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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올해는 소련의 음악가 쇼스타코비치(1906~1975)의 탄생 100주년이다. 프로코피예프와 함께 소비에트 시대를 산 천재적 음악가였던 쇼스타코비치.

그의 생일이 9월 25일이니 우리나라 관객들은 20세기 음악 거장의 100주년 생일을 바로 안방에서 기념하게 됐다.

러시아 헬리콘 오페라단이 쇼스타코비치의 <므첸스크의 레이디 맥베스>(이하 <레이디 맥베스>, '므첸스크'는 러시아 오룔 지방에 있는 지명)를 오는 24일까지 성남아트센터 오페라 하우스에서 공연하는 것.

스탈린이 박해한 오페라, 2006년 한국에서 부활하다

▲ <레이디 맥베스>의 한 장면. 사진 출처 한러교류축체 홈페이지(www.russianfestival.co. kr).
오페라 <레이디 맥베스>는 기구한 운명을 지녔다.

쇼스타코비치는 교향곡뿐 아니라 영화 음악, 오페라 등 전방위에 걸쳐 걸작들을 빚어냈는데 <레이디 맥베스>는 그가 쓴 두번째 오페라다.

1930년대 엄격한 금욕주의에 빠져들었던 소련의 실정을 생각하면 사실 이 오페라는 파격적이다 못해 충격적이다. 무료한 결혼 생활을 하던 젊은 여자가 남편이 집을 비운 사이 일꾼과 외도를 하고 그로 인한 치정 살인, 비극적 자살로 이어진다는 게 이 작품의 줄거리. 이번 공연의 지휘자 폰킨은 "이 작품이 그려내는 '위험한 사랑'이 이 작품을 위험하게 만들었다"고 진단했다.

하지만 <레이디 맥베스>는 예상 외의 대성공을 거뒀다. 짓눌렸던 소련 사회에서 신선한 바람으로 느껴졌는지 1934년 1월 초연과 함께 <레이디 맥베스>는 대성공을 거두었다. 2년 후 스탈린이 보기 전까지는 말이다.

1936년, 소련에서 스탈린의 피비린내 나는 '테러 정치'가 시작된 해. 스탈린은 <레이디 맥베스>를 직접 보러 극장을 찾았다가 노골적인 성적 묘사와 치정 살인이 이어지자 역정을 내면서 1막이 끝난 후 자리를 떴다.

며칠 후 소련의 최대 일간지이자 당의 충실한 기관지인 <프라우다>에는 쇼스타코비치의 오페라를 강하게 비난하는 글이 실렸다. 그것으로 소련에서 <레이디 맥베스>의 운명은 끝장났다.

이후 <레이디 맥베스>는 소련이 종식을 고할 때까지 공연이 금지됐다. 이 작품에 깊은 애착을 가졌던 쇼스타코비치가 <카테리나 이즈마일로바>라는 수정판으로 1963년에 공연하긴 했지만 그것은 원작과는 차이가 있었다.

불운했던 <레이디 맥베스>는 소련의 멸망에 즈음해 태어난 헬리콘 극장에 의해 멋지게 부활했다. 헬리콘 극장의 <레이디 맥베스> 공연은 러시아 '골든 마스크' 상을 5년간 네번이나 수상했다. 소련의 숨 막히는 정치권력에 짓눌려 늘 전전긍긍하면서도 천재성을 펼친 쇼스타코비치에게 건배를.

러시아 오페라의 신흥강호, '헬리콘 오페라단'

▲ 헬리콘 오페라단이 드레스 리허설을 시작했다.
ⓒ 윤새라
이제 헬리콘 오페라단은 러시아 오페라의 신흥강호로 떠오르고 있다. 1990년에 세워져 이제 겨우 17번째 시즌을 맞이한 헬리콘 오페라단. 러시아 문화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단번에 떠올리는 볼쇼이 극장과 마린스키(키로프) 극장에 비교할 바가 못 된다.

제정 시대인 1776년부터 존재했던 그 이름도 유명한 볼쇼이와 올해로 224번째 시즌을 시작한 마린스키. 이 쌍두마차의 틈 사이에서 선 헬리콘 극장은 심하게 비유하자면 머리에 피도 안 마른 애송이 극장이다.

하지만 헬리콘의 첫 일성을 듣는 순간, 기자의 몸에는 전류가 훑고 지나갔다. 단박에 그들이 그저 러시아의 전통에만 어설프게 기대고 있지 않음을 알 수 있었다. 그리고 그들이 무대에서 노래하는 모습을 보고 듣는 순간, 한국을 첫 방문한 오페라단에 대한 반신반의가 순식간에 사라졌다.

▲ 헬리콘 오페라단의 드레스 리허설 장면.
ⓒ 윤새라
2006 한-러 교류축제의 일환으로 열리는 헬리콘 오페라단의 <레이디 맥베스> 한국 초연. 지난 22일 첫 공연을 앞두고 공연장인 성남아트센터 오페라 하우스를 찾았다. 정식 공연 전 있다는 드레스 리허설도 보고 인터뷰도 하기 위해서였다.

당일 저녁 7시 첫 공연을 앞두고 오후 4시부터 한 시간 정도만 드레스 리허설을 한다는 얘기를 들었을 때는 의구심이 들었던 것도 사실. 주최 측도 똑같은 걱정을 했다고. 하지만 헬리콘 측은 이미 수없이 많이 한 공연이고 베테랑들이 내한했기 때문에 성남오페라 하우스의 무대 상태만 점검하면 된다며, 느긋한 표정이었다.

오후 4시 조금 전, 한 무리의 오페라 가수들이 무대 앞을 채웠다. 오페라 피트에 지휘자 폰킨이 등장했다. 가수들은 박수와 환호로 그를 반겼다. 함께 부르는 곡으로 시작된 리허설. 손님이 없는 빈 관객석이 어둡고 공허해 보이긴 했지만 가수들이 노래를 시작하자 텅 빈 공간은 헬리콘(고대 그리스에 예술가들이 뮤즈에게 제사를 지냈다는 산)으로 변했다.

지휘자 폰킨은 자주 연주자들과 무대 위 가수들에게 어떻게 느껴지냐고, 음향 상태며 무대의 감을 물었다. 음향 감독에게 음향 효과를 더 선명하게 해 달라는 주문을 제외하고는 성남 오페라하우스에 대만족을 표했다.

주인공 카테리나는 야수와 같은 감정을 지닌 여자

▲ .<레이디 맥베스>의 한 장면. 사진 출처 한러교류축체 홈페이지(www.russianfestival.co. kr).
무대 뒤에서 만난 여주인공 카테리나 역의 스베틀라나 소즈다텔레바. 드레스 리허설을 위해 의상도 입고 역에 몰입한 상태여서인지 눈에서 카테리나의 정열이 뚝뚝 떨어지는 느낌이었다.

- 주인공 카테리나를 당신은 어떻게 이해하는가?
"정열적으로 사랑에 빠진 여자다. 강한 성격을 가졌고 야수와 같은 감정을 겪어 내는 여자다. 내가 헬리콘에 데뷔한 게 바로 카테리나 역을 통해서다. 외국의 유명한 극장들이나 마린스키에서 다른 역도 했지만 내가 가장 좋아하는 배역이 바로 <레이디 맥베스>의 카테리나다."

- 이 작품의 감상 포인트는?
"이 오페라는 시공을 뛰어넘는 보편성이 있다. 정열이 극한에 이르렀을 때라는 보편적 상황을 그린다. 바로 감정에 관한 작품이다. 그러니까 한국 관객들도 20세기 전반기에 쓰인 오페라라 해도 잘 이해할 것이다."

- 헬리콘은 아주 젊은 오페라단이다. 러시아 내에서만 봐도 손꼽힌 극장들이 한둘이 아니다. 성공의 비결이 뭔가?
"우리는 단지 노래만 하지 않는다. 오페라단 중에는 노래를 잘하는 것에만 지나치게 치중을 하는 경우가 있는데 우리는 그렇지 않다. 우리 공연은 훌륭한 연기와 뛰어난 노래 실력을 결합하는 데 정성을 쏟는다. 스타니슬라브식 연기가 우리 오페라 공연의 밑받침이다."

"러시아 예술 위협하는 건 푸틴 아닌 마피아들"

한편 무대 뒤에서 만난 지휘자 폰킨은 연습 때 극장 단원들을 대하던 것과 똑같은 따뜻함을 보였다.

- 권력과 예술은 지금 러시아에서 어떤 관계를 맺고 있는가? 70년 전 스탈린이 예술 작품의 운명을 좌지우지했듯이 지금 푸틴 대통령도 영향력을 행사할 만한 권력을 지니고 있지 않은가? 일례로 몇년 전, 러시아 텔레비전에서 인기리에 방영되던 <인형들>이란 풍자 인형극이 푸틴을 희화화한다고 푸틴의 진노를 샀다.
"현재 러시아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돈이다. 그리고 러시아 예술을 위협하는 것은 대통령 같은 한 개인의 권력이 아니라 예술계에도 만연한 마피아들이다. 그들은 예술 면에서는 실력도 대단하지 않으면서 파워가 있는 정치계 인사들과 결탁해 라이벌들에게 불이익을 준다. 예술계 내에서 벌어지는 파워 게임이 문제다."

- 당신은 1951년생이니 소련을 겪었다. 많은 변화를 직접 체험했는데 지금의 러시아를 어떻게 보는가? 현재 러시아와 과거 러시아, 어느 때가 더 나은가?
"나는 지금의 러시아가 더 좋다. 왜냐고? 새로운 러시아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나는 새로운 러시아를 만드는 데 참여하고 있기 때문이다."

덧붙이는 글 | <므첸스크의 레이디 맥베스>: 24일까지, 성남 아트센터 오페라 하우스. 
자세한 정보는 www.snart.or.kr와 www.russianfestival.co.kr 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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