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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리즈 1권. <이케부쿠로 웨스트 게이트 파크>
ⓒ 황금가지
'이케부쿠로'는 일본 도쿄에 있는 거리의 이름이자 한 구역의 이름이다. 이곳에 있는 이케부쿠로 역은 도쿄와 서북쪽 교외를 연결하는 역할을 하기도 한다. 그래서인지 이 역은 수많은 승객들이 몰리는 곳이다.

이 역을 중심으로 주변에는 넓은 상권이 형성되어 있다. 역의 서쪽으로는 각종 유흥업소와 풍속업소가 몰려있고, 동쪽으로는 커다란 백화점을 중심으로 쇼핑가가 형성되어 있다. 이외에도 이 지역에는 대형서점과 음반점, 음식점과 라면가게가 즐비하게 늘어서 있다.

이렇게 번화한 곳이기 때문에 이케부쿠로는 도쿄로 여행가는 한국인들이 많이 찾는 장소이다. 동시에 시부야, 하라주쿠와 함께 도쿄 젊은이들이 놀기 좋은 곳으로 꼽는 장소이기도 하다. 시쳇말로 해서 '물 좋은 곳'이라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이케부쿠로 역에서 서쪽 출구로 나오면 그곳에는 커다란 공원이 있다. 이 공원이 바로 이시다 이라의 <이케부쿠로 웨스트 게이트 파크> 시리즈의 무대가 되는 공원이다.

번화한 곳에 있는 공원이기 때문에 이 공원에는 낮이건 밤이건 수많은 사람들이 모여든다. 여자를 꾀려고 작업 중인 남자들, 아슬아슬한 옷을 입고 공원을 활보하는 여학생들, 할 일 없이 공원 벤치에서 시간을 죽이는 백수들, 그리고 공원 외곽에서 먹고 자는 노숙자들까지.

@BRI@이 공원의 진짜 얼굴은 주말 밤에 나타난다. 주말의 밤이 되면 분수를 둘러싼 원형 광장은 헌팅을 위한 공간으로 바뀐다. 여자들이 벤치에 앉아있고 남자들은 둥글게 돌아가며 차례대로 말을 붙인다. 얘기가 잘 통하면 공원을 빠져나간다.

작가의 표현에 의하면 '술집이든 노래방이든 러브호텔이든 바로 옆에 다 있다.'

물론 이 광장에서 자신만의 일에 몰두해있는 사람들도 있다. 스케이트 보드와 산악자전거로 묘기를 부리는 사람, 기타를 끌어안고 바닥에 주저앉아서 노래 부르는 사람, 피냄새를 찾아서 어슬렁거리는 주먹패들. 이 공원에 있는 공중 화장실은 주말 밤이면 시장으로 탈바꿈한다.

많은 사람들이 모이는 곳이기 때문에 당연히 여기서는 크고 작은 트러블들이 끊이지 않는다. 그런 트러블은 말다툼으로 시작해서 폭력으로 발전하기도 하고 때로는 집단 폭행이나 끔찍한 살인을 부르기도 한다.

▲ 시리즈 2권. <소년 계수기>
ⓒ 황금가지
이시다 이라의 <이케부쿠로 웨스트 게이트 파크> 시리즈는 이런 이케부쿠로의 거리를 무대로 한 연작소설이다. 동일한 주인공과 주변인물들을 중심으로 이케부쿠로의 거리에서 일어나는 온갖 사건들을 생생하게 묘사하고 있다.

이 시리즈는 일본에서는 7권까지 출간되었고, TBS에서 드라마로 제작해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기도 했다. 만화로도 만들어졌고, 작품에서 주인공이 듣는 음악만을 모은 CD도 발매되었다고 한다. 약칭으로 IWGP라고도 부르는 이 시리즈가 일본에서 얼마나 큰 인기를 끌었는지 알 수 있다.

이 시리즈의 주인공은 공업고등학교를 갓 졸업한 '마시마 마코토'라는 인물이다. 그가 졸업한 학교는 졸업할 때까지 정원의 3분의 1이 퇴학당하거나 자퇴하는 문제학교다. 오죽하면 그 지역의 형사들이 그 학교를 가리켜서 '야쿠자 양성소'라고 이름을 붙였을까. 마코토는 그런 고등학교에서 꿋꿋하게 졸업장을 받아낸 인물이다.

하지만 졸업 후에 그는 백수가 되었다. 돈이 필요하면 집에서 하는 과일가게를 돌보며 용돈을 번다. 그리고 할 일이 없을 때는 공원으로 나가서 벤치에 앉아서 시간을 보낸다. 공원에서 많은 시간을 보내기 때문에 그에게는 이 거리를 떠도는 온갖 소문들이 들어오고 나간다.

주인공은 어느 날 우연히 연쇄성폭행범의 사건에 개입해서 해결에 큰 공을 세운다. 그 사건 이후로 마코토는 '이케부쿠로의 해결사'라고 불리며 크고 작은 일들을 의뢰받게 된다.

이 연작소설은 주인공 마코토가 자신에게 들어오는 사건들을 해결하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작게는 유괴사건에서부터 시작해서 크게는 집단폭행과 살인까지 연관되는 사건들이다. 그리고 주인공을 도와주는 조연들도 있다.

이케부쿠로의 거리를 장악하고 있는 조직 'G 보이스'와 그 우두머리 다카시, 학창시절에는 왕따였지만 졸업 후에 잘나가는 야쿠자 조직원이 된 '원숭이'를 비롯해서 수많은 조연들이 등장한다.

▲ 시리즈 3권. <뼈의 소리>
ⓒ 황금가지
이시다 이라는 대학을 졸업하고 프리랜서 카피라이터로 활동했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그의 문장은 간결하면서도 감각적이다. 장황한 설명보다는 핵심을 찌르는 말로 짧게 묘사한다. 작가는 자신의 첫 작품이자 출세작인 <이케부쿠로 웨스트 게이트 파크>로 올 요미모노 추리 신인상을 받았다.

하지만 이 연작소설은 추리나 미스터리 소설이 아니다. 작품마다 범죄가 발생하고 주인공은 그 뒷면을 파헤친다. 하지만 범죄소설이라기보다는 거리를 배경으로 한 청춘소설 또는 성장소설로 보는 것이 좋을 듯하다.

주인공은 폭력을 싫어하지만 자신을 그다지 머리가 좋지 못한 인간으로 취급한다. 그는 때로는 번득이는 직관을 이용해서 범인을 추적하고, 때로는 온몸이 멍투성이가 될 정도로 두들겨 맞기도 한다. 그 와중에서도 자신의 미래를 생각하고 패션 잡지에 칼럼을 연재하면서 글쓰기에 대한 자의식을 서서히 갖게 된다.

주인공이 뛰어다니는 이케부쿠로의 모습은 마치 드라마처럼 생생하다. 원조교제를 하다가 곤경에 빠진 여학생, 부유한 노인을 노리는 소매치기 일당, 재미로 여자를 납치해서 성폭행하는 소년들, 약물에 취해서 밤새도록 춤을 추는 사람들의 모습까지.

이케부쿠로의 해결사 마코토는 이 모든 사건을 하나하나 해결해 가지만 여전히 그는 혼자다. 여자친구도 없고 어머니와 함께 꾸려가는 과일가게의 매상이 신통치도 않다. 사건을 해결하더라도 자신에게 물질적인 보상이 돌아오는 것도 아니다. 욱하는 심정으로 일을 맡았지만 하다 보면 왠지 '또 이용당했다'라는 기분이 들기도 한다.

좋게 보면 쿨하지만 다르게 평하자면 조금 어수룩한 주인공이다. '해결사'라는 명칭에서 느껴지는 다재다능함 또는 강인함같은 것을 주인공은 가지고 있지 않다. 이 시리즈가 커다란 인기를 끌었던 요인 중 하나는 어수룩한 주인공 때문일 것이다.

일본에서는 7권까지 출간된 시리즈이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최근에 <이케부쿠로 웨스트 게이트 파크> <소년 계수기> <뼈의 소리> 3권이 나왔다. 매 권마다 중단편의 연작소설 4편이 담겨있다. 책을 읽다 보면 나른한 여름의 공원 광장이 눈에 떠오른다. 동시에 할 일 없이 광장을 어슬렁거리는 10대 학생들의 모습도.

젊은 시절은 폭력과 범죄의 유혹에 넘어가기 쉬운 시기이니 만큼, 이들의 이야기에 범죄가 꼬박꼬박 등장하는 것도 어쩔 수 없는 일이다. 그리고 주인공도 이런 일과 접촉하면서 조금씩 변해간다. <이케부쿠로 웨스트 게이트 파크> 시리즈는 주인공의 성장 이야기이자 이케부쿠로 거리가 성장해가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당신이 삶의 의욕을 잃었다든지 학교나 회사가 못 견딜 만큼 싫어졌다면 한 번쯤 이케부쿠로로 와 보는 게 어떨까. 처음에는 용기가 약간 필요할지도 모르겠지만, 넥타이나 교복의 호크를 풀고 앉아 보자. 그러면 틀림없이 이제껏 보지 못했던 새로운 세계가 보일 것이다. 거리는 굉장히 재미있는 무대이자 엄격한 학교다. 우리는 거기에서 부딪치고 상처입고 배우며 조금씩 성장한다."

덧붙이는 글 | 이시다 이라 지음 / 김성기 옮김. 황금가지 펴냄.


이케부쿠로 웨스트 게이트 파크

이시다 이라 지음, 김성기 옮김, 황금가지(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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