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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이당
가을도 깊은 시월이다. 시간은 점점 더 빠른 속도로 남은 2006년을 흘려보낼 기세다. 해가 짧아진 지는 오래지만 아직까지 길가에 떨어진 낙엽은 볼 수 없었는데, 어젯밤에는 바람이 몹시 불었던 탓인지 횡단보도에서 신호를 기다리다 어지럽게 굴러다니는 낙엽들을 보고는 왠지 모를 슬픔이 밀려들었다.

더 이상 덥지도 춥지도 않아서 책읽기에는 그만인 계절인지라 책을 많이 읽었다. 그러나 돌아서면 휘발되어 버리는 것들이 다수였다. 그러던 차에 이승우의 <생의 이면>과 조우하게 되었고, 일순간 무미건조한 일상은 책 한 권으로 말미암아 새로운 기운으로 충만해졌다.

저자를 어디에서 만났을까. 기억을 되살려보았다. <당신은 이미 소설 쓰기를 시작했다>의 저자가 아닌가. 저자의 이름을 이제 잊어버릴 수 없을 것 같다.

<생의 이면>은 작가 박부길의 생애를 추적해나가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박부길의 유년 시절은 물론 평범하지 않았다. '현실이 행복한 사람은 한 줄의 글을 쓰고 싶은 충동도 느끼지 않는다'는데 그 말은 주인공의 삶에 비추어보면 사실인 것처럼 보였다.

환경이 만들어준 그늘이 부적처럼 따라다녔던 유년기

부길의 아버지는 결혼 후 얼마 되지 않아 고시공부를 하기 위해 절로 떠났다. 허나 갑작스레 나타난 정신이상 증세로 다시 돌아와야 했다. 기구한 운명의 어머니는 정신이상 증세를 보이는 남편과 함께 살아야 했지만, 그는 곧 자살하고 만다. 그것도 아들이 건네준 손톱깎기로 자살을 하고 말았다. 이를 지켜보던 큰집에서는 어머니에게 개가할 것을 권유했고 이로부터 부길은 고아 아닌 고아가 되어버린다.

큰아버지 집에서 지내면 되었지만, 아무래도 찬밥은 찬밥이다. 구박하지 않아도 그 집은 이미 부길의 집이 아니었다. 그래서 무작정 큰아버지 집을 떠난다. 그렇게 시작된 자취생활, 굳이 이야기하지 않아도 얼마나 외롭고 쓸쓸하고 막막할지 짐작이 되고도 남는다.

한 달에 한 번 어머니가 찾아온다. 경찰공무원과 결혼한 어머니는 그 사이 1남 1녀를 두었다. 어머니가 올 때마다 상위에는 설탕을 넣은 돼지고기 볶음이 프라이팬째 차려져 있었고, 상다리 밑에는 몇 장의 지폐가 눌려져 있곤 했다.

한 달 생활비로는 턱없이 모자란 돈이지만 하는 수 없다. 어머니는 한 달에 한 번 아들을 보러 오지만 아들 얼굴은 볼 수가 없다. 왕복 4시간의 거리이므로 남편이 귀가하기 전에 도착하려면 아들이 학교에서 돌아올 시간까지 기다릴 수가 없는 것이다. 부길은 돼지고기 볶음과 몇 장의 지폐로 어머니를 느낄 수밖에 없었다.

어머니는 남편을 설득했으니 함께 가서 살자고 하지만, 아들은 그럴 수 없다. 그곳은 어머니의 보금자리는 될 수 있어도 자신의 보금자리가 될 수 없다는 걸 너무도 잘 알고 있었던 탓이다.

나는 슬픈 눈으로 그녀를 쳐다보았다. 이미 새로운 두 남매의 어머니이고, 한없이 엄한 경찰 공무원의 아내가 되어 있는 어머니에게 나는 너무 오랫동안 짐이 되어 있었다. 어머니는 나를 그 집으로 데려가려고 한다. 어머니의 남편이 허락했다고? 어머니는 그렇게 말하고 있다. 그 사람이? 그럴 사람이 어머니가 한 달에 한 번 아들을 만나러 가는 것조차 막을까. 그래서 1년이 다 되도록 얼굴도 보지 못하게 했을까.

… 아, 그녀가 건네주는 그 돈봉투는 또 어떤 멸시와 구박의 틈 사이로 숨겨 내온 것일까. 나는 안다. 어머니의 한숨을 안다. 그녀는 안타까움 때문에, 그리고 습관처럼 붙어 버린 죄책감 때문에 아들을 억지로라도 데리고 들어가려고 한다. (147쪽)


이루지 못한 첫사랑, 소설로 태어나다

어느 날 빗속을 헤매다 아름다운 피아노 선율에 이끌려 어떤 건물 안으로 들어간 부길은 처음으로 낯선 평화로움을 경험하게 된다. 첫사랑 종단과의 만남은 그렇게 이루어졌다. 종단은 교회에서 생활하는 연상의 여인으로 부길에게는 교회선생님이었다.

이후 부길은 종단에게 사랑 고백을 하는 대신 신학대학에 진학하기로 했다. 알게 모르게 조금씩 사랑이 싹터가고 있던 어느 날, 부길은 종단을 오해하여 종단에게 씻을 수 없는 모욕을 안겨주었고 이로써 종단은 이별을 선언했다.

어둠에서 빛의 세계로 그를 이끌어준 종단의 부재는 부길에게는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부길이 아무리 애원해도 종단은 단호했다. 다시 햇볕도 잘 들어오지 않던 자취방으로 기어들어간 부길은 두문불출에다 거의 먹지도 않고 소설을 쓴다. 그리하여 완성된 그의 소설들은 그에게는 스님의 사리와도 같은 것이었으리라.

훗날, 2006년 가을을 회상하면 <생의 이면>이 떠오를 것이다. 이처럼 아름다운 성장소설을 본 적이 없다. 문체는 말할 것도 없거니와 생의 이면에 숨겨진 진실들을 한 폭의 소설에 담을 수 있다니 그저 경이로울 따름이다. 기실 고통없는 성장은 있을 수 없는 걸까. 그렇기 때문에 현재가 아무리 고통스러울지라도 우리는 묵묵히 감내해야하는 건가.

언제 왔다 가버렸나 싶게 짧은 가을을 기억하고 싶다면 가슴에 남을 책 한 권과 만나는 일도 괜찮을 성싶다. 책을 권할 때마다 얼마간 나와 다르게 느껴서 실망하지나 않을까 하는 우려가 되곤 했는데, <생의 이면>은 그런 염려를 전혀 하지 않게 만든다.

<생의 이면>은 불어와 영어로도 번역되었다고 하는데, 좋은 책은 그렇게 널리 알려져야 마땅하다.

생의 이면 - 제1회 대산문학상 수상작, 개정판

이승우 지음, 문이당(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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