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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강의 <괴물>이 뜨겁다. 연일 한국영화와 관련된 기록을 경신 중이다.

영화는 미군이 한강에 불법으로 버린 독극물(포름알데히드)로 인해 한강에 정체를 알 수 없는 괴물이 나타나 백주대낮에 한강 고수부지를 아수라장으로 만들어 버리고, 그 괴물에 의해 납치된 소녀를 구하기 위한 가족의 처절한 사투를 그리고 있다.

사람들은 이 영화를 두고 한국형 블록버스터 재난영화, 숭고한 가족애를 다룬 가족영화, 환경오염의 난폭한 가능성을 언급한 환경영화라고 한다. 또한 미국에 종속되어 있는 현실을 보여주는 사회성짙은 영화라고 한다.

어떤 영화에 해당하는지간에 이 영화, 재밌다. 그리고 환경운동을 하고있는 한 사람으로서 많은 생각을 하게 한다. 그 중 괴물의 은신처로 그려진, 잊혀진 하천에 대해 언급하고자 한다.

괴물이 살던 하수도는 하수도가 아니다

▲ 영화 ‘괴물’에서 괴물의 은신처로 설정된 원효대교 북단, 영화에서는 하수도로 표현되고 있지만 이곳은 예전 넝쿨풀이 많아 ‘넝쿨내’라는 어여뿐 이름으로 불렸으며 지금도 하천법상 서울시의 35개 하천 중 한 곳으로 등록되어 있는 만초천(蔓草川)이다.
ⓒ 이철재
괴물의 식량저장고이자 소화되지 않는 유골을 뱉어내는 장소, 그리고 덩치에 맞지 않게 편안하게 휴식을 취하는 곳은 여러 개의 기둥이 빼곡히 박혀 있는 원효대교 북단의 하수도로 설정되어 있다.

하지만 이 곳은 단순한 하수도가 아닌 하천이다. 넝쿨풀이 많아 우리말로 '넝쿨내'라는 이름으로 불렸으며 한자로 '만초천(蔓草川)'이라는 하천이다. 지금도 하천법상 서울의 35개 하천 중 하나로 자리잡고 있다.

예전에 만초천은 수없이 많은 게들로 유명했다고 한다. 일제 강점기에는 '욱천(旭川)'이라고 했는데, 한밤에 불빛을 보고 따라 나오는 게를 잡기 위한 횃불이 많아 냇물이 빛이 났다고 하여 그렇게 불렀다는 했다는 자료도 찾을 수 있다.

하지만 지금 넝쿨내에서 그 많았던 게들은 찾아볼 수 없다. 빛이 나던 하천은 한줌의 햇볕조차 제대로 볼 수 없다.

일제시대 용산 일대에 살았던 일본인들에 의해 조금씩 본래 모습을 잃어가던 만초천은 60년대 이후 생활하수의 증가에 따른 악취, 청파로 일대의 교통량 증가에 따른 도로 확장의 필요성이 대두돼 1967년부터 복개되었다. 복개된 후 농산물 시장으로 이용되다가 현재는 휘황찬란한 전자상가가 그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서대문구 무악재 부근에서 발원한 만초천의 물줄기는 서대문 네거리를 거쳐 서울역 뒷편을 따라 흐르다 용산 전자상가 단지를 관통하여 원효대교 아래에 이르러 한강과 만나게 된다. 발원지부터 한강까지 약 7.7km에 이른다.

이 중 남영역과 용산역 사이 철도길 아래 약 100m 정도만이 눈부신 햇살을 만날 뿐, 모든 것은 어둠 속에 묻혀 있다.

괴물의 흔적을 따라 어둠 속 여행

지난 8월 3일 햇살이 뜨거운 오후, 만초천을 찾았다. 한강과 만나는 지점의 만초천은 육중한 원효대교에 짓눌려 보이지 않았다. 여느 하천처럼 이곳이 지방 2급 하천임을 알려주는 흔한 간판조차 찾을 수 없다.

만초천은 이렇게 사람들 기억 속에서 잊혀져 간다. 그리고 잊혀진 하천은 슬프다.

발목까지 빠지는 입구의 뻘층을 통과해 하수 냄새 물씬 풍기는 안으로 향했다. 들어서자마자 무수히 많은 기둥이 보인다.

"아~, 이 곳, 영화에서 봤다." 괴물이 만초천, 자신의 은신처로 들어갈 때 본 모습 그대로다. 영화 속 괴물과 주인공들이 다녔을 법한 하수도를 따라 어둠 속 여행을 계속했다.

간간히 철판으로 된 도로 시설에서 굉음이 나온다. 마치 괴물이 울부짖는 것처럼 어두운 공간을 가득 채운다.

20여분 왔을까. 반대편 쪽에서 요란한 물소리가 들린다. 조금 더 가보니 바로 앞에서 폭포 소리가 들린다. 확인해 보니 3m 위쪽에서 하수가 떨어지고 있었다. '하수 폭포'다. 이렇게 잘못 연결된 하수 시설은 하수도로 이용되는 복개하천에서 어렵지 않게 확인할 수 있다.

▲ 일명 '하수 폭포'. 약 3m 높이에서 하수가 쏟아진다. 그러나 떨어지는 곳은 하수도가 아니다. 이렇게 흐른 하수는 고여 썩거나 우기시 한강으로 유입된다.
ⓒ 이철재
만초천 양쪽은 박스형 하수도가 놓여 있다. 일부 지역은 뚜껑이 없다. 비가 많이 오면 넘치게 해 하수 역류를 막고자 하는 것이다. 넘친 하수 탓에 중간 중간 물이 고여 썩고 있었다. 그리고 그 사이로 제각각 크기의 돌들이 보인다. 아마도 예전에는 그 돌 틈으로 수많은 게들이 살았을 것이다.

썩고 있는 물, 예전엔 수많은 게들이 살았겠지

한 시간 정도 걸려서 밝은 햇볕이 있는 곳에 도착했다. 주위를 둘러보니 아파트 단지가 보이고 얼기설기 엉킨 전선들이 보인다. 뒤를 이어 요란한 굉음과 함께 전철이 다닌다. 지도를 확인해 보니 용산역과 남영역 중간 쯤에 해당했다.

이 곳부터는 물이 제법 맑고 많다. 전철선로 아래쪽은 준비한 장화 높이와 비슷할 정도로 물이 있었다. 조심스럽게 앞으로 나아갔다. 콘크리트 바닥은 여전했지만 물은 더욱 맑다.

전철선로를 지나 50m 쯤부터 다시 육중한 기둥들이 즐비한 복개 구조물이 나왔다. 앞서의 어둠보다 더욱 짙다. 우수구조차 없는 것으로 도로가 아닌 일반 건축물로 채워져 있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다시 10분 가량 전진하자 이번에는 하천 폭이 눈에 띄게 좁아졌다. 뿐만 아니라 물의 양도 장화 높이를 넘어 무릎까지 왔다. 물이 차다. 너무 차가워 더 이상 전진이 어려울 정도였다. 하수가 섞여 있겠지만 발원지 부근의 안산과 인왕산에서부터 내려온 물일 것이다. 장마가 지난 후라 잔뜩 물을 머금은 산은 연실 시린 물을 내리는 것이다.

잊혀진 하천은 슬프다

▲ 남영역과 용산역 사이 전철선로. 만초천에서 유일하게 복개되지 않은 곳이다. 비교적 물이 맑고 양이 풍부하다.
ⓒ 이철재
길고 습하고 어두운 복개 하천엔 꼭 무엇인가 무서운 놈들이 있을 것만 같다. 청계천 고가와 복개 구조를 뜯기 전인 2003년 봄의 일이 생각난다. 청계천 상하류의 복개 상태 및 현장 조사를 위해 혼자서, 또는 여럿이서 청계천 밑을 여러 번 다녔다.

어느 날인가 청계 5가 부근을 지날 때였다. 흔히 보던 통통한 쥐들과는 다른, 길쭉한 괴생물체(?)가 움직이는 것이 보였다. 불안한 마음을 정리하고 다가가 손전등을 비쳐보니 길이 30㎝ 정도의 악어였다. 놈은 죽기 직전이었다.

"이런 세상에. 복개 하천 밑에서 악어라니…." 전혀 상상할 수 없었던 일이었다. 악어는 그 곳에서 사는 것이 아닌 버려진 놈이었을 것이다.

공사가 끝난 청계천에서는 지금도 전혀 어울리지 않는 생물이 종종 발견된다. 비단잉어를 비롯해 열대어 등 사람들이 풀어준 어울리지 않는 생명체이다. 청계천에서의 악어에 대한 기억은 복개된 만초천에 괴물이 살고 있다는 봉준호 감독의 설정을 공감하게 만든다.

복개된 만초천이 청계천처럼 지금 당장 인생역전을 일으킬 일은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잊혀지고 있기 때문이다. 사람들 사이에서 잊혀진다는 것은 단지 하수도로만 남는다는 것을 말한다. 또한 서울시에서 추진하는 복개하천 복원 우선 대상에서도 만초천의 이름은 찾을 수 없다.

그러나 한 가지 조그만 꿈을 꾸고 싶다. 전체 구간은 힘들지만 현재 하늘을 보고 있는 남영역, 용산역 사이의 전철선로 부근부터 일부 구간만이라도 하천으로 되돌리는 꿈을 말이다.

그리고 아파서 신음소리 내는 '욱천'이 아닌 밝은 빛을 내는 하천을 사람들이 기억하고 넝쿨이 아름다웠던 '넝쿨내'가 사람들 입에서 불러지길 소망한다.

▲ 전철선로를 지나 다시 복개 구조. 바닥은 여전히 콘크리트로 되어있는 이곳은 만초천의 중류에 해당한다. 좀더 안으로 들어가면 한 줌 빛도 없다. 우수구 조차 없는 것으로 도로가 아닌 일반 건물로 채워졌을 것이다. 그러나 물은 맑고 차다. 이 물을 이용해 만초천의 100m만이라도 예전으로 돌리는 방법을 고민해야 한다.
ⓒ 이철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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