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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흔에서 아흔까지> 겉그림
ⓒ 서해문집
똥오줌 못 가리고 방 안 가득 지린 냄새를 풍기면서 했던 말을 몇 번이고 되풀이 하는 고집불통인 부모를 모시고 사시는가? 조금만 맘에 안 들면 소리만 지르고 어쩜 하는 짓이라고는 점점 애처럼 구는지 보기에도 딱한 어머니 또는 아버지와 함께 살지는 않는가?

내가 이다지도 불효막심한 놈이었던가(또는 년이었던가) 자탄하게 하는 부모가 계시지는 않는가? 부모 모시는 문제로 형제간에 의가 상한 적이 있는가? 노인시설에 부모를 맡기고 돌아 나오는 길에 눈물 한 줄기 흘려 본 적이 있는가?

건강문제나 늙는 문제는 항상 남의 이야기로만 여겼다. 특히 늙음에 대해 더 그렇다. 그러다보니 크게 관심을 기울일 겨를이 없었고 지금도 먼 훗날의 이야기려니 싶은 게 사실이다. 한국이 곧 고령화 사회로 들어선다는 기사를 볼 때도 그랬지만 내가 사는 고장은 이미 65세 이상 노인이 전체 인구의 20%를 넘어 서 버린 초 고령사회라는 사실을 접하면서도 '언젠가 나도 늙겠지 뭐' 하는 식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내가 최근에 읽게 된 두 권의 책은 내가 골라 읽은 책이 아니다. 한 권은 선물 받은 책이고 한 권은 선물하기 위해 샀던 책이다. 우연히 내 손에 잡힌 책이었지만 이 책들을 다 읽고 난 지금은 올 가을이 내게 준 가장 커다란 선물로 생각된다.

노년에 대해 안다는 것은 효심의 첫 단추

먼저 읽은 책이 <당신의 인생을 이모작하라>(최재천 삼성경제연구소)이고 나중에 읽은 책이 <마흔에서 아흔까지>(유경 서해문집)이다.

<당신의 인생...>라는 책이 심각하게 노인문제를 점검 해 보라는 경고를 담고 있다면 <마흔에서...>는 노인이 되면 어떤 신체적, 정서적 변화가 생기게 되고 어떤 행동을 하게 되는지를 차근차근 설명 해 준다. 그래서 노인들을 어떤 눈으로 바라 봐야 하는지에 대해서도 얘기한다.

이 책들을 읽으면서 우리 어머니를 바라보는 시각이 예전과 사뭇 달라짐을 느낀다. 차분하고 정성스럽게 바라보인다고 할까? 막연한 효심이거나 일종의 의무감으로 대하면서 약간의 무시와 방치를 당연시 했던 나 자신을 들여다보는 거울이 되고 있다. 어머니가 하는 말을 귀담아 들어주지 않고 노인네가 늘 하는 잔소리쯤으로 넘겨버리고 했던 것이 사실이다.

<마흔에서...>는 책갈피마다에서 읽는 이들로 하여금 자신의 부모를 떠 올리게 한다. 우리 자신의 가까운 미래를 미리 보여준다. 우리가 아이를 키우면서 하루에도 몇 번씩 귀저기 갈아 채우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하며 아이를 원망하지 않는 것은 갓난애가 처음부터 똥오줌을 가린다면 그것이 도리어 이상한 일이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라는 것이다. 인생에 있어서 늙고 병들어 총총하던 정신이 흐릿해지고 사리분별도 못하게 되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한 '노화현상'이라는 것이다. 그것을 탓하거나 원망 한다는 것은 자연의 섭리에 맞서는 일이라는 것이다. 참 놀라운 발상이 아닐 수 없다.

이렇게만 이야기 하면 그런 부모 한 번 모셔 보라고 할지 모른다. 맞는 말이다. 곁에서 보는 것하고 실제 살아 보는 것은 물론 다를 것이다. 오랜 병석에 효자 없다는 말도 알고 있다.

그래서 최재천의 책은 고령화 사회에 대한 경고만 담고 있는 것이 아니다. 그야말로 혁명적인 제안을 내 놓고 있다. 육아문제도 그렇지만 노인문제도 개인이나 가정의 문제로만 볼 수 없고 사회적 처방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글쓴이는 임금피크제를 제시한다. '번식기의 세대' 즉, 자식을 낳고 기르는 30대와 40대에게 지금보다 훨씬 임금을 많이 주고 질 좋은 양육 조건을 마련해 줘야 한다고 말한다. 34세 이하 한국 노동자의 생산성과 임금을 1이라고 한다면 55세 이상 노동자의 생산성은 0.6에 불과하지만 임금은 오히려 3.04다. 임금 피크제가 도입돼야 한다는 글쓴이 주장의 근거이다.

어머니가 주신 깨우침

▲ <당신의 인생을 이모작하라> 겉그림.
ⓒ 삼성경제연구소
노동인구 4명이 1명의 노인을 수십 년 부양해야 하는 사회가 곧 시작된다. 지금 이대로라면 현재의 어린이들은 늙은이들 먹여 살리느라 몇 배나 고생을 해야 할 처지다. 얼마 전 해외 소식에서 들은 적이 있다. 독일의 젊은이들이 노인시설에 몰려가 노인들을 끌어내고 지나친 노인복지정책에 항의하는 시위를 하였다는 소식이다.

그래서 최재천의 다음과 같은 주장도 그냥 넘길 수 없다. 최재천은 지금의 6-3-3-4 학제를 5-5-5 제로 바꿀 뿐만 아니라 대학을 줄이거나 통합하지 말고 더 늘이자고 주장한다. 현재 교육부의 정책과 다른 주장이다. 이는 한마디로 노인들에게 임금은 적게 주더라도 일거리를 만들어 주자는 것이고 전문적인 지식습득의 기간인 대학공부 기간을 1년 더 늘이자는 주장인 것이다.

사회의 제도가 혁명적으로 개선된다고 해서 노인문제가 다 해결되지는 않을 것이다. 노인과 함께 살 사람들이 노인을 제대로 알아야 하는 것이다. 유경의 책은 그래서 소중하다. '아름다운 노년을 위해 중년시절에 꼭 해야 할 10가지'라는 대목은 중년들에게 귀중한 충고가 된다. '노년이 되면 달라지는 10가지'는 청소년들이 봐도 좋은 내용이다.

실버취업박람회의 한 부스에서 구직상담을 하던 어떤 할아버지가 갑자기 입을 쩍 벌리고 손가락으로 안쪽 어금니를 가리키면서 아직까지 이도 하나 안 빠졌다고 뭐든지 일을 시켜달라고 애원을 할 때. 어느 소년이 전철에서 기껏 자리를 양보 해 줬더니 같이 있던 중학생 쯤 되어 보이는 손자에게 앉게 하고는 자기는 노약자석으로 가서 자리를 양보 받는 모습을 볼 때. 앙숙이 되어 아옹다옹 늘 다투는 할머니 할아버지 부부를 볼 때면 글쓴이는 코끝이 시큰 해 진다고 한다.

그렇다. 늙은 사람들의 보이는 처신은 혐오스러운 것이 아니라 중요한 인생의 한 토막인 것이다.

큰 깨우침과 용기를 준 두 권의 책

금쪽같은 충고나 훈육보다 본이 되게 사는 것이 가장 효과적인 교육이라고 했다. 부모 잘 모시는 것을 몸소 실천하는 것이 나중에 자식에게 부모대접 받는 확실한 지름길이다. 최재천은 50대 이후의 삶을 '생식후기'라고 부른다. 그가 인생을 이모작 하라는 말도 생식능력을 잃고도 살아 온 만큼 더 사는 '더 없이 이상한 동물'인 인간들에게 들려주는 조언이다.

지자체 복지시설과 동네회관에서 인터넷도 배우고 춤도 배우면서 흠뻑 재미가 든 환갑 지난 지 5년 되는 누님에게 드리려고 샀던 <마흔에서...>를 내가 먼저 읽으면서 되레 늙으신 누님 덕분에 새로운 눈을 뜬 셈이다. 선물을 전하기도 전에 선물을 받은 기분이다.

인간을 순수한 동물적 측면에서 해석하고 진단하는 탁월한 생물학자 최재천 교수의 주장이 처음에는 무척 낯설고 놀랍기조차 할 것이다. 그렇다면 당신이 그만큼 노인문제에 둔감했다고 할 수 있다.

프리랜스 노인복지사로 독보적인 존재인 유경의 책을 읽고 당신도 늙어 간다는 사실을 발견하고 준비하게 된다면 당신의 늙은 부모가 달리 보이기 시작 할 것이다.

똥오줌을 잘 가리지 못하시는 여든 다섯인 우리 어머니를 모시기로 하고 집을 고치고 있는 가운데 읽게 된 이 두 권의 책은 내게 큰 깨우침과 용기를 준다. 어머니의 존재가 이런 식으로 또 나를 일깨워주시느니 싶다

덧붙이는 글 | <당신의 책, 그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당신의 인생을 이모작하라 - 생물학자가 진단하는 2020년 초고령 사회

최재천 지음, 삼성경제연구소(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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