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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국내 희귀질환자 수는 대략 50만명. 100만명이라고 추정하기도 합니다. 희귀질환자들은 전문의와 관련 약품 부족, 사회적 편견, 경제적 궁핍 등의 고통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멀쩡한 성인도 갑자기 희귀병에 걸리기 때문에 누구나 희귀질환자가 될 수 있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연속기사를 통해 희귀질환의 실상을 제대로 보고, 환자들의 아픔을 살펴보고자 합니다. 이번 기사가 '나눔'과 '행복'의 의미를 살피는 계기가 되길 바랍니다. <편집자주>
▲ 방 안 가득한 장난감. 언제 세상을 떠나도 후회없도록 아빠가 아연이에게 사준 장난감들이다.
ⓒ 김대홍
"언제 죽을지 모르니 다 사주는 거죠. 나중에 원 없으라고…."

보증금 300만원에 월세 30만원. 서울시 중랑구 어느 뒷골목 9평짜리 단칸방에 들어서자마자 맞닥뜨린 것은 방안 가득한 장난감들이었다. 장난감 전화기, 인형의 집, 여자 아이 인형, 강아지가 박힌 공에서부터 거대한 공룡 로봇과 모형 경주용차까지. 이 모든 것이 아연(3)이 것이다. 여자아이인데도 불구하고 남자아이가 좋아할 만한 것까지 장난감 종류는 다양했다.

@BRI@아연이는 지금 '유전성 거대 백악질'이란 병을 앓고 있다. 치아와 뼈를 연결하는 백악질이 과도하게 자라는 종양으로 계속 뼈를 깎아내지 않으면 생명이 위험하다. 기도가 막혀 숨을 쉴 수 없기 때문이다.

전 세계에 여섯 명밖에 없는 희귀병이다. 얼마 전 한 사람이 사망했으니 이제 다섯 명이 남은 셈이다. 그 중 두 명이 아연이와 아버지인 이영학(25)씨다.

이씨는 9살 때 '유전성 거대 백악질'에 걸렸다. 세계 최초 발병자다. 얼굴이 일그러지기 시작한 그는 '기형아'라는 놀림을 받으며 자랐다. 이씨는 한동안 방황했다고 털어놓았다.

유전 안된다고 했는데...

묻지도 않았는데, 감옥에 서너 차례 드나들었다는 말을 꺼냈다. 그동안에도 종양은 계속 자랐다. 얼굴에 생긴 종양덩어리를 없애기 위해 턱뼈와 잇몸을 제거하는 수술을 계속 받았고, 7년 전 마침내 어금니 하나만 남았다. 그래서 생긴 별명이 '어금니 아빠'다.

2002년 지금 부인인 최미선(22)씨를 만났고, 2003년 아연이를 낳았다. 당시 의료진이 '거대 백악질'이 유전이 안 된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잘못된 예측이었다. 아버지의 병은 고스란히 아이에게 대물림됐다. 이씨를 수술한 의료진은 아연이가 '죽는다'는 진단을 내렸다.

이후 아연이는 서울대 치과병원에서 얼굴 종양 뼈 95%를 제거하는 수술을 받았다. 당시 아연이는 진통제를 맞을 수 없을 정도로 어렸다. 수술 뒤 깨어난 아연이는 울지도 못했다. 얼굴 전체에 철심과 나사를 박아 고정한 상태였기 때문이다. 이씨는 그런 모습을 보면서 처음엔 함께 죽을 생각을 했다고 한다.

▲ 아연이가 치료받기 전(왼쪽)과 치료받은 후(오른쪽).
ⓒ 이영학
그렇다면 지금은? 아주 악착같이 살고 있다. 이씨는 아연이를 위해 온갖 단체의 문을 두드리기 시작했다. 지난해 초 한 방송국에 사연을 보내 치킨가게를 열었다. 가게가 문을 닫은 뒤에는 서울 명동에 나가 '아연이를 살려달라'고 고함을 질렀다.

마침 희귀질환 지원사업을 하고 있던 하트하트재단이 손길을 내밀었다. 2천만 원의 치료비가 나왔지만, 병원 측은 절반 이하 비용만 받겠다고 약속했다. 재단은 나머지 금액 전부를 부담했고, 그렇게 해서 지난해 12월, 올해 4월 두 차례 수술을 받았다.

지난해 말엔 홈페이지를 만들어 아연이 사연을 사람들에게 알리기 시작했다. 더불어 아연이 사연을 담은 책을 직접 만들어 판매에 나섰다. 몇 달 전엔 대기업이 운영하는 재단을 찾아가 자신을 모델로 한 광고를 제안하기도 했다. 그래서 쉽게 아픈 아이를 두고 좌절하는 부모를 보면 그는 분노한다. 술 마실 기운 있으면 시내 한복판에 나가서 "우리 아이 살려달라"고 고함이나 한 번 쳐보고 그런 소리 하라고 목소리를 높인다.

이씨는 오는 25일엔 전국 자전거 여행을 떠날 계획이다. 내년 1월 27일까지 우리나라 전역을 도는 경로다.

"앞으로 아연이는 25년 동안 계속 수술을 받아야 해요. 언제 죽을 지 모르죠. 저는 지옥 가도 상관없는데, 아연이는 좋은 데 갔으면 좋겠어요. 그리고 아연이가 나중에 커서 사춘기가 되면 아빠를 원망할 거예요. 왜 나를 이렇게 낳았냐고. 그때 이렇게 말하고 싶어요. 아빠가 이만큼 했다고. 그러니 아빠 너무 원망하지 말라고."

"장애인 보고 피하지 않는 세상 만들고 싶어요"

▲ 여느 아이들처럼 장난을 즐기는 아연이. 장난감 선글라스를 끼고 갑자기 얼굴을 내밀었다.
ⓒ 김대홍
지난해와 올해 두 차례 수술을 통해 기적처럼 살아났지만 아연이의 앞날이 밝지만은 않다. 자라는 얼굴 종양을 계속 잘라야 한다. 그 때문에 얼굴이 무너지고 있다. 다리뼈를 떼 내 붙일 순 있지만 그렇게 되면 아연이는 난쟁이가 된다. 다리뼈가 자라지 않기 때문이다. 지금 이씨는 자신의 다리뼈를 붙일 계획을 갖고 있다. 다만 뼈와 뼈가 맞아야 한다. 그는 지금 자신의 뼈를 무사히 이식하게 해 달라고 매일 기도하고 있다.

영학 씨도 몸이 성한 것은 아니다. 지금도 턱이 자주 빠진다. "아프지 않냐"고 물어보니 "많이 아프다"면서 잠시 아픈 표정을 짓는다. 이어 "잘 빠진 만큼 잘 들어간다"고 이내 웃음을 보였다. 그는 몇 해 전 당한 교통사고 후유증 때문에 정신이 가끔 깜박깜박 한다. 인터뷰 도중 "방금 뭐 물어보셨죠? 제가 가끔씩 머리가…"라며 미안해할 정도로.

"솔직히 세상 원망스럽지 않냐"고 물어보았다. 그는 곧장 대답했다.

"아뇨. 제 탓이잖아요. 아연이는 100% 유전이에요. 저 때문에 이렇게 된 건데 누굴 원망하겠어요. 제가 죄인이죠."

원망스럽지 않다고? 그렇다면 경제적 궁핍, 대를 이은 질환, '기형아'라는 놀림 등은. 솔직한 속내가 듣고 싶어 재차 묻자 그는 "세상은 안 바뀐다"고 담담히 털어놓았다. 원망하는 목소리는 아니었다. 곧이어 "세상을 바꾸고 싶다"고 힘주어 말했다.

그는 기억에 남는 악플 두 가지를 소개했다. 하나는 "왜 도와주냐. 어차피 죽을 애를…", 또 하나는 "왜 아이를 키우냐. 나중에 거울 보면 죽고 싶을 텐데…"라는 말이었다. 이 말을 하는 이씨의 말은 무척 담담했다. '분노'보다는 오히려 '안타까움'에 가까운 표정이었다.

"우리는 장애인 보면 피해요. 거리를 두죠. 그렇지 않은 세상 만들고 싶어요."

그는 이날 '희망'이라는 말을 단 한 번도 쓰지 않았다. 대신 수없이 '죽음'이라는 말을 내뱉었다. 하지만 '절망'이라는 말 또한 한 번도 쓰지 않았다. 그는 현실을 너무나 똑바로 보고 있었다.

"완치 안 되는 것 알고 있다. 나한테 희망이 뭐 있냐. 돈 벌어서 뭐하냐. 몸 회복 안 된다. 아이도 이제 못 낳는다. 또 유전될 텐데. 아연이가 아프지만 않으면 그것으로 감사하다. 그런 것 생각하면 요즘 사람들 행복을 너무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물론 내 아이가 안 아프면 생각이 다르겠지만… 지금 나에겐 좌절할 이유가 없다."

미래 없는 삶, '나눔'에서 희망 찾아

▲ 아연이가 엄마 아빠 앞에서 애교를 부리고 있다.
ⓒ 김대홍
스스로 미래가 없다고 밝힌 이씨가 이후 공을 들이기 시작한 일은 '나눔'이다. 지난해 치킨가게를 할 때 정기적으로 결식아동과 양로원에 무료로 치킨을 배달했다. 그가 밝히기론 한 달에 약 60만 원 정도. 요즘은 책 한 권 팔 때마다 500원씩 적립해서 하트하트재단에 기부하고 있다.

얼마 전엔 후원금 중 일부를 재단에 기증했다. 이번에 자전거 완주를 마친 뒤 자전거를 경매에 붙인 뒤, 그 금액 역시 기부할 생각이다. 200만원씩 몇 군데 중증환자에게 기부하는 계획도 세워놓았다. 소망하는 꿈 또한 고아원 설립.

또한 복지재단 금액을 타내기 위해 너무 악착같이 매달리지 않을 생각이다. 하트하트재단이 1회 수술비를 더 지원하겠다고 했지만 정중히 거절했다. 또한 세이브더칠드런 등 몇몇 단체가 수술비를 지원하겠다고 나섰지만 다음에 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거절한 이유에 대해 이들 후원금은 '보험'이라고 대답했다. 복지재단 예산이란 게 무한정 나오는 게 아닌데, 지금 다 쓰면 정말 급할 때 못 쓰지 않겠냐고. 게다가 자신이 가져가는 만큼 혜택을 못 받는 사람이 있을 거라는 설명을 덧붙였다.

그는 자신을 '구걸 인생'이라고 표현했다. 한 건(수술비용) 해결하고 나면 그 다음 건을 걱정해야 한다는 것. 1회 수술비 마련에 목메지 않고 좀 더 긴 인생을 설계하고 싶다는 바람을 읽을 수 있었다.

이씨는 아연이가 태어난 후 지금까지 여섯 번 이사를 다녔다. 아연이가 세 살이니 대략 반년에 한 번 꼴로 이사를 다닌 셈이다. 아연이가 희귀질환을 앓고 있다는 사실을 알리길 원치 않기 때문이다. 또한 '산골소녀 영자' 사건처럼 강도에게 피해를 입지 않을까 걱정이 된다고 조심스럽게 입을 뗐다. 어린 아내와 아픈 딸 때문에 더욱 그렇다는 것.

▲ 자신도 중증환자인 이영학 씨. 아연이의 미래를 걱정하지만 자신의 미래도 불투명하다. 그래서 하루하루가 너무나 소중하단다.
ⓒ 김대홍
시종 당당하게 이야기했지만 그는 어쩔 수 없이 아내와 아이를 책임진 가장이었다. 그에게 지금 살고 있는 집에 언제 들어왔는지 물었다. 올해 6월부터 살기 시작했단다.

그에게 만약 5억원이란 돈이 갑자기 생긴다면 무엇을 할 것인지 물었다. 매번 자신 있게 대답하던 그가 처음으로 뜸을 들였다. 4-5초 정도 지났을까.

"집을 사겠다… 내가 죽으면 아연이 엄마와 아연이도 따라 죽어야 된다. 어떻게 살겠나. 월세도 제대로 못 낼 텐데. 집 있으면 든든하다. 형과 누나도 월세 사는데, 다 함께 살면 한 해 약 600만원 월세를 절약할 수 있다. 5억 정도면 4-5년 수술비는 되는 것이니 그동안은 마음이 든든할 것이다. 1억은 복지재단에 기부하겠다. 그리고 나머지는 포장마차를 사겠다. 평생 구걸하고 살 수는 없지 않나."

"힘들겠지만, 아연이 살릴 수 있다면..."
[인터뷰] 딸아이 치료 위해 전국 자전거 여행 준비한 이영학씨

- 자전거가 2대인데 이번에 구입하신 건가요.
"하나는 구입한 것이고, 하나는 한 자전거 동호회가 후원 거예요. 후원한 자전거는 완주 후에 경매에 넘긴 뒤 판매금을 국립암센터에 기증할 예정이에요."

- 평소 운동은?
"잘 못하죠. 몸이 불편하니까. 그래도 이번에 장거리 여행 떠나야 하니까, 매일 달리기하며 체력을 기르고 있어요."

- 전단을 싣고 홍보하면서 달릴 계획이죠?
"자전거 뒤에 트레일러를 달고 그 뒤에 전단지를 실을 거예요. 약 60kg 분량이죠. 교통사고를 당해 무릎이 깨진 적이 있는 저한테 쉽지 않은 무게죠."

- 강원도에 들어서면 산이 많은데.
"그런 데는 걸어야죠. 60% 이상은 걷는다 생각하고 있어요. 걷지 않고 자전거를 이용하겠다고 생각한 건 순전히 전단지 때문이에요."

- 함께 타는 분들이 있는지.
"함께 하겠다고 나선 자전거 동호회가 약 다섯 군데에요. 제가 전 구간 함께 하는 것은 무리고, 내가 반대한다고 했어요. 그래서 부분 구간 함께 하기로 했어요. 서울에서 구리, 춘천에서 정동진… 이런 식이죠."

- 숙박은?
"경찰서나 교회 등을 이용하고, 때에 따라선 여관에 묵을 수도 있어요."

- 구급약은 들고 가는지.
"감기약 정도죠. 그리고 파스 정도."(이씨는 지금 감기에 걸려 있다. 충분히 난방을 하지 못한 탓이라고 한다. 몸 상태 때문에 한 번 감기에 걸리면 최하 한 달이라고.)

- 겨울엔 오후 5시 정도 되면 이미 날이 어두워져요. 게다가 해가 떨어진 뒤에 인가가 없는 지역을 지나칠 수도 있는데.
"그때는 차를 잡아야죠.(차가 따라가는 것?) 그건 아니고, 히치하이킹이죠."

- 12월 31일 정동진에 도착하는데, 이후 일정은 언제 나오는지.
"일정은 지도를 보면서 형님이 짜고 있어요. 내륙으로 갈지 해안으로 갈지는 아직 정하지 않았어요."

- 왜 이런 위험한 여행을 결정했죠.
"처음엔 죽을 생각이었어요.(자살?) 아, 그게 아니고요. 그럴 각오였다는 거죠. 그 정도로 나서야 아연이 사연이 사람들한테 알려질 테니까요." / 김대홍

덧붙이는 글 | 후원 계좌 : 새마을금고 0534-09-005832-7 예금주 이아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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