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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마이뉴스 고정미
교민사회가 큰 나라에서는 한국식품점이 흔한 일이겠지만, 예루살렘과 같이 200여명 남짓한 교민사회에서는 한국식품을 구하기가 여간 힘들지 않다. 어쩌다 한국에서 공수해오거나 성지순례차 오는 인편으로 받는 것이 전부다.

예루살렘 교민이라고 해야 신학이나 교회 관련 유학생이나 성지순례 관광업 종사자가 전부다. 계속되는 전쟁과 테러로 인해 교민사회는 줄면 줄었지 늘지 않는다. 그나마 교민 수가 가족 구성원을 다 포함해 200여명으로 늘어난 것도 최근인 90년대 중반 들어서다.

이는 우연히도 러시아 유대인들의 대대적 이민행렬이 밀려오는 시기였다. 90년대 초중반에 약 70여만명의 러시아 유대인들이 밀려와 이스라엘 내 러시아인들은 무려 100만명을 웃돈다.

양배추김치 먹던, 그 때를 아시나요?

93년 기자가 유학 차 예루살렘에 첫발을 내딛었던 당시 라면이나 김치는 보기만 해도 눈이 번쩍 뜨일만한 먹을거리였다. 영세한 규모의 교민사회에 한국 식품점은 생겨날 수 없었다.

다만 동양계 식품점이 있어 동남아로부터 온 비슷한 식품을 구입할 수 있을 뿐이었다. 무엇보다도 배추가 가장 그리웠다. 배추만 있다면 절여 그저 고춧가루와 파, 마늘만 충분히 넣어도 감칠맛 나는 외국생활을 할 수 있었을텐데 말이다.

90년대 초까지만 해도 배추는 상상도 못했다. 당시 대부분의 김치 재료는 그 흔한 양배추. 군에 있을 때 간혹 배추가 품귀해지면 배추 대신 먹어봤던 양배추 김치가 90연대 중반까지만 해도 예루살렘의 보편화된 김치였다. 익어가면 배추김치보다 시큼한 맛이 강하긴 하지만 그나마 양배추라도 배추김치의 향수와 입맛을 달랠 수 있었다.

그런데 90년대 중반부터 아주 반가운 소식이 들렸다. 배추의 등장이다. 대도시인 텔아비브 어딘가에 가면 러시아인들이 주로 이용하는 상점에서 배추를 살 수 있다는 것이다. 큰 맘 먹고 텔아비브에 가서 가끔 구해온 배추김치는 감격 그 자체였다.

그러던 것이 2000년대에 들어서서는 예루살렘 어느 백화점에 가도 배추 구하기가 어렵지 않게 됐다. 미리 주문만 해놓으면 얼마든지 받을 수도 있게 되었다.

100만명이 넘는 러시아 유대 이민자들은 서서히 자신들의 옛 문화를 끌어들여 아예 정착시켰고, 이스라엘에는 러시아풍 문화가 자리를 잡았다. 이스라엘에서는 동화정책의 실패라고 볼 수도 있고, 러시아쪽에서는 향수를 달래는 자신들의 삶을 방편을 찾아낸 것이다.

에티오피아나 다른 민족도 유지를 해나간다지만 전체 유대인의 1/5을 차지하는 러시아계 인구는 영향력이 달랐다. 이렇게 해서 자리잡은 대표적인 분야가 식생활과 출판과 언론이다.

앞서 말한 배추는 '크로브 씨니(중국배추)'로 러시아 이민자들이 가장 선호하는 샐러드 중 하나다. 왜 이 샐러드를 좋아하는 지는 모르지만 러시아인들의 급증하는 수요로 인해 사시사철 배추를 구할 수 있다.

▲ 러시아식품점에 진열된 돼지고기 삽겹살. 불과 10년 전만 해도 상상도 할 수 없는 유대인들의 최대 금기 식품이다.
ⓒ 이강근
러시아와 함께 이민온 돼지고기와 컵라면

또 하나의 변화는 돼지고기다.

유대인의 최대 금기 음식 중에 하나인 돼지고기다. 이스라엘은 건국 이래 돼지고기 수입을 금지해왔다. 종교인들의 반대 때문이다. 음식에 돼지고기를 넣는다는 이유로 예루살렘의 중국식당에 종교인들의 방화가 잇따랐던 적도 있었다.

러시아인들이 암암리에 돼지고기를 즐겨오다 최근 들어 아예 정부를 상대로 합법화를 이끌어냈다. 2005년 건국 이후 처음으로 벧세메스와 티베리아 도시에서 돼지고기를 판매해도 좋다는 판결을 얻어낸 것이다. 그 지역 대다수의 시민이 원하면 판매가 가능하다는 대법원 판결이었다.

그렇지 않아도 드러내놓고 팔지는 않지만 러시아 가게에 가서 '흰고기(바살 라반)'를 달라면 돼지고기를 건네주곤 했었다. 그러나 이젠 버젓이 정육점처럼 진열해놓고 달라는 대로 부위별로 살 수 있고 심지어는 돼지 족발도 구할 수 있는 시대가 되었다.

그 뿐만이 아니다. 러시아 가게에선 도시락 컵라면도 구할 수 있게 되었다. 88올림픽 때 러시아 선수단이 자판기에 줄지을 정도로 좋아했다는 제품으로, 언젠가 러시아 철도여행을 할 때 거의 모든 기차역마다 눈에 띄는 간식거리가 도시락면이었다.

이것이 결국은 한국인도 아닌 러시아인을 따라 예루살렘까지 상륙하게 된 것이다. 그러고 보면 러시아인들이 한국 교민들에게 여간 고마운 일이 아니다.

▲ 예루살렘의 한 러시아 식품점에서 판매되고 있는 도시락 컵라면.
ⓒ 이강근
한국 교민과 러시아 이민자들이 섞여사는 이유

한국 교민들 모두는 아닐지라도 러시아인들과 섞여사는 이유는 거주지가 비슷하다는 것이다. 러시아 이민자들이 정착 초기에 좀 더 저렴한 지역을 찾는 것과, 조금이라도 저렴한 집을 찾는 유학생 교민들의 바람이 일치하기 때문이다.

이스라엘 정부는 밀려오는 러시아 유대인 이민자들을 감당해내기 위해 예루살렘 주변 아랍지역에 과감하게 거주도시를 건설해 용감한 러시아 이민자들을 집중 유치했다. 초기 이스라엘은 이민자들이 정착할 때까지 2~3년 동안 언어교육과 직업을 국가에서 최대한 지원해주고 이후는 자신들이 삶을 찾아나서게 했다.

그러나 정착에 실패한 이들뿐만 아니라 완벽한 이스라엘인으로 살아가는 사람들도 옛 러시아의 삶을 그리며 자신들만의 문화를 찾게 된다. 초기에는 러시아어 잡지들이 조금씩 들어오던 것이 이제는 옛 러시아 문학서적에서 최근 인기서적들까지 진열대를 채운다.

이 뿐 아니다. 러시아 출신들을 위한 신문이 출간되기 시작했고, 몇년 전부터는 러시아방송이 개국됐다. 케이블방송 때문이다. 러시아채널에서는 외국영화에 히브리어와 아랍어 자막 대신 히브리어와 러시아어 자막이 뜬다.

그리고 러시아인이 거주하는 지역에는 제법 러시아 식품점과 정보지들이 즐비하다. 상점에서는 히브리어나 영어보다는 러시아어가 통용된다. 우리 교민 중에 러시아에서 좀 생활한 경험이 있던 이들도 반갑다고 할 정도니 말이다.

▲ 예루살렘 중심가에 자리잡은 러시아 식품점 입구.
ⓒ 이강근
러시이 이민자의 힘, '표'의 힘

종교의 나라라고 할 수 있는 이스라엘에서 이러한 식품과 문화의 대대적인 진보는 러시아인이 아니고서는 해낼 수 없는 일이다. 100만이 좀 넘는 러시아인구는 유대인 590만(아랍인 100여만을 합쳐 총 700만) 인구의 이스라엘 사회에 결코 적지 않은 영향력을 가지고 있다.

그러지 않아도 종교인은 "이스라엘이 너무 세속적"이어서 못살겠다고 불평을 하고, 세속 유대인들은 "이스라엘이 너무 종교적"이어서 못살겠다고 아우성이다. 그런데 러시아 이민자들은 종교인들의 공격이나 법적인 제지에도 아랑곳하지 않는다. 안식일에 가게를 여는가 하면 아예 유대 금기식품인 돼지고기도 버젓이 판매한다.

이러한 것을 가능케 하는 것이 100만이 넘는 러시아 유대인들이 보유한 '표'의 힘이다.

지난 95년 러시아 이민자들은 자신들의 삶을 보호하기 위해 '이스라엘 바알리아당'을 세웠다. 부시의 중동평화 선생으로 유명한 나단 샤란스키가 주도했다. '이스라엘 바알리야당'은 95년 출범해 96년에 7석(120석 중)과 99년 6석을 유지하며 장관직까지 차지했었다.

그러나 2003년 당세가 약해지면서 리쿠드당에 흡수되었다. 초기 이민자들이 이스라엘 사회에 적응이 되면서 더 이상 러시아 이민자당에 관심이 없을 것이라는 샤란스키의 판단에서였다. 그러나 2006년 이런 예상을 깨고 샤란스키 대신 들어선 제2의 러시아당 '이스라엘 베이테누당'은 11명의 의원을 당선시키며 여전히 주요 정당으로서 정치력을 가지고 있다.

이스라엘 내에 러시아 이민자들은 이스라엘의 세속화를 가속화시키는 주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어떻게 보면 유대인의 금기를 깨는 주체이다. 그리고 이 힘과 영향력이 세속 이방인, 우리 교민에게 삶의 편의로 다가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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