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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룩소르의 멤논 거상
ⓒ 이승철

"죽장에 삿갓 쓰고 방랑 삼천리, 흰 구름 뜬 고개 넘어 가는 객이 누구냐."

참으로 낭만적인 우리 옛 가요의 한 소절이다. 짚신 몇 켤레가 매달려 있는 가벼운 괴나리봇짐을 짊어진 나그네의 모습은 그대로 여유로움이고 낭만이고 자유다.

@BRI@그들에겐들 고달픔이 없었겠는가만 오늘의 우리들 시각으로는 그렇다는 말이다. 그런데 우리들은 모두 바퀴달린 커다란 가방을 질질 끌며 여행길에 나섰다. 여행지의 날씨와 기온이 어떨지 잘 몰라 계절별로 옷가지를 제법 준비를 했는데도 내 가방은 가장 작고 초라한 모습이다.

일본 오사카의 간사이공항을 이륙한 이집트 여객기는 무려 14시간의 비행 끝에 룩소르공항에 착륙했다. 모두들 파김치처럼 늘어진 모습이다. 비좁은 비행기 안에서 견뎌낸 시간은 그대로 지옥이었다. 비틀거리는 몇 사람을 부축하여 밖으로 나왔다.

각자의 짐을 찾아 들고 보니 그 부피며 무게가 장난이 아니다. 옛날 나그네의 괴나리봇짐은 비교대상이 아니라고 하더라도 모두들 웬 짐들이 그리 많은지, 요즘은 여행을 해도 폼생폼사라고 했다던가, 날마다 갈아입을 옷이며 생활필수품들까지 바리바리 꾸려온 모양이었다. 더구나 카이로에 거주하는 어느 이집트교민의 짐까지 부탁받아서 그 규모가 다른 여행객들과도 비교가 되지 않았다.

▲ 수천년을 견뎌온 두개의 돌조각상
ⓒ 이승철

많은 짐들을 낑낑대며 들고 끌며 드디어 이집트 입국수속이 시작되었다. 다행이 검색대는 그리 까다롭지 않았다. 그런데 모두들 한숨 돌리며 나가려는 순간 거구의 세관원들이 우리 일행들을 불러 세웠다. 우리들의 여행용 가방이 아닌 현지교민으로부터 부탁받은 짐 꾸러미들을 다시 검색하겠다는 것이 아닌가.

어쩌겠는가. 피할 수 있는 방법이 없었다. 20여개의 사과박스와 라면박스로 포장한 짐들을 풀어헤쳤다. 다행이 문제가 될 소지가 있는 물품은 없었다. 그러나 세관원들은 이런저런 핑계를 대며 보내주려고 하지 않는다. 물건들 중에 전기장판 네 개가 있었는데 한 개를 자신들에게 달라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럴 수는 없었다. 그 전기장판은 난방이 되지 않는 현지 가옥의 형태 때문에 추위를 견디기 위하여 현지교민이 특별히 부탁한 물건이었기 때문이다.

"저 친구들 돈 좀 뜯어내겠다는 것 아냐?"

여행사 인솔 가이드는 처음에는 아닌 것 같다고 했지만 곧 흥정에 들어갔다. 결국 100달러를 주고 난 후에야 공항을 빠져 나올 수 있었다.

돈을 받은 그들은 갑자기 친절해져서 웃음 띤 얼굴로 엄지손가락을 펴 보이며 "꼬레아 넘버 원"이란다. 참 어이없고 웃기는 친구들이다. 모두들 손을 흔들며 웃음으로 그들과 작별하고 돌아섰다. 밖에서 우리일행을 기다리고 있던 한국인 현지 가이드인 이 선생은 우리가 끌고 간 짐 보따리를 쳐다보며 그 정도면 아주 적은 금액으로 협상을 매우 잘 한 것이라고 칭찬을 아끼지 않는 것이었다.

▲ 길건너의 기념품 가게와 자신의 가게를 사진으로 담아가라고 손짓한 주인남자
ⓒ 이승철

대기하고 있던 버스를 타고 숙소로 정한 호텔에 도착하니 어느 듯 밤이다. 숙소는 나일강변에 있는 호텔이었다. 호텔의 현지식단으로 저녁을 먹는 둥 마는 둥 대충 먹고 잠자리에 들었다. 그러나 비행기에서 시달리고 몇 시간의 시차에 금방 적응이 되지 않아 깊은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지저귀는 새소리를 들으며 아침에 일어나 호텔의 뒤편 정원으로 나서니 바로 앞이 나일강이다. 강안에는 수많은 배들이 정박해 있고 강심을 오가는 커다란 선박들도 보인다. 강변 지역은 푸른 숲과 사탕수수가 자라는 풍요로운 모습이었지만 조금 벗어난 곳에 있는 붉은 바위산이 아침 햇살을 받아 붉게 빛나는 모습이 너무나 대조적이다.

아침을 먹은 후 곧 관광에 나섰다. 첫 번째 목표는 왕가의 계곡으로 가는 길목에 있는 멤논 거상이다. 옛 왕들의 무덤이 있는 왕가의 계곡은 강 서쪽 편에 자리 잡고 있었다. 룩소르는 예로부터 해가 뜨는 강의 동편은 살아있는 사람들의 거주지였고 죽은 자들이 잠들어 있는 지역은 해가 지는 서쪽지역이었다.

나일강을 가로지르는 다리를 건너 달리는 버스 창밖으로 바라보이는 풍경은 을씨년스럽기 짝이 없다. 무너진 가옥들이며 지붕에 갈대를 듬성듬성 걸쳐 놓은 집들이 이방인의 눈에는 그저 썰렁한 모습이었기 때문이다. 비옥한 땅이라는 나일강 유역은 도로변의 채소밭이며 밀밭, 그리고 조금 떨어져 숲처럼 우거진 사탕수수 밭이 싱그럽기는 했지만 결코 그렇게 풍요로운 모습은 아니었다.

▲ 멤논 거상 주변의 대추야자나무와 밀밭 건너 사탕수수밭
ⓒ 이승철

호텔을 출발한 버스가 30여분을 달려 도착한 곳은 널따란 주차장이었다. 주변에는 기념품을 파는 가게들과 함께 예의 대추야자나무와 밀밭들이 바라보이고, 맞은편에는 황량한 바위산이 펼쳐진 앞쪽에 커다란 돌 구조물 두 개가 바라보인다.

"저것이 바로 멤논 거상입니다."

현지 가이드 이 선생의 안내에 따라 버스에서 내려서자 우리들을 반긴 것은 꾀죄죄한 모습의 어린이들이었다.

"원 달라!"
"원 달라!"

손을 내밀며 외치는 아이들의 초라한 모습에 주머니에서 돈을 꺼내려하자 가이드가 말린다. 저 아이들을 더 이상 거지로 만들지 말라는 것이었다. 우선은 조금 도움이 될지 모르지만 결과는 저 아이들의 장래를 망치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란다. 더구나 한 아이에게라도 돈을 주면 우르르 몰려오는 다른 패거리들까지 감당치 못한다는 것이었다.

아이들을 애써 외면하고 멤논 거상 앞으로 나아갔다. 이미 사진으로는 많이 보았던 두 개의 거상은 오래되고 신화가 깃든 거대한 돌 조각품이라는 것 외에는, 여기저기 깨지고 부서진 모습 때문에 멋있다거나 아름다운 조각상이라는 느낌은 들지 않았다.

▲ 개울 옆의 황량한 가옥들, 지붕은 보이지 않고 갈대를 대충 덮어 놓았다
ⓒ 이승철

"이 멤논 거상의 본래 모습은 아멘호텝 3세가 왕관을 쓰고 앉아 있는 모습이었답니다."

현지 가이드 이 선생의 설명이다. 본래 이곳 멤논 거상의 뒤쪽에는 제18왕조인 아멘호텝 3세(Amenhotep)의 제사를 지내는 장제전(신전)이 있었다. 그러나 오랜 옛날에 지진으로 무너지고, 자연적인 풍화작용과 침략자들에 의하여 모두 사라져버려 거대한 두 개의 돌상만 문지기처럼 남아 있는 것이다.

멤논의 거상은 높이 19.5m의 거대한 돌 조각상으로 2개의 좌상 중의 하나다. 멤논이라는 이름이 붙게 된 사연은 이랬다. 멤논(Memnon)은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이오스(Eos)와 티토노스 (Tithonus) 사이에 태어난 아들 이름이다. 그는 에티오피아의 왕으로서 트로이 전쟁 때 트로이의 왕 프리아모스를 돕다가 그리스군의 아킬레스에게 죽임을 당한 인물이다.

그런데 전설에 의하면 어느 날 부터인가 바람이 불고 햇살이 비칠 때면 이 거대한 돌상에서 울부짖는 듯한 이상한 소리가 났다는 것이다, 당시 알렉산더 대왕에 의해 이집트를 정복하고 지배하던 그리스인들은 이것을 멤논 왕이 그의 어머니인 이오스에게 하소연하는 소리라고 생각했다는 것이다.

또 다른 전설은 아멘호텝의 멤논 거상 북쪽에 그의 어머니 무테무아와 여왕 티이의 입상이 있었으나 지진으로 파괴되었다고 한다. 그런데 멤논 거상에서 바람이 부는 날이면 무슨 악기를 연주하는 것 같은 소리가 났다고 전해지고 있으며, 이집트인들은 이 소리가 아멘호텝이 어머니인 무테무아와 여왕을 위하여 노래를 부르는 소리라고 여겼다는 것이다.

신이 부르는 노래라고 여긴 당시의 사람들은 이 소리를 듣기 위해 AD 130년에는 하드리안 황제를 포함해서 멀리서 많은 사람들이 찾아오기도 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멤논 상 꼭대기의 부셔진 틈을 로마인들이 AD 199년에 수리하고 나서부터 그 소리가 멈췄다고 전한다.

▲ 거상 앞에선 필자, 뒤편의 산을 돌아가면 옛 왕들의 무덤인 왕가의 계곡이다
ⓒ 이승철

일행들은 거상 앞에서 설명을 들은 다음 신기하고 거대한 모습에 감탄하며 사진 찍기에 바쁘다. 나도 사진을 몇 컷 찌고 주차장으로 올라갔다. 그런데 올라가는 계단 중간에 앉아있던 누런 황구 한 마리가 어슬렁거리며 뒤를 따라온다. 내가 뒤돌아서자 빤히 올려다보는 모습이 비쩍 마르고 배고픈 모습이어서 마침 주머니에 있던 빵 한 조각을 던져 주자 허겁지겁 먹어 치운다.

길 건너편의 기념품 가게를 카메라 담자 그 옆의 가게 앞에 서서 호객하던 덩치가 커다란 남자가 자기네 가게도 사진으로 담아가라고 손짓한다. 멤논 거상 뒤편에 늘어서 있는 바위산을 돌아가면 왕들의 무덤이 있는 왕가의 계곡이었다. 주변 풍경은 부셔지고 깨어진 멤논상 만큼이나 황량한 모습이었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유포터뉴스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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