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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티즌 여러분, 올 한 해 어떻게 보내셨습니까. <오마이뉴스>는 한국사회의 여러 사건현장을 집중 조명하며 숨가쁘게 한 해를 달려왔습니다. 한 해를 정리하면서 <오마이뉴스>는 2006년 올해의 인물로 '대추리 마을 사람들'을 선정했습니다. 2003년 4월부터 4년간 이어진 긴긴 투쟁속에서 단 한번의 절망없이 공권력에 대항한 60~70대 '노인 활동가' 모두에게 이 상을 드립니다. 한편, '올해의 네티즌'은 수상자가 없어 쉽니다. <오마이뉴스>는 올해에 이어 내년에도 지금보다 더 신실한 내용으로 독자 여러분들과 만날 것을 약속드립니다. <편집자주>

▲ 지난 5월 국방부의 강제집행으로 폐허가 된 대추분교. 산산이 부서진 건물 잔해 위로 현장미술가 최병수씨가 작업한 '대추리 아메리카' 조형물이 세워져 있다.
ⓒ 오마이뉴스 남소연
▲ 지난 5월 평택 미군기지 확장이전에 반대하는 시위대가 대추리로 진입하는 것을 가로막고 있는 경찰을 향해 한 주민이 항의하다 울부짖고 있다.
ⓒ 오마이뉴스 남소연
▲ 지난 5월, 경기도 평택 대추분교에 대한 강제집행에 나선 경찰병력이 학교운동장으로 떼지어 몰려들고 있다.
ⓒ 오마이뉴스 이민정

1년 중 낮이 가장 짧고 밤이 가장 길다는 동지. 한해를 마무리하면서 동지를 하루 앞둔 21일 아침 평택 팽성읍 대추리 마을 입구에 섰다. 이곳에서 험프리스 미군기지를 뒤로 한 채 마을 안으로 뻗은 100여m 도로를 보고 있으면 눈 안에 세 가지 동체(動體)가 들어온다.

귓전을 울리며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건 도둑고양이들. 도둑고양이들이 곳곳에서 부스럭거리며 눈앞에서 나타났다 사라지기를 반복했다. 이보다 더 빠르게 눈앞을 스쳐지나는 것은 공중의 미군 헬기. 몸집뿐만 아니라 소음도 커 눈앞의 도둑고양이보다 동작이 훨씬 민첩했다.

가장 느린 동작으로 시야에서 떠나지 않는 풍광은 대추리 주민들의 뒷모습이다. 대부분 60∼70대 노인들이라 동작이 빠를 리 없다. 아무리 빨리 종종걸음을 쳐도 지팡이에 의존해 걷는 걸음이니 100여m 걷는 데는 족히 5분이 넘게 걸렸다. 눈 깜짝 할 사이에 하늘을 가르는 미군 헬기와 대추리 노인들의 움직임은 지극히 대조적이었다.

대추리의 before & after

@BRI@먼발치에서는 고즈넉한 시골풍경처럼 한둘 보이던 노인들도 정작 마을 한 가운데에서는 마주치기 힘들었다. 폭설 뒤에 기온이 뚝 떨어져 햇볕 없고 바람 찬 아침에는 노인들이 나들이 하기 쉽지 않은 모양이다. 인심 좋기로 소문 났던 165가구가 48가구로 대폭 줄어든 것도 한 이유였다.

지난 5월 4일 검은 '헬멧의 바다'를 이뤘던 대추분교 운동장, 9월 13일 빈집 한채를 10분만에 폐허로 만들었던 포클레인의 요란한 소음 등을 품었던 바로 그 동네인가 싶을 정도로 12월의 대추리는 썰렁했다.

올해 가뭄을 못 이겨 덜 자란 배추는 야외에서 그대로 냉동됐고, 매일밤 주민들이 '막걸리 회동'을 열었던 슈퍼마켓도 아침에는 문이 잠겨 있었다. 단돈 3천원에 밥과 반찬이 무한 제공됐던 식당 앞도 사람이 오간 발자국 하나 없이 눈만 소복이 쌓여 있었다. 국방부의 빈집 철거(9월 13일) 직전 개장한 황토찜질방에도 온기가 끊긴 지 오래였다.

한낮이 되자 주민들이 하나둘 노인정으로 모이기 시작했다. 식사를 위해 마주앉은 이들 중에는 눈에 익은 어른들이 많았다. 빈집 철거 당시 배추밭이 망가져 목소리를 높이던 김영녀(81) 할머니, 비행기 소음 때문에 못 살겠다던 송재국(69) 할아버지 등 모두 반가운 미소를 짓고 있었다.

밥상을 물린 뒤 "요즘 어떻게 지내시냐"는 질문에 대추리 노인들은 긴 한숨부터 내쉬었다. 한해동안 외지인들의 취재수첩과 카메라 앞에서 울고 웃었던 이들의 한 해는 어땠을까. 대추리 마을 사람들의 '2006년 희로애락'을 들어봤다.

[喜] "미군기지 이전, 5년 늦춘다지만…"

▲ 대추리 지킴이들이 주민들의 염원을 담아 마을 곳곳에 벽화를 그려놓았다.
ⓒ 오마이뉴스 남소연
지난 13일 기쁜 소식이 전해졌다. 평택 미군기지 이전사업이 2013년쯤으로 5년 정도 늦춰진다는 것이었다. 지난 2003년 7월 '미군기지확장반대 팽성읍 대책위원회'를 만들면서 시작한 4년여의 투쟁이 마무리되나 싶어 내심 기뻤다.

하지만 기쁨은 오래 가지 않았다. 주민들은 이전 연기에 대해 "특별히 기쁘게 생각할 일도 아니다"고 입을 모았다. 이틀뒤 서울고등법원이 대추리와 도두리 일대 주민들의 토지를 국가에 넘기라며 국방부의 '인도단행가처분 신청'을 받아들였기 때문이다. 기지 이전 계획이 연기됐어도 생활의 변화는 없는 셈이다.

최양재(69) 할머니는 "5년 연기된다해도 지금 삶이 나아지겠느냐"며 "농사를 지을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앞으로 5년간 어떻게 살아야할지 또 다른 걱정이 생겼을 뿐"이라고 시름을 토해냈다. 올해 5월 남편과 사별한 최씨는 "미군 기지 확장에 반대하던 남편의 뜻을 생각해서라도 이대로 물러설 수 없다"고 말했다.

곽진호(33·남)씨는 "이전 계획이 완전히 사라진 것이 아니라서 승리의 감격 같은 것은 없다"며 "망가지고 파헤쳐진 농토가 원상 복구되는 것도 아니다"고 냉담한 반응을 보였다. 그는 "국방부의 승소는 기지 이전이 늦춰지든 말든 주민들에게 나가라는 뜻"이라며 "주민들에게 희망이 있을 리 없다"고 잘라말했다.

[怒] "우리 아들 지태, 처벌이 너무 무거워"

▲ 미군기지 이전 반대시위를 주도하다 구속된 김지태 대추리 이장의 어머니 황필순씨. "아들이 하루빨리 석방돼 나왔으면 좋겠다"고 털어놓으며 긴 한숨을 내뱉고 있다.
ⓒ 오마이뉴스 남소연
김석경(78) 할아버지는 취미생활인 '시조(時調)회관' 왕래가 뜸해졌다. 일주일에 두 번 시조도 읊고 점심식사 이후 담소도 나누던 자리지만, 영 당기지 않는다. 아들 김지태 이장이 지난 5월 7일 구속된 이후 1심 공판(11월 3일)에서 징역 2년을 받았다.

김 할아버지는 "(징역 2년을) 예측은 했지만 (처벌이) 너무 무거워 환장하겠다"며 "남들처럼 가만히 있었으면 좋았을 것을 괜히 앞장서서…"라며 말을 잇지 못했다. 그는 "녀석이 재판장에서 판사보다 큰 목소리로 '미군을 후방으로 배치해 전쟁에 대비하는 것이 국가안보냐'고 따지더라"며 "싸우는 것 보고 (김 이장이) 못 나올 줄 알았다"고 말했다.

마을 주민들은 첫 번째 소원을 '김지태 이장의 석방'으로 꼽을 만큼 김 이장의 구속 수감에 강한 불만을 나타냈다. 김 할아버지는 "김 이장이 지난해 7월 10일 1차 평화대행진 당시 공무집행방해 혐의를 받고 있는데, 경찰이 가는 길을 막지 않았다면 생기지도 않았을 일"이라며 "민주화 운동을 했다는 사람들이 어떻게 이럴 수가 있느냐"고 정부를 겨냥했다.

송재국(69) 할아버지도 "초범인데다, 마을 사람들 살리겠다고 나선 사람에게 2년을 선고한 것은 정치적 재판이었음을 증명하는 것"이라며 "평화적 시위를 하겠다는 사람들을 폭도로 모는 것이 말이 되느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한편 이날 대추리를 찾은 하이디 유엔인권특별보고관은 "김 이장의 석방이 가장 시급한 문제"라고 말했다. 지난달 태국 방콕에서 열린 '인권옹호자대회'에서도 참가자 70여명이 미군기지 재협상과 김 이장의 석방을 요구하는 서명운동을 펼쳤다.

그는 "마을 주민들의 인권 보호를 위한 활동을 했다는 이유로 감옥에 가둘 수는 없다"며 "침체된 마을 사람들에게 희망을 찾아주기 위해서라도 김 이장의 석방은 절실하다"고 말했다. 지난달 국제 앰네스티는 김 이장을 양심수로 선정했다.

[哀] "검문 경찰과 철조망만 없었어도…"

▲ 미군기지 이전 예정지인 경기도 평택시 팽성읍 도두2리 철조망 인근 휴경지에서 실종 19일 만에 숨진 채 발견된 김치배씨의 동생 김치성씨가 시신 발견 당시 상황을 설명하고 있다.
ⓒ 오마이뉴스 남소연
김치성(55·도두2리)씨는 같은 동네에 사는 형 치배(61)씨를 실종 19일만에 찾았다. 치배씨는 집에서 반경 500m도 되지 않는 갈대숲에서 순찰중이던 경찰에게 사채로 발견됐다.

고엽제 피해자로 거동이 불편한 치배씨는 지난 25일 오후 6시께 산책을 나가 돌아오지 않았다. 다음날 온 가족이 전단지 4천장을 만들어 뿌릴 정도로 치배씨를 찾는데 열을 올렸지만, 정작 그는 집으로부터 걸어서 10분 거리도 되지 않는 곳에 넘어져 동사했다.

그는 사고 당일 대인기피증으로 경찰들의 검문을 피해 자신의 논이 있는 갈대숲으로 걸어가다가 철조망에 가로막혔다. 뒤돌아 가려다 흙더미에 걸려 넘어졌고 일어나려고 손발로 흙을 파헤치다 서서히 죽어갔다. 사람 허리 높이의 갈대에 가린 채 19일이 지났다.

동생 치성씨는 형을 찾느라 하루에 청심환 두 알로 버텼고, 치배씨의 둘째딸은 회사도 그만 뒀다. 애타게 찾던 그는 허무하게도 가족들이 하루에 서너번 이상 드나드는 가까운 곳에 죽은 채 가족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사체가 발견된 곳 주변은 철조망과 폐가뿐이었다.

치성씨는 "발견 당시 손톱 밑에 진흙이 잔뜩 끼어있었다"며 "누구라도 형을 조금만 도와줬으면 좋았을텐데"라고 아쉬워했다. 이어 "형은 평소 집 앞을 지키는 경찰들에 신경을 많이 썼다"고 말했다. 고인의 집에서 창문을 열자 바로 앞에 제복을 입은 경찰이 야광 지휘봉을 흔들고 있었다.

부인 조동심(53)씨는 "남편은 아픈 사람이었지만, 지난 8월 제주도로 가족여행을 다녀올만큼 언행에 큰 문제가 없었다"며 "철조망을 치지 않고, 그 전처럼 논을 그대로 뒀으면 아무 일도 생기지 않았을 것"이라며 남편을 가로막은 경찰과 철조망을 원망했다. 이어 "생지옥이나 다름없다, 맘대로 다닐 수도 없고…"라고 말을 잇지 못했다.

[樂] "아직 고향을 지키는 게 재미지"

"사는 재미가 무엇이냐"는 질문에 주민 대부분은 "재미는 무슨"이라며 한숨을 내쉬었다. 가계수입도 줄어든데다 비행기 소음은 밤낮을 가리지 않고, 이웃들간에 인정은 팍팍해져 삶의 재미를 찾을 여유는 없어 보였다.

방승률(72) 할아버지는 "고향을 지키는 게 재미"라고 말했다. 그는 "7살짜리 손자가 팔뚝질 등 경찰과 싸우는 주민들 모습을 그대로 따라해 속상하다"면서도 "불안하지만 오랫동안 같이 산 사람들과 마을을 지키는 게 재미있다"고 말했다.

김인순(72) 할머니는 모처럼 경로당을 나와 이웃 주민들과 동네를 거닐었다. 누군가 주워다 던져준 공을 이리저리 차면서 입을 가리고 소녀같이 웃었다. 그는 "매일 열리는 촛불집회에서 문정현 신부와 함께 여기서 이기게 해달라고 소원을 빈다"면서 "혹시 아느냐, 우리에게 기적이 일어나게 될지"라고 웃었다.

이은우 '미군기지확장반대평택대책위원회' 상임대표는 "미군기지 이전이 무효화되는 것을 상상하면 재미있다"며 "이전 계획이 연장·변경되고, 확장 계획 자체가 없어져서 마을 주민 바람대로 계속 이곳에 살 수 있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모든이에게 축복을 내린다는 성탄절을 나흘 앞둔 대추리. 이 마을 사람들의 동지섣달 긴긴 겨울밤은 이렇게 저물어가고 있었다.

▲ 21일 저녁 대추리 농협창고에 모인 주민들이 평택두레풍물패의 공연을 보며 환한 표정을 짓고 있다.
ⓒ 오마이뉴스 남소연

"2007년에는 희망을 맛보고 싶다"
<오마이뉴스> 올해의 인물 수상소감

평택 대추리의 '노인 활동가' 전원이 <오마이뉴스>의 '올해의 인물'로 선정됐다. 소식을 접한 주민들은 "관심을 가져준 데 대해 감사한다"고 입을 모았다. 하지만 곧이어 "긴 싸움이 언제 끝날 지 모르겠다"고 씁쓸한 한 마디를 덧붙였다.

이들은 올 한 해 동안 국방부와 경찰이 합작한 행정대집행에 무너질 수밖에 없었지만, 마을 주민이 1/4로 줄어든 상황에서도 꿋꿋이 마을을 지키고 있다.

방승률(72) 할아버지는 21일 취재진을 만나 "사회에서 이렇게 평가해주니 아직 국민의식이 살아있다는 생각이 든다"고 수상소감을 밝혔다. 그는 "주민들이 당하는 수모로 봐서는 현 정권은 군사정권보다 탄압이 심하다"고 말했다.

방 할아버지는 "대추리 주민으로서 그리고 대한민국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소외감을 너무 느낀다"며 "미군기지 확장에 반대하면 빨갱이로 몰려 말 한 마디 제대로 할 수 없었다"고 토로했다.

이수걸(71) 할아버지는 수상소감을 전하자 감사의 뜻을 전하면서도 "답답하다"고 털어놓았다. "신문이나 방송을 봐도 우리에 대한 이야기가 많이 다뤄지지 않는 것 같다"며 "마음이 아프다"고 말했다.

김택균 팽성주민대책위원회 사무국장은 "기지 확장 계획이 연기되어 조그마한 희망이 생겼다"며 주민들은 그간 절망과 상처를 모두 맛봤다, 이제 희망이 올 차례 아니냐"고 반문했다. 이어 "내년 투쟁에는 이제 희망을 이야기할 것"이라고 얼굴 가득 미소를 띄었다. / 김현수·김소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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