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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돌베게
전태일과 평전에 대해서 생각을 하면 저자이신 고 조영래 변호사와 때론 무의식적으로 동일시가 되는 것 같다. 조 변호사는 전태일의 죽음에 지식인으로서의 의무감과 같은 것을 짊어지고 <전태일 평전>을 썼다지만, 오히려 조 변호사는 전태일이 뿌린 씨앗에서 자라난 나무였다는 생각이 든다. 조 변호사가 인권변호사로서, 한겨레 필진으로서 남긴 업적들이 그것들을 보여준다.

얼마 전 조 변호사의 서울대 동문이 <조영래 평전>을 보수적인 시각으로 써서 많은 이들의 반감을 샀다는 기사를 읽은 적이 있다. 이제는 시간이 많이 흘러서 감히 반노동적이거나 보수우익적인 입장의 사람들도 조영래와 전태일을 거론한다.

과연 그들은 전태일의 분신과 조영래 변호사의 활동들의 의미를 진심으로 알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혹여나 자기 밭에 물대기 식으로 80∼90년대를 이해하는 것은 아닌지 씁쓸했다.

난 대학에 다니면서 <전태일 평전>을 두 번 읽었다. 그리고 독후감도 두 번 썼다. 공교롭게도 대학시절 교양강좌의 과제도서가 두 번이나 <전태일 평전>인 탓에 그렇게 되었다.

만일 '전태일을 어떻게 생각하는가'라고 누가 묻는다면 <전태일 평전>의 많은 내용에도 불구하고, 그의 분신으로 기억에 아주 강하게 각인되어있다고 대답하겠다.

90년대 박광수 감독과 홍경인, 문성근 주연으로 영화화되기도 했지만, 70년대에 대학시절을 보낸 선배들에게는 더 강하게 각인이 되어있는 것 같다.

전태일이 "내 죽음을 헛되이 하지 말라"고 외치며, 평화시장의 어느 골목에서 노동법 책자와 함께 분신한 사건은 당시에도 굉장히 충격적인 사건이었다.

언론사에 대한 보도통제가 심한 시절인데도 신문에 크게 보도가 되어 어쩔 수 없이 노동청에서 청계천의 평화시장, 청계피복노조 등에 대한 노동실태 조사가 이루어졌다고 한다. 그나마 모양을 갖춘 노동실태조사는 그게 처음이라고 한다.

전태일의 분신은 우리나라에서 공식적으로 분신투쟁의 효시가 되는 의미 있는 사건이다. 그 이후에 80년대와 90년대를 거치며 수없이 많은 분신투쟁들이 있었다. 특히 1991년 노태우 정권에 대한 민중 투쟁 때는 김지하 시인의 <조선일보> 기고가 있기까지 몇 개월 사이에 십여 건의 분신투쟁이 이어지기도 했다.

당시에 보수언론들은 인간이 목숨을 내놓고 하는 투쟁에 대해서 온갖 비난과 매도, 흑선 선전을 하면서 독재정권의 프로파간다 도구로서의 역할을 십분 발휘했다.

하지만 자신의 목숨은 탯줄에서 떨어지는 순간부터는 철저히 자신의 것이다. 그래서 그것을 바친 그들의 분신투쟁은 진정으로 고귀한 것이다.

<전태일 평전>을 읽으면서 했던 생각들

<전태일 평전>을 읽으면서 처음 가졌던 소감은 책이 조금 몽롱하고 애잔하다는 생각이었다. 당시 조영래 변호사는 '도바리(도망을 뜻하는 은어)' 중인 대학생 신분으로 자료에 입각해서 <전태일 평전>을 썼지만, 당시의 슬픈 자신의 처지가 투사되지는 않았나 생각이 들었다.

<전태일 평전>은 동료 노동자들과 누이뻘 되는 여공들에 대한 애정, 차비가 없어 일을 마치고 집까지 그 먼 길을 걸어가는 고단한 삶을 보여주고 있다. 하지만, 다른 각도에서 볼 수는 없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나라 노동운동사에 획을 그은 영웅으로서의 청년 전태일은 어떤가 하는 생각이었다.

그 당시에 <소금장수> 같은 북한영화가 캠퍼스에서 상영되었는데, 그런 영향 탓인지 그런 묘사들은 너무 나약해 보였다. 대개 북한 영화와 소설에서 이런 경우는 영웅으로 묘사가 된다. 인간의 힘들고 나약함을 이해 못 하는 것은 아니겠으나, 꼭 그렇게까지 하는 것은 좋지 않다고 보는 것이다.

요즘 한국사회를 보면 겨우 월드컵 대표선수, 대기업 CEO들이 영웅으로 부각이 된다. 얼마 전까지는 이순신 장군이 국난극복의 상징으로 새롭게 조명되기도 했다. 그런데 난 이런 세태가 불만스럽다. 언제까지 자본주의의 첨병인 프로운동선수, 기업총수가 영웅이 되고 위인전에서 영웅을 찾아야 할까?

다가오는 주말에는 청계천 어디에 있다는 전태일 흉상을 한 번 찾아 봐야겠다. 시너를 붓고 성냥불을 그으면서 그는 무슨 생각을 했는지 한 번 말을 걸어볼 생각이다.

덧붙이는 글 | <당신의 책, 그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응모글


전태일 평전 - 신판

조영래 지음, 아름다운전태일(전태일기념사업회)(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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