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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3년 만에 새 장편소설 <인간 연습> 낸 작가 조정래.
ⓒ 오마이뉴스 남소연
작가 조정래(63)씨를 인터뷰한다고 하자 <오마이뉴스> 동영상팀에서도 따라나섰다. 이유는 '당연히' 동행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당연히'가 이유로 당연할 수밖에 없었던 의미는 2004년 11월에 조씨가 <오마이뉴스>와 가졌던 '원로 인터뷰'의 상자기사에 들어있었다.

"사회주의는 왜 몰락했는가에 대해 그 원인을 사회과학 쪽에서 명쾌하게 규명한 바 없잖아요. 그것을 소설적 접근을 통해 풀어보려고 합니다. 재미있을지는 모르겠어요.(웃음) 국가보안법처럼 그렇겠지. 관심있는 사람은 보고, 관심 없는 사람은 말고. 한 권짜리 장편이니까 내년쯤에는 나오겠지요."

사회주의는 왜 몰락했는지에 대해 한 권짜리 장편소설로 풀어보겠다고 예고했던 바로 그 작품 <인간 연습>(실천문학사 펴냄)의 출간을 빌미(?)로 하는 인터뷰라면 그 '당연함'은 충분히 해명됐으리라.

지난해 6월 30일, '원로 인터뷰' 때 만났던 서울 예술의전당 건너편에 자리 잡은 바로 그 전통찻집에서 그는 방 대신 창가 원탁에 앉았다. 그는 <인간 연습>과 관련한 동영상 촬영은 공중파를 포함해 <오마이뉴스>가 처음이라고 귀띔했다.

전향했지만 전향하지 않은 두 장기수

조정래씨가 소설로는 <한강> 이후 4년 만에, 대하소설이 아닌 장편소설로는 <불놀이>(1983년) 이후 23년 만에 내놓은 <인간 연습>은 이념적 쌍생아라 할 수 있는 전향(?)한 두 장기수의 이야기를 통해 사회주의의 몰락, 이념형 인간의 종말과 거듭나기, 그리고 새로운 인간관계의 가능성까지를 따져 묻고 모색한다.

장기수 박동건과 윤혁은 '사상의 조국'인 소련이 "미국과 전쟁한 것도 아니고, 저절로 폭삭 주저앉아"버리고, "태산같이 믿었던 (주체조국) 북한마저 인민들이 굶주리는 지경에 이르게 된 것"을 알고 "헛살았다"는 자괴감에 빠진다.

한 잡지사 기자를 통해 북한의 실상을 확인한 박동건은 상실감에 이승에서의 삶에 마침표를 찍는다. 남은 윤혁은 그의 죽음을 바로 자기의 죽음으로 받아들이면서 도대체 무엇이 문제였고, 왜 그럴 수밖에 없었는지에 대해 합리적으로 규명해보고자 한다.

윤혁은 구소련 대통령 고르바초프가 페레이스트로이카(개혁)를 들고 나오면서 내세웠던 '인간의 얼굴을 한 사회주의를 하려는 것'에서 그 이유를 찾아낸다. 마르크스주의가 결국 '밥먹는 철학'인데, 그걸 실현시키지 못했으므로 실패는 당연한 귀결이라는 것이다.

"그 말은 곧 그동안 사회주의는 비인간적인 얼굴, 다시 말해서 짐승을 다루는 듯한 야만적인 사회주의 지배를 해왔다는 것을 자백하고 실토한 것 아닌가. 인간을 인간답게 살게 하려고 만들어낸 이데올로기를 가지고 그 반대로 비인간적으로 운용해왔으니 그런 체제가 망하는 것은 너무 당연한 결과일 것이다."- <인간 연습>(99쪽~100쪽)

분단은 이데올로기의 산물

"인간이 인간답게 사는 세상을 구현하기 위해 인간들은 이데올로기를 만들어냈는데, 그게 완전하지 않습니다. 인간이 불확실하고 불완전한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그런 불확실함을 극복하기 위해서 인간이 완전한 모습을 찾는 재발견의 기회를 가져야 합니다."

'문학은 곧 인간 탐구'라고 말하는 조정래씨는 지금이 이데올로기에 대한 총체적 점검이 필요한 시기라고 했다. 특히 우리의 분단 현실이 이데올로기의 산물이라는 점에서 더더욱 이와 같은 인간의 삶과 인간 자신에 대한 통찰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개도 조건 반사를 합니다. 한번 뜨거운 맛을 보면 절대로 뜨거운 데 다시 안 갑니다. 하물며 인간이 이미 시효가 지나 폐기돼버린 사회주의 문제에 천착해서는 어떤 문제도 해결할 수 없다고 봅니다. 자본주의 역시 완벽하느냐 하면, 아니죠. 자본주의도 엄청나게 많은 문제를 만듭니다. 빈익빈부익부, 양극화로 드러나고 있죠. 이 자본주의의 모순을 함께 극복할 수 있는 기회로 인간의 삶과 인간 자신에 대한 통찰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그래서 그는 인간에 대한 순수한 사랑과 신뢰가 회복되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작품에서 새 길을 모색하는 윤혁에게 연결되는 두 개의 상징처럼.

가게에서 물건을 훔치다 들켜 경찰서로 넘겨지기 직전에 우연히 그 광경을 목격한 윤혁이 보호자를 자임하여 만난 어린 남매 경희와 기준은 순수함을 드러내는 기제로, '건전한 보수와 생산적 진보'의 두 날개로 날며 균형잡힌 사회를 만들기 위해 시민단체 결성에 적극 나서는, 감방에서 만났던 운동권 출신 젊은이 강민규는 신뢰를 회복하는 기제로 각각 나타나듯이 말이다.

우리 문제는 우리 스스로 해결해야

ⓒ 오마이뉴스 남소연
작품의 처음을 장식한 '박동건, 그가 끝내 죽었다'에서 박동건은 후배의 아버지가 모델이라고 조정래씨는 밝혔다. 그리고 작품에서 박동건에게 북한의 실상을 얘기해주는 잡지사 기자는 바로 작가 자신이라고 했다.

"후배 부친께서 <태백산맥> 작가의 말이라면 믿을 수 있겠다 싶어 저를 만나자고 해서 만나 더하지도 빼지도 않고 본대로 북한의 실상에 대해 이야기 해줬습니다. 1990년 <아리랑> 때문에 만주를 취재하면서 두만강변에서 북쪽의 상황을 일부러 관찰했었습니다. 당시에 이미 북한은 굶주림에 시달리고 있었습니다. 그걸 얘기 줬는데, 그 분은 그 충격으로 5·6개월 만에 돌아가셨습니다."

그렇지만 조씨는 드물게 이 작품을 해피엔딩으로 끝낸다. 전쟁 때 윤혁과 같은 이름을 가진 인민군 장교가 '자신보다 사병을 먼저 치료하라'고 한 말에 감동한 간호사 출신 보육원장은 우연히 윤혁이 쓴 수기를 읽게되고, 그가 인민군 장교 윤혁이라는 생각에서 그를 찾아온다. 그리고 그 둘은 새로이 '인간의 꽃밭'을 일군다.

"의도가 아니라 필연적으로 우리 민족의 숙원이고 비원인 통일을 이루려면 이런 식으로 인간을 재발견하고 사람의 신뢰를 회복하지 않으면 갈 수 없습니다. 통일을 별로 바라지 않는 우리를 에워싼 4대 강국이 뭐라 해도 결국 귀착점은 우리 스스로 끝없이 믿고 살아가려는 정신으로 뭉쳐야 합니다. 브루스 커밍스가 중요한 말을 했습니다. 6·15 공동선언이 나오니까 드디어 한국 사람들이 분단 상황 속에서 자기들 문제를 스스로 해결했다고 했습니다."

"북한 돕기를 '퍼주기'라고 모독 말라"

미사일 발사 문제에서부터 김대중 전 대통령의 재방북 연기 등 일련의 북한 상황과 관련해서 조정래씨는 북한은 핵을 포기하고, 미국은 하나하나 트집 잡기에서 벗어나 북한의 체제를 보장하는 등의 합의를 6자회담 같은 공인체제에서 일괄타결로 이루어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 이유는 한반도에서 전쟁이 없어야 하는 절대명제에서 그렇고, 또 북한은 이미 한국과 함께 유엔에 동시 가입한 국제 사회의 일원입니다. 미국도 국제 사회 일원입니다. 양쪽 다 보다 넓은 마음으로 인류의 평화를 위해 허심탄회하게 해결하려고 노력해야 합니다."

조정래씨는 남북 간의 활발한 교류에서 보듯 "지금 이미 통일의 절반이 실현된 것 아니냐"고 했다. 핵 문제가 해결 안 된 상황에서도 금강산 관광이나 개성공단이 만들어지는 등의 실천은 전쟁을 안 하겠다는 의미라며 그는 통일을 단시일에 빨리 이뤄야한다는 조급함에서 벗어나 긴 안목으로 접근해야 한다고 했다.

"통일문제 얘기하면서 북한을 도와주는 것에 대해 퍼주기라며 모독적인 말을 하면 안 됩니다. 우리와 아무 관련이 없는 아프리카도 인류라는, 인간이라는 이유로 돕고 있습니다. 하물며 동족을 돕지 않는다는 건 말이 안 됩니다. 우리에게도 도움이 필요한 계층이 있는데 당연히 그들도 돕고 북한도 돕고, 둘 다 도와야죠. 그런 점에서 이 소설이 이런 남남갈등 해소에 도움이 됐으면 합니다."

민족주의는 통일을 위한 매개

ⓒ 오마이뉴스 남소연
최근 민족주의 담론이 탈민족주의까지 치닫는 점에 대해서도 조정래씨는 우려를 나타냈다. 민족주의에는 게르만족이 세계 최고라는 히틀러식 민족주의와 그 반대로 약소국이 갖고 있는 방어적·건설적·개방적·공생적 민족주의가 있다면서 히틀러식 민족주의는 당연히 잘못된 것으로 단호히 배격해야 하지만 살아남으려는 입장에서 약소국이 갖게 되는 방어적 민족주의는 필요하다고 했다.

방어적 민족주의는 오히려 고양시켜야만 인류의 균형이 이루어진다는 의미에서다. 그러면서 조씨는 통일을 위해서도 우리에겐 민족주의가 꼭 필요하다고 역설했다.

"강대국들이 민족주의는 유해무익이라고 말하고, 유학파가 그걸 들여와 한국에 적용시켰는데, 방어적 민족주의는 필요합니다. 특히 민족주의는 우리의 분단을 극복하고 통일의 길로 가는 매개의 역할을 합니다. 그런 문제를 심층적으로 고찰하여야 합니다."

그는 또 지방선거 이후의 시국에 대해서도 한 말씀 했다.

"선조들은 민심이 천심이라고 했습니다. 선거 결과는 천심을 잊어버린 것이죠. 당연합니다. 3년 반 정치한 결과이므로 필연이죠. 그것을 거울삼아 남은 기간 동안 빨리 천심을 얻도록 노력을 하는 것이 국가를 위해서나 자기들 정권을 위해서나 바람직하다고 봅니다."

분단 문학 이제 그만, 인간 존재 문제 천착할 터

20여년간 <태백산맥> <아리랑> <한강>으로 이어진 대하소설을 쓰면서 스스로를 글감옥에 유폐시켜야 했던 점에 비하면, <인간 연습>은 200자 원고지 580장 가량의 길지도 짧지도 않은 분량이지만 조정래씨에게 있어서 새로운 이정표에 해당한다.

조씨는 이 작품을 계기로 '분단문제를 마무리'하고 인류와 인간 존재에 관한 작품을 몇 편 더 선보일 계획이기 때문이다. 2차 대전에서 최초의 포로로 잡힌 4명의 한국인 이야기를 다룬 다음 작품도 이미 초고를 끝내고 추고 중이라고 했다. 아울러 손자·손녀 세대를 위해 50여권짜리 동화도 쓸 계획이라고 했다.

아침 6시 반이면 어김없이 일어나 글 쓰고, 맨손체조하고 산책하면서 하루 10시간 이상 글 노동을 하며 사는 그는 최근 대처승이었던 아버지에 대한 이야기를 털어놓아 관심을 끌었다.

일제 식민지 시절 일본은 종교마저 황국화하기 위해 승려들을 결혼시켜 일본식 대처승으로 만들었는데, 그의 아버지가 신식공부를 시켜준다는 말에 선암사로 출가했던 것. 그의 아버지는 만해와 함께 '만당'을 만들어 독립운동을 하고 시조를 썼고, 또 해방 후 불교혁신운동을 하다 모함을 받게 되어 절에서 쫓겨나서는 교사로 일생을 살았다고 한다.

"그 분은 종교적인 도덕적인 삶을 살았던 분입니다. 자식들에게 반복적으로 가르친 것이 주색잡기 하지 말라는 것이었는데, 그래서 저희 4남4녀가 모두 주색잡기 안하면서 모범적으로 잘 삽니다.(웃음)"

조정래씨는 요즘 문학 작품이 잘 안 읽히는 세태에 대해서도 여러 가지 미디어들의 출현으로 나타는 어쩔 수 없는 상황이지만 "'문학의 위기'라는 말로 너무 엄살을 피우지 말라"는 작가다운 이유를 대며 인터뷰를 끝냈다.

좋은 작품은 시대를 초월해 늘 독자들이 사랑해준다.

인간 연습

조정래 지음, 실천문학사(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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