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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차선이 없는 아프가니스탄 자전거 도로. 자동차 자전거 보행자가 자연스럽게 뒤섞여 다닌다.
ⓒ 자출사 이원영
"얼마 전 아프가니스탄 수도 카불에 다녀왔습니다. 아무래도 그곳 자전거 문화에 관심이 가더군요. 가만히 눈여겨보니 그곳 차도엔 선이 없었습니다. 심지어 중앙선도 없었죠. 그런 도로에 자동차, 자전거, 보행자가 자연스럽게 섞여서 달리고 있더군요. 비록 후진국이지만 자전거에 있어서만은 우리가 카불을 배워야 하지 않나 생각했습니다."

흔히 자전거 문화를 이야기할 때 참고하는 사례는 서유럽이나 일본. 그런데 지난 27일 환경재단 레이첼카슨룸에서 열린 포럼 '자전거 타는 서울을 위한 모색'에서는 아프가니스탄 사례가 나왔다. 아프가니스탄은 오랜 내전을 겪고 있는 나라로 1인당 국민총생산(GNP)이 세계에서 가장 낮은 편에 속한다.

커뮤니티 '자전거로 출퇴근하는 사람들'(자출사) 운영자 이원영씨가 발제한 아프가니스탄 사례는 단연 사람들의 관심을 끌었다.

그는 "자전거 도로는 이 정도면 됐다"면서 "자전거가 교통수단이라는 생각을 갖고 자동차와 평등개념으로 접근해야 할 시점"이라고 강조했다. 도로 건설 위주로 접근하는 정부 정책을 우회적으로 비판한 것.

▲ 지난 27일 환경재단 레이첼카슨룸에서 서울환경비전포럼 '자전거타는 서울을 위한 모색'이 열렸다.
ⓒ 김대홍
이어서 이씨는 '도로교통법'과 '자전거 이용 활성화에 관한 법률'(자활법)을 언급하며 자전거에 대한 잘못된 인식을 꼬집었다. 그는 "기계 동력에 의해 움직이는 차와 인력으로 움직이는 자전거를 동일군으로 분류하는 게 과연 옳은가"라고 의문을 제기한 뒤, 일본처럼 제3의 분류군을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자전거를 '차마' 또는 '차' 군에 포함시키면 도로에서 보호받지 못하고, 자전거를 '보행자' 군에 포함시키면 교통수단으로서 기능이 퇴색된다고 설명했다. 즉 자전거를 별도로 분류한 뒤 그에 따른 정책과 법이 필요하다는 내용이다.

또한 '자동차의 통행에 방해가 되거나 보행자에게 위해를 주는 일이 없도록 노력하여야 한다'는 자활법 제15조를 들며 "이게 과연 자전거 활성화 법률이 맞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자동차에 치이고 보행자에 치이는 자전거의 애매한 위치를 자활법이 고스란히 반영하고 있다는 게 그의 주장이다.

또한 "시설도 없는데, 자전거 타고 건널 때는 '자전거횡단도'를 이용하라는 법률이 있다"면서 관련 법의 잘못된 내용들을 조목조목 꼬집었다.

주제발표를 맡은 최진석 한국환경정책평가연구원 책임연구원은 "유럽에선 승용차 이용을 억제하여 대중교통과 자전거 및 도보의 비중을 높인다"고 말문을 열었다. 자동차 활성화 정책에 대한 비판적 접근 없이는 자전거 활성이 어렵다는 뜻을 드러낸 것.

▲ 이날 포럼에선 자전거 선진 도시로 불리는 송파구의 자전거 정책이 소개됐다.
ⓒ 김대홍
그는 도심 역사유적지 주변에 대한 자동차 접근 제한(이탈리아 페라라), 교차로 자전거 통행 우선권 부여(독일 에어랑겐), 양방향 도로를 일반통행으로 전환(덴마크 코펜하겐) 등 유럽의 각종 정책을 소개했다.

이어 신문, TV 등을 통한 자전거 홍보와 자전거 주간 행사 개최(스위스 제네바), 자전거 전문가 그룹 운영(프랑스 렌느) 등 이용촉진 사례를 언급하면서 정부가 좀더 적극적으로 나설 것을 주문했다.

백남철 한국건설기술연구원 도로연구부 선임연구원은 "서울에서 자전거교통정책이 실효성이 없다는 문제 제기가 타당하다"면서 반대 측 시각으로 이야기를 시작했다. 그에 따르면 ▲서울에선 자전거 대신 마을버스가 발달해 있다 ▲서울의 지형과 기상조건 등에서 자전거가 불리하다 ▲안전하지 않다 등의 이유가 있는 것으로 요약된다.

그러나 백 연구원은 "현재 시스템은 지속불가능하다"면서 장기적인 관점에서 자전거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MIT(미 메사추세츠 공학대학교)의 연구결과를 인용하면서 "자전거 20%, 대중교통 포함 60% 정도가 도시 교통을 책임질 때 지속가능성이 있다"고 수치를 제시했다. 이어 "마을버스의 장점을 인정하지만, 사람들마다 동선, 필요성이 다 다르기 때문에 자전거가 더 효율적"이라고 덧붙였다.

송상석 녹색교통 자동차환경팀장은 "서울시 나 홀로 승용차가 80% 이상"이라며 "도로를 넓혀서 자동차 속도를 높이겠다는 발상은 이미 한계에 이르렀다"고 도로 건설 위주의 교통 정책을 비판했다.

▲ 주제발표와 토론이 끝난 뒤 방청석 의견을 듣는 시간이 마련됐다.
ⓒ 김대홍
그 외 "세계를 여행하는 선진국 친구들은 대한민국처럼 차도가 잘 정비되고 시원스럽게 닦인 나라는 없다고 극찬한다. 그러나 보행자도로에서 보행자와 섞여 질주하는 자전거들을 마주하곤 너무나 곤혹스런 표정을 짓는다"(한만정 녹색자전거봉사단 단장), "자전거 도난 방지를 위해 유료 주차장을 만들겠다. 자전거 이용자에게 인센티브를 제공하겠다"(송파구청 교통행정과 권오철 과장) 등의 이야기가 나왔다.

방청석에선 '지하철 역사 내 남는 공간에 자전거 보관대를 만들자' '건강을 높이기 위해 노력하는 자전거 이용자들을 위해 보건복지부가 인센티브를 줘야 한다' 등의 제안이 나왔다.

한편 이날 행사는 최진석 연구원, 한만정 단장이 주제발표를 했고, 권오철 과장, 백남철 연구원, 송상석 팀장, 이원영 운영자가 토론자로 참석했다. 주최는 에너지시민연대, 주관은 서울환경연합이 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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