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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14일 교육부 앞에서 진행된 입시KIN(즐)페스티벌 퍼포먼스.
ⓒ 하재근
또다시 수능일이 닥쳐왔다. 또다시 극소수의 승자를 위해 전국의 아이들이 들러리를 서야 한다. 최근 들어 그 극소수의 승자가 부유층의 자제들이라는 것이 점점 분명해지고 있다. 수도권과 일부 지방 대도시 부유층 자제들을 위해 전국 서민의 아이들이 들러리를 서는 망국의 굿판을 우리는 또다시 치르는 것이다.

최근 서울대 대학생활문화원이 국회에 제출한 국감자료에 따르면, 2006학년도 서울대 합격생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 80% 이상의 학생이 '스스로 어느 사회계층에 속한다고 생각하느냐'라는 질문에 '중류(52.9%) 혹은 그 이상(28.3%)'이라고 대답했다.

'아버지의 교육수준이 얼마나 되는가'라는 물음에는 49.4%가 '대졸', 27.1%가 '대학원졸'이라고 각각 응답했다. 아버지의 학력이 대졸 이상인 신입생이 73.5%에 달하는 것이다.

어머니의 학력이 대졸 이상인 경우도 57.6%였다. 그리고 65.9%의 신입생이 금융기관 등 사무직이나 판·검사·변호사·의사 등 전문직, 경영관리직 아버지를 둔 것으로 조사됐다.

한편 이주호 한나라당 의원이 서울시교육청에 의뢰한 조사에 따르면 사교육을 받는 비율이 교수나 전문직 자녀는 80%가 넘었지만, 농업이나 어업 종사자 자녀의 경우는 50%도 안 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입시 성적 신화 속에 살고 있다

사교육 유무보다 더 중요한 것은 사교육의 '질'이다. 가난한 집 아이들이 싸구려 사교육을 받으며 안도할 때 부유층 자녀들은 비정규직 월소득을 훨씬 상회 하는 고가의 사교육을 받을 것이다. 그렇게 계층별로 양분된 사교육의 양과 질은 아이들의 입시 성적을 양분해 국민을 둘로 쪼갤 것이다.

이 명백한 현실에도 우리는 입시 성적이 아이의 고유한 능력과 노력을 변별한다는 신화 속에 살고 있다. 그리고 그 변별을 통해 아이에게 학벌이라는 현대판 신분을 부여하고 있다. 이것이 과연 올바른 일인가?

첫째, 입시 성적이 정말 아이의 능력을 구분해주는가? 아이의 입시 성적이 부모 재산 정도, 사회적 신분 정도, 부모가 가진 문화적 자본 정도를 변별한다고 하면 일면 타당할 것이다. 하지만 그것이 어떻게 자식의 능력과 동일시된단 말인가?

귀족과 명문 사대부의 자제는 나라를 경영할 엘리트가 되고 평민과 노비의 자식들은 그 밑에서 복종을 강요받았던 옛날에 비해 무엇이 나아졌는가? 과거 시험을 통해 조선 사회에 공평한 기회가 주어졌었다고 누가 믿는가? 과거가 조선 청년들의 능력을 공평히 변별했다고 누가 믿는가?

그런 과거와 지금의 입시가 무엇이 다른가? 공화국의 입시는 점점 조선 과거시험을 닮아가고 있지 않은가? 입시 성적이 아이들의 능력을 나타낸다는 건 신화다.

둘째, 만약 입시를 통해 정말로 아이의 능력이 변별된다고 해도 그 능력의 실체가 무엇인가? 입시는 대학에 들어가기 위한 것이다. 대한민국의 대학은 서열체제를 이루고 있다. 서울대를 정점으로 단 하나의 위계질서를 형성하고 있는 것이다. 입시를 통해 그 한 줄에 편입시키기 위해 모든 아이들에게 입시기계가 될 것을 강요하는 것이 대한민국의 중등교육이다.

부모의 재산 정도와 상관없이 정말로 아이 자신의 순수한 노력만으로 이루어진 학업성취도를 변별한다고 해도 그것은 인간 고유의 다양한 능력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 단지 입시기계를 골라냈을 뿐이다. 입시기계들을 골라내 대학서열체제에 편입시키는 제도는 아이들의 고유한 능력을 오히려 낱낱이 파괴하고 있다. 고유한 능력을 한 줄 서열에 맞는 것으로 획일화시켜 그 획일화 정도를 골라내는 것이 입시다.

셋째, 만약 입시를 통해 입시기계로서가 아닌 순수한 지적 능력이 변별된다고 해도 그것으로 신분을 결정하는 것이 올바른가? 모든 인간이 스무 살 직전까지의 성취를 기준으로 지배 엘리트와 피지배 신민으로 나뉘는 체제가 민주공화국의 정신에 부합하는가?

학벌은 한 번 결정되면 죽을 때까지 다시는 변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봉건적 신분과 매우 흡사하다. 최근엔 그것이 세습되는 경향까지 점점 더 강해지고 있다. 공화국 안에 신분체제가 자라고 있는 것이다.

부유층 전유물로 전락하고 있는 입시

▲ 지난 13일 교육부 앞에서 진행된 입시KIN(즐)페스티벌 단두대 퍼포먼스.
ⓒ 하재근
입시는 부유층의 귀족 놀음을 위한 굿판으로 전락하고 있다. 과거에 이러한 모순의 원인을 주입암기식 교육과 일제고사식 입시에 둔 적이 있었다. 그래서 해마다 이맘때만 되면 시험을 비판하는 목소리가 드높았다.

입시가 수능으로 바뀌었어도 일제고사라는 틀은 변함없었고, 그에 반발해 안티수능페스티벌이라는 행사까지 진행됐다. 하지만 올해 서울대는 수능을 자격고사로 돌리겠다고 나왔다. 아이들의 창의성을 기를 수 있는 논술고사를 강화하겠다는 것이다. 정부는 내신을 보다 강화하겠다고 한다. 그러면 수능으로 인한 폐해가 조금이라도 나아졌을까?

수능, 내신, 논술의 삼중고는 죽음의 트라이앵글이 되어 아이들의 머리 위를 짓누르고 있다. 문제의 본질은 수능에도 내신에도 논술에도 있지 않았다. 바로 입시 그 자체가 문제였던 것이다. 입시가 이 나라의 망국병이다.

최근 보건복지부의 조사에 따르면 우리 아이들 4명 중 한 명이 우울증 등 스트레스에 시달리고 있다. 조기 유학생, 즉 국외탈출자 수는 나날이 그 기록을 경신하고 있다. 입시를 통해 신분이 결정되고, 극소수 지배자가 되기 위해 전 국민이 무한경쟁을 치르는 한 국민의 삶의 질 향상도 공교육 정상화도 요원한 일이다.

입시가 문제가 된 것은 대학서열체제 때문이다. 대학서열체제가 없었다면 입시로 인한 폐해도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거꾸로, 대학서열체제가 존재하는 것은 입시제도가 기능하기 때문이다. 입시를 통해 아이들의 서열이 갈리고 그것이 대학서열체제를 존립시키는 토대가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망국의 근원인 대학서열체제를 혁파하려면 망국병인 입시를 거부해야 한다. 수능은 물론이고 입시 자체를 전복해야 하는 것이다.

대학서열이 공화국 내부를 분단시키고 신분사회로의 회귀만을 획책한다면 우리가 대학서열체제를 용인할 이유가 무엇인가? 그 대학서열체제를 온존시키는 입시를 위해 온 나라가 역량을 집중해야 할 이유가 무엇인가? 왜 극소수의 귀족놀음을 위해 전 국민이 들러리를 서야 하는가?

대학서열체제를 위한 입시를 전복하고 대학평준화를 요구해야 한다. 이미 혁명적인 조치 없이는 도저히 돌이킬 수 없을 만큼 교육과 나라가 기울고 있다. 대학평준화로 근본적인 수술을 감행해야 한다. 입시전복, 대학서열혁파야말로 이 나라에 필요한 진정한 혁신이다.

덧붙이는 글 | 하재근 기자는 '학벌없는 사회' 사무처장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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