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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맙습니다.선생님>첫 페이지
ⓒ 아이세움
트리샤가 7살이 되던 날 아침, 할아버지는 온가족이 보는 앞에서 책 위에 꿀을 뿌린 다음 맛보게 한다.

"달콤해요!"
"맞다 지식의 맛은 달콤하단다. 하지만 지식은 그 꿀을 만드는 벌과 같은 거야. 너도 이 책장을 넘기면서 지식을 쫓아가야 할 거야!"


<고맙습니다. 선생님>이란 책에 나오는 말이다. 얼마나 멋지고 감동적인 말인가! 그래서 나는 그 말을 수첩에 적어 틈틈이 들추어 보기도 했고, 메모지에 적어 아이들 눈길이 자주 닿는 곳에 붙여두기도 했다. 우리 아이들이 무언가를 알아가는 재미에 푹 빠져 책을 늘 가까이 하기를 바라면서!

책을 좋아하는 트리샤의 가족들. 가족 모두가 쉽게 글을 깨우쳤고 책을 좋아하는 것처럼 트리샤 역시 당연히 그럴 것이라고 믿는다. 하지만 트리샤는 초등학교 1학년이 되어서도 글을 전혀 읽지 못했다. 이런 트리샤를 아이들은 '바보' '멍청이'라고 놀렸다.

책을 좋아하는 트리샤, 정작 글씨는 하나도 못 읽고

ⓒ 아이세움
늘 따뜻하게 감싸주고 틈날 때마다 책을 읽어주시던 할아버지, 할머니께서 돌아가시자 트리샤는 걷잡을 수 없이 절망한다. 그리하여 어떻게든지 학교에 가지 않을 핑계만 댄다.

읽으려고 아무리 노력해도 글씨는 아른거릴 뿐. 절망은 더욱 깊어갔고 책을 좋아하는 가족들과 글을 읽을 줄 아는 아이들은 환한 빛 속에 있고, 자신은 어둠 속에 갇혀있다고 생각한다.

그렇다고 아이들이 놀리는 것처럼 바보나 멍청이도 아니었다. 읽기 빼고 모든 것을 잘했고, 그림을 그리는 트리샤 주변은 서로 보겠다고 싸우는 아이들로 매워져 있다. 하지만 여전히 단어하나 읽지 못하고 있는 5학년 트리샤였다. 아이들의 놀림과 따돌림은 더 심해지고… 트리샤는 가족과 세상으로부터 도망치면서 마음의 문을 꼭꼭 닫는다. 이런 중에 멋진 폴커 선생님이 전근을 오신다.

폴커 선생님은 잘 보이려고 하는 아이들에게 특별한 눈길을 주지 않았고 모든 아이들에게 공평했다. 읽기는 못하지만 특히 그림을 잘 그리는 트리샤를 자주 칭찬했고, 모범생이나 할 수 있는 '칠판 지우기' 등을 시키면서 '할 수 있다'고 격려해준다.

"그만! 여러분 모두가 다른 사람을 평가할 만큼 완벽해서 지금 트리샤를 흉보고 있는 겁니까?"

아이들이 깔깔대며 놀리자 폴커 선생님은 큰 소리로 아이들을 혼냈다. 이런 일이 있은 후 아이들의 괴롭힘과 놀림은 거의 줄었지만 에릭은 더 집요하게 쫒아 다니면서 트리샤를 놀리고 괴롭혔다. 아무도 모르는 어두컴컴한 곳에 숨어들어 웅크리고 있는 시간이 많아지는 트리샤.

"난, 바보 멍청이. 아이들 말대로 난, 정말 벙어리일지도 몰라!"

읽기 장애가 있었던 '패트리샤 폴라코'가 작가가 되기까지

"진짜 폴커 선생님인 조지 펠커에게 바칩니다. 선생님은 영원히 나의 영웅입니다."

<고맙습니다. 선생님> 첫머리에 이렇게 쓰여 있다. 다른 활동은 잘 하지만 유독 글을 읽지 못하는 것을 '난독증'이라고 하는데, 이 그림책의 저자 패트리샤 폴라코는 트리샤의 실제모델, 동화에서처럼 5학년 때까지 단어하나 제대로 읽지 못했다고.

아이들의 왕따와 자학으로 어둠 속으로 숨어드는 그녀를 환한 세상으로 이끌어준 것은 5학년 때 담임선생님인 조지 펠커. 그는 실제로 사비를 털어 독서 선생님과 함께 그녀에게 과외를 시켰고 선생님의 이런 애정으로 글을 깨우친 그녀는 현재 미술박사이자 동화작가다.

패트리샤 폴라코 (Patricia Polacco)

1944년 미시간(미국)에서 태어나 미국과 오스트레일리아에서 예술사를 공부. 특히 러시아와 그리스의 회화와 도상학 역사에 대한 연구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예술학박사(미술학)인 그녀는 박물관에서 고유물을 고증하는 일까지 했다.

러시아에서 건너 온 부모님을 비롯하여 이야기 작가가 많은 집안에서 태어난 그녀는 집안의 어른들이 들려주는 찬란한 과거 이야기를 풍성하게 들으며 자랐다. 이런 것들은 그녀의 작품의 뼈대를 이룬다. 그녀의 작품은 대부분 가족의 역사에 바탕을 둔 이야기들이며, 러시아 민속풍의 그림이 많다.

일러스트레이터이기도 한 그녀는, 지금은 아들과 딸을 키우며 남편과 함께 캘리포니아 오클랜드에서 살며 작품 활동을 하고 있다. 1989년 <레첸카의 달걀> 로 국제 도서연합회 청소년부분 도서상을 받았다. 또 다른 작품으로는 <핑크와 세이> <보바 아저씨의 나무> <어떤 생일> <할머니의 인형> <꿀벌 나무> <바바야가 할머니> <선생님, 우리선생님> <할머니의 조각보> 등. / 김현자
<고맙습니다. 선생님>은 패트리샤 폴라코의 자서전. 글을 전혀 읽지 못하던 그녀가 어떤 과정으로 절망을 딛고 환한 세상으로 나올 수 있었는지가 생생하고 감동스럽게 펼쳐진다.

설움에 복받쳐 우는 트리샤의 어깨를 보면서 마음이 아릴만큼 그림들도 생생하다. 패트리샤 폴라코는 자신의 모든 동화에 그림까지 그린다. 그래서 글과 그림은 더욱 깊이 밀착되는 듯하다.

실제 주인공인 스승과 제자는 30년 후 어느 결혼식장에서 우연히 만나게 된다. 대부분의 선생님들이 그러는 것처럼 조지 펠커 역시 30년 전의 제자에게 지금 무엇을 하면서 살아가는지 물어보는데… 패트리샤 폴라코는 조지 펠커 선생님에게 안기어 수줍게 말한다.

"그러니까 뭐냐 면요. 폴커 선생님, 저는 어린이 책을 만들고 있습니다. 선생님 고맙습니다."

이 그림동화는 이렇게 끝난다. 짧지만 읽는 동안 가슴 뭉클해지고 세상과 사람들로부터 도망치는 트리샤가 안타깝던 동화. 읽는 내내 감동과 안타까움이 계속 교차하다가 이 끝 장면에 이르면 감동은 찌릿한 전율로 바뀐다.

사람이 사람에게 줄 수 있는 가장 값진 것은?

▲ 패트리샤 폴라코의 또 다른 작품들중에서
ⓒ 미래M&B/시공주니어
절망스러운 트리샤에게 희망의 빛이 된 폴커 선생님도 감동스럽지만, 트리샤의 할아버지와 할머니 역시 감동스럽다. 자신이 받은 사랑을 또 다른 사람들에게 제대로 돌려 줄줄 아는 패트리샤 폴라코도 감동스럽다.

몇 년 전, <고맙습니다. 선생님>을 만난 후 시시때때로 일렁이는 감동에 그녀의 또 다른 작품들을 찾아 읽었다. 이 동화 외에 7편 정도가 국내에 나와 있는데 감동스럽기는 모두 마찬가지. 국내 독자들에게 많은 사랑과 호평을 받고 있어서 일부러 찾아 읽는 사람들이 많은 그녀의 동화들이다.

패트리샤 폴라코의 동화들은 실제로 그녀에게 깊은 영향을 주었던 주변사람들 이야기. 또 다른 훌륭한 선생님 이야기인 <선생님, 우리 선생님>은 다른 사람에게 다가가는 법을 가르쳐 주는 동화이고 지혜와 재치로 천둥번개에 대한 공포를 이기게 한 <천둥 케이크> 속 할머니는 <고맙습니다. 선생님>에서 만날 수 있는 그녀의 할머니다.

패트리샤 폴라코 집안의 이민사를 다른 <할머니의 조각보>도 조각조각 의미가 남다른 동화. <바바야갸 할머니> <꿀벌나무> <나비가 전해준 희망> <한 여름 밤의 마법> 등 가족의 소중함과 사랑, 사람사이의 관계를 생각하게 하는 그녀의 동화들은 각각이면서 서로 연결되어 있다. 그래서 함께 연결 지어 읽으면 훨씬 재미있다.

<고맙습니다. 선생님>은 어른들이 읽으면 더욱 빛날 수 있는 그림동화다. 폴커 선생님이나 트리샤의 할아버지, 할머니를 만날 수 있는 아이들은 어두운 밤에 더욱 빛나는 별처럼 더욱 반짝이며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

'사람이 또 다른 사람에게 소중한 이유'를 알게 하는 <고맙습니다. 선생님>이었다.

사람이 사람에게 줄 수 있는 것들은? 나는 또 다른 누군가에게 어떤 존재이며, 지난 날 내가 받은 사랑을 얼마나 되돌려 주면서 살아가고 있는가? 내가 할 수 있는 가장 값진 일은? 책을 좋아하는 내가 서평을 쓰는 이유라면 이유다.

덧붙이는 글 | <당신의 책, 그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응모글 입니다.


고맙습니다, 선생님

패트리샤 폴라코 지음, 서애경 옮김, 아이세움(2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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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제게 닿아있는 '끈' 덕분에 건강하고 행복할 수 있었습니다. '책동네' 기사를 주로 쓰고 있습니다. 여러 분야의 책을 읽지만, '동·식물 및 자연, 역사' 관련 책들은 특히 더 좋아합니다. 책과 함께 할 수 있는 오늘, 행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