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 김민수
흔히들 골프장의 잔디를 가리켜 '녹색사막'이라고들 한다. 잔디 외에는 어느 것도 살아갈 수 없기 때문이다.

제주도에 살 때 잔디밭이 있었다. 그래서 아이들이 뛰어 놀 잔디밭을 사막으로 만들 수 없으니, 시시때때로 잔디밭에 앉아서 잡초와 씨름을 하곤 했다.

잔디가 있는 집, 무슨 호화주택을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제주에서 목회를 할 때 사택이 교회와 붙어 있고, 교회마당이 잔디밭이었기에 잔디구장(?)을 가지는 복을 누릴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이 복을 누리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다. 틈나는 대로 잡초들을 뽑아주지 않으면 이내 잡초밭이 되기 때문이다.

이른 봄 푸릇푸릇 잔디가 올라오는 가운데 토끼풀 같은 것이 기를 쓰고 올라온다. 토끼풀이야 큰 문제가 없을 것 같아 두었다. 그런데 나중에 노랑꽃이 핀다. 그제야 일년초 개자리라는 것을 알았는데, 차마 그들을 뽑아내질 못했다.

뽑아내지 못한 이유는 아주 단순했다. 그 동안 뿌리를 내리고 꽃을 피운 정성을 차마 저버릴 수 없었고, 바짝 땅에 붙어 핀 꽃의 모습이 처량해 보이기도 했고, 게다가 이름마저 '개자리'라니 슬퍼 보였기 때문이다.

풀들 중에서도 민초가 있다면 이런 개자리 같은 풀들이 아닐까 싶어 그냥 잔디들과 함께 어우러져 자라도록 둔 것이다.

ⓒ 김민수
그들은 탐욕스럽지 않다. 지속적으로 자신들의 영역을 넓혀가면서 잔디를 죽이면 뽑아 버릴 터인데, 아주 조심스럽게 자신들의 영역을 넓혀간다. 과하지 않게 퍼져나간다는 말이다. 과하게 퍼져나가지 않을 뿐 아니라 잔디밭을 온통 자기 세상으로 바꿔가려고 하지도 않는다. 그냥 잠시 머물다 가는 손님처럼 왔다가 가을이면 사라져버린다.

게다가 푸른색 일색인 잔디밭에 노란 꽃을 피워내니 밋밋하지 않은 푸름을 선물한다. 꽃도 크지 않아 부담이 없고, 가만히 들여다봐야 그 존재를 알 수 있을 만큼 작다. 식물 중에서 '개'자는 인간의 입장에서 식용가치가 떨어지는 것에 붙여준 경우가 많다. 그러므로 작고, 보잘 것 없는 것이라는 의미와도 통한다.

이름, 우리 조상들은 잡귀의 기운을 막기 위한 이름을 지어주기도 했다. 조상들은 아이가 태어나면 이름까지 예쁘면 잡귀가 탄다고 무병장수를 기원하며 '개똥이'라는 이름을 지어주기도 했다. 딸이 많은 집안에선 아들을 기원하며 말순이, 끝순이라는 이름도 지어주었단다. 작명소까지 있을 만큼 우리는 이름에 대해서 각별한 관심을 가지고 있는 민족이다.

이런 상상을 해본다.

예쁘지 않은 이름을 가진 꽃들, 그들은 어쩌면 예쁘지 않은 이름으로 인해 그렇게 질기게 살아남을 수 있었던 것이 아닐까 하는 상상 말이다.

ⓒ 김민수
조금 못 생긴 꽃이 있다.
조금 더 작은 꽃이 있다.
주인공들보다 조금 못 생기고 조금 더 작은 꽃
그래서 천덕꾸러기 취급을 받는 꽃이 있다.

개국화, 개나리, 개난초,
개망초, 개머위, 개상사화,
개쑥부쟁이, 개종용, 개자리....

그러나 그들도 꽃이다.
삼천리 강산 여기저기 피어나는 꽃이다.
고귀한 선비같은 꽃들이 피어나지 못하는 곳
척박한 땅에 뿌리를 내리고 피어나는 꽃이다.

조금 못 생긴 꽃, 조금 작은 꽃, 나를 닮은 꽃

<자작시-조금 더 작은 꽃들>


ⓒ 김민수
꽃의 이름과는 상관없이 드는 생각이 있었다. '자리'라는 것이 그것인데 '개자리'란다. 목이 좋은 자리라야 제대로 될 터인데 목이 별로 안 좋아 '개자리'란다.

누구나 서 있는 자리가 있다. 어떤 자리가 되었든지 간에 지고 가야할 삶의 무게가 있다. 책임이라고 할 수도 있겠다. 분명한 것은 그 곳에서 자릿값을 하고 살아야 한다는 것이리라.

자신이 있음으로 인해 주변의 사람들이 행복해 할 수 있는 사람이면 인생의 묘미를 아는 사람이요, 자신이 있음으로 인해 의미 있는 아픔이 아닌 소모적인 아픔과 상처만 있다면 인생이 뭔지 모르는 사람이다.

개자리가 피어 있든 말든, 관심을 갖고 그들을 바라보는 이들이 없어도 그들은 그 자리에서 자기가 품고 있는 모든 속내를 다 드러낸다.

일년밖에는 살 수 없는 삶, 그러나 또 다른 자기가 이듬해 또 싹을 틔우고 뿌리를 내리고 꽃을 피운다는 것은 기적이다. 새롭게 싹터올 미래를 보지 못해도, 설령 그에 대한 자각이 없다고 할지라도 지금 그 자리에서 꽃을 피움으로 자리 값을 하는 것이다.

ⓒ 김민수
아기자기하게 핀 작은 꽃에 비하면 씨앗을 품고 있는 꼬투리는 무시무시하게 생겼다. 꽃일 때에는 나비와 벌을 유혹하기 위해 그렇게 상냥하더니만, 이제 꽃이 그 역할을 다 마치고 나니 "다가오면 큰일 날 줄 알아!"하는 형상이다.

그들은 안다. 이제 곧 씨앗이 익으면 일년의 삶을 마감하고 흙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것을 안다. '가는 마당에 꽃단장할 것이 무에야, 추운 겨울 이겨내고 새 봄에 꽃 피울 것 품고 있는 것이 더 중요한 일이지'하는 듯하다.

이름 때문에, 이방인의 땅 같은 잔디밭에 바짝 엎드려 피어난 개자리, 그가 "자릿값은 하고 살아야 하지 않겠니?"한다.

태그: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자연을 소재로 사진담고 글쓰는 일을 좋아한다. 최근작 <들꽃, 나도 너처럼 피어나고 싶다>가 있으며, 사는 이야기에 관심이 많다.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