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 알코올 1도 미만의 음료수만 취급할 수 있는 노래방에서는 알파벳을 교묘하게 바꾼 유사맥주가 판매되고 있다.
ⓒ 이지영
서울 영등포구 신길동에서 노래방을 운영하는 박아무개(45)씨는 얼마 전 가슴이 덜컥 내려앉을 뻔했다. 마지막 손님들이 맥주 6캔을 마신 후 영수증을 써달라고 요구한 것. 신고로 이어지면 어쩌나 하는 생각에 영수증에는 '맥주' 대신 '맥아음료'라고 적었다.

인천의 한 노래방 업주도 일 주일에 평균 세 번 꼴로 단속을 들먹이며 협박하는 손님들에 시달리고 있다.

"지난밤에도 맥주 한 캔 값을 받으려다 술값 시비가 일었고, 결국 손님이 '내일도 이렇게 영업 잘 할 수 있나 두고 보자'며 나갔다. 불안하기도 하고 언제까지 이렇게 버텨야 하나 하는 생각에 한숨이 나왔다"고 말했다.

노래방을 운영하는 업주들은 하루에도 몇 번씩 같은 일로 가슴을 졸인다. 바로 노래방 내 맥주 판매 때문. 엄연히 불법이지만 노래방에 오면 당연히(?) 맥주 한 캔 하는 손님들이 많은 탓에 내줄 수밖에 없다. 여기에다 신고를 들먹이며 무전취식이나 금품을 요구하는 일명 '노파라치'와 강도까지 출몰하다 보니 노래방 주인들의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노래연습장 제재, 너무 과하다?

노래방에 알코올 도수 1% 이상의 주류가 반입 금지된 것은 2001년부터. 여기에다 지난 2006년 10월 29일부터는 퇴폐영업을 방지하기 위해 도우미 처벌 등을 포함하고 있는 문화관광부의 음악산업진흥에 관한 법률(이하 음산법)까지 적용받게 됐다.

음산법에 따르면 정해진 시간 외에 청소년을 출입하게 하거나 손님에게 주류를 판매, 제공한 노래연습장업자에게는 2년 이하의 징역 또는 2천만 원 이하의 벌금이 적용된다. 노래방에 도우미를 부를 경우 1년 이하 징역 또는 300만 원 이하 벌금이 적용된다. 그러나 손님은 처벌 대상에 포함되지 않는다.

한편 청소년 보호법은 청소년을 대상으로 성매매를 할 경우는 상대자에게 3년 이하 징역 또는 2천만 원 이하의 벌금으로 규제하고 있다. 때문에 업자들은 노래방에 대한 제재가 상대적으로 과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중에서도 가장 대표적인 것이 캔맥주 판매 금지.

전국노래연습장업중앙회에 따르면 자영업자가 운영하는 노래방은 2005년 기준으로 3만8천여 곳. 서울시 동작구 노량진동에서 노래방을 운영하는 한 업주는 "하루 이용 손님 중 청소년을 제외하고 맥주를 요구하는 손님은 열 명 중 여덟 명 가량"이라고 밝혔다. 그리고 "맥주 대신 유사 맥주를 판매하기도 하지만 유사 맥주에 대한 거부감 때문에 거의 팔리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때문에 업자들은 불법인 줄 알면서도 영업이익을 위해 맥주를 판매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서울시 영등포구의 한 노래방업주도 "규모에 따라 다르지만 7개의 방으로 운영하는 업소의 경우 불법 판매하는 캔맥주의 매출은 하루 6~7만 원 가량"이라며 매출에서 만만치 않은 비중을 차지한다고 밝혔다(맥주 한 캔 2500~3000원).

공원·캠퍼스에서도 마시는 캔맥주, 왜 노래방은 안되나

▲ 노래방은 맥주를 비롯한 주류 반입이 금지되어 있다.
ⓒ 이지영
하지만 이에 따르는 위험 부담도 만만치 않다. 현재 노래방에서 맥주가 한 캔이라도 발견됐을 때에는 주류를 판매, 제공, 보관하거나 손님의 반입을 적극적으로 막지 않았다는 이유로 영업정지를 적용받게 된다.

노래방 업자 박아무개씨는 "식품접객업소가 아니므로 주류를 판매하지 못하는 것은 인정하지만 캔맥주는 2차 조리 과정이 필요 없이 공원이나 대학 캠퍼스 내에서도 마실 수 있는 음료"라며 "맥주에 한해 주류반입금지를 풀어도 '건전함'을 요구하는 입법취지에는 벗어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자영업자 김아무개씨도 "도우미 영업을 하던 노래방 때문에 인식이 안 좋은 것은 사실이지만 맥주 한 캔을 가지고도 '퇴폐영업'이라고 단정해 처벌하는 것은 곤란하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노래방을 이용하는 일반인들의 생각은 어떨까.

직장인 황성원(27)씨는 "캔맥주는 공공장소에서도 편하게 마실 수 있는 음료인데 노래방에서만 맥주는 불법이라고 하는 것은 납득하기 힘들다"고 말했다. 대학생 안성준(23)씨도 "PC방이 금연석과 흡연석이 구분돼 있는 것처럼 노래방에서 맥주도 청소년실, 성인실 구분해서 판매하면 괜찮지 않겠느냐"는 의견이었다.

이와는 반대로 캔맥주를 허용해야 할 필요성을 느끼지 않는 사람도 많다. 노래방을 자주 이용한다는 김준혁(24)씨는 "노래 연습장에서 음료수를 마시고 노래만 부르고도 충분히 즐겁게 시간을 보낼 수 있다. 맥주를 허가한다면 지금 같은 건전한 이미지에서 점점 벗어날 것"이라고 우려했다.

노래방에서 캔맥주 마실 권리, 손님들에게 묻겠다

▲ 지난 11월 20일 노래방 업주들의 여의도공원 집회 모습. 이날 행사에서 업주들은 캔맥주 허용과 과도한 법집행 금지를 주장했다.
ⓒ 전국노래연습장업중앙회
지난 2004년 5월 노래방 업주들은 직업수행의 자유 보장과 캔맥주 판매 허용에 관한 내용을 포함한 헌법소원을 제기했다. 노래방에서 생기는 범죄나 일부 손님들의 협박에도 높은 벌금 때문에 당할 수밖에 없고 영업시간 내내 자리를 뜨지 않고 손님을 감시해야 하기 때문에 직업 수행의 자유가 제대로 보장받지 못하고 있다는 것.

하지만 2006년 11월 30일 헌법재판소는 이미 노래연습장, 단란주점, 유흥주점 등으로 업종이 구분돼 직업 선택의 자유가 있고, 주류를 판매하고 싶은 사람은 업종을 전환하면 되기 때문에 위헌이 아니라고 판결했다. 또 맥주 판매 금지와 관련해서는 법안(음산법)의 취지가 건전함을 목적으로 해 공익성에 부합하기 때문에 적절하다고 결론 내렸다.

헌법재판소가 손을 들어주지 않아 결국 노래방 업주들은 손님들에게로 눈을 돌렸다. 국민들에게 '노래방에서 맥주를 마실 권리'를 호소하자는 것. 하지만 아직까지 손님들의 반응은 시큰둥하다. 불법인 줄은 알지만 별 다른 어려움 없이 노래방에서 맥주를 마실 수 있고, 맥주 판매와 노래방 업주들의 생존권의 관계를 잘 인식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

전국노래연습장업중앙회의 한 업주는 "협회의 구심점이 없지만 노래방운영자라면 모두 법안에 대해 불합리하다는 생각을 갖고 있기 때문에 지속적으로 문제제기를 할 계획"이라며 "맥주 허가를 위해 서명운동을 한다고 하면 다들 비웃는다. 국민들이 노래방 업주의 생존권에 대해 조금이라도 관심을 가져줬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반면 문화관광부 콘텐츠진흥팀 최금정 주무관은 "캔맥주에 한해 술을 허용한다고 해서 법안의 취지인 공공성에 위반되지 않는 것은 아니다"면서 "헌법재판소의 판결대로 주류 판매를 원하는 업주는 업종을 변경하면 되기 때문에 업주들의 직업 선택의 자유를 침해하는 것은 아니다"라고 덧붙였다.

전국노래연습장업중앙회는 22일부터 문화관광부 앞 1인 시위, 1월 말부터는 서울 시내 주요 거리에서 시민을 대상으로 한 서명운동을 추진해 나갈 계획이다.

태그:#맥주, #노래방, #음산법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