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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해 11월 13일 오후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한반도대운하연구회 주최 심포지움 '한반도대운하 국운융성의 길'에서 이명박 전 서울시장이 인사말을 하고 있다.
ⓒ 오마이뉴스 권우성
이명박씨! 당신이 그토록 침이 마르도록 칭찬한 운하의 나라로 갑니다.

여행은 즐거운 일입니다. 일상에서 벗어나 새로운 세계로 나가는 것은 누구나 즐겁고 기쁜 일입니다. 더구나 문화와 역사, 삶의 방식이 다른 나라를 여행한다는 것은 더더욱 기쁜 일이지요. 그것도 지구상에서 가장 발전된 민주주의와 복지사회가 실현되고 있다는 유럽은 가슴 설레게 만들지요.

그런데 저는 지금 그리 즐겁지 않은 여행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원하는 것을 보고, 발견하고 탐구하는 스스로의 목표에 의해 유럽으로 날아가고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장장 13시간의 비행기를 타고 날아가서 꽉 짜여진 스케줄과 일을 해야 한다는 부담감 때문만은 아닙니다. 이번 여행의 목적이 당신이 그토록 칭찬한 운하를 보러 가기 때문입니다. 유럽의 운하의 특성, 물동량, 경제적 효과를 알아보고자 하는 것입니다.

마냥 즐겁지만은 않은 '운하 투어'

이명박씨! 제가 '운하 여행'이 즐겁지 않다고 말한 것은 똑같이 유럽의 운하를 보면서도 당신과 저의 판단이 다르게 결론 날 가능성이 높기 때문입니다. 같은 내용을 보면서도 우리는 왜 서로 다른 생각을 가질까요? 한 국가의 발전은 특유한 역사와 문화 그리고 생활이 오랜 기간 동안 결합된 산물입니다. 특히 유럽의 운하가 발전했던 것은 고유한 자연적인 조건과 이를 이용하려 했던 우여곡절 끝에 나온 것이지요. 그런데도 이런 제반의 조건과 상황에 대한 판단 없이 하나의 사실만을 평면적으로 절단하여 자신의 입맛에만 맞게 포장하려 한다면 이는 대단한 착오입니다.

이명박씨! 당신이 '경부운하' 건설을 주장하면서부터 우리 사회에서는 이 문제를 둘러싼 논란이 일고 있습니다. 논쟁이 발전적으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의견이 있는 당사자들이 모여 토론하고 대화해야 합니다. 그러나 의도적인지 아니면 다른 이유가 있는지는 모르지만 당신과 당신을 추종하는 학자들은 이를 철저히 외면하였습니다. 두 차례의 토론회가 열렸지만 생각이 다른 사람들을 토론자로 초청하지 않았습니다. 아니 토론회가 열린다는 사실조차도 알리지 않았습니다. 당신들이 벌인 토론회이니까 토론자를 누구로 하든 그리 중요한 것은 아니라고 말할 수도 있겠지요. 그런데 두 번째 토론의 제목은 '한반도대운하 쟁점 대토론회'(2007년 2월 7일 프레스센터)입니다. 쟁점이 되는 내용을 토론한다는 것이지요. 그런데 정작 쟁점을 가지고 있는 다른 의견자들이나 그룹은 그 토론회에서 철저히 배제되었습니다. 그러면서 무슨 쟁점 토론회라고 말할 수 있습니까? '경부운하'라는 사회적 논란거리를 제공했다면 다른 의견도 들어보는 것이 맞지 않습니까? 그러나 그런 일은 결코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이젠 백두산을 취수지로 해야할까요

논리가 궁해지면 별별 주장을 다하게 됩니다. 당신을 추종하는 많은 학자(정치적으로 추종하는 것인지, 운하를 추종하는 것인지는 확인할 수 없습니다만)들은 이제 상수원 취수지점을 상류로 이동해야 한다고 합니다. 기특하게도(?) 한강이나 낙동강이 우리나라 국민들의 2/3가 먹는 물이라는 것을 인정하기는 하더군요. 물이 오염되었고 운하를 건설해야 하니까 상수원을 상류로 이동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왜 그렇게 간단한 방법을 지금껏 시행하지 않고 있을까요. 흐르는 물이 오염된다고 취수지점을 상류로 이동해야 한다면 우리나라 대부분 강의 발원지인 강원도 계곡은 모두가 취수지점이 되고 맙니다. 그럴 정도의 수량이 되는지도 확인된 바 없습니다. 그리고 강원도 지역의 물이 고갈된다면 다음에는 어디에서 취수지점을 찾아야 할까요. 그 다음은 백두산인가요.

또한 강변여과수를 만능처럼 주장합니다. 쉽게 말하면 강의 물을 정화시키기 위해 강바닥으로 파이프라인을 설치하여 인근의 강변에 여과된 물을 뽑아 올려 저장하는 방식입니다. 그런데 국민의 2/3가 이런 강변수를 먹을 수 있을까요. 그토록 많은 물을 강변여과수라는 방법으로 생산할 수 있을까요. 국지적이고 지협적인 방법 하나를 들고 나와서 과학과 기술이라는 이름하에 모든 것을 판단하려는 이 졸렬한 태도에 진절머리가 납니다.

논쟁이 가열되면 당신들은 저를 포함해서 경부운하를 반대하는 사람들에게 이런 비난을 퍼부을 것입니다. "보지도 않고, 잘 알지도 못하면서 반대한다"고 말입니다. 자신의 생각에 반대하는 사람들에게 퍼붓는 일종의 마타도어입니다. 그것이 제가 유럽 운하를 방문하는 또 다른 이유입니다. 유감스럽지만 그런 비난을 사전에 차단하고 싶습니다. 우리 사회의 수많은 논쟁이나 쟁점을 대하는 기득권 세력들의 핵심적인 태도는 상대방을 무시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국가적이고 사회적인 낭비가 발생하는 것입니다. 예견된 갈등을 사전에 예방하려 하는 것이 아니라 차단하고 억압하기 때문에 갈등은 오히려 증폭되는 것입니다.

유럽에서 무엇을 배워야 합니까

당신이 별로 좋아하지 않은 환경과 관련하여 이런 문제를 해결하는 원칙이 있습니다. 환경오염을 사전에 발생시키지 않거나 예방하는 '사전 예방의 원칙'입니다. 비단 환경뿐만 아니라 모든 문제가 발생되고 나서는 이를 해결하기가 쉽지 않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문제를 발생시키지 않거나 설사 불가피하게 발생한다할지라도 이를 최소화하는 정책을 수립하는 것입니다. 이 원칙은 환경문제에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라 사회의 모든 문제에도 적용된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정작 '경부운하' 건설 논란은 이런 상식을 벗어나고 있습니다.

이제 당신이 그토록 칭송해 마지않은 '유럽의 경부운하' 베일을 벗겨내야 합니다. 유럽의 나라들이 이용하고 있는 운하를 아무런 조건 없이 그대로 우리 국토에도 적용 가능한 것인지 말입니다. 당신이 평생 업으로 살아왔던 건설이 경부운하에도 그대로 통용될 것인지 확인이 필요합니다. 171㎞인 RMD운하(라인-마인-도나우)는 무려 32년이나 걸렸습니다. 그런데 550㎞ 구간의 경부운하는 불과 4년 만에 건설가능하다고 하니 이를 확인하겠다고 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 아닐런지요. 그것만이 아닙니다. 유럽의 강들은 주로 평지에 흐르는 강입니다. 유속이 완만하고 항상 수량이 풍부합니다. 그런데 우리나라 강들은 평지가 거의 없지요. 상류는 계곡으로 유속이 빠르고 급격합니다. 강의 자연적·지리적 조건의 차이는 내륙 운하건설의 타당성에서 매우 중요한 문제입니다.

유럽은 운하의 나라가 아니라 신재생에너지의 나라

▲ 지난해 11월 13일 오후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한반도대운하연구회 주최 심포지움 '한반도대운하 국운융성의 길'에서 이명박 전 서울시장이 인사말을 마친 뒤 웃으며 연단을 내려오고 있다.
ⓒ 오마이뉴스 권우성

이명박씨! 묻고 싶습니다. 지금 유럽이 운하 때문에 잘사는 나라가 되었고 1인당 GDP가 높아졌습니까? 우리가 유럽에게 고작 운하를 어떻게 건설했는가를 배워야 합니까? 글쎄요. 저는 더 중요한 내용들이 있다고 봅니다. 유럽은 지구상에 존재하는 나라들 중 상대적으로 가장 인간적이고 자연적인 나라들이라고 합니다. 복지사회가 발달했고 친환경적인 정책을 펴고 있기 때문입니다. 21세기의 지구촌이 필요한 내용들을 다른 대륙보다 앞서서 시행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그들의 나라로부터 진정 무언가 배우고자 한다면 복지사회와 환경사회를 구현한 그 정신과 모델들을 눈여겨봐야 하지 않을까요.

환경보전을 주장하면 귀에 따갑도록 따라다니는 수식어가 있습니다. 대안 없이 보전만 주장한다는 것입니다. 대안이 무엇일까요. 새만금 33㎞ 바다를 메우고 나서, 전문가들이 넘치는 국책연구소를 동원해 정부가 내놓은 안 중 대안다운 대안이 있습니까? 개발이 대안입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파괴적 건설이 아니라 창조적 건설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미래를 생각하는 발전을 준비해야 합니다.

이명박씨! 유럽은 운하의 나라가 아니라 신재생에너지의 나라입니다. 운하는 과거입니다. 그러나 신재생에너지는 미래입니다. 햇빛과 바람과 물과 땅을 이용하여 자연 에너지원을 창조하는 산업과 기술을 준비하는 것이 바로 대안입니다. 당신은 경부운하건설 사업으로 70만 명의 일자리를 창출한다고 주장합니다. 백번양보해서 그렇다 치더라도 당신 주장대로 경부운하가 건설되는 4년 후면 이들은 실업자가 됩니다. 안정적인 고용이 될 수 없습니다. 반면 신재생에너지 산업을 국가적 목표로 육성한다면 고용은 안정적입니다. 이런 사례들을 RMD 운하가 통과하는 독일이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왜 그런 대안에 대해서는 애써 눈을 감고 있는지요.

이명박씨, 저도 힐폴슈타인 갑문 앞에 서게 될 것입니다

경부운하는 간단치 않은 난제입니다. 대통령 선거와 맞물려 있기 때문이죠. 아니 대통령 선거를 노리는 것이겠지요. 경부운하를 건설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이제 시간이 갈수록 거침없는 주장을 펼 것입니다. 말이 되든 안 되든, 근거가 있건 없건 간에, 과학적인 규명과는 상관없이 쏟아 부을 것입니다. 아마도 그런 준비를 철저히 하고 있겠지요. 그러나 진실은 국토를 망가트리고 환경을 파괴하는데 있지 않습니다. 21세기에는 더 이상 개발의 시대가 아닙니다. 보전과 발전을 조화롭게 하는데 있습니다.

2006년 10월 24일, 독일 RMD 운하의 꼭대기 해발 406m에 있는 뉘른베르크의 힐폴슈타인 갑문 앞에 선 이명박씨는 "여기에 와보니 경부운하가 꿈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됐다"고 말했습니다. 아마도 저 역시 그 갑문 앞에 서게 될 것 같습니다. 한 지도자의 헛된 망상에 한숨 지면서 말입니다.

덧붙이는 글 | 박진섭 기자는 생태지평연구소 부소장입니다.


태그:#경부운하, #이명박, #한반도대운하, #재앙, #축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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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과 이론이 만나는 연구소 생태지평 부소장입니다. http://ecoin.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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