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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유치원 때 맞았다.

유치원에서 때린다는 것이 상상이 가는가. 하지만 난 맞았다. 확실히 기억이 난다. 내가 유치원생 신분에 폭행이나 절도 같은 범죄를 저지른 것도 아닌데 맞았다. 맞은 이유는 단 하나, 왼손으로 글씨를 쓴다는 이유였다. 유치원 때부터 맞아가며 왼손잡이 김귀현의 슬픈 인생은 시작되었다.

유격수를 꿈꾸던 소년, 꿈을 접다

어릴 적부터 난 참 야구를 좋아했다. 야구가 매력적인 이유는 호쾌한 타격, 삼진을 잡아내는 투수의 강속구 등이 있겠지만, 어릴 적에 나는 수비하는 모습이 그렇게도 멋져 보였다. 재빠르게 공을 잡아 정확히 송구하는 모습은 한 마리의 새와 같았다. 수비의 꽃은 그 이름도 멋진 '유격수'다. 나는 당시 나의 우상이었던 '류중일' 같은 유격수가 되고자 마음을 먹었다.

지독한 왼손잡이였던 나는 유치원 때, 교사의 상습 구타에 못 이겨 글씨만은 오른손으로 썼지만, 글 쓰는 것에 이외에는 모두 왼손을 사용해야 했다. 야구를 할 때도 마찬가지, 하지만 왼손잡이가 사용하는 오른손 글러브는 너무 비쌌다. 당시 왼손 글러브가 1만원 정도 했다면, 오른손 글러브는 선수용으로 나온 5만원 짜리뿐이었다. 당시 경양식집 돈가스가 3000원 하던 시절이었으니 5만원짜리 글러브는 꿈도 못 꿨다.

결국 왼손 글러브를 끼고 우겨서 유격수를 했지만, 공을 잡아도 글러브를 벗고 공을 던져야 하는 통에, 아이들의 원성이 높아졌고, 결국 지명타자를 맴돌다 수원시 화서동 상설 동네 어린이 야구팀에서 방출 당했다. 유격수의 꿈은 바로 접어야 했다.

왼손잡이도, 오른손잡이도 아닌 반쪽이 인생

왼손잡이로 세상 살기는 참 힘들었다. 가위질도 힘들고, 칼질도 힘들었다. 모두 오른손잡이용으로만 나오기 때문이다. 가위질, 칼질 못한다고 혼나는 것은 예삿일, 어른들과 식사할 때 마다 듣는 "너 왼손잡이였어?" 하는 말은 날 더욱 주눅 들게 만들었다.

오른손을 강요하는 세상의 흐름에 맞춰가려고 오른손을 쓰려고 피나는 노력했다. 하지만 말처럼 쉬운 게 아니었다. 공을 던지든, 가위질을 하든 오른손엔 이상하리만큼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마치 왼손이 오른손에 갈 힘을 꽉 쥐고 안 놓아주는 듯했다.

결국 오른손과 왼손 사이에서 방황하던 사이 왼손의 힘도 자연스레 빠져 나갔고, 강철 어깨를 자랑하던 왼쪽 어깨도 허무하게 무너지고 말았다. 던지기라면 자신 있던 내가 30m도 못 던지고, 그 탓에 체력장 2급을 받은 날, 난 서러움에 눈물이 고였다. 그리고 그렇게 난 오른손을 열망하는 왼손잡이로 살아왔다.

니혼노 왼손잡이? 다이죠브데스네!

▲ 왼손잡이 일본인 친구 오타 쇼고(오른쪽)는 왼손으로 마이크를 들고 있다. 함께 노래방에 간 한국인 친구들은 모두 오른손에 탬버린을 들고 있다.
ⓒ 김귀현
얼마 전 우리 학교와 자매결연 맺은 일본의 학교에서 한 학생이 우리 집에서 홈스테이를 했다. 집에 데려와 함께 식사를 하던 중 그의 밥 먹는 모습에서 왠지 모를 동질감이 느껴져 그를 바라보았다. 식사를 할 때 마주 앉은 상대를 볼 때면 나는 항상 거울을 보는 듯했다. 하지만 그의 모습은 거울이 아니었다. 나와 같은 손으로 식사를 하는 것이었다.

반가워야 하는데 내심 괘씸했다. 원래 초면에 왼손으로 식사하면 한국 사람은 항상 괘씸하다는 듯이 비꼬더라. 나도 어쩔 수 없는 한국사람인가 보다. 되도 않는 일본어와 한국어를 섞어가며 최대한 비꼬았다.

"니혼노(일본은) 레프트 핸드 냠냠 다이죠브데스까?(괜찮아요?)"
"아~~~."


그는 일본인 특유의 감탄사를 내뱉으며 내 말에 담담하게 대답했다. 내가 제대로 비꼬진 못했나 보다.

"일본에서느 레프트 핸드 다이죠브데스네(괜찮아요)." (한국말을 좀 할 줄 안다)

괜찮다고 한다. 괜히 비꼬았나 보다. 그가 괜찮다니 나도 좋았다. 왼손잡이를 인정해주는 사회가 있다니 그것도 가까운 일본에서, 반가운 마음에 되도 않는 일본어로 마구 물었다. 왼손잡이는 얼마나 되냐 물으니 30% 정도가 왼손잡이라고 한다. 또 야구를 좋아하는지도 물었다. 하지만 그의 대답은 날 다시 울렸다.

"와따시와 쇼스타푸 데스네(난 유격수입니다)."

'쇼스타푸'가 칼이 되어 내 가슴을 갈기갈기 찢었다. 왼손잡이가 어찌 감히 유격수를 할 수 있단 말인가. 못내 이루지 못한 내 꿈이 생각나, 난 홈스테이 3일 동안 이 친구를 편안히 모시기가 힘들었다. 왼손잡이를 인정해주는 일본이 괜히 더 미워졌다.

왼손잡이용 책상, 있다? 없다?

모 방송 프로그램에 제보해도 될 만한 광경을 보았다. 태평양을 건너 찾아간 그 곳에서 우리나라로서는 상상도 못 할 물건을 보고야 만 것이다. 왼손잡이를 위한 책상이 있다는 게 믿겨지는가?

지난 겨울 캐나다 밴쿠버에 위치한 UBC(University of British Columbia) 대학에 학술 교류차 방문한 적이 있다. 마침 '한국어 강좌'를 참관할 기회가 생겼는데, 강의실 안에서 난 정말 희귀한 물건을 보았다. 우리 상식으로는 상상도 못 할 왼손잡이용 책상이 오른손잡이용 책상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는 것이다. 그 둘의 자연스럽게 조화된 모습에 난 남북통일이 된 것보다 더 기뻤다. 이런 세상이 있다는 것이 정말 신기했다.

▲ 왼손잡이 의자 있다? 없다? 정답은 '있다'. UBC 강의실에는 오른손잡이 의자와 왼손잡이 의자가 사이좋게 위치해 있다.
ⓒ 김귀현
캐나다의 학생들은 거리낌 없이 왼손잡이면 왼손잡이 책상에, 오른손잡이면 오른손 책상에 앉아 저마다의 유창한 손놀림으로 필기를 하며 강의를 열심히 듣고 있었다. 왼손잡이가 반을 차지하는데도 전혀 어색함이 없었다. 우리나라에서 왼손잡이 한명 있으면 '괴물' 취급 당하기 십상인데, 이곳에서 왼손잡이는 그저 왼손을 사용하는 사람 중 하나였다. 적어도 괴물은 아니었다.

난 아무것도 망치지 않아. 난 왼손잡이야

▲ 왼손으로 글씨를 쓸 때면, 고향에 온 것 처럼 마음이 포근해진다. 난 앞으로도 왼손으로 글씨를 쓸 작정이다.
ⓒ 김귀현
패닉의 <왼손잡이> 노래가 나왔을 때, 테이프가 다 늘어날 때 까지 이 노래를 들었다. 1. 2절 가사가 같고, 가사도 상당히 짧은 어찌 보면 참 게으르게 만든 노래 같지만, 내 마음을 가사가 담아가 세상에 뿌려주는 듯했다.

지금도 물론 왼손잡이의 삶이 힘들긴 하다. 며칠 전 여자친구의 부모님과의 식사할 기회가 생겼고, 어려운 자리인지라 오로지 오른손으로 숟가락만 사용해 밥을 먹었다. 그리고 여전히 왼손잡이용 가위는 고깃집에 비치되지 않아 고기를 먹을 때마다 남에게 미루는 안타까운 일들이 벌어진다.

내가 바라는 건 딱 하나다. 그건 바로 "왼손잡이네?" 하는 말을 듣지 않는 것이다. 캐나다, 일본에서는 왼손잡이가 그리 이상한 족속들이 아니다. 그저 왼손을 사용하며 왼손이 더 편한 사람일 뿐이다. 왼손잡이라 내가 힘든 건 있어도, 왼손잡이라서 사람들에게 불편 주는 건 없다. 여럿이 식사할 땐 항상 알아서 제일 왼쪽으로 빠진다. 오랫동안 왼손잡이로 살면 이런 눈치 정도는 생긴다.

하지만 때론 세상이 뒤집어진다고, 나 같은 아이 한 둘이 어지럽힌다고, 모두가 똑같은 손을 들어야 한다고, 그런 눈으로 욕하지 말았으면 좋겠다. 난 아무것도 망치지 않는 그저 왼손잡이일 뿐이다. 오히려 왼손을 억압하고 오른손을 강요하는 우리 사회가, 다양성을 인정해주지 않는 이 풍조가, 이 사회를 더 어지럽히고 망치는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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