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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두환(일해)공원반대경남대책위, 새천년생명의숲지키기합천군민운동본부, 삼청교육대피해자모임, 민노당경남도당 소속 지역주민들은 18일 오후 서울 연희동 전두환 전 대통령 집 부근에서 삭발식과 공개질의서를 채택하는 등 '일해공원' 추진 중단을 촉구했다.
ⓒ 오마이뉴스 권우성

@BRI@이 편지글은 제 아들 정겨울이 쓴 것입니다. 사정이 여의치 않아 아버지인 제가 대신 올립니다... 기자 주

합천군 심의조 군수님께.

저희는 합천군 적중면에 있는 원경고등학교에 다니는 학생입니다. 군수님께서 '새천년 생명의 숲'이라는 공원 이름을 전두환 전 대통령의 호를 따서 '일해공원'으로 바꾸려고 하신다는 이야기를 듣고 합천에 있는 학교를 다니는 학생으로서 저희끼리 토론도 해보고 전체 회의에서 서로의 생각을 나눠보기도 했습니다.

저희는 전두환 전 대통령과 관련된 사건들을 직접 체험한 세대는 아닙니다. 저희 중에는 개인적인 관심사에 따라 '광주민주화운동'이라든지, '삼청교육대'라든지, '언론탄압', '자기 말 듣지 않는 사람을 고문하고 심지어는 죽이기', '부정하고 불의한 돈 긁어모으기', '세금내지 않기' 등등에 대해 깊이 알고 있어서 분노하는 친구도 있고, 그냥 역사상식 정도로 인식하고 있는 친구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군수님께서 일해공원을 세우려고 하시는 바람에 좀더 깊이 있게 문제를 바라보게 되었습니다.

직접 체험한 세대는 아니지만...

▲ 태극기에 쌓인 수많은 주검들. 전두환 전 대통령이 합천에서 기릴만한 사람이라면 저 사람들은 다 죽어 마땅한 사람이라는 말인가요?
ⓒ 5.18기념관 자료집에서
▲ 죽은 사람을 넣는 나무관 옆으로 저희 또래로 보이는 시체들이 즐비합니다. 이 어린 사람들이 왜 죽어야 했는지요?
ⓒ 5.18기념관 자료집에서
군수님께서는 전두환 전 대통령이 합천 출신이라는 이유로 합천을 드높이기 위해 공원 이름에 그분의 호를 붙이자는 것이겠지요. 그런데 군수님. 그러려면 "전두환 전 대통령은 훌륭한 분이다"하고 국민들이 자랑스러워하는 사람이어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저희는 전두환 전 대통령이 훌륭한 사람이라고 생각할 수가 없습니다. 저희는 광주 금남로에서 도청 앞 광장에서 아무 죄도 없는 시민들이 총에 맞아 피를 흘리며 죽는 사진도 봤고, 드라마나 다큐멘터리도 많이 봤습니다.

<이제는 말할 수 있다>라는 TV프로그램에서 '삼청교육대'에 억울하게 끌려간 사람들이 피맺힌 절규를 하는 것도 보았고, 국민의 알권리를 억압하고 언론을 폭력으로 다스린 것도 보았습니다.

대통령 임기가 끝나가는 말년에는 기업대표를 불러다가 협박해서 수천억대의 돈을 긁어모아서 자기 호를 딴 일해재단을 만들려고 했고, 자기는 "단돈 29만원밖에 없다"고 하면서 세금도 내지 않고 있으면서 툭하면 숨겨놓은 돈이 발각돼서 조사를 받는 사람이 전두환 전 대통령이기 때문입니다.

그런 잘못을 저지르면서도 사과는커녕 뻔뻔스럽게 거짓말이나 일삼는 사람을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것 같아서 저희는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군수님께서 어느 인터뷰에서 과거에 너무 매달리지 말라는 식의 말씀을 하셨더군요. 과거보다는 미래를 보자는 뜻이겠지요. 하지만 저희는 이런 생각을 가지신 군수님께 꼭 여쭙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그러면 역사공부는 왜 하는 것인가" 하고요.

전두환 전 대통령 한 사람 때문에 부모형제를 잃은 사람이 몇 명이나 되는지, 혹은 장애인으로 살아가는 사람이 얼마나 되는지 아시는지요? 군수님도 그 사람들이 다 빨갱이거나 나쁜 사람들이라서 그런 일을 당했다고 생각하시는지요?

과거 매달리지 말라고요? 역사공부 왜 하나요?

▲ 허화평씨에 따르면 전두환 전 대통령도 최근 종영된 MBC 드라마 <제5공화국>을 즐겨봤다고 한다. 사진은 드라마의 한 장면.
ⓒ MBC 홈페이지
저희는 광주민주화운동에 대해서 국가가 법률로 민주화운동이었음을 인정했고, 따라서 전두환 전 대통령에게도 그 죄를 물어서 무기징역을 선고한 사실을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군수님은 전두환 전 대통령이 훌륭한 인물인 듯 대대로 기리게 될 공원 이름에 그분의 호를 붙여서 칭찬하려고 합니다.

저희가 혼란스러워 하는 것은 바로 이 점 때문입니다. 국가가 맞는지, 군수님이 맞는지 도대체 어느 것이 진실인지 모르겠습니다. 우리가 배웠고, 알고 있고, 보아온 것들이 모두 군수님 앞에서는 거짓인 것처럼 느껴집니다.

사람마다 생각이 다를 수 있고 그 다름의 차이는 존중해야 한다고 배우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군수님께서는 우리 생각과 '다른 일'을 하신 것이 아니라 명백히 '틀린 일'을 하신 것 같습니다. 아직 배우는 저희가 봐도 심각하게 틀린 일입니다.

군수님, 망월동 묘지를 가보셨는지요? 그 숱한 죽음들을 우리에게 어떻게 설명하실 수 있는지요? 군수님께서 지금 하시는 일을 그 영령들은 어떻게 바라보실 거 같은지요? 그 가족들은 또 어떤 생각이 들겠는지요?

어린 저희도 그 정도의 도리는 알겠는데 군수님은 무슨 연유로 이런 일을 하시는지요? 군수님. 광주는 우리의 조국이 아닌지요? 군수님께서 지금 하시는 일은 정의롭지도 않고, 오히려 지역을 분열시키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군민의 대표이신 군수님께서 합천군민인 저희를 너무 부끄럽게 만들고 있습니다. 어디에 가서 합천에 있는 학교를 다닌다고 말하기가 창피합니다. 군수님께서도 저희 같은 손자나 손녀가 있을 테지요. 제발 생각을 바꿔주셔서 정의가 무엇인지, 올바른 역사가 무엇인지, 참된 도리가 무엇인지 알게 해주시기를 간절히, 정말 간절히 바랍니다.

2007년 2월 9일
경남 합천군 원경고등학교 총학생회장 정겨울 올림

▲ 12.12 및 5.18사건 선고공판이 열린 지난 96년 8월 전두환, 노태우 두 전직 대통령이 피고인 신분으로 재판시작에 앞서 기립해 있다.
ⓒ 연합뉴스

태그:#일해재단, #전두환, #합천군수, #심의조, #광주민주화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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