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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죽변항에서 맛 본 '울진대게.' 대게는 항상 뒤집어 놓는데, 촬영을 위해 바로 세워봤다.
ⓒ 최육상
'마파람에 게눈 감추듯'이란 말은 이런 게 아닐까.

"맛볼 새가 없이 녹네. 그것 참, 어쩜 이리 부드럽게 넘어갈까. 예술이다, 예술."

감탄사가 절로 터져 나왔다. 먹고 또 먹어도 묘하게 향긋한 대게의 냄새가 그렇게 좋을 수가 없었다.

지난 1일 오후, 지금 울진 죽변항에서는 대게잡이가 한창이라는 아는 분의 제안에 흔쾌히 동해 바다로 향했다. '대게하면 영덕인데 울진대게도 유명한가?' 조금 의아했지만 아무렴 어떤까. 바다에서 막 건져올린 싱싱한 대게 맛을 직접 볼 수 있다는데.

오후 6시 30분 무렵 도착한 죽변항에는 어느덧 어둠이 내려앉았다. 이 곳이 항구임을 증명하려는 듯 비릿한 바다냄새가 달려들었다. 몇몇 오징어잡이 배들이 전등을 켜고 출항을 준비하는 모습이 보인다. 오랜 시간 고속도로와 국도를 달려온 터라 밤바다의 향취를 뒤로 한 채 피곤함을 풀려 횟집으로 향했다.

기절시켜서 찌고, 배를 보며 먹는 대게의 참맛

▲ 대게에도 게장이 있다. 밥을 볶아먹든 그냥 비벼먹든 환상이다!
ⓒ 최육상
주문한 요리는 당연히 대게. 대게 하면 꽃게나 참게에 비해 커서 그런지 '큰(大) 게'를 떠올리기 쉬운데, 게의 다리가 대나무를 닮았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한 상 가득 나온 대게는 모두 뒤집혀져 있다. 껍질색깔을 보니 연한 붉은색이다.

"대게는 항상 뒤집어서 찌고, 또 뒤집어진 상태에서 먹어야 해요. 안 그러면 몸통에 있는 게장이 다리 사이로 들어가거나 밖으로 흐르거든요. 도시에서 사람들이 흔히 영덕대게라고 파는 건 진하고 붉은 '홍게'지, 대게는 아니에요. 죽변항에서 경매에 내놓는 진짜 대게는 색이 연합니다."

서울 촌놈이 와서 시끄럽게 떠들어댔더니 곁에 계시던 아주머니가 한 말씀 거드신다. 대게는 반드시 민물에서 기절시킨 다음에 수증기로만 쪄야 한단다. 안 그러면 게장이 흐르거나 다리가 부러진다고. 대게든 참게든 게장 맛이 별미인데, 귀한 게장이 흐트러지면 안 된다는 것이다.

차림표를 보니 '대게=시가'라고 적혀 있다. "시가면 한 마리에 얼마냐?"고 묻자 아주머니는 그냥 배시시 웃을 뿐 묵묵부답이다. 몇 차례 거듭 재촉하자, "크기에 따라 다른데, 1만5천원이나 2만원 정도"라고 살짝 귀띔한다.

앞에 앉은 분이 계속 게를 발라줘서 그냥 먹기만 했더니 얼마나 먹었는지 모를 지경이었다. 분명한 건, 게장에 밥을 비벼먹는 걸 빼놓지 않았다는 것.

죽변항은 지금 '게판'이다

▲ 수백마리씩 한꺼번에 경매가 이뤄진다. 가운데 수협 관계자에게 쏠린 시선들이 분주하다.
ⓒ 최육상
다음날, 드디어 죽변항을 찾은 목적을 이룰 순간. 오전 7시 30분 대게 경매가 시작되는 공판장으로 향했다. "삐~익, 삑!" 호루라기 소리가 나자 사람들이 모인다. 바닥에 훌러덩 뒤집어진 대게가 시선을 어지럽힌다.

그야말로 '게판'이다. 경매인들이 수협 관계자에게 경매가가 적힌 나무판을 부지런히 내민다. 이윽고 최고 낙찰가가 불려진다. "4290원!" 눈으로 어림짐작해보니 400여 마리, 170여만원 어치다.

"삐~익, 삑! 삑!" 다시 경매가 진행된다. 이번에는 800마리, 방금 전것보다 크다. 나무판이 수협 관계자의 손에 번갈아 오고가고, "6000원!" 낙찰가가 불려지자 경매인들의 희비가 엇갈린다.

'게발이(게잡이)'를 끝내고 들어 온 배에서는 대게가 가득한 바구니가 계속 쏟아진다. 아주머니들이 게를 크기별로 재빠르게 분류하면 경매에 참가하는 사람들은 빠른 속도로 게를 바닥에 눕혀놓는 과정을 반복한다. 수백 마리의 대게를 배에서 내려 바닥에 까는 데 걸리는 시간은 정말 순식간이다.

▲ 갓 잡아 싱싱한 왕새우와 소라.
ⓒ 최육상
경매는 대게만 하는 건 아니다. 그물에 함께 딸려 올라 온 왕새우(대하)도 있고, 머리통만한 문어와 살아 날뛰는 가자미, 밤새 잡아온 오징어 등 싱싱한 해산물이 넘쳐난다. 오징어 경매는 배에서 내리기 전에 산 것과 죽은 것을 구분해 진행한다. 성질 급한 오징어가 죽기 십상이기 때문이다.

주변에서 경매를 지켜보던 손승덕(41)씨는 "오늘 오징어는 품질이 좋아 평균보다 높은 금액을 받았다"며 죽변항의 생활풍경을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이 곳 경매는 등록된 중매인 19명 정도만 참여가 가능해요. 죽변항은 도매만 취급해서 상인들도 중매인에게 대게를 사죠. 이곳에서는 자망(대게잡이 그물)을 이용하기 때문에 통발을 사용하는 것보다 비용이 많이 들어요. 보통 자망은 2~3번 출항했다 오면 교체해 줘야 하거든요."

갈매기, 식당, 커피, 장작불... 죽변항을 지키는 것들

▲ 대게는 11월부터 5월까지만 잡을 수 있다. '자망'을 손질하느라 아주머니들이 바쁘다.
ⓒ 최육상
항구를 생동감 있게 만드는 것은 경매 뿐만이 아니다. 토실토실 살이 오를 대로 오른 갈매기들의 쉼없는 날갯짓과 울음소리, 이른 새벽 사람들의 시장함을 채워주는 주변의 식당들, 500원으로 온기를 전하는 한 잔의 커피, 항구 한 편 바닷바람의 추위를 녹이려 장작불을 지피고 있는 사람들 등.

"죽변항의 대게가 정말 맛이 좋나요?"

조그만 의자에 앉아 장작불을 쬐며 다음 게발이 배를 기다리고 있는 한 아주머니에게 여쭸다. 아주머니는 카메라를 메고 기자 수첩을 든 모습에 다소 경계하면서도 "이곳으로 시집와 대게를 만진 경력이 30년 됐다"며 조심스럽게 답변을 이었다.

"대게는 음력 정월 대보름에 가장 맛나요. 속이 꽉꽉 차 있으니까. 특히 여기 대게는 동해안의 거친 물살을 이겨내고 사느라 육질이 쫄깃해요. 반면 일본 근처에서 나오는 게는 짜고 껍질이 두꺼워서 맛이 떨어져요. 게발이는 품삯 등 인건비가 비싸고, 자망도 비싸서 많이들 나서지 못해요. 죽변항에 자망 어선이 아마 50척 정도 있나 모르겠네."

아주머니는 "영덕에서 죽변항 공판장으로 와서 하루에도 대게를 몇 트럭씩 사 간다"며 "그런데도 영덕대게에 비해 울진대게가 제 이름값을 치르지 못하는 것 같아 속이 상하다"고 덧붙였다.

성함과 나이를 여쭸더니, 끝내 밝히지 않고 경계를 하던 아주머니의 속내를 알 수 있게 한다. 대게 원산지가 울진이니 영덕이니 하며 구설수에 휘말리기 싫다는 투였다.

왕돌잠에서 나는 대게가 최고!

▲ 경매를 준비하는 대게들. 뒤집어 놓은 중간중간에 대게를 바로 놓아 열마리씩 구분한다.
ⓒ 최육상
대게는 동해안의 삼척·울진·영덕·포항 등지에서 두루 난다. 하지만 '원조대게' 경쟁을 벌일 만큼 울진과 영덕이 특히 유명하단다. 그 이유는 왕돌초, 왕돌잠 등으로 불리는 거대한 수중암초 때문이다.

울진군청의 방형섭 공보담당관은 "후포항에서 20여㎞ 떨어진 곳에 동서남북으로 수십㎞에 걸쳐 왕돌잠이 있다"며 "수심과 온도, 모래바닥 등 최고의 환경을 갖추고 있어 이곳에서 나는 대게가 맛이 좋다"고 말했다.

밤이면 오징어잡이배가 출항하고, 아침이면 게발이배가 항구를 떠나는 죽변항. 죽변(竹邊)항은 이름 그대로 작은 능선을 따라 늘어선 대나무 숲이 둘러싸고 있다. 임금님의 수라상에도 올랐다는 죽변항의 대게는 주변 지역으로 고르게 퍼져 나간다.

1박2일, 대게 경매현장을 취재하고 대게의 참맛을 보고 싶다는 작은 성과는 이루었다. 하지만 그보다, 자그마한 항구를 끼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풍기는 진한 땀내음이 가슴을 더욱 채웠다.

홀로 작은 배를 몰아들어 온 한 할아버지께 "많이 하셨냐?"고 여쭸더니, 답변으로 돌아온 사람 좋은 웃음소리가 아직도 귓가에 맴돈다.

"대하 몇 마리랑 잡어들밖에 없어. 그래도 한 15만원 어치 안 되겠나? 하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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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권으로 보는 그림 스포츠백과>(진선아이)의 글저자입니다. "오래오래 비루한 행복에 빌붙어 사느니 피가 우는대로 살아볼 생각이다"(<혼불> 3권 중 '강태'의 말)에 꽂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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