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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노 히데아키의 <신세기 에반게리온>
ⓒ 가이낙스
나는 만화와 애니메이션을 좋아한다. 그렇다고 캐릭터 상품같은 것을 사본 적은 거의 없다. 하지만 필자는 '오타쿠'를 자처한다. 요즘은 '오덕후'라고 하는 모양이다. 그렇다면 나도 '오덕후'다.

<오마이뉴스> 이상욱 인턴기자의 지적대로 오타쿠(オタク)는 긍정과 부정의 의미를 모두 담고 있는 말이다. 물론 "특정분야에만 관심을 가져 일반적 상식이 결여된 사람"이라는 부정적인 의미가 더 강하며, '오덕후' 역시 그런 의미를 갖게 됐다.

영화평론가 김봉석의 <컬처 트렌드를 읽는 즐거움>을 보면, 오타쿠가 왜 그런 부정적인 의미가 더 강하게 부각되는지 알 수 있다. 1990년대 초반 혼자 방안에 틀어박혀 로리타 취향의 애니메이션과 포르노를 즐겨보던 어느 오타쿠가, 그런 것들에 지나치게 심취하던 나머지 가상과 현실을 혼동해 유아 살해사건을 저지른 것이다. 일명 'M군 사건'으로 부르던 그 사건이다.

다양한 분야, 다양한 만화에 걸쳐 정말 많은 오타쿠들이 존재하지만, 그 사건 이후로 오타쿠는 사회에 제대로 적응하지 못하는 로리콘(로리타 콤플렉스의 줄임말) 환자들을 지칭하는 의미로 변질된다. 일부 네티즌들의 생생한 표현을 그대로 옮긴다면 "여드름 투성이의 안경돼지들"이라는 것.

그들이 말하는 오타쿠, 혹은 오덕후는 어두컴컴한 방에서 밤새 잠은 안자고 웹하드 상의 로리콘 취향의 애니메이션이나 야동을 다운받아 보는 이들이다. 이상욱 인턴기자가 옮긴 지적대로, 일부 네티즌들은 오덕후를 일컬어 "현실의 여자는 언강생심 꿈도 못 꾸고 대리만족으로 캐릭터와 사랑에 빠지는 것"이라거나 "사람이 그리워 인형과 대화를 나누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물론 대한민국의 인구가 5천만에 근접했다고 하는데, 그 많은 사람들 중에 이런 이들이 아주 없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과연 그런 이들만이 오타쿠, 혹은 오덕후인 것일까? 그리고 그 오덕후를 성토하는 일부 네티즌들의 격렬한 성토, 과연 다 맞는 것일까?

오타쿠, 그들은 도대체 누구일까?

백과사전에 따르면 오타쿠는 1980년대부터 사용된 단어라고 한다. 로리콘 만화잡지 <코믹브릿코>에 나카모리 아키오가 그들에 대한 칼럼을 연재하면서 사용된 말. 코믹마켓이나 만화 전문점 등지를 자주 다니는 이들이 '오타쿠'라는 호칭을 즐겨 사용하는 것에 착안해 사용했다고 한다.

원래의 의미가 '댁, 당신'이라는 뜻을 가졌다고 하니, 시작부터 긍정적으로 사용된 단어라고 보기는 어렵다. 이 단어는 그 이전에, <신세기 에반게리온>으로 유명한 안노 히데아키와 오카타 토시오, 다케다 야스히로가 주축이 돼 설립한 다이콘 필름(훗날 가이낙스)이 탄생하면서 사용됐다고도 하는데, 이들은 모두 오타쿠 문화 속에서 이름난 이들이라는 점이 중요하다.

이들은 첫 작품인 <오네아미스의 날개-왕립우주군>의 흥행실패 원인으로 '미소녀와 로봇이 없었다'는 점을 거론한다. 그러면서 그들의 취향을 면밀히 이용해 제작한 <오타쿠 비디오> 시리즈와 <건버스터 톱을 노려라> 등의 작품들을 공개한다.

물론 이 작품들은 열렬한 지지를 얻었다. 하지만 이 작품들과 안노 히데아키의 진정한 대표작 <신세기 에반게리온>에 오타쿠들을 풍자하고 비판하는 요소가 담겼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으면서, 안노 히데아키가 <오네아미스의 날개-왕립우주군>의 흥행실패를 통해 오타쿠들에게 큰 실망을 느꼈다는 설도 있다. 만약, 사실이라면 이런 아이러니가 없는 것이다.

<공각기동대>의 오시이 마모루 역시 "요즘에는 외국인들도 자랑스럽게 오타쿠를 자처한다"고 냉소적으로 언급한 걸 기억해보자. 오타쿠, 혹은 오덕후들의 미소녀 취향과 특유의 폐쇄성에 대한 문제가 어제오늘 일이 아니라는 것을 의미한다. 결국 일본에서는 해묵은 이야기들이 우리 사회에서도 뒤늦게 이슈가 됐다는 뜻이다.

오타쿠, 부정적이기만 할까?

한편으로, 오카타 토시오는 오타쿠의 열정이 문화산업의 지형을 바꾸고 있다는 주장을 펼쳤다고 한다. 앞서 이야기한대로 자신의 히트작에서 오타쿠에 대해 은근한 비판을 전개했다는 설도 있지만, 어쨌든 안노 히데아키 역시 오타쿠 출신으로서 새로운 영역까지 개척한 입지전적인 인물이다. 게다가 <매트릭스> 시리즈로 전세계를 강타한 워쇼스키 형제는 알려지다시피 홍콩 영화와 일본 애니메이션에 심취한 이들이다. 스스로 오타쿠를 자처하기까지 한다.

어떤 분야에서든 마찬가지지만, 유행은 유행을 낳고, 그 범위를 확대시키는 양상으로 번지는 경우가 많다. <아키라>와 <공각기동대> 등의 일본 애니메이션과 홍콩영화의 다양한 액션은 <매트릭스>라는 새로운 영역을 개척하면서, 그 이후의 싸이-파이(SF) 영화에 많은 영향을 준다. 아니, <매트릭스>라는 이름이 하나의 새로운 문화가 됐다.

▲ <매트릭스>의 워쇼스키 형제는 스스로 오타쿠를 자처한다. <매트릭스>에는 일본 애니메이션과 홍콩 총격액션영화에 대한 그들의 열정이 반영돼 있다.
ⓒ 워너 브라더스
사실 우리나라에서도 이미 '폐인 문화'라는 이름의 마니아 문화가 서서히 주목받고 있다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 <네 멋대로 해라>나 <다모> 등의 TV 드라마 시리즈는 일단의 마니아층을 양성하면서 상당한 지지를 얻었고, 그 이후에도 TV 드라마 시리즈는 그 인기를 알 수 있는 척도로 얼마나 많은 폐인을 끌어안고 있는지가 반영되는 경우가 많다.

일명 '오덕후 문화'에 대한 비난에는 그런 의미에서 억울한 측면이 많다. 인터넷의 댓글 게시판은 이미 보수화가 폭넓게 진행 중이며, 절제되지 않은 표현이 난무하고 있다. 거기에 한국인으로서 어쩔 수 없이 작용하는 일본에 대한 반감과 그 원류라고 할 수 있는 오타쿠 문화의 부정적인 측면이 동시에 반영되면서, 취미생활까지 원색적인 비난의 대상으로 치부되는 경향이 강하다.

게다가 더욱 아이러니한 것은 이상욱 기자가 거론한 '오덕후' 비난 글이 올려지는 웃긴대학이나 디시인사이드 등의 사이트는 우리나라 인터넷에서 널리 퍼진 폐인 문화의 최초 근거지나 다름없다는 점이다.

특히 '디시폐인'들은 사회에 물의를 일으켰거나 부정적인 이미지가 강한 유명인사들을 합성사진을 매개로 비판하고 풍자하면서 알려진 이들이지만, 한편으로 '면식수햏' 등과 같이 오타쿠를 연상시키는 이미지를 공공연하게 드러낸 집단이라는 점도 재미있다.

오덕후, 실체가 불분명하거나 미미한 집단이다

'오덕후'들은 일본의 'M군 사건'과 같이 사회를 경악시킨 범죄를 일으킨 적도 없을 뿐만 아니라, 그 실체가 명확하게 드러난 집단도 아니다. 물론 젊은이들 사이에서 일본의 만화와 애니메이션은 꽤 많은 호응을 얻고 있지만, 일본에서처럼 지나친 소비로 주목받을 정도의 응집력을 보여주는 것도 아니다. 캐릭터 상품을 무작정 사들이기는커녕, 만화 단행본이나 애니메이션 CD에 대한 지나친 불법 다운로드가 문제될 정도다.

국내 작품들도 그 대상에서 벗어나지 못하는데, 하물며 일본 애니메이션은 일도 아닐 것이다. 물론 성실한 마니아들은 늘 정도를 지키지만, 유독 발전한 웹하드와 P2P의 홍수 속에서 그들은 소수에 불과하다. 그런 의미에서 '오덕후'는 오히려 실체가 불분명하거나 미미한 집단이라고 생각한다.

혹시 그들이 비판하는 '오덕후'가 일본 애니메이션을 선호하고, 개인블로그에 관련 정보를 올려놓는다는 것 자체만으로 문제가 되는 것이라면, 그것은 오히려 우려해야 할 일이다.

타인의 취미 생활을 무작정 비난하는 것은 민주사회의 성숙한 시민으로서 마땅히 피해야 할 일이며, 단순히 '일본산'이라는 이유로 싫다는 것이라면, 기본적인 사리판단 능력은 있는 것인지 부터 생각해봐야 옳을 것 같다. 타국의 문화를 접할 때, 긍정과 부정을 냉정하게 구분하면서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은 상식에 가깝다.

오타쿠 문화, 혹은 우리의 폐인 문화는 대중문화의 새로운 물결을 주도할 수 있다는 점에서, 그리고 기존의 대중문화 창조자들을 견제하고 혹은 지지할 수 있는 집단이라는 점에서 긍정성이 존재한다. 그런 긍정성까지 매도하면서 '오덕후'를 비난하는 것이라면, 필자는 끝까지 '오덕후'로 남을 듯하다.

우리 대중문화는 오히려 여전히 마니아층이 엷다는 점에서 한계와 가능성이 동시에 존재하고 있다. 실체가 불분명한 오덕후를 무작정 비판하기보다, 자신이 좋아하는 작품에 열광하고 그 분야에 대해 전문가 못지않은 지식과 안목을 기르는 열정을 주목해보자. 폐인 문화의 힘의 원천은 바로 그 '열정'이다.

덧붙이는 글 | <한겨레신문>의 블로그에도 올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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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로디프(http://www.lawdeep.co.kr)'의 기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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