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명의 시민기자가 개의 기사를 작성하였습니다. 시민기자 전환하기
▲ 시오노 나나미의 <로마인 이야기> 1-15권.
ⓒ 한길사

"나는 물론 현실주의자다. 그러나 현실과 타협하는 현실주의자가 아니라 현실을 개혁하려는 현실주의자다."

시오노 나나미 선생은 지난 1995년 봄 한국을 처음으로 방문했을 때 "너무 현실주의적이지 않은가"라는 한 연구자의 질문에 그렇게 말했다.

'현실주의자 시오노 나나미'를 내가 처음 만난 것은 1994년 4월 2일이었다. 이탈리아 로마 중심가에 자리하고 있는 고색창연한 프라자 호텔 로비에서였다. 한국의 출판 사정을 일본에 소개하는 나의 일본 친구, 출판평론가 다테노 아키라씨와 함께였다. 오후 4시에 만나자고 약속이 되었다. 한 시간 정도 이야기가 진행되었을 때 시오노 선생은 그의 책 출판에 관한 모든 걸 한길사에 맡기겠다고 동의했다.

시오노 나나미와의 첫 만남

@BRI@<로마인 이야기>를 비롯해 <바다의 도시 이야기> <나의 친구 마키아벨리> 등 시오노 선생의 저작을 검토한 것은 1993년 가을부터였는데, 당초에 시오노 선생은 한국어판 번역출판에 대해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로마인 이야기>가 막 시작되어, 다른 어떤 것에도 신경쓸 겨를이 없었기 때문이다. 1992년에 시작한 <로마인 이야기>를 1년에 한 권씩 집필해 2006년에 끝내겠다고 공언해놓고 작업을 진행하고 있던 저자로서는 사실 다른 문제에는 관심을 가질 수 없었을 것이다.

처음 우리의 뜻을 전했을 때 시오노 선생은 <로마인 이야기>를 끝내고 보자 했다. 그러나 나는 한길사가 그동안 출판했던 책들의 내용을 설명하면서, 일단 직접 만나서 말씀드리고 싶다 했다.

그렇게 해서 그 봄날 하오에 나는 시오노 나나미 선생을 직접 대면하게 되었는데, 나에게 "왜 내 책을 내려고 하나요"라고 물었고 나는 이렇게 대답했다. "우리 출판사는 선생의 책들을 한국의 젊은이들에게 읽히고 싶습니다. 또한 선생의 책들을 '베스트셀러'가 아니라 '스테디셀러'로 만들고 싶습니다."

그날 시오노 선생과의 만남은 정확하게 두 시간 만에 끝났다. 시오노 선생을 배웅하고 나는 다테노씨의 손을 잡고 말했다. "한번 해 봅시다." 6개월 이상 끌었던 '교섭'이 이윽고 끝난 것이다.

나는 왜 <로마인이야기> 출판을 결심했나

내가 말한 '젊은 독자' 또는 '스테디셀러'라는 개념은 딱히 선생의 책들에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책 만드는 지향의 한 기저라고도 할 수 있다.

'젊은 독자'란 신체적인 나이의 문제가 아니라 정신적·사상적 이미지를 함의하는 것이고, '스테디셀러'란 일시적으로 읽히기보다는 장기간에 걸쳐 읽히면서 기억되고 논의되는 그런 주제와 콘텐츠를 말할 것이다. '한 권의 책'으로 한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세계관이 형성될 것이고, 그 세계관으로 그 시대는 새로운 차원으로 진전될 것이다.

1970년대부터 책 만드는 일을 해온 나와 한길사는 1980년대의 치열한 민족주의적이고 사회과학적인 인식과 실천의 시대를 넘어 90년대에 들어서면서 새로운 현상과 과제를 안게 된다. 세계화라는 문명사적 전환기에 우리 국가사회가 들어서게 되었고, 이 전환기에 우리는 새로운 책의 세계를 모색해야 했다. 세계의 현실이 격변하고 시대와 사상이 또 다른 모습으로 변전하면서 나와 우리 출판사도 달라져야 하는 것이었다.

시오노 나나미 또는 <로마인 이야기> 등은 새롭게 달라지는 세계와 삶의 현장에서 만나게 되는 저자와 책들이었다고 할 수 있다. 1996년부터 우리가 펴내는 '한길그레이트북스'와 같은, 일련의 인문학적 고전들의 재발견·재해석이라는 기획과 더불어 우리가 추구하는 책의 또 다른 보편주의적 지향이었다. 70년대와 80년대의 치열한 운동과 민주화의 일정한 성취 이후에 급속하게 진전되는 세계화는, 출판인에게는 당연히 새로운 삶의 이론적 틀을 제시해야 할 과제가 주어지는 것이었다.

처음에 시오노 나나미의 책을 기획할 때 주변의 많은 지식인들은 부정적이었다. 과연 읽히겠느냐는 것이었고, 그것이 어떤 의미를 갖느냐에 대해서도 의문을 표했다.

독자들 50명에게 원고를 미리 읽게 하여 토론해보는 이른바 '시독회'라는 것을 실험해보는 등 여러 '연출'을 통해서 책의 내용과 가치를 알리는 일을 하기도 했지만, 독자들의 반응이 그렇게 거세게 일어날 줄은 우리 스스로도 정말 기대하지도 않았고 예측할 수도 없었다. 한국에서 1995년부터 출판되기 시작한 <로마인 이야기>는 우리의 기대와 예측을 일거에 뛰어넘어 한국인과 한국사회의 의식과 행동을 변화시키는 강력한 모티프가 되었다.

무엇이 이렇게 만들었을까. 경이로운 독자들의 반응과 열독을 '시오노 현상'이라고 규정해보기도 했지만, 한국사회와 한국인들이 이미 <로마인 이야기> 등과 같은 책 또는 이론과 사상을 요구하고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한 권의 책'이란 한 시대 한 사회와 더불어, 그 시대 그 사회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희망 또는 의식의 반영으로 존재하는 것이다. 여기에는 물론 시오노 나나미라는 탁월한 저술가의 글 솜씨, 순발력 있고 설득력 있는 기지와 관점이 뒷받침했을 것이다.

나는 <로마인 이야기>를 비롯한 선생의 책을 만들면서, 한길사가 70년대와 80년대에 펴낸 송건호 선생의 <한국 민족주의의 탐구>, 리영희 선생의 <우상과 이성>, 박현채 선생의 <민족경제론>, 그리고 <해방전후사의 인식> 등을 출판할 때와 비슷한 체험을 했다.

70~80년대의 그런 책들이 그 같은 반응을 불러일으킨 것은 그 시대를 살아가는 독자들의 소망과 지향에 나름대로 호응할 수 있었기 때문이 아닌가. 저자들은 책을 쓰고 출판인과 출판사는 책을 만들지만, 그것을 하나의 사회적 현상으로 존재하게 하는 데는 그 시대가 지향하는 시대정신이 그 책의 운명과 위상을 창출해내는 근거가 되는 것이다.

ⓒ 한길사
리영희, 박현채, 송건호, 그리고 시오노 나나미

1993년 가을부터 검토가 시작되었으니까 <로마인 이야기>를 완성시키는 데는 햇수로 14년이 걸린 셈이다. 저자가 15권을 1년에 한 권씩 집필해 그렇기도 하지만 우리가 펴낸 책 가운데서도 가장 오래 걸린 기획이 되었다. 한 시대에 걸쳐서 진전되는 '책의 문화'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오랜 기간에 걸쳐 <로마인 이야기>를 만들면서 정말 많은 걸 '학습'하고 '실험'해보고 '각성'하고 있는 중이다.

우선 나는 시오노 나나미라는 걸출한 저자와 만나고 토론하는 행운을 누리고 있다. 한 프로 저술가의 빛나는 성찰과 경이로운 언설이 책 만드는 사람들을 행복하게 만든다. 그의 다른 책들도 그러하지만, 1년에 한 권씩 만들어내는 <로마인 이야기>는 연례 축제였다. 새 책을 기다리고 있는 독자들과 더불어 새 책의 내용과 전개에 우리 자신들도 한껏 고양되었다.

1994년 로마에서의 첫 만남 이후 나는 시오노 선생을 여덟 차례 만났다. 그때마다 선생은 신선한 화두를 던졌고, 우리들의 지적 호기심을 흔들어놓았다.

95년 봄 첫 방한 때였다. 중앙청 청사로 사용되던 일제 총독부 건물이 철거되기 직전이었는데, 한 기자가 "저 총독부 건물의 철거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냐"고 물었다. 그는 한 마디로 대답했다. "당연히 헐어야 한다. 그러나 50년 전에 허는 것이 옳았다고 생각한다."

1997년 가을에 로마에 갔을 때 내가 물었다. "팍스 로마나(로마에 의한 평화)와 함께 팍스 아메리카나(미국에 의한 평화)라는 말을 쓰고 있는데, '팍스 아메리카나'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그는 단호하게 말했다. "팍스 아메리카나? 그런 말이 어떻게 성립하나. 미국은 자기주장만 하는 나라다. 진정한 세계평화를 미국은 염두에 두지 않는다." 2006년 12월 총 15권의 집필을 끝낸 후 도쿄에서 한국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나는 같은 질문을 다시 했다. 시오노 선생은 역시 같은 답변을 했다.

시대와 상황이 달라지면 삶도 당연히 달라질 것이다. <나의 친구 마키아벨리>를 만나면서 학생운동에 열심이던 그가 스스로 달라졌다고 했지만, 학생운동에 열심이었기 때문에 스스로 달라질 수 있었고, 학생운동을 하지 못했던 사람이 보지 못하던 것을 볼 수 있었을 것이다. 그의 연구와 성찰적 여정은 그의 경험을 더욱 현실적이고 창조적인 것으로 발전시킬 수 있었을 것이다.

나는 선생을 만날 때마다 '정말 프로다'라는 생각을 하곤 했는데, 95년 방한 때 기자들을 대하는 태도에서도 확인할 수 있었다. 일간지 기자들과 주간지·월간지 기자들을 만날 때마다 옷을 바꿔 입고 나타났다. 일간신문을 읽는 독자들이 주간지·월간지도 볼 텐데, 똑같은 옷을 입은 사진이 여기저기 실린다면, 그건 독자를 배려하는 저자의 자세가 아니라는 것이었다.

▲ 기자회견장에서의 시오노 나나미(좌)와 김언호 한길사 대표(우).
ⓒ 한길사
"나는 나의 <로마인 이야기>를 쓰고 있다"

저자가 자기 작품에 대해서 이렇다 저렇다 '해설'과 '주장'을 많이 하는 것도 독자의 해석 역량을 축소시키는 결과를 가져온다고 했다. 독자는 자기 나름대로 읽고 해석할 권리가 있다는 것이다. 자기는 쓰지만 읽는 것은 독자라는 것이다. <로마인 이야기> 제1권 '독자 여러분께'에서 선생은 "자, 그럼 나는 쓰기 시작할 테니, 여러분은 읽기 시작하세요"라고 쓰고 있다. 시오노는 일관되게 '서술'할 뿐이지 '평가'하고 '주장'하거나 '강요'하지 않겠다고 말하고 있다.

제15권의 '책 끝에'에서 그는 말하고 있다. "나는 나 자신이 로마인을 알고 싶다는 생각에서 <로마인 이야기>를 썼다. 다 쓰고 난 지금은 진심으로 '로마인을 알겠다'고 말할 수 있다. 그리고 독자들도 다 읽고 나서 '알겠다'고 생각해준다면, 나에게 그보다 더 큰 기쁨은 없을 것이다. 책이란 저자가 쓰고, 출판사가 만들고, 그것을 독자가 읽어야만 비로소 성립되는 매체지만, 이 삼자를 연결하는 붉은 선이 바로 '마음을 공유하는' 것이니까."

선생은 늘 말하고 있다. "나는 나의 <로마인 이야기>를 쓰고 있다"고. 몸젠의 로마사가 있고 기번의 로마사가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시오노 나나미의 로마사를 쓴다는 것이었다.

시오노 선생은 1996년에 로마에서 나에게 말했다. "나는 로마인처럼 살면서 <로마인 이야기>를 쓰고 있다. 아침 7시에 일어나서 아들과 식사준비를 하고 8시 30분부터 1시 30분까지 집필한다. 점심 후에 한두 시간 다시 일한다. 오후 4시엔 반드시 하루 일을 끝낸다. 나는 로마 사람들처럼 하루 5시간 정도 일한다."

선생은 다시 말했다. "나의 책상에는 스탠드가 없다. 나는 나 스스로 부지런하다고 생각한다." 로마로 선생을 방문해 만날 때는 늘 오후 4시 같은 호텔에서였는데, 이는 그가 4시에 일을 끝내기 때문이다. 집도 프라자 호텔과 아주 가깝다. <로마인 이야기>를 쓸 때 그는 철저하게 자신을 관리하고 시간을 관리하는 것이었다.

그때 <로마인 이야기> 제5권인 '율리우스 카이사르' 하편을 집필하고 있었는데, "카이사르를 끝내고 비행기를 타고 싶다"고 했다. "독자들은 내가 얼마나 카이사르를 좋아하는지를 곧 알게 될 것이다." 첫 방한 때 <로마인 이야기>를 쓰면서부터는 비행기 타기가 주저된다는 말을 하기도 했다. "역사를 쓰는 것은 역사와 맹렬히 투쟁하는 것 같다"고 했지만, 선생은 그만큼 혼신을 다해, 긍지를 가지고 <로마인 이야기>의 집필에 나서고 있었다. 또 역사를 일부러 왜곡시키기란 정말 어렵다는 말을 한 적도 있다.

<로마인 이야기>는 200자 원고지로 2만3000매 정도의 분량이다. "나는 만년필주의자다"고 말하기도 했다. 그는 이 장대한 원고를 만년필로 써냈다. 선생의 서재 책상 위에는 만년필 한 자루가 놓여 있었다.

일본 사람이 쓰기 때문에 용납할 수 없다고?

1970년대 이후 책을 만들면서, 나는 '이것 아니면 저것'이라는 이분법적 권위주의를 숱하게 경험했다. 책에 대한 흑백논리이기도 하다. '이런 책은 된다, 저런 책은 안 된다'는 식이다.

나는 출판인들과 함께 권위주의적인 출판관을 비판하는 성명을 발표하는 일에 나서기도 했는데, 이런 책이면 어떻고 저런 책이면 어떠냐는 열린 자세를 견지하고 싶다. 이런 책 저런 책, 이런 이론 저런 이론들이 함께 어울리면서 또 다른 창조적인 이론과 사상, 더 새로운 콘텐츠를 담아내는 책의 문화가 창출되는 것이다.

아주 초기의 일이지만, 일본 사람이 쓰기 때문에 용납할 수 없다는 주장을 목소리 높이는 '지식인'도 있었다. 제대로 읽어보지도 않고 평가하는 경우를 보고 우리는 역자들과 함께 하는 자리에서 안타까워한 적도 있다. 한 권의 책으로 모든 걸 해결·해석하려는 발상이야말로 후진적이고 권위주의적이다.

▲ <로마인 이야기> 15권 표지.
ⓒ 한길사
'시오노 나나미'와 <로마인 이야기>가 우리사회와 한국인에게 제시한 메시지 또는 문제의식은 여러 차원에서 논의할 수 있겠지만, 책을 만드는 현장에서 체득하게 되는 몇 가지를 말하고 싶다.

무엇보다도, 열린 세계관 또는 열어놓고 사는 삶이다. 고대 로마 문명이 실험하고 성취해낸 '개방주의'야말로 오늘 우리 국가사회와 한국인 공동체가 취하고 지향해야 할 삶의 방식과 자세라고 할 것이다. 세계를 향해 스스로를 열어놓는 '용기'야말로 이 글로벌 시대에 확보해야 할 전략적 덕목이다.

세계와 더불어 사는 자세, 이웃과 함께 걸어감이 우리 자신을 더욱 키울 것이다. 시오노가 '연인'으로 삼고 있는 카이사르는 집권하자마자 로마를 둘러싸고 있던 성곽을 허물어버리는 용기와 결단을 보여주었다. 그러나 로마는 뒷날 성곽을 다시 구축하는데, 로마의 진면목인 개방주의에 반하는 그 성곽의 구축으로 로마는 쇠망하기 시작했다고 시오노는 보는 것이다.

시오노는 바로 이런 역사를 '서술'하고 있다. 우리 국가사회가 90년대부터 글로벌 시대로 본격 진입하지만, 국제화시대·개방화시대는 문명의 명백한 대세이고, 이것을 적극적으로 도모하는 국가사회적 정책의 구현과 실천이 한국인에게 요구된다 할 것이다.

<로마인 이야기>는 진정한 지도자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오늘의 절실한 과제가 '진정한 리더십'의 확립이라면, <로마인 이야기> 전권을 통해서 우리는 그걸 구체적으로 학습할 수 있다. 시오노는 지도자에게 요구되는 다섯 가지 자질로서 지성·설득력·지구력·자제력·지속적 의지를 들고 있지만, '사적 리더십'이 아니라 '공적 리더십'이란 개념을 나의 '독후감'으로 말하고 싶다.

고대 로마의 지도자들은 사복을 채우려 하지 않았다. 그들은 개인의 이익을 도모하기보다 공공의 이익과 연관되는 인프라를 구축했다. 개인적 축재보다는 관용정신으로 국민들이 더불어 누리는 인프라를 구축하는 지도자들이 로마를 이끌었다는 사실을 시오노는 계속 강조하고 있다.

로마의 초석을 닦은 카이사르의 탁월한 모습이란 무엇일까. 카이사르는 자기의 정적 편에서 자기와 싸웠던 군인들에게 과감하게 자유를 허용했다. 진정한 리더십이란 선택을 강요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선택하도록 한다.

로마인과 카이사르가 한국에 던지는 화두는

<로마인 이야기>가 던진 또 하나의 화두는 '노블레스 오블리주'와 ‘인프라 정신’이다.

가진 자들의 책무, 힘 있는 자들의 봉사와 헌신 문제가 지금 우리사회의 중요한 과제로 제기되고 있지만, 이는 분명 <로마인 이야기>가 던진 사회적 어젠다라고 할 것이다. 시오노는 <로마인 이야기> 제1권을 '로마는 하루아침에 이루어지지 않았다'고 했고, 제10권을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고 했다. 개인적 존재가 아니라 사회기반시설과 제도라는 인프라를 주인공으로 내세우면서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로마 또는 이탈리아를 여행하면서 2천 년, 2천5백 년 전에 닦고 세운 그 길과 다리 위로 오늘도 차와 사람이 다니고 있음에 크게 놀란다. 고대 로마인들의 인프라 정신이야말로 오늘 이 땅의 지도자들과 공인들이 갖추어야 할 '노블레스 오블리주' 또는 인프라 구축 정신이다. "사람이 사람답게 살기 위해 필요한" 인프라는 로마인들의 개방성·실용성·보편성의 산물이자 그 덕목들을 떠받드는 기반이 된다.

나는 로마를 여행하면서 무엇보다도 먼저 기원전 312년 아피우스 클라우디우스라는 지도자가 건설했다는 '아피아 가도'를 걸어본 적이 있다.

물론 로마인들의 인프라 정신은 도로·수도와 같은 하드 인프라뿐만 아니라 의료와 교육과 같은 소프트 인프라를 아울러 구현했다. 로마의 지도자들은 피라미드나 베르사유 궁전 같은 걸 짓지 않는 대신 공중이 함께 이용할 수 있는 공공건물을 지었다고 도쿄 기자회견에서 시오노 선생은 다시 강조했다. 공생(共生)의 세계를 그들은 구현한 것이었다. 이 공생의 철학을, 가진 자들이 앞장서서 구현하는 것이었다.

독자와 생각을 공유하는 스킨십운동

1993년 이후 <로마인 이야기> 만들기는 동시대인들과 '더불어' 진행되어왔다고 나는 생각하고 있다. 저자는 책을 쓰고 우리는 책을 만들어 독자들에게 공급했다. <로마인 이야기>를 만들면서 참으로 많은 독자들의 반응과 교감하고 있다. 지금 <로마인 이야기>를 읽으면서 로마로 가고 있다는 독자들도 있었다. 뻔히 알면서도 하반기쯤부터 다음 책이 언제 나오느냐고 성원하는 독자들의 전화가 잇따랐다.

독자와 생각을 주고받고 '공유'하는 일이란 출판인들이 누릴 수 있는 최고의 행복이다. 책을 매개로 이렇게 많은 동시대인들이 정신적 스킨십을 할 수 있는 '독서현상'에 대해서 우리 스스로 경이로워하기도 한다.

저 80년대 중·후반에 나와 우리 출판사는 저자·독자들과 더불어 역사강좌·사회과학강좌·역사기행·독자수련회 등 일련의 교육프로그램을 통해 한 시대의 정신과 사상을 깊이 탐구하고 생각을 공유하는 정신적 스킨십운동을 펼친 바 있지만, <로마인 이야기>를 매개로 우리는 또 하나의 지적 연대운동을 진행하고 있다.

독후감 경연대회를 열어 젊은 독자들이 책을 읽고 로마 역사현장을 답사하는 행사들을 진행시키고 있다. 학생들의 독서와 현장 체험은 시오노 선생과 당초에 한 약속을 이행하는 것이기도 하다. 한국인간개발연구원과 매일경제신문사와 손잡고 세미나와 강좌를 기획하기도 했다. 여러 언론들이 '특집'으로 시오노와 <로마인 이야기>를 다루면서 이 시대와 사회가 요구하는 지적·이론적 어젠다를 제시했다. 완간을 맞아 또 다른 보다 종합적인 프로그램을 생각 중이다.

시오노의 <로마인 이야기>에 대한 재미있는 또 하나의 풍경을 나는 환기시키고 싶다. 이를테면 어떤 국가사회적 현상과 이념에 대한 시각의 방향 또는 호오가 심하게 충돌하는 것이 우리 사회의 현실이다. 사회적 이슈와 이데올로기에 대한 관용적 자세를 찾아보기 힘들다. 정치적인 문제를 바라보는 의식 또한 극단적으로 갈등한다.

그런데 <로마인 이야기>에 대해서는 이른바 보수든 진보든 전적으로 '동의'한다. 시민운동의 지도자든 기업의 CEO든, 정치인이든 종교계 인사든, 남자든 여자든, 젊은이든 연장자든, <로마인 이야기>를 통해 재미와 교훈을 아울러 얻을 수 있다고 동의를 넘어 일치하고 있다. 많은 학부모들이 자녀들에게 선물하고, 선배들이 후배들에게 권독하고 있다.

사람들은 21세기 이 글로벌 시대에 <로마인 이야기>는, 한반도라는 이 작은 국토영역에서, 짧은 시간에 압축성장을 통해 아시아의 주요 국가로 등장한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너무나 많다는 교훈적 독후감을 내놓고 있다. 특히 다섯 번 열 번씩 반복해서 읽은 '마니아 독자'들이 많다는 것도 <로마인 이야기>를 둘러싼 '독서현상·독서풍경'이다.

어렵게 성취해낸 성장과 발전을 지속시키는 과제가 사실은 더욱 주요하다. 많은 연구자들이 로마의 패망과 쇠망에 주목하고 있지만, 향후 10년·20년 후, 100년·200년 후 우리 국가사회의 존재력과 경쟁력은 과연 어떻게 될 것인지, 때로는 두렵기도 하다. 그 광대한 제국이 무너져 내리는 슬픈 역사의 노을을 시오노 나나미는 그려내보이고 있는 것이다. '성자필쇠'라는 역사의 운명을 우리는 어떻게 해석해낼 것인가 말이다. <로마인 이야기>는 오늘 <로마인 이야기>를 넘어서서 우리들에게 진지하게 말하고 있는 것이다. <로마인 이야기>를 14년 만에 끝낸 한 출판인으로서 나는 우리가 서 있는 이 땅의 현실과 운명을 로마인의 그것과 병치시켜보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세계관 또는 생각의 선 자리를 넘어서서 <로마인 이야기>가 제시하는 국가사회적 어젠다 또는 삶에의 메시지에 동의하고 있음에 나는 또한 고무되고 있다.

책 만드는 일은 즐겁다!

▲ <한길사> 김언호 대표.
ⓒ 한길사
시오노 나나미 선생과 <로마인 이야기>, 그리고 그의 일련의 책들을 존재하게 하는 데 참여한 일단의 지적 일꾼들의 존재를 나는 환기시키고 싶다. <로마인 이야기> 등을 번역한 김석희 선생과 <나의 친구 마키아벨리>를 번역한 오정환 선생, <바다의 도시 이야기>를 번역한 정도영 선생이 있다.

시오노 선생의 책을 놓고 오정환·김석희 선생과 검토하는 작업에 같이 참여한 정도영 선생은 이미 고인이 되었다. 홉스봄의 <자본의 시대>와 슘페터의 <10대 경제학자>를 번역한 정도영 선생은 언론계의 대선배로서 대단한 독서인이었다. 이밖에 에세이집 <남자들에게>를 번역한 이현진씨와 '전쟁 3부작'을 번역한 최은석씨, <나의 인생은 영화관에서 시작되었다>를 번역한 양억관씨와 <이탈리아에서 보낸 편지>를 번역한 백은실씨가 있다.

그리고 시오노 선생과 만나는 현장에 늘 나와 함께했던 다테노씨가 있다. 다테노씨는 '한길사 도쿄특파원'으로서 우리를 도와주고 있다. 책을 위해 구체적으로 일한 편집자들도 있다. 그들도 여럿 바뀌었다. 14년이란 세월은 사람들의 삶의 방식과 조건도 바꿔놓았다.

우리는 2월 13일에 '출판기념' 파티를 열기로 했다. 책을 번역한 사람들과 만든 사람들, 책을 읽을 수 있도록 공급해준 사람들과 책을 소개해준 언론인들과 더불어, 또 우리들 행사에 참여한 독자들이 한자리에 모여, 한 시대를 뒤흔들어놓은 아름다운 책을 축하하기로 했다. <로마인 이야기> <바다의 도시 이야기> <나의 친구 마키아벨리> 등 시오노 선생의 많은 책들과 함께 했던 14년을 추억해보고, 한 시대 한 사회에서 책과 출판문화란 어떤 의미가 있는가를 모여서 한번 즐겁게 이야기해보자는 것이다. 시오노 선생이 다시 한국에 오게 되면 나는 이 모임을 다시 한 번 조직하고 싶다.

책 만드는 일은 즐겁고, 책 만드는 사람들은 행복하다!

로마인 이야기 1 (1판 1쇄) - 로마는 하루아침에 이루어지지 않았다

시오노 나나미 지음, 김석희 옮김, 한길사(1995)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주기

진실과 정의를 추구하는 오마이뉴스를 후원해주세요!

후원문의 : 010-3270-3828 / 02-733-5505 (내선 0)

오마이뉴스 후원하기

"모든 시민은 기자다!" 오마이뉴스 편집부의 뉴스 아이디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