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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2001년 7월 한국 법무부의 강제출국 방침이 발표되자 사직공원에 모여 항의시위에 나선 조선족들.
ⓒ 노순택
얼마 전 늘 즐겨보는 한 인터넷 매체를 보면서 참으로 흥미로운 사실을 발견했다.

이 매체에 중국과 관련된 부정적인 뉘앙스의 기사, 혹은 중국을 비하하는 리플이 올라오면 어디선가 '친중성향'의 누리꾼들이 득달같이 몰려들어 처절한 댓글 전쟁을 벌인다.

"한국은 뭐 안 그러냐?", "너무 중국을 비하하지 마라"는 식이다. 비분강개한 이 몇몇 누리꾼들은 밤샘을 아랑곳하지 않으며 지칠 줄 모르는 전투력을 자랑한다.

어떤 때는 해킹으로 사이트를 아예 다운 시키는 사건도 일으킨다. 이들의 리플을 음미해보면 "우리가 인터넷에서조차 너희 한국인들에게 무시당할 수는 없다"는 결연한 비장미까지 서려있다.

여기까지 읽다 보면 짐작하신 분들도 있겠지만 이 누리꾼들의 정체는 중국이나 국내에서 접속한 조선족 동포들이다. 이들은 조금 밀린다 싶으면 다른 조선족 관련 사이트에 해당 기사의 링크를 걸고 리플 투쟁을 독려하며 서로 간의 끈끈한 전우애를 과시한다.

긴 세월 한 흙을 파면서 부대껴 살아온 같은 민족이라는 동질성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욕설과 인신공격, 나아가 상대방의 역사를 부정하는 등 '이방인'들과의 총체적인 이전투구가 벌어진다. 그들의 골이 깊은 반한(?) 감정은 대체 어디서 비롯된 것일까.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처럼 정답을 찾고 결론을 내리기가 쉽지 않다.

그들의 반한 감정 어디서 비롯됐나

필자가 몸 담고 있는 회사의 북경지사에는 조선족 동포 직원들이 여럿 일하고 있다. 작년쯤인가, 중국 출장 중 북경 직원들과의 회식에서 술잔을 기울이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는데 새로 입사한 여직원이 시종 유창한 경상도 사투리를 구사하는 것이다. 조선족은 그저 북한말 비슷한 연변 사투리만 쓰는 줄 알고 있던 필자에게는 상당히 놀라운 일이었다.

그녀는 중국 동북 흑룡강성의 어느 작은 마을 출신으로 자신이 사는 마을 전체가 일제 치하 당시 생활고 때문에 동북3성으로 이주한 경상도 출신 농민들로 이뤄졌다고 설명했다.

아마 그녀 역시 집안 대대로 그 유창한(?) 경상도 사투리를 전수받았으리라. 머나먼 중국 동북에서 마을 전체가 대대로 경상도 사투리를 쓰는 곳도 존재한다는 사실, 그 역사의 증인을 눈앞에서 보게 되는 신기하고 짜릿한 그 순간을 '피는 물보다 진하다'는 추상의 민족개념만으로는 도저히 설명할 수 없다.

만주지역에 거주하던, 수만 명에 불과하던 조선족 동포들이 급증한 것은 일제강점기 때다. 항일투쟁을 위해, 혹은 찢어지게 가난하여 먹고 살기 힘들어서 정처없이 매서운 칼바람을 맞으며 눈보라 몰아치는 만주로, 동북으로 떠났던 사람들. 그리고 이제는 그 가난을 피해 다시 온갖 수모를 마다하지 않고 다시 한국으로 돌아오고자 하는 사람들. '수구초심(首丘初心)'이라던가. 그들의 조부모, 증조부모들은 꿈에서라도 갈 수 없었던 고향을 그리워하며 일생을 눈물로 보냈다.

가끔 한국에서 차별받는 조선족 동포들을 보노라면 나도 모르게 TV 드라마에까지 그 영향을 미쳤던 군사정권 시절의 호남차별을 떠올리게 된다. 군사정권의 출신지역 정서를 악용한 배타적 차별화 정책은 같은 국민임에도 일부 호남인들은 스스로의 출신을 숨기고 살았을 정도로 민중의 삶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고 그 영향은 그 후로도 면면히 이어졌다.

공업화의 급속한 진행과 농촌의 해체로 대도시로 일자리를 찾아 무작정 올라온 가난했던 사람들. 주로 깡패나 사기꾼, 도둑으로 TV에 묘사돼 부정적인 영상이 각인되어 그냥 싫었던 사람들 말이다.

촌스럽고 우스꽝스럽게 묘사되는 그들

한국으로 일자리를 찾아 먹고 살기 위해 건너온 조선족 동포들. 지금 한국 TV에 촌스럽고 가난하며, 우스꽝스럽게만 묘사되는 그들을 은연중 차별하고 무시하는 일부 한국인들을 보면서 그 시절 호남인들을 대하던 동일한 폭력의 논리를 느끼는 것은 필자만의 생각일까.

국내에는 20여만 명의 조선족 동포가 있다. 시화나 안산 등 공단의 제조현장에서, 시내의 음식점에서, 유흥가에서 그리고 이제는 인터넷에서조차 우리는 조선족 동포들의 존재를 쉽게 보고 접할 수 있다.

그들과 밀접한 관련을 맺고 살아가는 사람들이나 결혼 등으로 인해 형성된 가족들까지 고려하면 그 숫자는 이미 웬만한 대도시 인구보다 더 많으며, 아련한 민족을 넘어 이제는 한국사회 구성원의 일부분이 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민족중흥의 역사적 사명을 띠고 태어났던" 우리는 왜 같은 민족인 조선족 동포들을 멸시하고 차별하여야 하는지? 그렇다면 유태인을 본받자며 그렇게 목 놓아 부르짖던 그 민족주의는 누구를 그리고 무엇을 위한 민족주의였던가. 이제 대립과 반목, 멸시와 차별을 넘어 조선족 동포들과의 소통을 좀 더 진지하게 고민할 때다.

그들이 국적을 선택할 권리 없이 중국인이 되었다는 것에 대해 생각해본 적이 있었던가? 혹자는 말한다. 그들은 같은 민족일지언정 뼛속까지 철저한 중국인들이라고. 맞다. 많은 조선족 동포들이 한국을 경원시하고 중국을 그들의 조국으로 여기며 불타는 애국심을 갖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어린 시절 미국으로 이민 가 영주권을 얻고 뉴욕에서 살던 필자의 한 후배는 우리가 4강까지 진출했던 그 감격의 월드컵을 보고 조금도 감흥을 느끼지 않았다. 어릴 때 미국으로 건너가 사는 한국 국적의 후배도 불과 십수 년 만에 미국이라는 사회에 동화되어 이와 같을진대 하물며 중국에서 태어나 중국 산천에서 크고 자라며, 수교 이전에는 한국을 접할 길조차 없었고, 중국의 역사와 중국식 사회주의 교육을 받고 살아온 그들이 중국을 그들의 조국으로 여기는 것은 너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우리가 조금 더 관대해질 수는 없는 것일까? 그리고 또 아직도 한국으로의 귀화를 희망하는 많은 사람들이 있다. 일제시대 독립운동을 하다가, 혹은 기근을 피해서 건너간 이들이나 후손들을 위해 2차 대전 후 '귀환자를 위한 법'을 만들어 자국민을 보호한 독일의 선례를 고려해 볼 필요가 있다.

중국의 눈치를 보기보다는 이들을 따뜻하게 포용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와 마음의 자세가 필요할 때가 아닌가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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