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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학평론가 이명원, 소설가 조정래를 만나다
ⓒ 오마이뉴스 남소연


"탐욕을 부리지 마라. 내가 차기 정권을 재창출하겠다는 이런 야심을 갖지 말고, 다만 5년 동안 대통령 하나 잘하겠다는 마음만 먹어야 한다."

소설가 조정래는 노무현 후보자의 대통령 당선 직후인 2003년 1월 <월간 말>을 통해 대통령 당선자 노무현에게 이렇게 조언했다. 그로부터 정확히 4년여의 세월이 흘렀다. 2007년 1월 29일. 서울 소공동에 있는 조선호텔에서는 <아리랑> 100쇄 출간 기념 기자간담회가 열렸다.

기자간담회 직후 따로 만난 조정래에게 과거의 발언을 상기시킨 후, 노무현 정부에 대한 현재의 소회를 물었다.

"나는 노무현 후보자의 선거운동 막바지 상황에서 공개적으로 지지하는 칼럼을 썼고, 특히 탄핵정국에서는 두 번씩이나 야당을 비판하는 칼럼을 썼다. 이 정권이 올바로 가도록 노력했지만, 오늘의 상황에 대한 사회적 책임이 내게도 있다. 그래서 이 정권의 실패에 대해서 사회에 면목이 없고 때로 원망스럽기도 하다. 내가 처음 정권재창출에 신경 쓰지 말라고 한 것은 나라살림을 잘 하면 국민이 자연스럽게 정권을 재창출해줄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역사적 무덤에 들어간 박정희 대통령이란 사람은 세월이 갈수록 점점 살아 돌아와 인기가 48%가 되고, 노 대통령은 지지도가 제일 낮은 현직대통령이 되는 이런 상황이 되어버렸으니, 이 착잡한 마음을 누를 길도 표현할 길도 없다. 비유컨대 지하 3층에 있던 박정희가 김영삼 정부 이후에는 지하 2층으로, 김대중 정부 이후에는 지하 1층으로, 그리고 현 노무현 정부에서는 지상으로 올라오고 있는 형국이다. 어떻게 이렇게 되었는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

민주화세력의 무능과 박정희의 부활

조정래와는 달리 보수세력들에게 2007년은 바야흐로 '정치적 대회전'의 시기로 인식되는 듯하다. 그 내밀한 성격에는 차이가 있지만 김영삼, 김대중, 노무현으로 이어지는 14년의 세월은 군부독재 이후 한국 민주주의가 형식적으로나마 진전했던 시기였다. 고려대 최장집 교수는 이 시기를 '민주화 이후의 민주주의'로 명명한다. 형식적 민주화는 쟁취되었지만, 민주화에 대한 민중들의 집단적 변혁의지가 내용적으로는 성숙되지 않고 아이러니컬하게도 교란된 시기라는 것이다.

"김영삼, 김대중, 노무현 정부 14년 동안 보수 기득권세력은 자신들의 입지를 잃어버렸다. 그런데 놀랍게도 이 세 정권이 계속해서 무능함을 저질렀다. 그래서 보수세력들은 별다른 노력 없이 민주화 세력의 정치적 무능 때문에 기득권을 회복하고 있다.

ⓒ 오마이뉴스 남소연
민주화세력은 민주화투쟁을 잘했다. 그것은 업적이다. 그런데 정권을 담당하면서 끝없이 무능함을 국민에게 입증했다. 이것은 나라만 구렁텅이로 빠뜨린 것이 아니라 기득권을 상실했던 보수세력의 입지를 오히려 강화시켰다. 그러므로 민주화세력의 무능은 그것대로 냉철하게 비판해야 한다. 그러나 그것을 이용해서 우익들이 이유 없이 국민을 오도한다거나 사회분위기를 악용하는 것을 허용하면 안 된다."

민주화 세력이 무능했다는 주장은 그 표현의 강도는 틀리지만, 보수세력뿐만이 아니라 진보세력 내부에서도 단골메뉴로 등장하는 담론이다. 노무현 정부의 성립 이후, 보수세력들은 국가경영능력을 갖추지 못했다며 노무현 정부와 386세력을 지속적으로 야멸치게 비판했다. 동시에 이 시기에 이르러 새롭게 출현한 뉴라이트와 기존의 올드라이트는 죽은 박정희를 무덤에서 부활시켰다. <해방전후사의 재인식>을 통해, 식민지 근대화론은 적극 긍정되었으며 박정희의 국가주도형 경제개발정책의 역사적 정당성은 높이 평가되었다.

심지어 이런 주장은 진보진영의 이론가인 백낙청 교수에게서도 '아슬아슬한' 동의를 일부 얻었다. 박정희의 정치적 파시즘에는 동의할 수 없지만 한국 자본주의의 전개과정 속에서 나타난 박정희의 경제발전 전략이 결과적으로 기여한 측면은 인정되어야 한다는 것. 이른바 '박정희 공과론'의 대두였다.

"백성이 배가 고프면 죽기 살기로 정권에 덤빈다"

그런가 하면 최근에는 좌우의 이념적 스펙트럼과 무관하게 '선진화' 담론이 빈번하게 발성되고 있는 것 역시 흥미롭다. 후진→중진→선진으로 직선적으로 이어지는 발전 단계 인식론이란 내 판단에는 야만-반개→문명으로 이어지는 전형적인 식민주의적 사고의 변종인데, 정치적 좌우의 차이와 무관하게 인자하게 공유되는 '선진화 담론'은 왜 근본적인 성찰의 주요의제가 되지 않는 걸까.

그런 점에서 나는 노무현 정부가 2만불 시대라는 물량주의적 사고에 빠져 있는 것도 사실 우려스러웠다. 동시에 이제는 3만불 시대도 가능하다는 보수 측의 장밋빛 희망도 우려스러운 것은 마찬가지다. 문제는 자본의 동맥경화 현상인데, 실핏줄과도 같은 대다수의 가계경제에 기여하지 않는 자본의 양적 증대란 결국 사회적 양극화라기보다는 초극화를 더욱 심화시키지 않을까.

"봉건시대에는 임금이 나라의 주인이고 백성은 그 자식이었다. 그러나 그때도 학자들이 말하기를 백성은 바다요, 왕권은 그 바다위에 떠 있는 일엽편주라고 말했다. 그 바다가 화를 내서 노도를 일으키면 왕정이 무너진다. 모든 왕조는 다 백성의 반란에 의해 무너졌다. 이것은 무엇을 말하는가. 백성이 배가 고프면 죽기 살기로 정권에 덤빈다는 것이다.

더구나 지금은 국민이 권력을 만들어내는 민주사회다. 경제가 나빠지면 모든 게 다 잘못된 것처럼 보인다. 노무현 정부가 민주화는 잘했다. 그러나 경제가 나빠지니까, 부익부 빈익빈이 점점 가속화되니까 국민 전부가 못살겠다고 난리가 난 것이다. 결국은 먹고 사는 문제였다. 이 정부가 아쉬운 것은 1만불 대가 넘어가는 상황에서 정권을 받았는데, 어떻게 해서 이렇게 낙제점수의 경제상황을 만들어 놓았는가 하는 점이다. 국민은 여기에 분노하는 것이다. 386세대가 시위는 참 잘했다. 그러나 GNP 1만5천 불대의 국민경제를 경영하고 관리해나가는 그 능력이 없었던 것이다. 한 마디로 말하면 무능이다."

조정래는 진보개혁 진영의 자기성찰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말했다. 물론 그 자신이 지지했던 정치세력에 대해 스스로 ‘무능’했다고 비판하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닐 것이다. 그러면서도 그는 이 비판이 그것을 악용하는 보수세력에 의해 정략적으로 이용당할 가능성이 있음을 지극히 경계했다. 또 자신의 비판이 지난 14년간 민주정부가 펼쳐온 민주화의 진전과 역사적 성과를 폄훼하는 근거로 활용될 수 있는 가능성에 우려를 느낀다고 말했다. 나는 조정래와는 다른 약간 생각을 피력했다. 설사 보수진영에 의해 진보진영 비판이 정략적으로 이용당할 가능성이 있다고 해도, 이제는 진보진영 내부의 뼈를 깎는 자기성찰도 필요한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본 것이다. 그러나 조정래는 신중했다.

"물론 지금 우리 눈앞에 나쁜 부분이 드러나고 있다. 하지만 지금은 관찰의 시기다. 그러니 좀더 기다려야 한다."

이문열의 <호모엑세쿠탄스>에 대해..."주관적이고 악의적인 판단"

ⓒ 오마이뉴스 남소연
이 부분에서 방향을 약간 돌려 노무현 정부에 대한 과격한 비판에서 더 나아가 오늘의 한국사회를 묵시록적 현실로 이해하는 한 작가의 시각에 대해서도 물었다. 가령 소설가 이문열은 최근에 출간된 <호모엑세쿠탄스>를 통해 김대중 정부 출범 이후 지금까지의 한국사회의 상황이 남북간의 갈등은 물론 남남간의 갈등까지도 증폭된 일종의 '정신적인 내전' 상황으로까지 보는 비관적 관점을 보여준 바 있다.

"그것은 상당히 주관적인 그리고 악의적인 판단이고 대중을 상대로 해서는 안 되는 발언을 하고 있는 과장이다. 지금 민주정권의 무능 때문에 정권이 보수 쪽으로 간다면 그것은 역사의 필연이다. 그건 막을 길이 없다. 그렇다고 해서 민주정권이 저지르지도 않은 잘못을 민주정권에 떠넘기면서 사회의 위기상황이니, 남북분단이 있는데 다시 동서분열이 온다느니 하는 과도한 공포와 혼란의 분위기를 만드는 것은 범죄다.

지금 분단 이후 60년 가운데 김대중 정권 이후 가장 남북관계가 순조롭고 원활하고 이성적으로 진행되어 왔다. 이걸 어떻게 거짓말할 수 있나. 그래서 상상할 수 없었던 금강산 관광의 길이 열렸고 개성공단의 생산품이 남북모두의 이익 속에서 생산되어 세계에 판매되고 있다. 미국의 네오콘, 극우세력들조차 직접 개성공단을 가보고 나서 이건 건설적이구나 하고 인정한다.

그런데 어떻게 우리 내부에서 작가가 그렇게 말할 수 있나. 그건 안 된다. 작가는 한 사회의 모순과 비인간적인 것을 주도면밀하게 꿰뚫고 투시해서 좋은 쪽으로 반전시키려 노력하고, 사회불안요소나 동요가 있을 때 그것을 이성적으로 판단해서 아니라고 말해주는 자지, 그것을 조장하고 불안을 더 확대하는 역할을 하는 게 아니다. 작가들은 보다 더 정직하고 냉철하게 상황을 판단하고, 자기가 보수라고 하더라도 보수세력의 책동에 대해서 잘못은 잘못이라고 말해야 한다. 나는 스스로를 진보라고 말하지만 민주화세력의 잘못은 냉철하게 비판해야 한다고 말한다."

"군사정권 30년보다 문단권력 40년이 더 나쁘다"

2007년은 대선의 해이다. 여느 대선이 있었던 해처럼 정치권의 이합집산이 분주하게 전개될 것이고, 현실정치에 대한 지식인들의 발언도 거세질 것으로 예상된다. 작가들 역시 정치적 발언의 수위를 조정할 듯한데, 보수주의를 뚜렷이 한 이문열은 정치적 발언 자제를 선언했지만 그것이 쉬워보이지는 않고, 진보 진영의 작가 황석영은 반대로 정치적 제3세력의 형성을 위해 총대를 메겠다고 선언했다. 작가의 현실발언은 어떻게 이해할 수 있을까.

"문인이 현실정치에 대해서 발언할 수는 있다. 그러나 현실세계의 모순과 갈등에 대해서 감시 감독하는 관점에서 발언해야 된다. 그것은 작가의 의무이자 책임이다. 그러나 전제가 있다. 자기의 사적 입장, 개인의 감정, 개인의 이익을 위해서 하면 안 된다. 자기에게 불이익이 오더라도 대의를 위해서 객관적으로 해야 한다. 작가들이 사회적 발언을 하기 위해서는 헌신성과 희생성을 전제로 하지 않으면 진정성이 없는 것이다.

1980년대에 내가 <태백산맥>을 쓸 때, 주변의 후배 작가들이 당신은 왜 가투를 하지 않느냐고 물었다. 그때 나는 이렇게 말했다. 나는 가투하는 시간에 글로써 투쟁하면서 더 많은 효과를 노리고 있다. 그때 후배들은 나를 기회주의자로 몰아세웠지만, 결론적으로 그러한 선택이 나는 옳았다고 생각한다."

작가로서 현실정치의 비판적 관찰자의 몫을 피해서는 안 되지만, 직접참여에 대해서는 명백하게 선을 그었다. 소설 <태백산맥> 이야기가 나왔는데, 이 부분에서 나는 평소 조정래의 문학에 대한 문단적 평가의 문제에 대한 의문이 들었다. 조정래는 <태백산맥>, <아리랑>, <한강>을 통해서 한국의 근현대 민족사를 탁월하게 형상화해 왔다. 특히 소설 <태백산맥>에서는 해방 직후 서로 다른 계급적 위치와 이념적 지향을 보여준 다채로운 인물들을 등장시켜, 해방정국의 민족사를 거대한 벽화처럼 그려냈다.

그런데 기이한 것은 이러한 조정래의 문학세계에 대하여 이른바 주류문단에서의 평가, 특히 그 가운데서도 ‘민족문학론’을 주된 문학적 이념으로 하고 있는 창비(창작과비평사)조차 조정래의 문학세계에 대해서는 철저하게 배제해 온 것처럼 느껴졌다. 그것은 마치 1980년의 광주 문제를 지속적으로 천착해 온 임철우의 작품세계가 비평적으로 배제되어 온 것과도 같은 형국이다. 이러한 문단적 상황에 대한 소회도 물어봤다.

"한 마디로 말하면 문단의 섹트와 파벌주의 때문이다. 언젠가 국외자인 강준만 교수가 문단권력이라고 해서 창비와 문지(문학과지성사)의 문제를 단행본으로 낸 적이 있을 정도로, 한 마디로 말할 수 없는 문단의 골이 있다. 나는 그 어떤 섹트에도 들어간 적이 없고, 어떤 섹트에서도 지원받고 문학을 한 적이 없다. 이게 내 자존심이다.

언젠가 <오마이뉴스>에서 강준만 교수가 문단권력을 주제로 한 책을 냈을 때, 인터뷰가 온 적이 있다. 그때 내가 기자에게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군사정권 30년만 나쁜 것이 아니고 문단권력 40년이 더 나쁘다. 그랬더니 기자가 이대로 써도 됩니까 해서 구설수에 많이 올랐다. 한국의 문단이 그 정도로 소아병적이고 폐쇄적이고 편협하다. 자기 파 아니면 언급을 안 하고 묵살해버리는 패거리 의식이 너무 심하다. 문화에 종사하는 자들이 가장 반문화적 행위를 하는 셈이다."

ⓒ 오마이뉴스 남소연

민족주의에 대해, 민족문학에 대해

이른바 민족문학 진영에서의 조정래 문학에 대한 홀대현상과 무관하게, 작가 조정래는 민족사의 문제에 대한 소설적 천착을 거듭해 왔다. 앞에서 언급한 근현대사 3부작이 그것을 증거한다. 최근에는 이러한 자신의 관심을 인류사적 과제로 확대시키는 소설적 작업을 전개하고 있다. 2006년에 출간된 <인간연습>에서는 강제전향 장기수가 소비에트의 몰락이라는 현실을 목도하면서, 상실된 정치 이념의 공과를 근원적으로 사유하는 양상을 소설화했다. 현재 <문학동네>에 연재되고 있는 <오, 하느님>에서는 강대국의 힘의 논리에 삶의 전 국면이 난파되는 평범한 민초들의 비극을 조명하면서, 전쟁이라는 인류사적 비극을 통찰하고 있다.

이런 조정래의 관심 확장과는 별도로, 현재의 한국사회 일각에서는 민족주의를 둘러싼 논란이 뜨겁다. 특히 한국의 보수주의자들이 민족주의를 규탄하는 데 앞장서면서, 반공주의의 기치를 내세우는 것은 흥미로운 부분이다. 뉴 라이트로 불리는 새로운 정치세력 역시 민족주의 문제에 있어서는 알레르기 반응을 보인다. 그래서 가령 과거사를 둘러싼 역사해석상의 갈등이 벌어지고, 친일청산 문제가 난관에 부딪치고 국사 해체론이 제기되는가 하면 영어 공용어론이 제출되기도 한다. 조정래에게 이런 현상은 어떻게 인식되는지 궁금했다.

"민족주의에 대해서 지탄하는 논지를 펴고 있는 학자들은 놀랍게도 백 프로 모두 서양에서 유학한 사람이다. 민족주의에 대한 해체논리는 민족주의는 상상의 공동체다로부터 시작해서 그것은 곧 인류의 악이라고 하는 주장까지 확대되는데, 이는 서구라파 중심적 사고거나 미국중심주의의 논리다.

강대국들은 과거의 영토식민지 체제에서 이제는 자본식민지로 형태를 바꿔서 21세기인 지금 약소국에 대한 자본공략을 계속하고 있다. 강대국은 영토식민주의에 대한 저항처럼 민족주의가 연결되어 또 다시 자기들의 자본을 배척할까봐 민족주의 해체론을 펼친다. 무조건적으로 민족주의를 매도하는 유학파들의 논리를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 특히 우리는 식민지 시대와 별로 다를 것 없는 분단상황이다.

식민지 시대에는 그나마 분단이 되지 않은 상태로 제국주의와 투쟁했다. 그런데 지금 분단상황 속에서는 민족의 에너지가 반으로 쪼개져 있는 상황에서 자본에 공략당하고 있는 것이다. FTA 역시 자본의 공략 아닌가, 또 북한의 핵 문제 역시 무력의 문제로 보이지만 실제로는 자본의 문제다."

근대적 민족 개념이 구성적 개념이라는 것은 베네딕트 앤더슨의 주장이고, 이 주장은 여러 면에서 한국의 학계에도 커다란 영향을 미쳤다. 특히 이 이론적 논의가 한국에서는 하위 민족주의 또는 저항적 민족주의라는 진보적 성격을 갖고 있던 민족문학 이념에조차 치명타를 날렸다. 공산주의와 자본주의 경제 체제의 적대성, 사회주의와 자유민주주의의 이념적 대립이 자본주의의 승리로 귀착되자, 이제 세계화의 기치 아래 민족주의는 상대화되었고 심지어는 박멸의 대상으로 전락한 감이 없지 않다.

문제는 민족 이후의 세계화가 철저하게 자본의 논리에 의해 재편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민족주의의 해체는 자본을 둘러싼 국민경제 시스템의 붕괴에도 일조하고 있다. 자본의 국적성과 국민경제의 자율성이 세계화라는 논리에 의해 부정되면서, 오히려 세계경제는 구 제국주의 시대의 정글의 논리를 닮아가고 있다. 작가 조정래는 민족주의 해체담론이 철저하게 강대국의 이익에 종속되는 세계사적 현실을 낳는다고 지적했다. 가령 우리가 지금 경험하고 있는 FTA 문제 역시 세계화라는 미명하에 강대국에 의해 자행되는 경제침략이라는 것이다. 그는 미국의 이라크 침공의 명분과 무관하게 실제 이유가 결국은 이라크의 석유자본에 있었다는 촘스키의 주장을 근거로 들기도 했다.

"식민지 삶이 노예의 삶이라면 분단의 삶은 민족 불구의 삶"

ⓒ 오마이뉴스 남소연
민족주의 해체론이 확장되면 가령 현재의 분단상황도 상대화된다. 쉽게 말하면 조정래가 생각하듯 분단극복과 통일은 절대적인 명제가 아니라 상대적 명제가 된다는 것이다. '우리의 소원은 통일'이라는 노래를 우리는 즐겨 부르지만, 그것은 감상적인 노래에 불과할 뿐 통일은 상대적 명제라는 주장도 제기되는 실정이다. 그러한 주장이 더 급진화 되어 이제 남한과 북한은 서로 다른 국민국가에 속해 있고, 동시에 민족의 이질성의 심화에서 더 나아가 차라리 다른 민족이 되었다는 주장도 종종 발견된다. 남한은 한국민족으로, 북한은 김일성민족이라는 식의 주장이 그것이다.

민족보다 우선하는 것은 이념이며, 그래서 동일 민족으로서의 북한과의 통일보다는 동일 이념을 지닌 미국과의 관계개선이 우선해야 한다는 주장도 우파들에 의해 종종 제기된다. 한국의 그 차이를 알 수 없는 뉴라이트와 올드라이트들이 진보세력을 규탄할 때 흔히 쓰는 용어는 ‘친북반미’ 세력이라는 것인데, 뒤집어 보자면 '친미반북'이야말로 우파적 사유의 핵심에 있다는 것을 우리는 알 수 있다. 그런 관점에서 보자면, 통일은 절대적 명제가 아니라 상대적 명제일 뿐이라는 주장의 내면풍경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이에 대한 조정래의 답변은 단호했다.

"그것은 새로운 논리나 주장이 아닌 궤변이다. 궤변은 곧 사기성이 강한 논리이다. 그 궤변을 갖고 우리 민족이 분단된 상황을 지속해도 괜찮고 그들과 대화할 필요성이 없다고 말한다면 그것은 민족반역자들이다. 단재 신채호 선생을 포함하여 식민지시대 목숨을 걸고 싸운 분들이 왜 그랬겠나. 우리 민족의 삶을, 속박된 노예의 삶을 벗기려고 했던 것이다. 이건 또 하나의 불구의 삶이다. 식민지적 삶이 노예의 삶이라면 지금 분단의 삶은 민족 불구의 삶이다. 이건 치유되어야 한다. 그런데 어떻게 감히 그들과 대화를 할 수 없거나 상대적인 문제라고 할 수 있나? 이건 민족반역자의 논리다. 단호하게 그렇게 말할 수 있다."

그랬을 때 대뜸 반론이 제기될 수 있는 것은 북한 정권의 성격에 대한 문제이다. 한국의 보수세력들은 북한체제의 성격을 일종의 유사종교 체제로 파악하고 있다. 또는 유사 파시즘 체제로 규정하기도 한다. 이것을 문제 삼아 남북교류의 필요성이나 효용성을 근본적으로 부정하는 방향으로 나가기도 한다. 동시에 북한 주민의 인권에 대해 침묵하는 진보진영을 보기 좋게 비판하는 한편, 이에 침묵하는 것은 결국 북한 체제를 간접적으로 용인하면서 북한의 모순된 정치체제를 연장시키는 데 동조할 뿐이라는 주장도 펼친다. 그러니 햇볕정책이나 평화번영정책이니 하는 것은 소모적이며, 통일비용은 무의미하다는 주장이 제기되기도 한다.

"그것도 또 하나의 단견이 개입되어 있는 궤변이다. 우리는 북한의 정권과 통일하자는 것이 아니다. 그 정권이 잘못되었다면, 그 잘못된 정권은 결국 백성, 국민, 인민의 힘에 의해 언제든지 전복되거나 바뀔 수 있다. 하나의 정권은 항상 일시적이고 가변적인 것이다. 민족은 영원하지만 정권은 항상 바뀐다. 우리 민족의 5000년 역사 속에서 왕조가 얼마나 많이 바뀌었나. 그게 입증하는 것이다. 북한 정권이 잘못되었을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이 통일의 불필요성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궤변이다.

북한정권을 지배하고 있는 북한의 공산당원이나 그들의 부류는 민족의 극히 일부이다. 오히려 더 많은 지배를 받고 있는 백성, 국민, 인민들과의 삶을 공유하기 위해서 우리는 통일을 하려는 것이다. 그러므로 북한 정권이 잘못되었다면 그것은 언젠가 그들의 인민들의 힘에 의해 붕괴될 것이다. 그러나 그것을 우리가 말하지는 말자는 것이다. 그것은 그들의 입장이다. 우리는 한국을 더욱더 민주화되고 더 인간적인 삶을 사는 나라로 만들어간다면, 그 힘이 암암리에 북한에 영향을 끼칠 것이다. 그러므로 그들 정권의 잘잘못을 우리가 이야기할 필요가 없다. 또한 그것 때문에 통일을 하지 말자는 것은 굉장히 잘못된 궤변이다."

그러나 북핵 사태 이후로 보수주의자들의 반북의식은 더욱 심화되어 가는 듯하다. 시위현장에 남의 나라 성조기가 등장하는 것 역시 한국적 보수주의 시위문화의 특이한 풍경이다. 민족의 시대가 갔다고 말하지만, 때 아닌 이념의 시대가 오고 있는 것처럼도 느껴진다. 민족적 동일성의 대상으로서의 북한보다는,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공유하고 있는 미국 중심의 세계체제를 더 매력적인 대상으로 생각하는 보수주의자들에 대한 그의 생각은 어떨까.

"보수세력들이 북핵문제 때문에 북한을 규탄하는 것. 그건 할 수 있는 일이다. 그러나 그 사람들이 그렇게 하는 것은 그동안에 민주화가 되어서 자신들의 활동기반, 사회기득권이 다 무너진 사정도 있는 것 같다. 그들은 그것을 빨리 복구하고 싶은 초조감 속에서 지난 14년을 살아왔다고 해야 한다. 그런데 마침 북쪽에서 그런 식으로 전쟁이 일어날지 모른다는 위기상황을 초래하자 위기를 침소봉대하고 있다. 이를 통해 자신들의 기득권을 다시 회복하고자 하는 듯하다.

약소국의 가장 비참한 경향은 강대국에 빌붙어서 기득권을 행사하고자 하는 신사대주의자가 많다는 점이다. 베트남의 경우가 그랬다. 티우 정권이 미국의 힘에 의해서 자신들의 권력을 유지하고자 했지만 민족주의 세력에 의해서 좌초된 바 있다. 우리도 지금 한국사람이면서 미국사람보다 더 미국적으로 사고하고 싶어 하는 사대주의자가 있다. 이것은 큰 비극이다. 이것은 자기가 무엇인지도 모르고 민족의 장래에 대해서 단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는 가장 무책임한 자. 자기 개인의 이익만을 옹호함으로써 호의호식하고 싶어 하는 기득권 세력의 파렴치다."

'자본주의 대 사회주의'에서 '강대국 대 약소국'으로

ⓒ 오마이뉴스 남소연
조정래에게 소비에트 해체 이후의 현실역사는 신제국주의적 질서인 것처럼 보였다. 그것은 19세기와는 다른 방식의 영토식민지 체제에서 경제식민지 체제로 전화하는 나쁜 방식의 세계화를 의미하는 것처럼도 느껴졌다. 그는 인터뷰 도중 '신사대주의자'라는 표현을 자주 썼으며, 자본주의와 사회주의라는 이념형 대신 강대국과 약소국이라는 표현을 애용했다. 그런 그는 21세기가 과거와 같은 이념의 세기일 수는 없다는 주장도 덧붙였다.

"나는 좌우 그런 식으로 말하는 것을 소련이 망한 이후에는 안하고 싶다. 지금 지구상에는 오로지 자본주의만이 있다. 중국이 사회주의 국가라고 하지만 내 판단에는 아니다. 다만 사회주의 시장경제라고 말할 뿐이다. 베트남 역시 사회주의 체제를 완전히 포기한 것처럼 보인다. 요즘 많이 언급되는 남미의 경우도 국가적 단위에서만 미국을 막겠다는 것이지, 사회주의를 구현하겠다는 것은 아니다. 그러므로 강대국과 약소국 우리는 이렇게 말해야 한다.

오로지 생존을 위한 18, 19세기의 영토식민지 시대의 관계가 21세기에는 경제식민지 관계로 바뀌면서 남미의 약소국들이 미국에 대항에서 뭉치는 현상으로 보인다. 우리나라 역시 우리의 생존을 위해 미국과 거리를 둘 건 두고 따질 건 따지는 냉철한 경제관계로 가야 한다. 감상적으로 우방이니까 의지해야 한다 이런 논리는 곤란하다. 현재의 세계화라고 하는 것 또한 새로운 방식의 신제국주의 질서로 생각해야 한다."

조정래는 과거와 같은 방식의 세계사적 이념대립의 축이 무너졌다고 주장했다. 그런 점에서, 미국과의 관계 문제 역시 그는 냉철한 경제적 거래관념으로 볼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경제적 거래관계의 문제로 미국을 사유한다면, 친미라든가 반미라고 하는 감정적 수사는 무의미해진다. 그렇게 본다면 가령 한미 FTA 반대 문제를 무리하게 반미주의로 연결시키는 보수주의자들의 색깔공세는 근거 없는 것이다.

"역사적으로 우리에게 미국은 거부할 수도 부정할 수도 없는 그야말로 애증이 엇갈리는 존재다. 미국은 우리 경제발전 초기에 엄청난 이익을 준 존재다. 그렇다고 해서 미국이 우리를 피를 나눈 형제로 잘 봐 주는가 하면 그것은 아니다. 경제관계에서는 냉철한 거래관계일 뿐이다. 한미FTA 문제의 경우, 양심적인 세력은 시기상조라고 말한다.

나는 무엇 때문에 저렇게 빠른 속도로 정부가 협정을 진행해나가는지 모르겠다. 전국민, 전국가의 존립과 관계되는 문제는 공청회를 해야 한다. 또한 모든 자료를 공개해야 한다. 그런데 갑작스럽게 하고 시기를 정해놓고 해야 한다는 억지를 부리고 있는데 이는 미국이 원해서 하는 것이지, 우리 국민이 원하는 것이 아니다. 심한 사람은 FTA 하면 한국사람은 다 거지된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다. 그 정도로 피해가 크다. 그럴 때 우리가 미국에게 우리는 우방이고 형제이니까 해야 한다 그러면 될까. 그것은 곤란하다. 미국과의 관계 역시 감상적으로 접근하면 안 된다. 경제논리는 냉혹한 것이니까."

"한국소설 위기의 원인은 1인칭 소설"

ⓒ 오마이뉴스 남소연
오늘의 한국사회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지만, 역시 조정래는 우리 문단의 대표적인 중견작가다. 그것도 대중들에게 아주 잘 읽혀지는 작가다. <태백산백>이 100쇄를 돌파한 것이 1997년이고 현재는 200쇄를 눈앞에 두고 있다. 이번에 <아리랑>이 100쇄를 돌파함으로써 <한강>을 포함하여, 순문학 작품이 1200만권 이상 팔렸다는 이야기가 된다.

소설 문학의 위기를 말하고, 독자층의 이탈을 운위하는 문단에서 이것은 매우 뜻 깊은 일처럼 느껴진다. 문단에서는 소설문학의 위축을 두고 교양독자층의 문학으로부터의 이탈을 거론한다. 실제로 내가 주변에서 만날 수 있는 많은 사람들이 소설을 읽지 않는 이유를, 독서에서 얻을 수 있는 효용을 찾기 어렵다는 점을 들고 있다. 흔해빠진 감상과 연애담을 지루할 정도로 자주 읽다 보니, 뻔하다는 생각이 든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조정래의 소설이 이렇듯 광범위한 독자들의 관심 속에서 읽힐 수 있었던 동력은 무엇일까? 작가에게 물어보았다.

"첫번째는 분단된 역사상황 속에서 지난 역사의 진실을 남북한이 전부 자기들 정권집단의 요구대로 왜곡했다. 나는 그 왜곡된 역사를 소설적으로 교정하고 복원하기에 애썼다. 독자들이 이 부분에 동의해주었던 것 같다. 두 번째로 경제성장과 함께 계속 독자들의 지적 수준이 성장했다는 점을 들 수 있다. 그런 독자들은 심각하고 무게 있는 이야기들을 여전히 기다리고 있다. 이런 두 가지 요소가 내 소설의 생명력을 지속시켜준 것 같다."

<한강> 이후에 그가 출간한 소설 <인간연습> 또한 소설 시장의 불황에도 불구하고 초판은 3만부를 찍었고, 한 달 만에 7만부 가량 팔렸다고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역시 한국소설이 위기라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현실이다. 그는 이 위기의 원인을 1인칭 소설에서 찾고 있었다. 특히 젊은 작가들이 1인칭 소설들을 많이 쓰는데, 그러다 보니 내면의 이야기를 중언부언하는 데서 멈추고 있다는 것이다. 무엇보다도 소설은 이야기성이 중요한데, 이야기성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이 1인칭 소설쓰기를 벗어나야 한다는 것이다. 일리 있는 주장으로 느껴졌다. 조정래는 대하소설 3부작인 <태백산맥>, <아리랑>, <한강> 이후 자신의 소설적 관심이 변화하고 있다는 점도 고백했다.

"<한강>까지는 우리민족의 문제를 통해서 우리 사회성원들이 알아야 하거나 인식해야 되는 문제들을 이야기하고 싶었고, 그것이 우리 민족의 역사를 통해 인류사적 문제로 확대되길 희망했다. 지난 번 프랑크푸르트 도서전에 갔을 때, 낭독회에서 사회자가 묻기를 당신은 새 소설에서 구라파독자들에게 무엇을 보여주고 싶으냐고 물었을 때, 그것은 한국의 이야기이자 인류 전체 약소민족들이 겪을 수밖에 없는 불행한 과거이고, 앞으로도 그러한 역사의 반복은 계속될 것이기 때문에 경종을 울리고 싶었다고 말했다. 일본에서 <태백산맥>이 번역되었을 때 한 평론가가 이 작품은 한국동란에 대한 이야기뿐만이 아니라 전인류사적 강대국의 범죄에 대한 고발이라고 했다.

<한강>을 쓰고 나니까 우리민족의 문제를 전인류사적 주제와 소재로 나아가는 것이 작가로서 바람직하지 않은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소련의 멸망과 더불어 우리 분단과 연결되어 파괴되는 한 인간의 문제를 쓴 것이 <인간연습>이고, 현재 문예지에 연재되고 있는 <오 하느님>은 소위 강대국이 약소국들을 향해 어떠한 인간범죄를 일으키고 있는가, 또 저지를 것인가를 성찰하는 작품이다."

아버지에 관한 유년의 기억, 그리고 '큰 소설'

조정래와의 인터뷰는 두 시간에 걸쳐 이어졌다. 소설을 쓰는 일을 스스로 '글감옥'에 갇힌다고 말하는 작가를 만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었다. <아리랑> 100쇄 출간이라는 우연한 계기가 그것을 가능케 했다.

조정래의 소설을 읽으면서 또 대화를 거듭하면서 느끼게 되는 것이지만 민족주의에 대한 그의 인식은 매우 치열한 것이어서, 그의 강건한 인성의 뼈대가 된 듯했다. 음성은 강직하고 단호했고, 명료한 표준어의 종결어미가 인상적이었다. 그러나 사적 담화를 나누는 자리에서는 그의 소설에서 들을 수 있었던 아름답게 발성되는 전라도 사투리가 끼어들었다.

그의 민족주의는 어디서 온 것일까. 조정래를 만나고 집으로 돌아와서 그가 이전에 출간했던 산문집 <누구나 홀로 선 나무>를 다시 읽어 보았다. 그 산문집에서 유독 그의 부친인 철운 스님에 대한 기록이 인상적으로 뇌리에 남았다. 속명이 조종현인 그의 부친은 만해 한용운의 제자로, 식민지시기 비밀결사조직이었던 만당의 일원이었다. 해방 당시 선암사의 부주지였던 철운 스님은 해방을 맞이한 상황 속에서 세 가지 현수막을 절 앞에 내걸었다고 한다.

"절은 사회에 봉사해야 한다."
"모든 사답은 소작인들에게 무상분배해야 한다."
"승려들은 자질향상을 위해 공부에 매진해야 한다."

이 운동은 주지와 충돌을 빚었고, 절의 승녀가 양분된 가운데 '여순사건'을 맞게 된다. 그 와중에 철운은 빨갱이로 몰려 경찰서에 붙들려가고, 서북청년단에 집단으로 구타 당해 빗장뼈가 부러지고, 세 번이나 즉결처형장으로 끌려갔다 구사일생으로 살아난다. 그것이 조정래가 초등학교 1학년 때의 일이다.

한국의 대표적인 중견작가들은 유년기에 이러한 충격 속에 고스란히 노출된 경우가 많다. 작품쓰기란 결국 이 유년기 체험의 객관화 과정, 세계의 근원적 폭력성에 대한 해석과 분석 작업에서 출발한다. 어떤 작가들은 이데올로기와 결부될 수밖에 없는 유년기의 피해의식에 매몰되고, 어떤 작가들은 이로부터 성숙한 세계 전망의 자리로 나아간다. 내 판단에 조정래의 문학은 후자에 가 닿아 있다. 그가 큰 소설을 지속적으로 쓸 수 있었던 것은 이러한 균형감각에도 힘입은 바 크다. 이런 생각이 드는 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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