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 서정갑 회장은 "우리더러 반정부라는 것은 아주 잘못된 시각"이라며 "지금 반대한민국 활동을 하는 것이 노무현 정권이다"고 주장했다.
ⓒ 오마이뉴스 김당

기존의 전통적인 보수우파의 부정적 이미지는 '꼴통 권위주의'로 통했다. 몸이 무겁고 데데하고 '꼰대' 같은 가부장적 이미지다. 노무현 정부가 출범한 2003년 8월 30일 서울 광화문 4거리에 가스총을 차고 나타나 시위 군중을 향해 가스총을 발사한 예비역 대령 서정갑은 이런 보수 이미지를 확 바꿔 놓았다.

일찍이 육·해·공·해병대예비역대령연합회와 '친북좌익척결 국민행동본부'를 만들어 각각 회장과 본부장을 겸하고 있는 서정갑씨는 2004년 반핵반김국민협의회 제5대 운영위원장을 맡으면서 보수우파의 위상을 '침묵하는 다수'에서 '행동하는 보수'로 각인시켰다.

예비역 대령 출신으로 '무명 인사'였던 서씨는 김상철 초대 위원장 이후 4대 봉두완 위원장까지 명망가 중심으로 꾸려온 반핵반김국민협의회의 5대 위원장을 맡아 조직을 '신속기동군화'했다. 국민행동본부장으로서 닦은 '국민행동'의 투사전력을 마음껏 발휘한 것이다.

서씨는 총회로부터 전권을 위임받아 12명의 공동의장에게 일일이 보고하는 기존의 층층시하 조직운영을 경량화하고, 거의 매주 한 번꼴로 조선·동아에 5단광고를 내고 격주에 한번 꼴로 집회시위를 여는 '게릴라 전법'을 구사했다.

"뒤에서 중상모략하는 것이 가장 마음 아프다"

@BRI@이렇게 해서 서씨는 지난 2004년 10월 4일 서울시청 앞 광장에서 개최한 국보법 사수 국민대회에 30만명을 집결시키는 '괴력'을 과시했다. 정부가 관변단체와 시민을 동원한 행사가 아닌 순수한 보수우파의 민간집회에 이처럼 많은 인원이 참가한 것은 유례없는 '사건'이었다.

그러나 '흥행' 성공은 시기와 질투도 불러왔던 모양이다. 그는 진보좌파 진영으로부터 가장 많이 고소·고발 당한 피소자가 되었을 뿐만 아니라 보수우파 진영 '내부의 적'으로부터도 고소와 제척을 당하는 신세에 처하기도 했다.

이에 대해 서씨는 "김정일 추종세력(진보좌파)은 사상적으로 잘 무장되어 있는데 우파 진영은 이해득실에 따라서 등을 돌리거나 중상모략을 하는 것이 병폐다"면서 "좌파의 공격에 대해서는 이념이 다르니까 당연하다고 받아들이지만 함께 우파보수운동을 하면서 뒤에서 중상모략하는 것이 가장 마음이 아프다"고 토로했다.

서씨는 그러나 국민협의회에서 물러난 뒤에도 여전히 대령연합회를 중심으로 한 국민행동본부의 본부장으로서 신문광고와 거리투쟁을 결합시킨 '게릴라전법'을 구사해 참여정부와 진보좌파를 공격하고 있다.

특히 서씨는 <오마이뉴스>와의 인터뷰에서 "현재의 한나라당 대권후보들로는 좌파정권을 종식할 수 있을지 회의적이다"고 말했다. 또 "한나라당 대선후보들이 지금 같은 기회주의적인 행보로는 곤란하다"면서 "국민행동본부가 지지할 단일후보가 반드시 한나라당 후보라는 법도 없다"고 덧붙였다.

지난 8~9월 80줄의 노병들까지 나서 거리행진을 벌인 전작권 환수 반대집회에 한나라당 대권 후보 가운데 아무도 얼굴을 내밀지 않은 것에 대한 불만이었다. 그는 "대한민국은 숨은 인재가 많다"면서 "개인적으로는 조순형 의원처럼 의정활동도 잘하고 할말을 할 줄 아는 용기와 자질을 가진 분이 대통령 후보로 나오면 좋겠다"고 밝혔다.

"그날 내가 강하게 나갔더라면 청와대는 지금 없을 것"

▲ 지난해 '자유동맹 10·24 국민대회'에 참석한 서정갑 국민행동본부장이 태극기와 성조기를 흔들며 참가자들에게 인사하고 있다.
ⓒ 오마이뉴스 남소연
서씨는 한나라당의 참정치운동본부에 참여한 뉴라이트전국연합에 대해서도 "그 순간부터 전국연합은 한나라당의 전위대이지 시민단체가 아닌 것"이라며 "'좌파정권 종식'이라는 목표를 갖고 있기 때문에 서로 등질 필요는 없지만 시민단체가 아니고 한나라당 전위대이기 때문에 거리를 두고 있다"고 밝혔다.

서씨는 또 2004년 '10·4 국보법 사수 국민대회'와 관련 "그때 사실 30만명이라는 사상 최대의 인원이 모였기 때문에 내가 마음만 먹으면 경찰 저지선 뚫는 것은 시간 문제였다"면서 "만약 내가 그날 강하게 나갔더라면 청와대는 지금 없을 것"이라고 호기를 부리기도 했다.

어떤 이는 '보수진영이 모두 침묵할 때 나타난 구국의 의병대장'(이희자 한국근우회 회장)이라고 칭송하지만, 어떤 이는 구시대의 망령에 사로잡힌 시대착오적인 '꼴보수'라고 폄하하는 그를 서울 역삼동 소재 사무실에서 만났다. 다음은 일문일답 전문이다.

- 연세대(행정학과, ROTC 2기)의 학풍은 '자유주의' 성향이 강한데 그런 대학을 나온 분이 가장 강경한 보수단체를 이끌고 있어 뜻밖이다. 대학시절에 학군단을 지원한 배경은?
"내가 60학번인데 대학 2학년 때 5·16 군사혁명이 일어났다. 그때 라디오방송으로 "우리는 반공을 제1의 국시로 삼고…"로 시작되는 혁명공약을 들었는데 상당히 멋있었다. 또 육사 생도들이 부패한 정권에 항거해 일어난 군사쿠데타를 지지하는 용기있는 퍼레이드를 하는 모습을 보고 호감을 가졌다. 그때부터 마음속에 '푸른 제복'을 입어야겠다는 생각을 품고 ROTC(학군단)에 지원해 64년에 제2기로 임관했으며 1992년 12월 말(53세)에 대령으로 예편했다."

- '예비역대령 연합회'라는 조직을 결성한 배경과 지향점은 무엇인가.
"전역 후에 93년 2월부터 육군 군사문제연구위원으로 5년 근무했는데 김일성이 사망한 94년 가을에 작고한 한신 장군을 모시고 대화할 기회가 있었다. 김영삼 정부가 율곡비리 등 군 숙정작업을 해 각군 참모총장과 역대 국방장관 등 군 수뇌부가 줄줄이 구속되던 시점이었다. 한신 장군은 '별을 단 사람으로서 얼굴을 들고 하늘을 볼 수 없다'고 자괴감을 토로하면서 '병과 최고 계급인 대령들이 실추된 군 위상 제고를 위해 앞장서라'고 당부했다.

그때 육해공군 대령 연구위원들이 163명이었는데 마침 내가 95년 2월에 군사문제연구위원회의 연구위원장으로 발탁되었다. 그래서 병과의 최고계급이자 군의 핵심 전략·정책을 입안하는 대령 자원을 잘 활용해 실추된 군 위상 제고를 위한 조직을 만들어야겠다는 뜻을 품게 되어 95년 4월 17일 예비역 대령 163명이 발기인이 되어 육해공군 대령연합회를 출범시켰다."

- 그런데 재향군인회가 있는데 왜 특정계급의 단체가 별도로 생긴 것인가.
"핵심을 찌르는 질문이다. 대위연합회나 중령연합회는 없는데 왜 대령연합회만 있느냐? 대령연합회가 성우회(星友會) 같은 향군 산하의 예비역장성들 친목단체와는 성격이 다른 것은 출범 배경이 다르기 때문이다. 앞서 말했지만 역대 국방장관과 각군 참모총장들이 비리혐의로 줄줄이 구속되었을 때 실추된 군위상 제고를 위해서 앞장설 계급은 대령밖에 없다는 공감대와 시대적 요청이 없었다면 연합회의 존재의 이유가 없다."

"대령연합회는 대한민국에서 결집력이 가장 강한 단체일 것"

- 대령연합회에 대해 '대한민국의 많은 단체 가운데 결집력이 가장 강한 단체일 것'이라고 하는데 도대체 뭐하는 단체인가.
"지금은 이렇게 <오마이뉴스>까지 관심을 가질 뿐만 아니라 해외에서도 기자들과 관심 있는 사람들이 다녀갈 만큼 대령단의 위상이 국민들에게 각인되었다. 그러나 이렇게 오기까지 대령합회에서 맨 먼저 한 것은 오두산 통일전망대에서 쓰레기 줍는 일이었다. 당시만 해도 대령이나 장군들이 군에서 나오면 국영기업체 감사 같은 취직 자리 하나라도 얻으려고 정부 눈치만 보았는데, 그때 우리는 국가가 우리에게 무엇을 해주기를 바라기 전에 우리가 국가를 위해서 무엇을 할 것인가를 먼저 생각하고 실천하자는 취지로 시작했다.

그밖에도 대령연합회는 6·25 전쟁 당시 '전사'를 했는데 기록이 '사망'으로 잘못 기재된 것을 바로잡는 일을 해 국립묘지의 전사자 묘지에서만 1608구를 전사자로 명예회복시키는 역할을 했다. 지금 국립묘지에 가면 동쪽묘지에 6·25 전사자 묘지가 있는데 거기 세워진 새로운 비석들은 전부 대령연합회에서 명예회복시킨 분들이다."

- 처음에는 163명으로 발기했는데 지금의 조직 규모는 어느 정도인가.
"90년대는 연합회의 활동이 그런 정도에 머물러 있었는데 2000년에 김대중 대통령이 남북정상회담을 하고 김정일의 서울 답방 얘기가 나오면서 2001년 1월 16일자 전우신문 1면에 '국민의 정부는 더 이상 국민을 우롱하지 말고 그 정체성을 밝혀라'는 5단광고를 냈다. 그것이 대령연합회 최초의 신문광고다. 그런데 광고를 본 많은 국민들이 대령들만 하지말고 국민들도 참여시키라고 해서 대령들이 주축이 되어 '친북좌익 명단공개 추진본부'를 출범했다가 이것이 2003년에 '친북좌익 척결 국민행동본부'(약칭 국민행동본부)로 개칭된 것이다. 지금은 대령단이 7000명이고, 6·25 참전 용사들과 해외 등지에서도 호응해 국민행동본부는 현재 등재회원만 3만5천명이다. 그래서 회원관리하기만도 바쁘다."

- 대령연합회 외에 현재 관여하고 있는 조직과 단체로는 어떤 것이 있나.
"현재 밝고힘찬나라운동 사무총장과 친북좌익척결 국민행동본부 본부장을 맡고 있다. 국민행동본부 사이트에 보면 후원·참여단체 명단을 공개하고 있는데 현재 150개에 이른다."

- 대령연합회와 국민행동본부가 유명세를 탄 것이 2004년 10월 4일 서울시청앞 광장에서 열린 '국보법 사수 국민대회'였는데, 그때 기자회견에서 '대한민국 경찰이 아니라 경찰을 가장한 인민무력부가 침투한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주장하는 것을 보았다. 시위대가 청와대로 향하는데 이를 막으면 경찰도 '친북'인가. 군생활을 오래 해서 '적 아니면 동지'라는 흑백논리와 이분법에 사로잡힌 것 아닌가.
"아주 중요한 질문을 던졌다. 지금 친북좌익을 하는 김정일 추종세력들이 진보라는 말을 사용하기 때문에 그런 것이지 나만큼 진보적인 생각을 가진 사람도 없다. 기자가 말한 것처럼 날더러 '수구꼴통'이라고 얘기하는데 우리는 헌법을 수호하고 국헌을 준수하는 합리적인 집단이다.

그러면 그때 내가 왜 기자회견에서 인민무력부에서 침투한 것 아니냐고 했냐? 그것이 흑백논리 아니냐고 하는데 그때 우리는 정말 경찰과 신사협정을 맺었다. 그때 반핵반김국민협의회 공동대회장으로 현승종 국무총리를 비롯해 사회지도급 인사 20명이 참여했다. 그래서 우리는 대통령에게 보내는 메시지를 전달할 원로인사 20명만 청와대까지 태우고 갈 집차를 에스코트해 달라고 해 경찰과 합의를 보았다.

그런데 나중에 경찰이 집차를 10대에서 5대로, 다시 5대에서 3대로 줄여달라고 해 그러면 차라리 걸어갈테니 경찰이 에스코트해주기로 재합의를 봤는데 경찰이 닭장차와 물대포차로 막아 약속을 위반한 것이다. 즉 경찰이 국가원로들을 에스코트하기로 해놓고선 일방적으로 약속을 파기한 데서 비롯된 것을 흑백논리라고 비판해선 곤란하다.

그때 사실 30만명이라는 사상 최대의 인원이 모였기 때문에 내가 마음만 먹으면 경찰 저지선 뚫는 것은 시간 문제였다. 그런데 이미 시민들이 경찰 닭장차를 흔들다가 그 사이로 끼어들어 죽게 생길 판이었다. 그래서 아무리 우리 행동이 정당해도 사람을 죽일 수는 없어서 내가 철수명령을 내렸다. 사상자가 발생하면 집회를 주도한 우리 책임이 있기에 그렇게 한 것인데 지금 생각해보면 만약 내가 그날 강하게 나갔더라면 청와대는 지금 없을 것이다. 그래서 사실 내가 솔직히 그날 '돌파'를 해버렸으면 좋았을 것을 하는 아쉬움도 갖고 있다."

"등재회원은 3만5천명, 성금 지원하는 시민은 얼추 30만명"

▲ 지난해 10월 국민행동본부가 연 '반역정권심판 국민저항 선언대회' 참가자들이 행사장 주변에 전시된 인민군복을 입힌 노무현 대통령, 이해찬 국무총리, 정동영 통일부장관, 천정배 법무부장관, 강정구 교수의 합성사진을 발로 밟고 침을 뱉고 칼로 얼굴부분을 훼손하기도 했다.
ⓒ 오마이뉴스 권우성
- 2001년 1월 신문에 독특한 광고를 내기 시작하면서 대중들에게 각인되기 시작했다. 주요 신문에 5단 통으로 빡빡한 글씨의 광고 아래 '대령연합회 서정갑'이라는 이름으로 광고를 냈는데 어떻게 해서 이런 광고를 내게 되었나. 또 그동안 광고를 한 회수와 광고비 조달은 어떻게 했는지.
"원래 우리는 성명서만 냈다. 그런데 전우신문 편집국장이 문안이 너무 좋은데 전우신문 1면에 5단광고로 내면 안 되겠냐고 해서 '우리는 돈이 없다'고 했더니 그것은 염려하시 마시라고 했다. 그렇게 해서 광고를 냈는데 <월간조선> 조갑제 편집장께서 광고를 보고 기자를 보내 인터뷰를 시켜 그해 3월호에 내보냈다. 그렇게 해서 사람들에게 많이 알려졌다. (<광야의 외침>이라는 책을 보여주며) 금년 3월에 300호 기념으로 낸 것이다. 국민들의 호응이 예상 외로 좋았다. 1천원부터 1만원까지 성금을 내주신 민심이 천심이라는 것을 확인했다."

- 대령연합회와 국민행동본부의 사무실 운영과 재정은 어떻게 꾸려 나가나.
"사무실은 대령연합회에서 구입한 것이다. 밝고힘찬운동 사무실 관리비는 대령연합회와 번갈아가며 격월로 부담한다. 유급 사원이 없고 자원봉사로만 운영하는데 대령들은 회비로 매월 만원씩 낸다. 신문광고는 1회당 1천만원 정도 드는데 어느 기업으로부터도 후원을 받지 않고 성금을 천원, 만원씩 모아서 국민의 힘으로 냈다는 것이 우리의 자랑이다. 그래서 국민행동본부의 등재회원은 3만5천명이지만 성금으로 지원하는 시민은 얼추 30만명은 된다고 본다."

- 정말 기업으로부터 전혀 후원이 없나.
"'반핵반김국민협의회' 운영위원장을 할 때 내가 그렇게 큰 집회를 개최하면서도 기업으로부터 10원 한 장 안받았다는 것이 우리 자랑이자 정말 기적같은 일이었다. 내 전임자들은 기업으로부터 몇천만원부터 몇억원까지 후원을 받았고 회의도 호텔에서 했지만 나는 총회로부터 전권을 위임받아 이 사무실 방에서 4, 5천원짜리 된장찌개 시켜놓고 회의하면서 격주에 한 번씩 집회를 개최했다."

- '적색 쿠데타가 진행 중이다'는 요지의 광고와 관련하여 모 단체로부터 내란선동죄로 고발당한 적이 있는데 그 사건은 어떻게 되었나.
"2004년 7월에 그랬는데 친북단체가 고발을 해서 그 때문에 내가 간첩을 조사하는 대공분실(공안부)에 가서 조사를 받았다. 대법원 판례도 있지만 군도 정당한 명령이 아닌 것을 거부할 권리가 있다. 예를 들어 국군통수권자가 무장해제하고 북한군에게 항복하라고 하면 군이 따라야 되나? 아니잖느냐. 나는 그런 명령을 거부하라는 뜻이지 정당한 명령을 거부하고 쿠데타를 선동한 것이 아니다. 검찰에 가서 묵비권을 행사했는데 북한이 미사일 발사한 다음날인 7월 6일에 '내란선동 미수죄'로 다시 조사를 받았다. 내란선동죄가 제대로 성립이 안 되니까 내란선동 미수 혐의로 다시 고발을 했더라."

- 그런데 한국사회가 '친북좌익 척결 국민행동본부'를 결성해 '국민운동'을 전개해야 할 만큼 친북좌익이 문제라고 보는가. 이것은 일반 국민정서와는 동떨어진 것으로 보이고, 또한 국민 호응이 적은 것으로도 입증되는데.
"국민들이 착각을 하고 있다. 좌파정권이 들어서 지난 8년 동안 대통령 지지도가 9%로 떨어지고 열린우리당은 8%대인데 이것은 뭘 의미하느냐? 우리가 북한에 퍼주기를 해서 얻은 것이 뭐냐? 국제사회의 고립을 자초한 것뿐이다. 오죽하면 유엔에서까지 대북 제재 결의안까지 채택하지 않았냐. 전세계가 북한 제재에 동참하는데 우리만 민족공조를 외치고 있다. 세계가 한 목소리인데 우리 내부에서는 국민들이 자신을 지지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 현재 노무현 정부가 부동산정책 실패라든가 소득 양극화라든가 여러 가지 복합적인 원인이 작용해서 국정운영 지지도가 10% 아래까지 떨어진 것이지 그 배경이 비단 대북 퍼주기나 대북포용정책 탓만은 아니지 않는가.
"노무현 정부 출범 당시 130조이던 국가부채가 올해말이면 300조를 넘게 되었다. 임기 4년 동안에 국가부채를 두 배 이상 늘려 놓아 국가와 국민을 빚더미에 올려놓은 것 하나만 갖고도 탄핵감이다. 전시작전통제권만 하더라도 마치 전작권 환수가 우리의 빼앗긴 주권을 되찾는 것처럼 국민을 속여가면서 얘기하는데 결국은 어떻게 되었냐. 대통령은 즉각 환수할 수 있다고 하는데 국방부는 2002년에 환수한다고 하고, 또 당장 북한이 핵실험을 하니까 미국에 '핵우산'을 보장해 달라고 애걸하지 않았냐. 이 정부가 자주를 외칠 때는 언제고 왜 이제 와서 핵우산이 필요하냐. 이처럼 정부가 앞뒤가 안맞는 정책을 갖고 가기 때문에 대한민국이 더 이상 어디까지 떨어질지 걱정이다."

97년 대선에서 DJ와의 인연

- 지금 국민행동본부가 사실상 '반정부' 운동을 하고 있지만 개인적으로 김대중 대통령으로부터 신세를 진 적이 있다고 들었다.
"'반정부'라는 것은 아주 잘못된 시각이다. 우리는 대한민국 헌법을 수호하기 위해 만든 단체다. 반좌파운동이지 반정부운동이 아니다. 우리는 대한민국을 수호하려는 '친정부단체'다. 지금 반대한민국 활동을 하는 것이 노무현 정권이다.

실은 김대중 전 대통령이 97년 대선 전부터 나를 입당시키려고 노력했다. 97년 당시 내가 ROTC 중앙회 사무총장을 맡고 있었는데 둘째아들 홍업씨(ROTC 10기생)가 여러 번 제안을 했다. 당시 내가 대한민국 최대 장교단인 13만 ROTC 중앙회가 중립을 지키겠다고 했다. 그리고 그 약속을 지켰다. 그 대신 홍업씨에게 국민의 정부에 협조할 테니 아버지한테 대통령이 되면 ROTC 임관식에 참석해 달라고 요청했다. 그때까지 대통령은 200여명이 임관하는 각군 사관학교 졸업식에는 다 가면서도 4000명 가까운 '지상 최대의 임관식'에는 참석하지 않았다. 그런데 98년 2월 25일 대통령에 취임했는데 취임 3일후(28일)에 약속을 지켰다. 그 뒤로 10년째 대통령이 ROTC 임관식에 참석하게 된 것이다."

- 그 뒤로는 노무현 대통령도 죽 참석했는가.
"그렇다. 김대중 전 대통령이 98년에 처음 대통령이 참석하는 전통을 세웠고 그것이 사무총장으로서의 내 업적으로 자부심을 갖고 있다. 그래서 거기에 대해서는 항상 감사하는 마음을 갖고 있고, 나는 햇볕정책을 반대하지만 지금도 그 분이 건강하게 지냈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갖고 있다."

- 최근 김용갑 한나라당 의원은 자신의 해당행위와 관련 징계방침을 밝힌 인명진 윤리위원장에게 색깔공세를 제기해 물의를 빚었다. 이에 대해선 어떤 입장인가.
"김용갑 의원이 사퇴할 사안이 아니고 인명진 목사가 사퇴해야 한다. '광주 해방구' 발언은 그럴 만한 발언을 할 상황이었고, 창녕군수 건도 한나라당이 공천을 잘못한 것이다. 특별한 하자 없으면 지역구 의원 의견대로 해줘야 하는데 위에서 '낙하산' 식으로 이재오나 이명박 계의 사람을 추천한 것은 잘못이다. 공천을 잘못한 지도부 책임이다. 이래 가지고는 한나라당이 대권 아니라 아무것도 못한다. 그래서 내년 좌파정권 종식하는 데 한나라당 가지고는 어렵지 않겠냐고 생각한다."

- 그래도 한나라당이 현재 집권 가능성이 가장 크고 국민행동본부와도 가까운 정당 아닌가.
"집권여당이 하도 헤매고 친북적이니까 한나라당 지지도가 올라간 것이지 우리가 한나라당 전위대도 아니고, 분명히 얘기하지만, 앞으로 우리가 지지하는 후보가 한나라당에서만 나오란 법도 없다. 암튼 좌파정권을 종식할 수 있는 단일후보가 나오면 어느 정당이건 우리는 지원할 것이다. 그것이 반드시 한나라당 대권후보 중에서 나와야 된다는 법은 없다. 그리고 상당히 기회주의적인 현재의 한나라당 대권후보들의 행보로 봐서는 좌파정권을 종식할 수 있을지에 회의적이다."

"'뉴라이트전국연합'은 한나라당의 전위대"

▲ 지난 2003년 '북한기자 대구만행 및 자칭 국민의 힘 테러 규탄대회'에서 팔에 붕대를 감고 연설하는 서정갑 예비역대령연합회장.
ⓒ 권우성
- 뉴라이트 전국연합(김진홍 목사)과는 어떤 관계인가.
"연초에 김진홍 목사와 만나서 좌파정권을 종식하는 데 힘을 합치자는 얘기를 했고 김 목사도 지난번 인터뷰에서 국민행동본부와 같이 하기로 했다고 말했지만 창립 1주년 행사를 기해 전국연합이 한나라당의 참정치운동본부에 참여하지 않았냐. 이 순간부터 전국연합은 시민단체로서의 역할은 소멸된 것으로 본다.

다시 말해 그 순간부터 전국연합은 한나라당의 전위대이지 시민단체가 아닌 것이다. 그래서 시민단체로서 좌파정권 종식하는 데 같이 힘을 합쳤으면 좋았을 것이라는 아쉬움이 남는다. 전국연합도 나름대로 고민했겠지만 실수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우리가 좌파정권 종식이라는 목표를 갖고 있기 때문에 서로 등질 필요는 없다. 다만 전국연합은 시민단체가 아니고 한나라당 전위대이기 때문에 거리를 두고 있다."

- 87년 6월 민주항쟁 당시에는 우파군사정권을 무너뜨리고 직선제를 쟁취해 민주정부를 세우려는 '민주헌법쟁취국민운동본부'라는 단일대오의 대중조직이 있었는데 현재 우파는 전체를 아우르는 단일조직이 없는 것 같다.
"내가 2004년에 반핵반김국민협의회 5대 운영위원장을 맡아 우파조직을 처음으로 통일했는데 그후 우리가 같이 힘을 합쳐 국민행동본부로서 일사불란하게 나가야 하는데 그러질 못했다. 김정일 추종세력은 사상적으로 잘 무장되어 있는데 우파 진영의 단점은 정신적 무장이 잘 안 되어있다는 것이다. 자기 이해득실에 따라서 안맞으면 즉각 등을 돌리거나 중상모략을 하는 것이 병폐이다. 그래서 우파에서도 과거에 보수를 부패하게 만든 책임이 있는 분들은 뒤에서 자숙을 하고 정말 선명하고 도덕적으로 깨끗한 세력을 후원하는 방향으로 우파운동이 진행되었으면 하는 아쉬움이 있다. 좌파의 공격에 대해서는 이념이 다르니까 당연하다고 받아들이지만 함께 우파보수운동을 하면서 뒤에서 중상모략하는 것이 가장 마음이 아프다."

- 한나라당 지지도가 많게는 50%까지 육박하고 이명박·박근혜 후보가 압도적 지지로 양강구도를 형성하고 있는데 내년 대선을 어떻게 전망하는가.
"한나라당 인기가 오른 것은 열린우리당 지지도가 곤두박질치니까 얻은 반사이익이지 한나라당이 잘해서 얻은 것이 아니다. 그리고 한나라당 대선후보들이 지금 같은 기회주의적인 행보로는 곤란하다. 지난 8월 역대 국방장관, 육해공군 사관학교 총동창회, 예비역 장교단 전체가 '국가 존망이 걸린 사안이니 전작권 논의를 중단해라'며 거리행진을 벌였는데 아무도 얼굴을 내밀지 않았다. 이렇게 눈치나 보고 득표를 계산하는 사람들이 과연 좌파정권을 종식을 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또 국가운명이 좌우되는 일에 앞장서지 않는 사람은 대통령으로서 바람직하지도 않다."

- 다른 가능성도 있다고 보는가.
"요는 아직 1년이 남았기 때문에 내년 6월 이후 되어야 후보의 정확한 윤곽이 드러나지 않겠냐. 사실 지금 '뉴페이스'가 나올 수도 있다고 봐야 한다. 대한민국은 숨은 인재가 많다. 개인적으로는 조순형 의원처럼 의정활동도 잘하고 할말을 할줄 아는 용기와 자질을 가진 분이 대통령후보로 나오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존 F 케네디는 리버럴한 사람이지만 쿠바 미사일 사태가 터졌을 때 소련에게 단호한 의지를 보여 위기를 극복했다. 그런 단호한 의지와 용기를 가진 후보가 대통령이 되어야 한다."

- 목표가 '좌파정권 종식'인데 소원대로 좌파정권이 종식되면 뭘 할 것인가.
"내 후임자가 누가 될지 모르지만 국민행동본부는 계속 유지될 것이다. 원래는 올해 그만 두려고 했는데 '좌파종식이 1년 남았는데 끝은 봐야 되지 않냐'고 그래서 조금 늦췄다. 앞으로 우파정권이 들어서도 시시비비를 가리는 일을 하게 될 것이다. 노무현 정부도 잘한 것이 있다. 노 대통령이 그 어려운 와중에 이라크 파병을 단행한 것, 400명 넘는 대량 탈북자를 한꺼번에 받아들인 것은 용기있는 업적이다. 주변의 참모들이 잘했으면 이 분이 이렇게까지 망가지지는 않았을 것인데 하는 아쉬움이 있다."

태그: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