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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 ㅊ초가 지난 4월 28일 학부모에게 보낸 가정통신문.
ⓒ 윤근혁

올해 3월부터 E사이트와 손잡은 서울 ㅊ초등학교에 자녀를 보내고 있는 김민선(가명)씨. 김씨는 지난 4월 28일자로 이 학교 교장 명의로 된 가정통신문을 받고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학교 홈페이지를 운영해 준다는 회사의 학습사이트에 유료로 가입하라는 가정통신문을 아이가 가지고 왔더라고요."

이 가정통신문은 모두 5장짜리였다. 한 장은 학교장 명의로 된 '인터넷 콘텐츠를 이용한 가정학습 안내'란 제목의 홍보물이었고, 다른 네 장은 E사이트가 직접 만든 올 컬러 선전물이었다.

"학부모님 안녕하십니까?"로 시작되는 통신문엔 친절하게도 '유료 학습 콘텐츠 이용 안내' '유료 학습콘텐츠 신청과 해지방법' 따위의 중간 제목이 선명하게 박혀 있었다.

더욱 기가 막힌 것은 '월 3900원'인 유료 가입 방법이었다. 그 내용을 옮기면 다음과 같다.

"웹 가입이 어렵거나 불편한 경우 학급에 비치된 신청서를 교부받아 담임선생님께 제출."

사정이 이러니 이 학부모는 뻔히 잘못된 일인 줄 알면서도 고민하지 않을 수 없었다. 혹시 가입하지 않았다가 우리 아이가 선생님이나 교장에게 밉보이면 어떻게 하나 걱정이 되었던 것이다.

1200개 학교, E 사이트 간접 홍보

▲ 4월 28일 가정통신문과 함께 온 특정 업체 홍보물.
ⓒ 윤근혁
@BRI@현재 초등학생 대상 유료학습 사이트인 E사이트와 계약을 맺은 학교는 전국에 걸쳐 1200여 개로 추산된다. 모든 학교가 ㅊ초등학교처럼 대놓고 홍보전선에 뛰어든 것은 아니다.

그러나 이들 나머지 학교도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가정통신문이나 학교 사이트 배너 등을 통해 간접 홍보에 나서기는 매한가지다. 학부모들이 학교에 대해 색안경을 끼고 보지 않을 수 없도록 상황을 만들어놓은 것이다.

물론 유료 회원 가입에 상관없이, 이미 지난 2002년부터 145만명의 학생 명부는 학부모와 학생도 모르는 사이에 줄줄이 업체로 넘어갔다.

ㅊ초등학교 김 아무개 교장은 "사이트 영업하시는 분이 졸업생 학부모인데다 내용도 좋은 것 같아 유료와 무료 콘텐츠를 알리게 되었다"며 "수준높은 인터넷 학습을 한 달에 3만원이 드는 것도 아닌 하루에 100원 정도 내는 소액으로 받게 하는 것도 괜찮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김민선씨는 요즘에도 학교 홈페이지만 쳐다보면 속이 메스껍다고 한다. 솔직히 아이에게 피해가 갈까 봐 대놓고 말은 못하지만 다음과 같은 말만은 꼭 대신 해달라고 부탁했다.

"교장 선생님! 학교가 사설업체 광고대행사 노릇을 해도 되는 겁니까?"

학교 홈피 만들어주고 사이버머니도 공짜로
학교가 교육사이트 업체와 손잡은 이유

▲ E사이트는 날마다 교사에게 5만 해피씩의 사이버머니를 지급했다. 사진은 E사이트 갈무리 화면.
왜 일선 학교는 E사이트 업체와 손잡았을까?

그 이유는 '무료 학교 사이트 제작'이란 업체의 홍보 전략이 주효했기 때문이다. 200만원이 넘는 사이트 제작비용을 아낄 수 있으니 귀가 솔깃하지 않을 수 없었다는 게 학교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이밖에 또 다른 이유도 있다.

E사이트는 자사와 손을 잡은 학교의 교사 개개인에게 하루에 5만 '해피'씩을 무료로 준 것으로 나타났다. '해피'는 아바타를 꾸밀 수 있는 일종의 '사이버머니'다.

교사에게 사이버머니 해피가 왜 필요할까. 이 업체 서버에 들어앉은 학급 홈페이지에 그 답이 있다. 이 곳을 들락날락하는 학생들에게 교사는 이 해피로 상을 줄 수 있는 것이다.

이에 대해 홍인기 좋은교사운동 정책위원은 다음처럼 설명했다.

"E사이트는 학급 홈페이지까지 만들어준 후 담임교사들에게 일정량의 사이버머니를 공급합니다. 교사는 학급 홈페이지 활성화를 위해 참여가 많은 학생들에게는 사이버 머니를 나누어 주는 것이지요. 담임교사의 선한 노력이 오히려 기업의 사이버 머니를 체험하게 만들어 주고 있습니다. 실제로 몇몇 교사는 학급홈페이지를 열심히 운영하는 반에서 유료 회원이 증가한다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 윤근혁

덧붙이는 글 | '시민기자 기획취재단' 기자가 작성한 기사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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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에서 교육기사를 쓰고 있습니다. '살아움직이며실천하는진짜기자'가 꿈입니다. 제보는 bulgom@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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