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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쇳대박물관 3층 전시실. 백회를 바른 판을 캔바스 삼아 대장간에서 생산된 기물을 용도별로 분류해 붙여 마치 회화를 보는 듯하다.
ⓒ 곽교신
서울 대학로 한복판에 대장간이 등장했다.

6일부터 시작되는 쇳대박물관(관장 최홍규) 특별전 '두석장전과 대장간전'이 바로 그것이다. 대장간 특유의 후끈한 열기와 땀 냄새까지 전시하진 못하지만 대중문화 '일번지' 대학로에서 보는 대장간 풍경은 흥미롭다.

풀무꾼의 풍구질로 역청탄 위에서 시뻘겋게 달아오른 쇳덩이를 집게장이가 잡아 모루에 올려놓으면 메질꾼이 힘차게 큰망치를 내리치던 대장간.

그러나 이젠 전통 방식으로 달군 쇠를 두드려 모양을 잡고 날을 벼린 일상 용구들은 시골 5일장에서도 찾기 힘들다. 또 곳곳에 남아 겨우 명맥을 유지하는 대장간은 그 자체가 작은 민속박물관처럼 여겨지기도 하니, 이 특별전이 반갑기만 하다.

서울에 온 두석장 '김극천'

▲ 김극천 장인의 섬세한 장석 작품.
ⓒ 곽교신
전시장 2층에서는 3대째 쇠판을 자르고 갈아 장석을 만들어온 두석장 김극천(55·중요무형문화재 64호 두석장) 장인이 처음으로 서울에서 개인전을 연다. 서울에서 전시회를 열어 전통 장석의 진미를 보여주고 싶었던 그가 30년 동안 잠겼던 한을 쇳대 열 듯 시원히 푼 셈.

조부와 부친의 가업을 이어 경남 통영에서 3대째 장석을 만들고 있는 김 장인은 쇳대박물관 권유로 그의 작업실 일부를 몽땅 서울로 옮겨 전시하고 있다. 오는 23일에는 그가 직접 장석제조 시연도 펼친다.

통영은 임진왜란 때 이순신 장군의 피난민 자활정책에서 시작된 12공방의 영향으로 아직도 전통 공예 기술수준이 결기가 있고 야무지다. 그러나 경제적 보상이 따르지 않는 현실에 조만간에 대가 끊겨버릴 위기에 처한 전통공예 종목이 많다.

장석도 기능 단절 위기에 처한 분야 중 하나. 장석이란 목가구 등의 이음매에 박아 가구를 튼튼히 하는 동시에 멋을 더할 목적으로 얇은 쇠판을 오려 만든 장식물을 말하며 이 일을 하는 장인을 '두석장'이라 부른다.

현재 장석은 사용처가 거의 없어 두석장을 제도적으로 보호하지 않으면 기능이 사라질 위기에 있는 무형문화유산의 한 분야이다. 김 장인은 막내아들을 설득해 기술을 전수하며 간신히 4대를 잇고 있다.

대장간에서 태어난 각종 기물들

▲ 들쇠. 여름에 한옥의 장지문을 들어올려 걸어두던 기물이다. 마치 한 폭의 회화같다는 평을 들은 대표적 전시물.
ⓒ 곽교신
▲ 광두정. 광두정은 가구나 대문을 장식하던 일종의 못으로, 못머리의 크기와 모양이 다채롭다.
ⓒ 곽교신
3층 전시실에선 전통의 기법으로 만들어진 각종 대장간 기물을 전시하고 있다. 그러나 대장간에서 생산된 기물의 전시라기보다는 오브제 작품을 보는 듯하다.

이 전시회는 분명 곡괭이, 집게, 부삽, 작살 등 대장간 생산물을 분류 전시하고 있는 특별전이다. 그러나 마치 대장간 생산물품을 회토를 바른 캔버스에 붙인 오브제가 전시된 미술전에 온 듯한 착각을 준다. 그만큼 세련된 전시를 하고 있다.

5일 오후 전시장을 둘러본 초청관람객들은 탁월한 전시기법이 이 전시회의 격을 한층 높였다고 평했다.

어떤 초청 인사는 "와, 이 전시는 최고입니다, 굿입니다 굿!"하며 감탄을 연발했고, 한 여성관람객은 "대장간전이 아니라 회화전이네"하며 흥미로워했다.

공구가 흩어져 어지러운 대장간 이미지를 상상하며 전시장을 찾을 관람객들의 예상은 2층 전시장에서 일부 깨질 것이다. 그리고 3층 전시장에선 회화 차원으로 승격된 전시물을 보며 대장간의 이미지마저 바꾸고 갈지 모르겠다.

그러나 역시 대장간은 대장간이어야 한다. 대장간이 다시 망치소리와 땀 냄새로 범벅이 될 때 대장간도 살고 전통도 산다. 장석을 만들어봐야 소비할 곳이 없는 현실에서 두석장이 갈 길은 막막하다. 김극천 장인의 제자 한 사람은 기술을 접고 엉뚱한 일로 생계를 꾸린단다.

그런 생각을 하면 흙을 털고 녹을 제거해 깔끔하고 세련되게 한 폭의 회화처럼 전시된 대장간 생산물이 마냥 기쁘지는 않다. 박물관에 전시된 호미보다는 흙에서 뒹구는 호미가 더 예쁘기에 그렇다.

▲ 부손. 속칭 부삽으로 화로에 꽂아두고 불관리에 쓰던 기구. 화로가 겨울철 필수 난방기구이던 시절에 부손은 대장간 주요 인기생산품의 하나였다.
ⓒ 곽교신
이번 전시를 보며 일상의 중요한 부분이었던 대장간의 쇠락을 확연히 느낀다. 더 이상 실용 공간은 아니겠으나 문화 공간으로서의 대장간을 살려보는 노력은 이 시대 문화대중 모두의 책임이기도 할 것이다.

대장간의 예를 빌어 우리 문화가 하나씩 사라져가는 것을 안타까워하는 것이 이번 전시의 중요한 의미일 것이라는 한 인사의 말이 여운을 남긴다.

무형문화재 정책, 이대로 좋은가?

▲ 김 장인과 그의 막내아들
김 장인은 중요무형문화재 기능전수 보조금으로 나라에서 한 달에 100만원씩 받는 외에는 딱히 수입이 없다. 그 돈은 기능을 전수할 용도로 쓰라고 주는 돈이지만 생활비로 쓴다. 호구지책이 안 되는데 도리가 없는 것이다.

부인이 누비바느질 일로 생계를 돕지 않으면 두석장 일도 접을 지경이라고 했다. 솜씨가 좋았던 그의 제자 하나가 일을 접고 다른 일로 생계를 꾸리는 것을 나무라지 못하는 처지다.

배우려는 사람이 없어 막내아들을 설득해 장석일을 가르치긴 하지만, 장래가 불투명한 일을 아들에게 가르치는 것이 마냥 미안하다는 그. 멀리 통영에서 전시장까지 아들을 동반한 것도 아들에게 장인의 긍지를 심어주려는 아버지이자 스승의 깊은 포석인 듯싶다.

인터뷰 중에도 연신 "봐라, 다들 얼마나 좋아하시고 작품을 귀하게들 여기시냐"며 아들을 전통 지킴이로 만들려는 공작(?)에 바쁘다.

중요무형문화재 공예분야 중에 일부 종목은 작품을 팔아 쏠쏠히 돈을 벌기도 하지만, 돈이 되질 않는 분야는 자식이 기술을 받지 않으면 대가 끊길 위기에 처해있다.

80년대에는 지원금 80만원이면 아쉬운 대로 딴 마음 먹지 않고 일에 몰두할 수 있었으나, 현재의 지원금 100만원으론 생활도 힘들다는 것이 중론이다. 배우자의 잔수입에 의지하여 기능의 맥을 유지하는 것은 상식이 되어버렸다. 나라에서는 지원금 100만원은 생활비가 아닌 전수교육에 써야한다고 하지만, 그건 속 모르는 이들의 배부른 소리다.

이런 문제를 종합 토론하는 중요무형문화재 제도개선 토론회들은 제자리를 맴돌며 같은 토론만 반복하는 실정이다.

막차로 통영에 내려가야 한다면서 총총 자리를 뜨는 김극천 장인이 아들 앞에서 스승으로서 당당할 때가 언제일까. 그 때가 바로 우리 문화가 당당해지는 때가 될 것이다. / 곽교신

덧붙이는 글 | 부지런을 떨면 전시를 무료로 볼 수 있습니다. 
오는 20일까지는 무료관람. 그 후로 폐막일까지는 관람료 5000원. 
전시문의  02)766-64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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