누릴 수 있는 것을 찾는 것이다" "몸을 부드럽게 하고 타인의 몸을 중요하게 여기자" 등 '몸철학'에 관한 내용으로 이뤄졌다.

▲ 일부 수용자들은 메모까지 곁들이며 수업에 열중하는 모습을 보였다.
ⓒ 오마이뉴스 안윤학
강의가 진행된 2시간 동안 수용자들의 자세는 진지했다. 그러나 수업 중 일부 수용자들은 "어렵다, 어떻게 쉽게 받아들일 수 있나" "교도소 내 빈곤 속에서 즐거움과 행복을 발견하기 어렵다, 강의 내용을 받아들이기 어렵다"고 토로하기도 했다.

이날 강의를 맡은 조광제 대표는 국내 최초로 '교도소 인문학 강의'를 진행하는 어려움과 긴장을 토로했다.

그는 "처음 강의실에 들어섰을 때 수용자들의 눈빛, 표정이 굳어있어 벽이 느껴졌다"면서도 "분위기를 풀어내기 위해 일부러 목소리도 크게 냈다"고 소감을 털어놨다.

이어 "철학적 개념을 지양하고 사는 것의 즐거움을 느낄 수 있도록 강의할 것"이라고 강의 방향을 밝히면서 "사회진출 뒤 타인과 함께 무리없이 사는 데 도움이 되고, 수용자 생활이 화기애애하게 됐으면 한다"며 바람을 밝혔다.

"마음의 여유, 그러나 아직 와닿지는 않았다"

ⓒ 오마이뉴스 안윤학
강의가 끝난 뒤 길 아무개(징역10년, 살인죄, 2011년 만기)씨는 "애초 '철학'을 어렵고 나와는 거리가 먼 분야로 생각했다"면서 "강의를 통해 삭막한 교도소 생활에 많은 정신적 도움, 마음의 여유를 얻을 것 같다"고 기대감을 표출했다. 그러면서도 "우리가 처한 상황을 곁들어서 강의하면 더 큰 공감을 얻을 수 있을 것"이라며 아쉬움을 털어놨다.

전 아무개(징역5년, 특정경제가중처벌법, 2008년 만기)씨는 "외국어 등 빡빡한 기능교육에 매달리다 인성교육에 도움이 될 인문학 강좌가 개설된다는 얘기에 많은 기대를 했다"면서도 "기대가 컸기 때문인지, 강사님이 긴장을 해서인지 강의 내용이 크게 와닿지 않았다"고 토로했다.

다만 "이런 인문학 수업은 교도소 내에서 꼭 필요하다고 생각하고 취지도 훌륭하다"면서 "앞으로 강의를 통해 첫 시간의 실망보다 더 큰 것을 얻을 것"라고 강한 기대감을 표출했다.

의정부교도소 강동운 소장은 "이번 인문학 강좌를 통해 건전한 사고방식과 올바른 가치관을 정립하여 수용자들의 성공적인 사회복귀를 도울 수 있도록 깨끗한 교육환경 등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고 밝혔다.

이제 첫 강의... 2학기에는 종교·예술 강의도

'수용자 인문학 과정'이란?

'수용자 인문학 과정'은 미국 언론인이자 사회비평가인 얼 쇼리스(Earl Shorris)가 노숙자, 전과자, 마약 복용자, 빈민 등 사회 소외계층의 자활을 위해 만든 '클레멘트 코스'를 수용자들에 적용한 일종의 '재사회화' 프로그램이다.

클레멘트 코스는 이미 한국에서 대한성공회 노숙인 다시서기센터가 노숙인을 위한 인문학 과정인 '성 프란치스대학'을 개설해 운영하고 있다. 이 과정을 수료한 노숙인들은 자활에 적극적인 의지를 보이고 있어 성공적인 평가를 받고 있다.
2007년 강좌는 총 두 학기(2학기는 7월 중 시작)가 예정돼 있다. 1학기는 오는 5월 말까지 진행된다. 수강 과목인 <철학의 이해>는 조광제 대표가, <문학으로 세상읽기>는 이명원 문학평론가가 맡았다. 총 강의 횟수는 12회, 각 과목당 6회씩이다.

2학기 강의는 종교·예술 분야에 대한 강의가 예정돼 있으나 구체적인 안은 아직 마련되지 않았다. 또 2007년 시범운영 결과를 바탕으로 내년부터는 강좌를 확대, 운영할 방침이다.

강의가 열리는 의정부교도소는 5년 미만의 형을 받은 '초범' 범죄자들을 위한 곳이다. 그런데 이번 인문학 강좌를 수강하게 된 외국어 교육과정 수강생(현재 8기, 1년 교육과정)들은 일정 정도의 영어·일어실력을 갖춰 전국 교도소에서 선발돼 온 수용자들로, 형기는 2년에서부터 장기수까지 분포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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