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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7일 '교원소청심사위원회'에 탄원서를 제출하기 위해 동일학원 해직교사, 학부모, 졸업생이 함께 모여 학교에서 소청위까지 70리를 걸었다.
ⓒ 나영준
"하늘도 우리를 도와주는 것 같네요."

8월 17일 오전 10시, 서울 시흥동에 위치한 동일여고 앞에 모여든 이들은 이마에 손을 대고 신기한 듯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폭염이 내려 꽂히는 날씨를 염려했지만 바람은 선선하기만 했던 것.

동일학원의 급식을 비롯한 총체적 비리를 고발한 조연희, 음영소, 박승진 등 3인의 교사는 2월 28일자로 직위해제, 6월 28일 파면을 차례로 통고 받았다. 그간 재학생과 졸업생, 여러 학부모들이 그들의 복직을 간절히 애원했지만 재단 측은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이날 이들은 '교원소청심사위원회(이하 소청위)'에 탄원서를 제출하기 위해 학교에서 소청위까지 70리 거리를 걷기로 결심했다. 말복이 지났다고는 하지만 아직 더위가 채 가시지 않은 날씨, 힘겨운 길을 선택한 이들을 위해 지역주민과 학생 등 100여명이 자리를 함께 했다.

동일재단은 비리 백화점

▲ 졸업생대책위원회의 대표 임순옥씨.
ⓒ 나영준
"16억여 원의 재정상 조치, 61건의 행정상 조치, 74건의 신분상 조치. 그야말로 비리 백화점이 아니고 무엇입니까? 실체도 없는 동창회를 위해 돈을 걷고, 급식비에는 감가상각비라는 해괴한 명목을 포함 시켰습니다."

졸업생대책위원회의 대표 임순옥(33·직장인)씨는 기자회견문 낭독을 통해 "동일학원은 교사들이 최소한의 양심을 지킬 수가 없는 곳"이라며 "선생님들에게 아주 작은 힘이 되었으면 싶어 직장에 휴가를 내고 참석하게 됐다"는 말을 남겼다.

실제 그간 해직교사들이 정리한 자료와 증언에 따르면 동일학원의 비리는 상상을 초월한다. 1970년대엔 교사들에게 가정방문을 통해 촌지를 받게 하고, 1980년대엔 유령동창회로 걷어 들인 돈으로 재단의 콘도를 구입하기도 했다.

또한 급식이 실시된 이후 가정형편이 어려워 급식지원을 받는 학생에게 수업시간을 빼면서까지 식당일을 시켰고, 반찬을 남긴 학생의 뺨을 학교장이 때리기도 했다고 한다.

함께 하는 길, 오히려 행복해

현장에는 나이 지긋한 동네 아주머니부터 엄마의 손을 잡고 나온 아이들까지 함께 했다. 7시간여의 만만치 않은 과정이지만 누구 하나 걱정하는 이들은 없었다. 오히려 아이들은 카메라를 들이댈 때마다 활짝 웃어 보이는 여유를 보이기도.

10시를 조금 넘겨 현장에 모인 이들은 출발을 했다. 선두에는 "선생님 찾아 칠십리"라는 깃발이 바람에 물결쳤고 뒤로는 탄원서를 등에 맨 이들이 함께 했다. 탄원서에는 학생 1099명, 졸업생 585명, 학부모 284명, 교사 105명, 지역주민 1808명 등 총 10831명이 서명을 했다.

학부모 조옥금(48)씨는 현재 자신의 딸이 동일여고에 다니고 있어 학부형의 한 사람으로서 참가하게 됐다며 "그간 언론을 통해 조금은 알고 있었지만 속을 들여다보니 놀라움을 금할 수 없어 참여하게 됐다"고 전해왔다.

"아이들이 밝고 바르게 자라야 할 학원에서 이런 비리가 일어난다는 것은 말이 안 됩니다. 우리나라의 장래가 달려 있는 일입니다. 많은 분들이 자신의 아이가 다니고 있기에 주저하는 것을 알지만 그래서는 잘못이 바로 잡힐 수 없습니다. 학부모 뿐 아니라 다른 분들의 관심이 있었으면 합니다. 오늘 조금 긴 여정이지만 걷는 것만큼은 자신 있습니다(웃음)."

▲ 음영소 교사
ⓒ 나영준
묵묵히 일행의 뒤를 따르던 음영소(48) 교사는 힘들지 않냐는 질문에 함께 하는 이들이 있어 오히려 행복하다며 웃음을 보였다.

"절망을 하던 때도 있었지만 함께 하기에 희망을 봅니다. 길거리 수업을 할 때도 그렇고 촛불 문화제를 할 때도 그렇고 오던 비마저도 그치더군요. 아마 하늘도 우리를 돕나 봅니다(웃음). 좋은 마음들이 합쳐져서 올곧은 방향으로 흘러가리라고 믿습니다."

음영소 교사는 마지막으로 "길고 지루한 싸움이지만 주위 분들 덕분에 매일 매일을 새롭게 시작한다는 마음을 가지게 된다"며 "지켜 봐 주시는 모든 분들에게 감사를 드린다"는 말을 남겼다.

잠시 숨을 고르던 이들이 다시 일어났고 하늘은 이날만큼은 모진 빗방울이나 거친 햇살을 비추지 않고 있었다. 신발끈을 조여 맨 이들이 다시 땅을 구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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