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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를 처음으로 밝혀 국내외적으로 관심을 모았던 고 정서운 할머니를 기리는 추모탑이 세워진다. 사진은 2004년 2월 정서운 할머니 사망 뒤 열린 장례식 모습.
ⓒ 오마이뉴스 윤성효

@BRI@1992년 처음으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였다는 사실을 공개해 국내외적으로 여론을 확산시켰던 고 정서운(1924~2004) 할머니. 꼭 3년 전인 2월 26일 새벽 7시경 81세의 일기로 생을 마감한 정 할머니를 기억하는 사람들이 추모위원회를 만들었다.

살아 생전에 고인을 어머니처럼 돌봤던 강동오 매암차문화박물관 관장을 비롯한 인사들이 '일본군 위안부 피해 고발자 정서운 할머니 추모위원회(집행위원장 강동오, 아래 '추모위')'를 결성한 것.

추모위는 고인의 고향인 경남 하동군 악양면에 평화의 탑을 건립하고, 오는 5월 26일 '평화의 탑 제막식'과 '평화나눔 문화제'를 연다. 또 추모위는 위안부 피해자 이용수 할머니와 함께하는 역사기행을 3월부터 벌인다.

정 할머니는 하동 악양 입석리에서 태어나 14살 때 주재소에 갇혀 있던 아버지를 풀어주겠다는 동네 구장의 말에 속아 위안부로 끌려갔다. 고인은 15살 때부터 부산-시모노세키-대만-중국-태국-싱가포르-사이공-인도네시아 등으로 이동했으며, 인도네시아 수마라이 등지에서 8년간 일본군 위안부로 있었다.

고인은 해방 후 싱가포르 수용소에서 1년간 생활했고, 23살 때 부산으로 귀국했다. 고인은 1992년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였다는 사실을 처음으로 공개했으며, 1995년 북경 세계여성대회에서 증언하기도 했고, 1996년에는 미국 등지에서 강연 활동을 했다.

또 고인은 다큐멘터리 제작에 참여해 김대실 감독의 <침묵의 소리>에서 증언했는데, 이 다큐멘터리는 2006년 미국 하원의회에서 상영되기도 했다. 1996년 고인은 '국민기금 반대 올바른 전후 청산을 위한 일본 순회 집회'에 참가했으며, 2003년 80살 때 경상대에서 '정신대 할머니의 삶 그리고 잊혀진 역사'라는 제목으로 마지막 증언을 하기도 했다.

고인은 진해의 한 병원에서 입원해 있다가 2004년 2월 26일 숨을 거두었다. 당시 고인의 장례식은 경남지역 시민사회단체가 모여 '시민사회장'으로 치러졌다. 고인의 유해는 하동 악양면 평사리 일대와 섬진강에 뿌려졌다.

정서운 할머니를 돕고 사망 뒤 추모위 결성을 위한 논의는 2001년부터 시작되었다. 2002년 5월 매암차문화박물관에서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과 함께하는 나눔의 축제'가 열렸으며, '정신대 할머니와 함께하는 경남도민모임'이 결성되기도 했다.

추모위는 100명으로 구성할 예정이며, 상임대표단은 이용수(위안부 피해자 할머니)․수경(화계사주지)․윤미향(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 대표)씨 등이 참여하고, 강주성 3․15의거기념사업회 명예회장과 도법 스님이 상임고문단을 맡는다.

이밖에 공동추진위원에는 정태춘(가수) 박남준(시인) 박두규(시인) 김두관(전 행자부 장관) 최봉태(변호사) 황대권(생태운동가) 김용택(시인) 이철수(판화가) 도종환(시인) 홍순관(가수) 안치환(가수) 윤병렬(교사)씨 등이 참여한다.

추모위는 '아름다운 동행'이란 이름으로, '평화의 탑' 건립과 함께 위안부 피해자 이용수 할머니와 함께하는 역사기행을 연다. 역사기행은 3월 20일부터 5월 25일까지 서울과 부산·대구·광주·울산·하동을 돌면서 벌인다.

강동오 집행위원장은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라는 가슴 아픈 상처를 간직한 채 66년간을 살다가 돌아가신 한 할머니의 이름을 통해 반전과 평화의 이야기를 하고자 한다"면서 "부디 이 땅에 더 이상 전쟁이 일어나지 않기를, 전쟁으로 인한 슬픈 기억이 존재하지 않기를 바라는 간절한 마음을 담아낼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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