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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씨가 많이 추워졌네?”
“주말 지나면 더 춥데.”
“누가 그래?”
“기상청.”
“에이~ 그럼 날씨 풀리겠네.”

기상청 체면이 말이 아니다. 작년 내내 황사에 폭우에 기상이변이 많더니, 예보가 맞을 때보다 틀릴 때가 더 많다는 중론이다.(물론 이 수치는 심리적 수치에 기인한다. 현재 기상청의 예보 정확도는 85%를 조금 웃도는 수준) 그러더니 두 번의 폭설 예측이 제대로 틀려버렸다. 물론 다음 수순은 폭설 예보로 인해 주말 여행 약속을 취소한 많은 사람들의 송곳같은 원성이다.(이 같은 원성의 내용에는 ‘수퍼컴퓨터까지 사줬는데’라는 말이 빠지지 않는다)

급기야 기상청 뉴스가 포털 사이트 메인에 오르는 기염을 토했다. ‘기상청 기상기술력 11개국 중 10위’ 세계 10위권 기상 선진국이라는 모토가 무색해지는 순간이었다(참고로 그 문제의 고마운 11위 국가는 러시아다). 곧 이어 네티즌의 거센 질타. 슈퍼컴퓨터가 있는 국가를 대상으로 한 조사이므로 이 순위를 세계 순위로 생각해도 된다는 해명은 자취를 감춰 버린다. 기상청 질타의 현장에서 ‘논외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과학기술의 발전에 따른 예보능력 향상이 가능한가. 최근 5년간 기상청의 단기예보 정확도를 살펴보면 말 그대로 ‘오르락 내리락’이다. 2002년 85.0%이던 정확도가 2003년 87.5%로 올라가더니 2004년도에도 87.5%로 멈추었다가 2005년에는 86.8%로 떨어졌다. 2006년에는 더 낮아진 86.2%다.

사실 슈퍼컴퓨터의 도입은 기상 예측의 효율성 문제다. 계산을 빠르게 한다고 해서 1이 나올 문제가 2가 나오진 않는다. 다만 속도가 빨라진 계산력을 바탕으로 1개의 모델을 적용하던 시간에 2개의 모델을 적용할 수는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기상청 직원을 신으로 내모는 상황을 정당화시킬 수는 없다. 기상청이 있으니 일기예보에 오보가 없어야 한다는 명제는 마찬가지로 경찰청이 있는 국가에서 도둑은 있을 수 없다는 말과도 같다. 한마디로 있을 수 없는 말이라는 것이다.

예보는 예보일 뿐이다. 기상예측을 수치화해서 직원들이 노력하면 그 정확도를 계속적으로 올려나갈 수 있다는 명제가 가능한가? 그렇다면 기상예측이 100% 정확해 지는 것은 단순히 ‘시간의 문제’가 된다. 하지만 지금 내가 내뱉은 한숨이 대기중에 어떻게 퍼져나가는지 그 것이 날씨 변화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어느 누가 예측할 수 있단 말인가.

그 예측이 언제나 들어맞는다면 그것이 과연 예측인가. 그렇다면 이제 우리가 기상청에 요구하는 능력은 신의 영역으로 편입된다. 인간에게 신의 능력을 요구하는 과다한 명령이 어떤 부작용을 가져오는지 살펴볼 수 있었던 사건이 일어난지 겨우 2년도 채 지나지 않았는데 우리는 또다시 과학에게 신의 능력을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슈퍼컴퓨터까지 사줬는데 도대체 왜 못하는거야!”

기상청의 잘못이 없다는 것은 아니다. 기상청은 그 동안 기상청의 예산부족으로 기상정확도가 떨어졌으며 예산이 늘어나면 그만큼 성과도 높아질 것이라고 국민을 기만해왔다. 물론 예산이 기상관계자들의 복리후생을 높임으로서 일에 대한 애착을 강화시켜줄 수 있을 수는 있겠지만 이는 부차적인 성과다.

슈퍼컴퓨터가 1대가 아닌 100대가 되더라도 기상예보가 100% 정확히 맞아떨어질 수는 없으며, 이 사실을 아는 기상청이 단기적 책임을 무마하고자 장비탓을 해왔던 것이 오늘날 기상청에 총체적 고난을 선사한 것이다.

올해 지진이 발생하자 기상청은 지진관측소를 운영중이나 환경개선이 필요하다고 대책을 마련했다. 이와 함께 전체적 기상예보에 대해서는 새로운 기상특보 제도 마련으로 기상재해를 경감하고, 유비쿼터스 기상정보 전파체계로 기상재해를 예방하겠다고 혁신과제를 설명했다.

그 해결방안은 전문인력 보강 및 역량개발이다. 그러나 지진은 예측할 수 없다. 다만 얼마나 빨리 수습하느냐가 관건이다. 그러다 2880억원의 예산이 투입되 개발된 통신해양기상위성이 발사되는 12월이 지나면 기상 예보 혹은 재난에 대해 어떻게 변명하려고 하는지 걱정될 따름이다. 5년전에 비해 증대된 예산만큼 증대되지 않은 정확도에 대해 말이다.

오보대란에서 기상청이 깨달아야 하는 것은 더 이상 기상청 예산 증대가 기상정확도를 높여줄 것이라는 기만을 멈추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우리 국민은 기상이변의 책임을 기상청에만 몰아넣어 마녀재판을 벌이기보다 일회용품 하나 덜 쓰고 나무 하나 더 심어보는 것은 어떨까? 전체적 기상 변화는 미약하게 진행되는 속에서 국지적 변화는 심해질 것이라는 기상학자들의 중론이 모아지는 이 마당에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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