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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콩잎을 어떻게 먹느냐, 콩잎을 대체 무슨 맛으로 먹느냐
ⓒ 이종찬
경상도 넘들 참 불쌍하당게
아, 오죽 먹을 게 없었으모 콩잎을 다 먹더랑게

풀뿌리 나무뿌리 파먹던 가난한 보릿고개
보리문둥이들의 훌륭한 밑반찬이 되었던 짭쪼롬한 콩잎

황토 파 먹고 갯펄 파 먹다 똥구녕 찢어지는 흉년고개
가난한 밥상 푸짐하게 채워주었던 매콤한 콩잎

너는 맨밥 놓인 밥상을 받아보았느냐
소태 콩잎 너무 그리워 펑펑 울어본 적이 있느냐
- 이소리, '콩잎장아찌를 먹으며' 모두


▲ 경상도 사람들의 가난한 밥상 위에 올라 물에 말아 밍숭밍숭한 밥맛을 짭쪼롬하게 돋궈주던 콩잎장아찌
ⓒ 이종찬
▲ 입맛이 별로 없을 때 장독대에서 꺼내 한 잎 한 잎 밥 위에 올려 먹으면 백 가지 반찬이 부럽지 않는 그 감칠맛 나는 콩잎장아찌
ⓒ 이종찬
백 가지 반찬이 부럽지 않는 감칠맛 나는 콩잎장아찌

시꺼먼 꽁보리밥 우물물에 말아 끼니를 때우던 허기진 보릿고개. 기름진 평야가 별로 없는 경상도 사람들의 가난한 밥상 위에 올라 물에 말아 밍숭밍숭한 밥맛을 짭쪼롬하게 돋궈주던 콩잎장아찌. 입맛이 별로 없을 때 장독대에서 꺼내 한 잎 한 잎 밥 위에 올려 먹으면 백 가지 반찬이 부럽지 않는 그 감칠맛 나는 콩잎장아찌.

반찬이 별로 없을 때 된장에 박은 푸른 콩잎장아찌에 매운 풋고추 둘둘 말아 물에 만 밥 한 숟갈 입에 넣고 한 입 깨물면 금세 입 속 가득 구수하고 향긋하게 퍼지는 그 독특하고도 깊은 맛을 가진 콩잎장아찌. 겨울철 입맛이 없을 때 멧젓과 고춧가루로 버무린 양념장에 한 잎 한 잎 무쳐 먹으면 톡톡 쏘는 감칠맛이 그만인 노오란 콩잎장아찌.

오뉴월, 논두렁에 피어나는 푸른 잎은 장독대 속에 든 된장에 박아 넣고, 가을날 노랗게 물든 잎은 차곡차곡 묶어 장독대 속 소금물에 절여두었다가 양념장에 무치는 콩잎장아찌. 콩잎장아찌는 예로부터 전라도에서는 맛 볼 수 없는 경상도 특유의 음식이자 가난한 시절 배고픈 추억이 서린 경상도에서 빼놓을 수 없었던 밑반찬이었다.

하지만 전라도 사람들 일부는 지금도 콩잎을 맛나게 먹는 경상도 사람들을 바라보며 의아해 한다. '콩잎을 어떻게 먹느냐, 콩잎을 대체 무슨 맛으로 먹느냐'는 투다. 하긴 드넓은 평야가 많아 굳이 콩잎까지 따먹지 않더라도 먹을거리가 경상도보다는 비교적 많았던 전라도 사람들이 볼 때에는 그럴 만도 하다.

▲ 콩잎장아찌는 예로부터 전라도에서는 맛 볼 수 없는 경상도 특유의 음식
ⓒ 이종찬
콩잎, 경상도 사람들에게 훌륭한 먹을거리이자 약재

1960년대 끝자락. 내가 초등학교 4~5학년에 다닐 무렵, 우리 마을 어머니들은 여름이면 논두렁에 심어놓은 푸른 콩잎을 따고, 가을이면 노랗게 물든 콩잎을 따서 차곡차곡 포개 여러 개의 다발을 만들었다. 그리고 장독대에 소금물을 부어 그 속에 콩잎 다발을 넣어 며칠 동안 푹 절였다.

그렇게 콩잎이 부드럽게 삭으면 마을 어머니들은 푸른 콩잎은 장독대 된장에 박아 넣었다가 여름철 입맛이 없을 때마다 꺼내 먹었고, 노랗게 단풍 든 콩잎은 그대로 소금물에 담가두었다가 겨울철에서 이듬해 초여름까지 조금씩 꺼내 멧젓과 고춧가루, 빻은 마을, 잔파, 다진 생강 등을 버무린 양념에 무쳐 김치처럼 먹었다.

나는 어릴 때부터 콩잎을 참 좋아했다. 특히 반찬이 별로 없고 입맛조차 없는 날, 쌀이 조금 섞인 보리밥을 물에 대충 말아 콩잎과 함께 먹으면 밥이 술술 절로 넘어갔다. 게다가 된장에 박은 푸른 콩잎은 갑자기 생손가락이나 생발가락이 아플 때 한 잎 감아놓으면 금세 통증이 가라앉곤 했다.

이처럼 콩잎은 경상도 사람들에게 훌륭한 먹을거리이자 여러 가지 통증에 따른 응급처방을 하는 약재의 역할까지 톡톡히 했다. 또한 경상도 사람들은 콩잎을 사시사철 밥상 위에 오르는 김치나 된장찌개처럼 밥상 위에 빠져서는 안 되는 중요한 반찬거리로 여겼다. 하지만 요즈음에는 어릴 때 그토록 흔했던 콩잎이 경상도에서도 보기 드믄 음식이 되고 말았다.

▲ 된장에 박은 콩잎장아찌
ⓒ 이종찬
소금물에 포옥 담가 3~4일 콩잎을 부드럽게 숙성시켜야

경상도의 별미 콩잎장아찌는 두 가지다. 된장 콩잎장아찌와 양념 콩잎장아찌가 그것. 된장 콩잎장아찌는 초여름부터 초가을까지 나는 푸른 콩잎을 소금물에 절였다가 된장 속에 파묻어 숙성시켜 만들고, 가을에 나는 단풍 든 콩잎은 소금물에 절여 두었다가 수시로 꺼내 양념장에 무쳐 만든다.

콩잎장아찌를 만드는 방법은 그리 어렵지 않다. 먼저 푸른 콩잎이든 단풍 든 콩잎이든 잎사귀를 한 잎 한 잎 따서 50장에서 100장 단위로 차곡차곡 묶어 다발을 만든다. 이어 장독 안에 소금물을 풀어 콩잎 다발을 차곡차곡 넣고 소금물에 콩잎 다발이 포옥 잠기도록 무거운 돌을 올려 그대로 둔다.

그렇게 3~4일이 지난 뒤 콩잎이 소금물에 부드럽게 절여졌다 싶으면 콩잎을 다발째 꺼내 물에 살랑살랑 씻어 짠 물기를 뺀다. 그리고 푸른 콩잎은 된장에 박아 보름 정도 두었다가 그때부터 먹을 만큼 조금씩 꺼내 먹으면 되고, 단풍 든 콩잎은 그대로 소금물에 담가두었다가 먹고 싶을 때마다 다발을 하나씩 꺼내 양념장에 무쳐 먹으면 된다.

이때 단풍 든 콩잎장아찌의 고유한 제맛을 내기 위해서는 양념장을 잘 만들어야 한다. 양념장은 쌀가루죽과 멧젓, 고춧가루, 빻은 마늘, 빻은 생강에 물 1~2컵을 붓고 골고루 저은 뒤, 콩잎묶음의 꼭지를 쥐고 한 장 한 장 양념을 골고루 무쳐 반찬 그릇에 예쁘게 담아 송송 썬 대파와 송송 썬 붉은 고추를 뿌리면 끝.

▲ 단풍 든 콩잎장아찌의 고유한 제맛을 내기 위해서는 양념장을 잘 만들어야 한다
ⓒ 이종찬
▲ 어릴 때, 가난한 추억이 새록새록 되살아나는 경상도 특별식 콩잎장아찌
ⓒ 이종찬
추억이 새록새록 되살아나는 경상도 특별식 콩잎장아찌

지난 3일(토) 저녁 6시쯤이었을까. 장모님께서 입맛 없을 때 가끔 꺼내 먹으라며 단풍이 노랗게 물든 콩잎장아찌를 서너 묶음 주셨다. 오랜만에 양념이 맛깔스럽게 배인 콩잎장아찌를 보자 갑자기 입 안 가득 침이 고이면서 어릴 때 찬밥을 물에 말아 콩잎장아찌와 함께 먹던 생각이 떠올랐다.

때마침 아침에 지은 밥이 밥솥에 어중간하게 남아 있었다. 옳거니, 싶었다. 저녁밥을 새로 지을 필요가 없었다. 남은 밥을 물에 말아 어릴 때처럼 콩잎장아찌를 얹어 먹으면 그만이었다. 큰딸 푸름이(16)와 작은딸 빛나(14)에게 어릴 때 밥을 물에 말아 콩잎장아찌를 얹어먹던 추억을 이야기하자 두 딸도 그렇게 먹어보고 싶다고 했다.

"아빠! 이게 콩잎장아찌라고 하는 거야?"
"그래. 이 음식은 경상도 사람들만이 먹는 특별식이야. 한번 먹어 봐. 향긋하면서도 짭쪼름한 뒷맛이 아주 구수해."
"어떻게 먹어?"
"물에 만 밥 위에 이렇게 올려먹어도 되고, 밥을 먼저 입에 넣은 뒤 한 잎씩 떼내서 김치처럼 먹어도 돼. 맛이 어때?"
"조금 맵긴 하지만 맛은 괜찮아."


어릴 때, 가난한 추억이 새록새록 되살아나는 경상도 특별식 콩잎장아찌. 오늘 저녁에는 짭쪼름하고 구수한 젓갈맛과 함께 입 안 가득 향긋한 단풍 내음이 감칠맛을 돌게 하는 경상도가 낳은 독특한 맛의 콩잎장아찌를 먹어보자. 그리하여 잃어버린 입맛도 되찾고, 경상도 사람들의 힘겨웠던 지난 삶의 속내도 은근슬쩍 들춰보자.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유포터>에도 보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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