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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의 출발지는 곧 여행의 도착지다. 이번 여행에서 우루무치가 그렇다. 우루무치에서 출발해 쿠처, 카슈카르를 돌았고, 트루판과 돈황을 거쳐 다시 우루무치로 돌아왔다. 그리고 여행은 우루무치에서 끝난다. 여행이 끝난다고 생각하니 한편으로는 아쉽고, 다른 한편으로는 시원하다. 아쉬움은 더 가보아야 할 곳이 많이 남아있기 때문이고, 시원함은 사막의 더위로부터 해방될 수 있다는 마음 때문이다.

▲ 우루무치 시내에서 아득하게 바라보이는 설산. 천산의 설산은 어쩌면 우루무치 사람들의 정신의 배경 같은 것인지도 모른다.
ⓒ 최성수
우루무치는 신장위구르 자치주의 중심 도시다. 우루무치(烏魯木齊)는 몽골어로 '아름다운 목장'이라는 뜻이다('투쟁'이라는 뜻도 있다). 그 말대로 우루무치는 푸른 숲과 맑은 물이 많이 흐르는 곳이다. 사막지대에 자리한 싱그러운 오아시스 도시이지만, 정작 우루무치가 아름다운 목장으로 느껴지는 것은, 시의 저편에 늘 흰 이마를 간직한 천산이 있기 때문이다. 그 천산 산록으로 눈부시게 펼쳐진 초원지대 때문이기도 하다.

위구르 사람들의 마음의 고향, 천산(天山)

천산은 천산산맥을 말한다. 타림분지의 북서쪽으로 길게 뻗어있는 이 산맥은 카슈카르 부근에서 곤륜산맥과 만나는데 이 두 산맥 봉우리에 늘 쌓여 있는 만년설이 녹아 사막의 오아시스 마을들에 물을 공급해 준다. 그러니 이 산맥이야말로 신장위구르 사람들의 존재의 고향 같은 곳이리라.

우루무치 사람들이 신성시하는 설산은 천산의 보고타봉(博格達峰)이다. 해발 5445m의 이 봉우리에는 늘 만년설이 빛난다. 마치 흰 모자를 쓰고 있는 것 같은 이 봉우리는 우루무치 사람들의 고결한 정신을 상징하는 것처럼 보인다.

▲ 천산 천지의 풍경. 잔잔한 호수와 시원한 바람이 좋다. 멀리 보고타봉의 설산이 배경이다.
ⓒ 최성수
보고타봉의 아래 해발 1980m 되는 곳에 큰 호수가 하나 있다. 이 호수의 이름이 천지(天池)다. 우리 백두산 천지와 같은 이름이다. 보고타봉의 천지는 위구르 사람들의 천지이고, 백두산 천지는 우리 한민족의 천지다.

보고타봉의 천지로 가는 길 내내 나는 책 한 권을 떠올렸다. 이곳 신장성 출신의 작가 왕강(王剛)의 장편 <오, 나의 잉글리쉬 보이(英格力士)>가 바로 그 책이다.

우루무치에 사는 소년 류아이의 성장과정을 다루고 있는 이 소설은, 폭풍과 같았던 문화대혁명기를 배경으로 영어를 배우고자 열망하는 한 소년과 영어 교사의 교감을 통해 사회, 성, 문화 따위가 인간의 성장과 어떻게 긴밀한 연관관계를 갖는지 그려내고 있다. 이 소설 속의 주인공 류아이의 정신적 배경으로 그려지는 곳이 바로 천산이다.

그 소설을 읽으며 받았던 감동을 천산 천지에서 느껴볼 것이라는 믿음은 그러나 헛된 꿈이었다. 두어 시간 길을 달려 찾아간 천지는, 내가 생각한 천지가 아니었다. 아니, 몇 해 전에 이미 찾았던 곳이라 대강 짐작은 하고 있었지만 그때보다 더 나빠져 있었다. 케이블카가 놓이고 온갖 음식점과 상가가 생겨났다. 호수 주변에는 훨씬 더 많아진 유람선들이 쉴 새 없이 천지 물 가운데로 관광객을 실어 나르고 있었다. 그저 손에 잡힐 듯 바라보이는 보코타봉의 시원한 만년설만이 전과 같을 뿐이었다.

우리의 천지가 신비함의 극치라면, 천산 천지는 그저 유원지라고 할 수 있다. 백두산 천지는 금방 비가 쏟아지고 안개가 자욱하다가도 언제 그랬느냐는 듯 쨍쨍한 햇살이 비치고, 그러다 또 금세 먹장구름이 몰려온다. 험한 날씨에는 호수 아래쪽에서 작은 돌멩이들이 마구 날아오르는 곳, 오랑캐 장구채, 바위구절초 같은 야생화들이 낮게 몸 가라앉히며 삶의 지혜를 가꾸어가는 백두산 천지는 신비로운 곳이다.

그에 비하면 천산 천지는 유람선과 사람들로 발 디딜 틈조차 없이 북적거린다. 꼬치를 구워 파느라 연기와 냄새도 자욱하다. 신비로움보다는 생활이 그대로 드러나 있는 곳이다.

백두산 천지는 근원을 알 수 없는 샘물이 솟아나 그 크고 깊은 호수를 만들어낸다. 주변에 만년설이 있는 것도 아닌데, 늘 일정한 수량을 간직하고 있는 신비로움이 백두산 천지다. 그러나 천산 천지는 보고타봉의 만년설이라는 분명한 근원을 지니고 있다. 주변에 큰 삼나무들도 빽빽하게 솟아있다.

▲ 백두산 천지를 배경으로 하늘거리는 두메 양귀비꽃. 천산 천지가 생활이라면, 백두산 천지는 신비다.
ⓒ 최성수
어느 것이 더 좋다는 개념이 아니라, 단순한 비교의 관점에서 본다면, 백두산 천지는 일상 밖에 있는 신비로움이고, 천산 천지는 일상 속에 있는 생활이다. 생활 속에 있는 호수 천산 천지의 푸른 물결과, 그 산 언덕에 서왕모의 사당을 바라보며 잠시 여유로운 호수 유람을 하고 돌아온다.

서왕모는 중국 신화 속의 여신이다. 원래 곤륜산에 살았다고 하는데, 전설 속에는 이곳 천산 천지가 서왕모와 주나라 목왕이 사랑을 속삭인 곳으로 알려졌다.

주(周)나라 목왕(穆王)이 서역 지방으로 순행을 떠난다. 그는 요지(瑤池)의 호수 위에 희디흰 연꽃이 떠 있는 것을 보고 가까이 가게 되는데, 가 보니 연꽃이 아니라 목욕하는 서왕모였다. 서왕모에게 빠진 목왕은 서역 지방 돌아보기를 그만두고 날마다 서왕모와의 사랑에만 몰두한다. 이들의 사랑은 주나라가 침입을 받았다는 급보 때문에 황급히 귀국을 하게 된 목왕의 사정으로 허망하게 끝난다.

▲ 천산 천지의 서왕모 사당. 서왕모는 이곳에서 주나라 목왕을 만나 사랑을 속삭였다고 한다.
ⓒ 최성수
그러나 그렇게 끝난 사랑의 이야기는 지금도 이곳 천지 호수에 남아 저렇게 잔잔한 물살로 나그네의 마음에 되새겨지고 있다. 서왕모의 요지가 바로 이곳, 천산 천지였다니 말이다.

천지 아랫마을에서 먹는 둥 마는 둥 점심을 마치고, 양 꼬치를 구워 파는 가게에 들어가 맥주 한 잔과 꼬치 몇 개를 먹는다. 점심이 입에 맞지 않아 차라리 그게 낫겠다 싶어서다. 그런데 꼬치와 난을 굽던 이 카자흐 쪽 친구가 내가 일본사람인 줄 알고 있다.

일본 사람이 아니고 한국 사람이라고 하니 반색을 하더니 한국말을 가르쳐달란다. 어눌한 중국말로 묻기에 한국말을 가르쳐주면, 이 친구 위구르 글자 같은 문자로 내 말을 적고 반복한다. 가르쳐준 말이, "양 꼬치 사세요, 맛있어요, 싸요, 고맙습니다, 안녕히 가세요" 따위다. 어렵다고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면서도, 금방 내 말을 배워 나와 헤어질 때 "안녕히 가세요"라고 인사를 한다. 괜히 기분이 좋아진다. 역시 천산 천지는 생활의 장소이다.

▲ 내게 한국말을 배운 란와 양꼬치를 파는 카자흐 사람. 헤어지는 내게 한국말로 인사를 했다.
ⓒ 강마을
하긴 그렇다. 어느 민족에게든 성소는 자기 나름의 틀 속에서 존재하는 것이리라. <오 나의 잉글리시 보이>의 유아이가 천산을 자기 정신의 성소처럼 느끼는 것은, 내가 천산 천지와 백두산 천지를 비교하는 것과는 다른 의미에서였으리라. 비교가 아니라 절대적인 것이 성소일 테니까 말이다.

오래 기다려 케이블카를 타고 내려오면서 내려다본 천지 부근의 풍광은 그런 나의 마음 탓인지 친근하고 예쁘게 보인다.

누란의 미녀가 잠자는 박물관

우루무치에서 꼭 보아야 할 것이 바로 신장 위구르 박물관이다. 유명한 미라들이 여러 구 있기 때문이다. 사실 다른 유물들이야 박물관마다 비슷하다. 오래전부터 이 지역에 살았던 사람들이 사용한 생활품들이라든가 수렵 도구 같은 것들은 스쳐 지나며 봐도 되지만, 미라는 그렇지 않다.

따로 전시실을 마련하여 유리관 속에 넣어놓은 미라들은 이곳이 아니면 보기 어려운 것들이다. 이들 미라는 마치 살아있는 것처럼 생생하다. 살이 말라붙어 쪼글쪼글한 것이 아니라 제법 살점이 도톰하기까지 하다. 얼굴에 화색도 도는 것 같다. 머리카락이며 손톱도 그대로이고, 이도 아직 튼튼해 보인다.

▲ 신장 위구르 박물관 전경. 누란의 미녀를 이 박물관에서 만났다.
ⓒ 김희년
이집트의 미라들이 화학적인 처리를 통해 만들어진 것이라면, 이곳의 미라는 자연 건조된 것들이다. 타클라마칸의 건조한 기후 때문에 그냥 묻어놓아도 수분이 증발되면서 미라로 되어버린단다.

살아있는 것 같은 표정으로 수천 년의 세월을 썩지 않고 제 모양대로 남아있는 미라에게서 슬픔과 비애가 느껴지는 것은 소멸할 수 없는 것들에 대한 안쓰러움 때문일 것이다. 모든 것이 소멸하고 무화되어 버리는 사막에서 저 자신의 몸뚱이 하나를 수천 년 동안 간직해야 하는 저 미라들의 아픔은 얼마나 아득할 것인가!

▲ 박물관에 전시된 미라의 모습. 수염과 이, 피부까지 생생하다.
ⓒ 신장 위구르 박물관 도록
▲ 누란 미녀의 미라. 도록의 사진이 어둡게 나와 제 모습이 드러나지 않는다. 누란 미녀가 꿈꾸는 것은 옛 누란 왕국에 대한 그리움일까?
ⓒ 신장 위구르 박물관 도록
나는 특히 '누란(樓蘭)의 미녀'라는 이름이 붙은 미라 앞에서 그런 생각을 했다. 다른 미라들처럼, 누란의 미녀도 큰 코에 가지런히 앞으로 모은 손, 여전히 성한 것 같은 신발에 비단 옷의 색깔까지 남아있다. 그 미라에 더 많은 상념이 깃드는 것은, 누란이라는 나라에 대한 그리움 때문이다.

내게 '누란의 그리움'을 갖게 한 것은 이노우에 야스시(井上 靖)의 소설 <누란>이었다. 역사적 사실과 문학적 상상력을 잘 버무려 만들어낸 소설 <누란>은 1957년에 발표된 서역 소설이다.

로프노르 호수 가에 작은 오아시스 나라가 있었다. 그 나라의 이름이 누란이었다. 누란 사람들은 소금호수인 로프노르에서 소금과 물고기를 얻어 사막을 건너는 사람들에게 팔며 살아가는 평화로운 곳이었다.

이들은 흉노의 영향권 아래에서 삶을 부지하고 있는 나라였다. 그런데 무제 때부터 한나라가 누란을 자신의 영향권에 넣으려고 했다. 힘없는 누란 사람들은 결국 때로는 한나라에, 때로는 흉노에 몸을 기대며 눈치껏 살아가야 하는 처지가 되고 만다. 왕의 아들 하나는 흉노에, 다른 하나는 한나라에 인질로 보내는 상황까지 벌어졌다.

누란 왕이 죽게 되자, 흉노에 인질로 갔던 왕자인 안귀가 왕위에 올랐다. 안귀는 왕위에 오른 뒤 한나라를 멀리하고 흉노와 가까운 정책을 폈다. 그러자 한나라에서 사신을 보내, 안귀를 살해하고, 한나라에 인질로 가 있던 안귀의 동생 위도기를 왕위에 앉힌다. 왕이 된 위도기는 한나라의 협박과 회유에 나라를 로프노르에서 멀리 떨어진 선선(鄯善)으로 옮기게 된다.

누란 사람들은 자신의 생명과도 같은 호수 로프노르를 떠나 원하지 않는 이주를 해야 했다. 그런데 나라 이전 며칠 전, 안귀의 젊은 부인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남편의 땅, 조상 대대로 뿌리내리고 살아오던 로프노르 호숫가의 정든 땅을 버리고 떠날 수 없었던 마지막 자존심 때문이었을까?

누란 사람들은 안귀의 부인 시신을 로프노르 호수가 바라보이는 모래 언덕에 묻어준 뒤, 누란의 땅을 떠나 선선으로 옮겨간다.

세월이 오래 흘렀다. 그동안 누란에 원래 살았던 많은 사람은 나이 들어 세상을 떴고, 새로 태어난 아이들은 누란에 대한 기억도 없이 살아갔다. 그리고 누란이라는 나라는 모래 속에 묻힌 채 지상에서 사라져갔다. 누란이 없어지자, 누란 땅 옆에 있던 큰 호수 로프노르도 점점 물이 마르더니, 아예 자취도 없이 사라져버렸다. 이제 누란과 로프노르는 영영 사람들의 기억에서 사라져버린 것이다.

그로부터 1500년이 넘는 세월이 흘렀다. 스웨덴의 탐험가 스웬 헤딘은 서기 1927년 누란의 유적을 찾아 나선다. 오랜 세월을 헤매도 찾을 수 없는 누란의 유적을 그리며 사막에 앉아있던 헤딘의 눈에 반짝이는 물줄기가 하나 들어왔다. 그 물줄기는 다시 살아난 로프노르 호수였다. 천 5백 년마다 물줄기를 바꾸는 이동하는 호수 로프노르가 마침내 다시 옛 누란의 땅으로 살아오고 있었던 것이다.

헤딘은 그 돌아오는 로프노르 호숫가에서 한 구의 미라를 발굴한다. 그 미라는 뚜렷한 얼굴 윤곽에 은근한 미소를 머금고 있었다. 그 미라가 안귀의 부인이었을까?

▲ 천산 천지에서 내려오는 길, 천지 아래에 곱게 놓인 소천지. 백두산 천지에도 저런 소천지가 있다.
ⓒ 최성수
야스시의 소설은 움직이는 호수 로프노르와 누란의 역사, 미라 누란의 미녀와 스웬 헤딘의 탐험기록을 섞어 하나의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어 낸 것이다. 나는 미라 누란의 미녀를 보며, 나 자신이 야스시의 소설 <누란> 속에 들어가 있는 것 같은 감상에 빠져들었다.

자취를 감추었던 움직이는 호수 로프노르의 모래 언덕에서, 세월 속에 묻혀버린 도시 누란의 황막한 풍경을 지칠 때까지 바라보는 나 자신의 모습을 떠올린 것은, 내가 아직 누란 옛 땅에 가보지 못했기 때문이고, 그곳에 대한 그리움을 여전히 간직하고 있기 때문이다.

나는 누란 옛 땅에 대한 미련을 마음 한편에 간직한 채, 이번 여행을 끝냈다. 돌아오는 내내 누란이라는 이름의 포도주 한 병이 내 손에 들려 있었다. 트루판 옛 마을에서 마셨던 누란 포도주의 뛰어난 맛을 기억하면서, 다시 실크로드 여행을 떠나야겠다는 미련을 누란이라는 이름의 포도주에 의탁해 둔 것이다. 그것은 누란 옛 나라에 대한 그리움이기도 하다.

쿠얼러(庫爾勒)를 거쳐 타클라마칸 사막의 끝자락에 자리 잡은 누란의 옛 땅을 찾아보는 것, 내친김에 차말(且末)과 민풍(民豊), 화전(和田)을 거쳐 카슈카르를 지나 파키스탄까지의 서역 남로 길을 한 줌 모래 바람처럼 떠돌고 싶다는 것이 그리움의 행로다.

내 마음은 이미 그 길을 향해 떠나고 있고, 그 떠남의 설렘과 아득함을 위해 나는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고 있다. 아, 막막하고 막막해 더는 마음에 남을 아무것도 없던 버성이는 모래와 같던 나의 여행은 그렇게 또 다른 그리움을 남긴 채 끝나고 말았다.

▲ 쿠얼러 가는 사막길의 이정표. 내 마음은 이미 저 길을 따라 누란의 옛 마을과 서역 남로를 모래먼지처럼 떠돌고 있다.
ⓒ 최성수

덧붙이는 글 | *그동안 제 여행기를 읽어주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이 여행기 전편을 비롯한 저의 모든 글은 제가 운영하는 카페 http://cafe.naver.com/borisogol.cafe 에서 보실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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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집 <장다리꽃같은 우리 아이들>, <작은 바람 하나로 시작된 우리 랑은>, <천년 전 같은 하루>, <꽃,꽃잎>, <물골, 그 집>, <람풍>등의 시집과 <비에 젖은 종이 비행기>, <꽃비> , <무지개 너머 1,230마일> 등의 소설, 여행기 <구름의 성, 운남>, <일생에 한 번은 몽골을 만나라> 등의 책을 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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