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화 아포칼립토 포스터.
ⓒ 폭스코리아
영화 <아포칼립토>의 시대적 배경이 되는 마야 문명은 발달한 문명만큼이나 많은 의문과 수수께끼를 남겼다. 많은 예술가들의 영감이 되었고, 한번쯤은 다루고 싶어하는 주제이다.

하지만 여러가지 다양한 설들과 모순점들이 존재하기에 막상 다루기도 힘든 주제이기도 했다. 그래서 멜 깁슨 감독의 이번 영화가 갖는 의미는 크다.

뛰어난 리얼리티

그의 전작 <패션 오브 크라이스트>에서부터 시도된 원어 사용은 <아포칼립토>에서도 그대로 적용이 되었다. 구전되어 남아있는 마야 방언을 사용해 영화의 리얼리티를 제대로 살렸다. 현지에서 채용된 배우들의 외모와 그들이 구사하는 마야 방언은 영화를 보는 내내 잘 만들어진 다큐멘터리를 보는 듯한 인상을 남겼다.

<아포칼립토>의 공간적 배경은 크게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다. 정글에 남아 있는 문명의 혜택을 받지 못한 부족의 마을과 이미 고도로 문명화되어 타락해버린 제국의 도시로 말이다.

정글 부족 마을의 사람들은 평화를 사랑하고 유머를 즐길 줄 아는 온화하고 정감있는 인물들로 설정되었다.

사냥을 할 때 보여주는 협동심, 그리고 사이 좋게 사냥감을 분배하는 모습, 아무리 심한 장난을 쳐와도 화를 내기보다는 주위사람들이 즐겁기에 나도 즐거울 수 있다는 사람들의 인식, 웃어른을 존경하고 그의 지혜로운 이야기를 밤마다 경청하는 부족인들… 그들의 모습 속에서 참 평안과 사랑을 느낄 수 있다.

@BRI@한편으로는 이미 고도의 문명을 이룩한 제국은 이미 멸망의 문턱에 다다랐다는 것을 보여준다. 위대한 도시들과 제국들의 행보를 그대로 따라가듯 제국의 도시에서는 잔인한 제사와 놀이가 성행하고 있었다. 그리고 민심을 이용하여 이득을 챙기는 정치가들의 모습들은 정글 마을의 모습과 무척이나 대조적이다.

전작 <패션 오브 크라이스트>에서 보여 준 잔혹한 리얼리즘이 이번 영화에도 전개된다. 비가 올 때까지 사람의 심장을 도려내고 목을 베는 제사와 사람의 목숨을 걸고 무자비한 게임을 즐기는 도시 전사들의 창과 화살에 사람의 몸이 관통하는 장면들을 날것 그대로 보여준다.

잔혹한 리얼리티 외에 정글 마을 사람들의 지혜로운 풍습들도 생생하게 보여준다. 사냥할 때 보여준 협동 플레이와 과학적인 덫이 그러했고, 다리 상처를 개미를 이용해 꿰매는 민간요법도 그러했다.

관객들을 배려한 매끄러운 연출

이 영화에서 감독은 생동감 있고 빠른 액션 장면들과 등장 인물들의 내면연기를 자세히 잡아내는 장면을 적절하게 뒤섞어 영화의 오락적인 요소의 무게와 드라마의 무게 밸런스를 잘 잡아주었다.

호흡이 빠른 장면들 다음에는 어김없이 잠시 쉬어가는 듯 잔잔한 모습들을 배치해 관객들의 피로감을 풀어주었다.

예를 들어 다른 부족이 주인공 '표범의 발' 부족을 습격하는 장면 중간 중간에서 주인공을 클로즈업한다거나, 주인공의 시점을 빌려 앞에서 펼쳐지는 장면들을 무성과 느린 장면으로 보여주었다. 너무 빠른 액션 전개로 관객들이 영화의 호흡을 놓치지 않도록 배려하고 점차적으로 변화하는 '표범의 발'의 내면세계를 드러내게 해주는 장치이다.

자칫 지루하게 전개될 수 있었던 정글부족이 도시로 끌려가는 장면들은 여러 가지 위험 상황들과 복선들, 그리고 '표범의 발'과 도시 전사와의 갈등을 잘 버무리며, 앞으로 나타날 도시의 모습과 두려움을 잊은 '표범의 발'의 강인한 모습을 기대하게 해주었다.

인간은 운명은 거스르지 못한다?

ⓒ 폭스코리아
"당신들은 표범이 이끌고 오는 사람에게 멸망을 당할 것이다."

정글 마을 사람들이 도시로 끌려가는 도중 도시 전사들이 역병 걸린 소녀에게서 받은 예언이다. 섬뜩한 소녀의 외모와 목소리 때문에 더욱더 생생히 각인된 이 예언은 이 영화의 중반부터 후반까지의 이야기를 지탱해주는 뼈대이다.

탈출에 성공한 '표범의 발'은 아버지의 당부대로 두려움을 버리고 자신의 정글을 지키는 수호자의 면모를 보여준다.

소녀의 예언대로 도시의 전사들은 정글에서 '표범의 발'에게 차례로 죽음을 맞이한다. 그리고 '표범의 발'은 자신을 쫓던 2명의 전사들을 스페인 사람들에게 우연하게 인도한다. 표범이 이끌고 오는 사람들….

영화는 인간은 운명을 거스르지 못한다고 말한다. 위대한 제국도 마찬가지이다. 문명이 발달할수록 포악해지고 문란해지는 제국은 결국엔 멸망할 수밖에 없다. 이것이 역사가 보여준 진실이다.

하지만 운명을 거스를 수 없다는 이야기는 정해진 삶에 순응하며 살 수밖에 없는 사람들의 나약한 모습을 보여주는 것 같아 찜찜하다. 왜냐하면 이 이론을 따른다면 '표범의 발'이 두려움을 이겨낸 것도 결국엔 운명이 정해 놓은 일 아닌가? 그래서 이 운명론에 인간은 스스로 운명을 선택할 수 있다고 보충해 주고 싶다.

운명이 정해 놓은 길은 여러 가지이고, 우리는 그 길을 선택할 수 있다. 하지만 그 한 번의 선택으로 우리는 거스를 수 없는 몰락 혹은 행복으로 갈 수가 있다.

최근 할리우드에서 독특한 영화 연출로 늘 화제의 중심이 되는 멜 깁슨 감독이 수수께끼에 가득 찬 마야문명을 선택한 것은 필연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그만큼 과감하고 실험적인 도전을 하는 감독도 드물기 때문이다.

이번 영화에서 인간은 운명을 거스를 수 없다는 운명론을 거론한 멜 깁슨 감독. 그가 선택한 운명이 제시한 길은 신선한 소재와 생생한 영상이 주는 감동을 우리에게 전해주는 길이라 믿으며 그의 후속작을 벌써 기다려본다.

ⓒ 폭스코리아
2007-01-19 10:11 ⓒ 2007 OhmyNews
아포칼립토 멜 깁슨 리얼리티 패션 오브 크라이스트 감독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