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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파리의 생마르탱 운하 가에 늘어선 '돈키호테의 아이들'의 빨간 텐트들.
ⓒ 한경미
파리 시내를 걸어가다 보면 대로변 한가운데에서, 혹은 지하철 통로에서 구걸을 하는 사람들을 수시로 마주치게 된다. 이들은 대부분 집이 없이 여기저기 떠돌며 겨우겨우 생계를 유지하는 사람들이다. 이들에게 있어 숙박문제는 해결하기 여간 어려운 게 아니다.

통계에 의하면, 프랑스에서 일정한 주거가 없는 자들의 수가 약 10만 명에 달하고 이들 중 8%에 해당하는 8천여 명이 거리에서 노숙한다. 이들의 평균수명은 43세, 이중의 30%가 직업을 갖고 있으나 워낙 수입이 적어 싸구려 호텔방도 드나들지 못하는 상황이라고 한다.

현재 프랑스는 법으로 각 시마다 20%에 해당하는 건물을 빈곤자들에게 배정하도록 규정되어 있지만 실질적으로 지켜지지 않고 있는 실정이다.

날씨가 추운 겨울철에는 노숙자들의 신변보호를 위해 여러 자선협회에서 임시수용소를 운영한다.

그러나 많은 노숙자들은 오히려 거리에서 밤을 새우기를 선호한다. 임시수용소가 비위생적인데다 절도사건도 수시로 일어나기 때문이다. 또 아침이면 다시 짐을 꾸려 거리로 나와야 하는 번거로움도 있다. 수용소는 상당수의 노숙자들이 데리고 있는 개 등의 애완동물도 받아들이지 않는다.

운하 주변에 늘어선 빨간 텐트

@BRI@이런 노숙자들의 운명에 특히나 가슴 아파하던 사람이 있었다. 오귀스탱 르그랑(Augustin Legrand). 법대 출신의 배우인 그는 평소에 어떻게 해야 공권력의 관심을 이들에게 쏠리게 할 수 있을까 고심하던 중 작년 10월 말 자기도 이들처럼 길거리에서 텐트를 치고 노숙하기로 결정한다.

마음 맞는 친구 2명과 같이 한 노숙생활에서 그는 노숙자들의 생활을 경험으로 체험했고 많은 노숙자들을 알게 된다. 그들로부터 어떻게 해야 한 데서 춥지 않게 밤을 보낼 수 있는가 등 많은 정보도 얻었다.

그의 노숙자 생활은 12월 2일까지 지속되는데 1개월 반 정도의 노숙자 생활에서 얻은 것은 무엇보다 시시각각으로 다가오는 위협이었다. 추운 밤에 추위로 얼어죽지 않을까, 자는 동안 누군가 자신을 위협하지 않을까 등등 위협의 종류는 여러가지였다.

르그랑은 어느 날 드디어 행동을 개시한다. 그는 뜻을 같이하는 몇몇 친구들과 함께 '돈키호테의 아이들'이란 협회를 구성하고 사비 3200유로를 들여 텐트 100여개를 구입했다. 그리고 지난 12월 16일 아침 파리 시내 생마르탱 운하 가에 텐트를 설치했다. 그리고는 길거리에서 노숙하는 SDF(Sans Domicile Fixe, 일정주거지가 없는 자)들을 불러들였다.

며칠 전 오스테르리츠 역에서 경찰에 의해 추방당했던 노숙자들이 소문을 듣고 찾아왔고 근처에서 노숙하던 자들도 빨간 텐트가 운하에 줄줄이 늘어선 것을 보고 의아해하며 찾아들었다. '돈키호테의 아이들'은 협회 사이트를 통해서도 광고를 냈다. 그동안 알게 된 노숙자들의 삶의 증언들을 사이트에 게재한 것이 미디어의 눈에 띄어 서서히 이들의 주목을 받게 된다.

일반인들도 동참... 200여개로 늘어난 텐트

▲ '돈키호테의 아이들' 회장 오귀스탱 르그랑이 지난 8일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 AFP=연합뉴스
르그랑은 제대로 된 집에서 사는 일반인들도 하루 밤 정도 텐트에서 자면서 노숙자들의 생활을 몸소 경험해보라는 이색적인 제안을 하는데 그 결과, 첫 주에는 60%의 노숙자와 40%의 일반인들이 공동 텐트생활을 하는 보기 드문 광경이 연출되었다.

이들이 텐트를 치기 시작한 지 열흘이 지난 12월 25일, 텐트는 200여개로 배가됐고 르그랑과 친구 한 명은 공권력의 여전한 무관심에 항의하기 위해 단식투쟁에 들어갔다. 이들과 의견을 같이 한다는 뜻으로 노숙자 1명도 오후에 같이 단식에 가담했다. 르그랑은 동시에 각 정당에 메일을 보내 노숙자 문제를 같이 검토해 볼 것을 제안했으나 녹색당 하나만 간단한 대답을 보내왔을 뿐이다.

"정당하게 세금을 내는 시민인 우리가 이렇게 거리로 나설 수밖에 없고 또 단식투쟁에 들어갈 수밖에 없게 된 것은 노숙자들을 위해서이며 오로지 그들의 의견이 받아들여지기를 원해서일 뿐"이라고 키가 2m나 되는 장신인 르그랑(희한하게도 그의 이름은 '장신'이란 뜻이다)이 선언했다. 이들은 엠마우스와 카톨릭 원조등 다른 관련 협회와 공동으로 대통령에게 보낼 헌장을 작성한다.

이 헌장에서 이들은 노숙자를 받아들일 주거공간을 1년 365일 내내 그리고 하루 24시간 내내 열 것, 노숙자들의 지속적인 주거지를 보장할 것, 주거지가 없는 사람들도 정부에 주거지를 제공하라고 공식적으로 소송할 수 있는 권리를 만들어 줄 것 등을 요구했다.

외면할 수 없게 된 정부와 정치인들

이들의 움직임이 점점 뚜렷해지고 이들의 제안이 구체화되자 모든 미디어에서 이들을 톱기사로 다루게 되고 그동안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았던 정부에서도 가만히 있을 수만은 없는 상황에 이른다. 사회단결 장관 대표자인 꺄트린느 보트랭이 다음날인 26일 이들을 만나주겠다는 연락을 취해 온 것은 이런 맥락에서였다.

이들을 만난 자리에서 그녀는 "정부에서도 노숙자들의 문제를 심각하게 고려중이며 이들을 위해 정부긴급 예산으로 7천만 유로를 추가로 책정하고 노숙자들을 위해서 2달 내에 4000개의 침대를 수용할 수 있는 숙소를 마련할 것이며 이 숫자를 2007년 말까지 1만500개로 늘릴 계획"임을 밝혔다. 그러나 르그랑은 터무니없이 부족한 시설이라며 보트랭의 제안을 거절했다. 참고로 현재 프랑스에서 노숙자들을 받아들일 수 있는 침대 수는 1000여개에 불과하다.

한편 26일 밤, 라호셸에서 텐트생활을 하던 58세 여자 노숙자가 추위로 사망하는 사례가 발생하자 사태는 더욱 심각해졌다. 결국 사회당수 홀랑드는 이들이 요구하는 헌장에 동의한다는 의사를 표시했고 파리시장인 들라노에는 이 헌장에 직접 사인을 하기에 이른다.

정치인만이 이들의 행동을 지지하는 것은 아니다. 많은 시민들이 이들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을 주겠다며 담요와 쥬스, 과자, 따듯한 의복 등을 제공해 주고 있다.

파리시에서도 운하 양쪽에 간이화장실을 설치하고 공중목욕탕을 열도록 요청하는 등 이들의 생활에 불편이 없도록 여러모로 신경을 써주는가 하면 'La Chorba (아랍 스푸의 일종)'라는 협회에서는 음식을 준비해 이들에게 나누어주는 선행을 하고 있다.

기자가 인터뷰한 디디에(33)와 프랑키(34)는 각자 루앙과 보르도에서 올라온 지방 출신 노숙자다. 길거리 생활을 하게 된지 몇 달 안된다고 한다. 둘 다 이혼 후 일자리까지 잃게 되자 술로 일상을 보내다 보니 어느 날 노숙자로 전락되었다고 한다. 대부분의 노숙자들이 거치는 클래식한 경로라고 한다.

이들은 '돈키호테의 아이들'의 선행을 칭찬하면서 그 덕에 일단 먹고 잘 걱정을 하지 않게 되어서 좋다고 한다. 밤에 춥지 않느냐고 물으니 텐트 속에서 침낭 속에 들어가 있으면 추운 줄 모른다며 그 어려운 상황에서도 웃음을 잃지 않았다.

ⓒ 한경미
지방으로 확산된 노숙자 텐트치기

정부와 민간 양쪽의 호의를 얻게 된 노숙자들의 텐트치기는 이제 지방으로 확산되어 오를레앙, 마르세이, 엑상 프로방스, 낭트 등 12개의 대도시에서도 수십 채의 텐트가 세워졌다.

이제껏 코미디언으로서 거의 알려지지 않았던 르그랑은 이번 활동으로 단번에 매스컴의 주인공이 되었다. 그는 외모와 구호 면에서 이미 52년 전인 1954년 추운 겨울에 같은 구호를 외쳤던 아베 피에르(피에르 신부)와 많은 공통점을 갖고 있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더욱이 노숙자들에게 텐트배급을 한 게 이들이 처음은 아니다. 이미 1년 전에 MDM(Medecins Du Monde, 세계 의사회)이 400여개의 텐트를 보급한 적이 있는데 이들은 거의 매스컴의 혜택을 받지 못했다.

그러면 '돈키호테의 아이들'의 행동이 이렇게 엄청나게 매스컴을 타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우선 프랑스 대선을 4개월 앞두고 있다는 시기적인 면이 많은 작용을 했다고 볼 수 있다. 표를 얻어야 하는 각 정당 후보들이 많은 대중의 관심을 끄는 이들의 행동에 무관심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좌측과 우측의 모든 정당이 너도나도 관심을 표현하기 시작했는데 공산당은 "현재 비어있는 건물을 이용하고 공공주택을 건설해야 한다"고 주장하는가 하면 사회당은 "돈키호테의 아이들이 주장하는 주택개선에 대한 제안이 우리 당의 정책과 많은 면에서 일치하므로 대선을 위한 사회당의 계획에 이들이 같이 임해줄 것을 제안한다"고 전했다.

반면에 지난 수 년 동안 주거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쓴 다른 협회들이 갑작스럽게 매스컴을 탄 이들을 비난하는 목소리도 높다. 이에 대해 돈키호테의 아이들은 "우리는 매스컴에 노숙자 문제를 알리기 위해 최선을 다했으며 그 결과, 같은 문제를 다루는 다른 협회도 오히려 우리 덕을 보면 보았지 피해를 보지는 않았을 것"이라며 이들의 비판을 일축했다.

생 마르탱 운하 텐트는 2007년 새해가 되어 300개로 증가했는데 이제는 더 이상 받아들일 자리가 없어 계속 모여드는 노숙자들을 다른 단체로 보내고 있는 중이라고 한다. 이들이 정부에 요구한 헌장은 많은 시민들의 호응을 얻어 매일 300여명의 사인을 얻고 있는 중이며 르그랑은 정부가 새롭게 제안한 사항에 전체적으로 만족하지만 아직 텐트를 철회하기에는 시기상조라고 덧붙였다.

▲ 정부의 대책 발표이후에도 철거하지 않고 지난 13일 생마르탱 운하 가에 도열해 있는 노숙자들의 텐트 행렬.
ⓒ 한경미
정부의 대책 "영구주거지를 주겠다"

그러던 중, 지난 1월 8일 정부가 드디어 구체적인 대안책을 발표하기에 이르렀다.

사회단결 장관인 장-루이 보를루는 ▲임시수용소에 임시적으로 피난해있는 노숙자들이 각 개인이 처한 상황에 알맞는 영구주거지를 배치받을 수 있게 한다 ▲추가로 2만7100개의 침대를 수용할 수 있는 시설을 개설하고 3000여개의 긴급집단 수용소를 유지한다 ▲동물을 동반한 노숙자들을 위해 임시수용소에 동물 입장 허락을 허용할 예정이며 1월 17일 예정된 장관회의에서 노숙자가 정부에 주거지를 제공하라고 소송할 수 있는 권리를 법안에 붙이는 사항을 검토하겠다고 발표했다.

'돈키호테의 아이들'은 노숙자들에 대한 정부의 근본적인 변화정책을 환영하며 이들의 요구가 전체적으로 받아들여졌음을 시인했다. 이제는 이 법이 제대로 적용되어지는 걸 주의 깊게 살펴봐야 한다며 생마르탱 운하에 텐트를 치고 있는 노숙자들이 주거지를 얻는 대로 텐트를 철수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이들의 협회장인 오귀스탱 르그랑이 며칠 전에 이미 아프리카로 해외촬영을 떠남으로써 이들의 텐트철거가 암암리에 준비 중이기도 한데 노숙자들은 실제적인 주거 제안을 받지 않는 한 돈키호테의 아이들의 철수명령이 내려져도 텐트를 떠나지 않겠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이들 중 몇 명은 만약 이들의 의사에도 불구하고 경찰이 강제철거를 실행한다면 운하에 몸을 던지겠다는 위협적인 발언을 하기도 했다. 차후에 이들의 텐트 철거상황이 어떻게 될지 지켜보아야 할 것이다.

태그:#파리, #돈키호테의 아이들, #노숙자, #생마르탱, #빨간 텐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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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가, 자유기고가, 시네아스트 활동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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