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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취임식 연단에 나란히 앉아있는 전직 대통령들. 왼쪽부터 김영삼 전대통령, 노태우 전대통령, 전두환 전대통령, 최규하 전대통령.
ⓒ 주간사진공동취재단

길지 않은 대한민국 역사지만, 그간 거쳐간 대통령들을 생각해보면 참 다양하고 개성 있는 사람들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그들의 공통점은 끝이 좋지 못했다는 데에 있을 것이다.

초대 대통령인 이승만은 독재에다가 부정 선거까지 저질렀다가 4.19혁명으로 대통령 자리에서 쫓겨나서 결국 이국 땅인 하와이에서 쓸쓸한 최후를 맞았다. 군사쿠데타를 성공하여 18년간이나 절대권력을 구가한 박정희도 종신권력을 꿈꾸다가 결국은 부하의 총에 목숨을 잃었다. 공과의 논란을 떠나 성공한 대통령이라 할 수는 없는 것이다.

@BRI@다시 쿠데타로 정권을 잡은 전두환이나 노태우에 대한 성공한 대통령으로서의 평가는 별 의미가 없을 것이다. 그들은 국정보다 오히려 기업들 돈 뜯어내는데 더 몰두한 것이 아니었나 싶다. 김영삼 대통령은 3당 합당의 멍에에도 불구하고 최초의 문민대통령으로서 기대가 컸지만 결국 초기의 여러 개혁적 성과에도 불구하고 아들의 비리와 IMF 외환위기로 나라를 거덜 낸 대통령이라는 평가를 받을 수밖에 없었다.

정계 은퇴를 번복하고 4수 끝에 대통령이 된 김대중 대통령도 외환위기 극복과 남북정상회담을 통한 햇볕정책 등으로 적지 않은 성과를 남겼지만, 빈부양극화의 심화와 임기 말 측근과 아들들의 비리 문제로 결국 성공한 대통령이 되지 못했다.

하나같이 성공하지 못했던 대한민국 대통령들

그리고 이제 노무현 대통령이 임기를 불과 1년 정도 남긴 시점에 왔다. 노 대통령도 성공적으로 임기를 마치기가 어려울 것 같다. 그런 점에서는 앞선 대통령들과 공통점이 될 수도 있겠지만, 다른 점도 또한 있다.

앞선 대통령들은 임기 초기에는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며 자신의 뜻대로 국정을 이끌어나갔지만. 노 대통령은 취임 초부터 대선 재개표를 요구받기도 했고, 대통령을 인정 못하겠다는 말이 심심찮게 나오기 시작하더니 결국은 사상 초유의 대통령 탄핵까지 당하고 말았다. 대통령의 권력이라는 것을 검사들과의 말싸움 외에는 별로 사용해 보지도 못했다.

탄핵에서 벗어나고, 열린우리당이 과반수 여당이 되면서 국정을 소신 있게 추진해 나갈 수 있는 기회를 마련했지만, 스스로 그 기회를 살리지 못하고 결국 임기 끝까지 무기력하게 비판과 비난의 홍수 속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되었다. 임기 내내 해야 할 일을 하지 못하고 자신을 방어하고 상대를 공격하다가 시간을 다 보내고 만 것이다.

이런 점은 노 대통령이 취임 초부터 강조했던 분권과 과도한 권력이양에 따른 결과일 수도 있지만, 표의 숫자로 당선되었지만 아직 우리 사회 전반을 단단히 지배하고 있던 기득권층의 비토 때문일 수도 있다. 조중동으로 대변되는 친미보수신문들, 한나라당으로 대변되는 보수정치권, 실질적으로 정부를 움직이는 보수관료들, 경제 전반에 막강한 힘을 발휘하는 대기업 총수일가들이 그런 세력들이라 할 수 있다.

노 대통령이 비판받아야 할 이유, 결국 실패로 임기를 마칠 수밖에 없는 현실의 문제는 여기에서 기인한다. 노 대통령은 그들과 맞서지 않고 그들의 이해와 지지를 구하고자 했다. 대신 자신이 대통령이 되기 위해 약속한 것들을 지키지 못했고, 지키려고 하지 않았다. 누구를 위해 대통령이 되었는지를 망각하고 서민이 아닌 기득권층이 자신을 받아주기를 희망했고, 우리 백성들보다 미국에 의지하려 했고, 노동자보다 재벌에게 더 다가서려 했고, <한겨레>나 <경향신문>의 비판에 반성하기보다는 <조선일보>의 모욕에 더 신경을 곤두세웠다.

해야 할 일은 하지 않고 이런 정치 과정에 매달린 결과는 지지자들은 다 떠나가고 그가 그토록 다가서고자 했던 세력들은 여전히 대통령에게 돌을 던지고 있는 지금의 현실이다. 지지율이 그토록 낮은 이유는 바로 노 대통령의 계산 착오내지는 착각에 있다해도 과언이 아니다.

<한겨레> 비판에 반성하기보다 <조선>의 모욕에 더 신경을 곤두세워

▲ 노무현 대통령이 3일 청와대에서 열린 신년 인사회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 연합뉴스
하지만 앞선 대통령들의 실패의 결과와 비교해 볼 때, 따지고 보면 노 대통령의 "부동산 외에는 꿀릴 것 없다."는 말도 영 틀린 말은 아니다. 누구같이 기업들 등쳐서 뇌물 받아먹지 않았고, 누구같이 외환위기로 나라 거덜 내지도 않았다. 자식이나 측근이 비리를 저질러 문제가 되지도 않았다. 그렇다면 무엇이 문제였던 말인가?

그 자신이 유일하게 '꿀리는 것'이라고 했던 부동산과 관련한 분양 원가 공개 문제를 한번 보자. 대통령 선거 때는 원가를 공개하겠다고 했다가, 막상 논란이 되니 장사의 원리에 어긋난다면 공개에 반대한다고 했다. 문제가 커질 대로 커지고 나서야 분양 원가 공개라는 대세를 거스를 수가 없으니 원가 공개를 하겠다고 TV인터뷰에서 말했다. 그런데 재경부 차관이라는 사람이 다시 공개를 할 수 없다고 한다. 도대체 하겠다는 것인지, 말겠다는 것인지 알 수가 없다.

이럴 때 건설족과 관료들에게 포위되어 있는 식물대통령이 아니란 것을 보여주려면 차관을 자르면 된다. 그런데 이도 저도 아니다. 그러고는 신년사에서도 반드시 부동산은 잡겠다고 또 큰소리를 친다. 말만 하고 되는 게 없다. 찔끔찔끔 대책만 남발한 게 아파트 값 폭등으로 나타난 지금의 결과이다. 이런 식으로 신뢰를 잃는 지름길로만 가니 지지를 받을 수가 없다. 새삼스레 해묵은 개혁 과제는 말하고 싶지도 않다.

노 대통령이 언론과 국민들의 평가에 기대하지 않는다고, 포기했다고 말했다고 한다. 여기에 많은 비판이 없을 수 없다. 하지만 나는 이를 애써 다르게 해석하고 싶다. 노 대통령은 이제껏 <조선일보>보는 국민들, 한나라당을 지지하는 국민들, 미국만이 우리나라를 지켜준다고 생각하는 국민들의 평가나 지지에 너무 많은 부담을 가지고 신경 써 왔다. 그런 부담과 기대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점에서 그렇다는 것이다.

구체적인 정책이나 국정에 대한 비판이 아닌 감정적, 이념적 선동이나 비난에는 과감히 관심과 신경을 거두어야 한다. 오만이니 독선이니 하는 말도 들을 만큼 듣지 않았나? 지금보다 더한 지지율 하락이나 비판을 걱정할 필요가 과연 있을까? 비록 이제는 1년밖에 남지 않은 임기지만, 지금부터라도 뚜벅뚜벅 애초의 지지자들의 뜻에 따라 묵묵히 가는 모습을 보인다면 지금보다는 훨씬 상황이 나아지리라 생각한다.

베네주엘라의 차베스 대통령은 논란이 많은 인물이고 그 나라와 우리나라는 많은 부분에서 입장이 다르지만, 미국과 기득권층의 저항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지지자들인 서민들의 편에 선 정책을 굳건히 밀고 나감으로써 높은 지지율을 얻고 있는 현실을 참고할 만 하다. 자신을 대통령으로 만들어준 사람이 누구인지를 생각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전체 국민의 합치된 뜻, 존재하나?

전체 국민의 합치된 뜻이라는 것은 외국과의 스포츠 경기일 때만 존재하는 것이다. 전체 국민을 만족시킬 수 있는 국내 정책은 없다. 대부분의 경우, 소수의 기득권과 다수 서민들의 이익이 맞서게 될 수밖에 없다.

그럴 때 기득권층과 맞서서 힘없는 서민들의 편에 서는 것이 비록 고통스럽겠지만, 누구의 이익을 위하는 것이 지지율을 올릴 수 있는 길인지는 정말 자명한 것이 아닌가? 종부세를 걷기 위해 1.3% 기득권층에 맞서는 것조차도 참 어려웠지만 결국 다수의 지지를 받는 정책이었다.

기왕 국민들의 평가에 기대하지 않겠다니, 노 대통령에게 지금까지와는 조금 다른 각오와 길을 생각해 보라고 당부하고 싶다. 국민의 평가가 아닌 다수 서민의 평가에 기대를 거는 것이 그것이다. 반대하는 관료들은 자르고, 건설족들의 로비를 뿌리치고 당장 약속대로 분양원가 공개부터 과감히 실행하는 것부터 시작하길 권한다.

태그:#분양원가, #분양원가 공개, #대통령, #부동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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